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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의 유토피아 -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꿈꾼 세계 ㅣ 키워드 한국문화 5
서신혜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서로 다를 바 없는 하나의 민족안에서 서로 다른 이념을 앞세워 총구를 겨누는 전쟁이 일어난다. 남쪽과 북쪽의 군인들은 각자의 국가를 위해 목숨을 걸고 자신의 형제를 향해 총을 쏘아댄다. 하지만 그들에게 이념은 큰 의미가 없다. 단지 나의 형제가 그 전쟁을 통해 죽었고, 나의 친구가 죽음 앞에 서 있을 뿐이다. 국가는 이념을 앞세우지만 그들은 자신과 가족, 형제를 위해 싸운다. 이제 남과 북은 서로의 가족과 친구를 죽인 적일 뿐이다. 분명 그들은 하나의 민족이자, 그들 자체로 가족이고 친구임에도 말이다. 매일매일 동료가 죽어나가는 전쟁터, 그 안에서 어느날 아군과 떨어져 낙오하게 된 몇몇의 병사가 생겨난다. 이곳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어디로 가야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외따로 떨어져 있는 곳에서 전쟁따위는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열심히 일하고 그 일의 수확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 예절은 있지만 힘은 없고, 먹고 살 식량은 있지만 개인의 부는 없는 곳, 남과 북의 낙오한 병사들은 그곳에서 만나 새롭게 하나의 가족으로 태어난다.
몇년 전 큰 인기를 끌었던 영화 중에 웰컴투 동막골이라는 작품이 있었다. 6.25전쟁을 배경으로 낙오한 남과 북의 병사들이 세상과 거의 격리되다시피 한채로 자신들만의 사회를 구성하고 살아가는 동막골이라는 마을에 흘러들면서 이념을 앞세워 싸우던 전쟁의 적이 아닌 말이 통하고 생각이 통하는 하나의 민족임을 확인하고 새로운 우정과 의리를 쌓아가며 진정한 인간애에 대한 깨달음을 얻는 과정을 그렸던 이 영화를 보며 사람들은 전쟁중이던 그들의 시대적 배경보다 그들이 살아가는 동막골만의 모습과 그 안의 새로운 사회상에 매력을 느꼈었다. 누구하나 욕심을 부리지 않고, 힘을 앞세우지 않으며, 권력보다는 존경으로 이끌어 나가는 사회. 동막골 사람들의 일상은 우리가 한번쯤 꿈꾸었던 인간 그대로의 삶, 그리고 지금은 잃어버린 자연의 하나로서의 사람들의 삶을 갈망하게 했었다. 그리고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동막골의 세상은 그대로가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들이 꿈꾸었던 조선인의 유토피아와 맞닿아 있었다.
사람들은 언제나 현실을 탈피하는 이상향을 꿈꾸며 살아간다. 그래서 지역과 시대를 막론하고 어떤 시간과 장소의 사람들이던 그들만의 꿈의 세계를 그리고 상상하며 살아왔다. 때로는 유토피아라 불리웠고, 때로는 무릉도원이라 불리웠으며, 종교적으로는 천국이 될수도, 극락이 될 수도 있는 아무걱정없는 행복한 사회. 이름과 구체적인 상상은 달랐다 할지라도, 그들이 살아갔던 시대와 장소와는 달랐던 그들만의 이상향은 과거에도 있어왔고 현재에도 존재하여, 아마도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만들어지고 그려질 것이다. 그것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아닌지와는 별개로 그것이 바로 그 시대의 사람들이 원하는 진정한 국가이며 사회이고 정의이기 때문이다.
<조선인의 유토피아>는 이렇게 수 없이 많이 존재했었던 사람들의 꿈. 바로 그 이상향들 중에서도 우리의 조상들이 그리고 원했던 이상향의 모습에 집중하여 내용을 담고 있다. 꿈에서 보았던 복숭아 나무 가득한 무릉도원에서부터 실제로 존재했다고 전해지는 미원이라는 사회까지, 그들이 꿈꾸고 바람해왔던 유토피아의 기록과 자료들을 통해 당시의 지식인과 백성들이 어떤 세상을 이상적으로 생각했었는지, 그리고 현실의 어떤 부분에서 벗어나고자 했었는지를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살펴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한 시대의 사람들이 가장 바랬던, 가장 바람직한 꿈의 그곳은, 그 시대의 사람들이 최고의 가치로 놓았던 것은 어떤것인지 부터, 당시의 사회에서 그들이 가장 피하고 싶었고, 부조리하다고 느꼈던 모순들이 어떤 것들이었는지까지를 역설적으로 설명해주는 시대의 이념을 설명하는 자료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야기처럼 우리 조상들의 이상향은 서양의 그것들과는 꽤 다른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위도식하는 것으로도 인생을 풍요롭게 살 수 있는 곳을 꿈꾸었던 서양의 사람들에 비해 우리의 조상들이 꿈꾸었던 유토피아는 일한 만큼 거두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인류 처음의 모습에 가까웠으니 말이다. 노동의 가치를 알고, 자연과 하나가 되어 인간도 자연의 일부가 되어 살아갈때 진정한 이상의 나라가 된다는 우리 조상들의 꿈의 세상. 작게는 권력으로 대변되는 힘으로부터, 크게는 무엇인가를 소유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인간의 욕심을 경계하고 무엇이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두는 것에 최고의 가치를 두었던 우리의 이상향은 그래서 서양의 그것보다 어찌보면 현실가능하고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가능성을 상상하게 한다.
사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그들이 꿈꾸었던 유토피아가 실제하는가는 중요한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시대가 바뀌면 시대를 이끄는 정신과 이념이 바뀌듯, 한 시대의 사람들이 꿈꾸는 이상향 역시 언제나 늘 바뀌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한 시대의 유토피아가 아무런 가치도 없는 허무맹랑한 것은 아닐것이다. 누군가가 바라는 꿈은 그 사람의 가치관과 인생의 목표, 그리고 사고방식을 보여주듯이, 시대의 유토피아 역시 그 시대의 흐름과 배경, 그리고 최고의 가치를 보여주는 역사적 사료로서 그리고 후대에 보여주는 당시의 시대상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하는 것이니 말이다. 조선인의 유토피아, 그래서 그 과거의 유토피아를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우리가 꿈꾸는 유토피아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고 어떤 의미를 두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 바로 그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