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불복종
헨리 데이빗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 이레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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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을 넘어 실천해야 할 덕목이라 생각된다. 소로우! 그의 삶에 존경을 넘어 경외심마저 느껴진다. 개인 소로우는 매우 조용하며 무소유의 삶을 실천했지만, 시민 소로우는 인간의 권리와 의무를 명확히 강조했다. 그래서 그는 늘 당당했었다. 하지만 그가 살던 100년 전의 미국와 지금의 한국에는 그다지 차이가 없어 보인다. 특히 정부의 말도 안되는 압력은. 경찰과 검찰은 대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한 인간의 지성이나 양심을 상대하려는 의도는 결코 보이지 않고 오직 그의 육체, 그의 감각만을 상대하려고 한다. 정부는 뛰어난 지성이나 정직성으로 무장하지 않고 강력한 물리적 힘으로 무장하고 있다. 나는 누군가에게 강요받기 위하여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아니다. 나는 내 방식대로 숨을 쉬고 내 방식대로 살아갈 것이다.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보도록 하자.
헨리 데이빗 소로우, <시민불복종>, 이레, 1999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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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01 0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knulp 2017-02-01 09:52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권력을 꿈꾸는 것 같습니다. 매번 권력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는 현상이잖아요. 안타까운 우리네 현실입니다. 불현듯 법정스님의 무소유가 떠오르는 아침입니다.
 
바다의 기별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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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연휴 동안 김훈의 글에 도전했다. 그의 글은 그랬다. 얕은 이해력을 가진 나로서는 그의 글은 도전의 대상이었다. 소설도 수필도 그렇게 쉬 읽혀지지 않았다. 가끔 딴 생각이라도 할라치면 어김없이 뒤로 돌아가 다시 읽어야만 했다. 그의 글은 건조한 듯하면서도 꽉 차 있고 냉철한 이성이 요구되었다. 그래서 한 장을 넘기기 어려웠다. 내게는.

다행히 이번 글은 사적 이야기가 담긴 글이 많아 어렵지 않게 읽혔다. 물론 남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그의 눈과 글이 쉽게 글을 풀어줄리는 없지만, 기어이 그의 글을 읽어내리라는 도전의식이 강했던지 단숨에 읽어내렸다. 박완서의 글을 술술 읽히는 반면 김훈의 글은 무거워 책장의 무게마저 느껴질 정도였으니 다행이라 아니할 수 없다. 내게는.

제목부터 독특했다. ‘바다의 기별‘이라. 기별은 생명체가 전하는 것인데 바다가 어찌 전한다는 것인가. 그럼에도 이 책에는 아버지, 어머니, 딸, 박경리, 임꺽정, 소방수가 등장한다. 서울, 일산, 안성 그리고 칠장사라는 지역도 나온다. 책의 두께에 비해 내용은 다소 가벼워진 셈이다. 그렇다고 장영희의 글처럼 일상을 쉬운 필치로 그리지 않는다. 김훈은 자신의 고향인 서울 북촌을 제 3자의 시각으로 그리는가 하면 현재 살고 있는 일산을 연구자처럼 파헤친다. 이 지점에서 살짝 놀랬다. 나 역시도 현재 살고 있는 도시를 공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시킨 것이 아니다. 10여 년을 사니 당연히 그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점에서 그는 나의 대선배인 셈이다.

그의 글은 어디엔가 발표한 듯한 글인 ‘회상‘에서 정점을 찍는다. 이런 표현이 나온다.
‘사회의 언어 자체가 소통불가능하게 되어버렸을 때, 우리는 민주주의를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의견과 사실을 구분해서 말한다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를 만드는 기초이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는 소통에 의해서만 가능할 터인데, 소통되지 않은 언어로 무슨 민주정치를 하겠습니까‘

언어는 불완전하지만 대화를 통해 소통 가능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그는 보고 있다. 그런데 의견과 사실이 혼돈되고 뒤죽박죽이 된 현재는 소통이 불가능하고 이런 현상을 통해 민주주의에 위기가 닥치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 무슨 민주정치를 하겠냐며 그는 일갈한다. 이어 그는 ‘주류 언론과 담론이 의견을 사실처럼 말하고 사실을 의견처럼 말하니 언어가 인간의 의사소통에 기여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문학가로서의 탁견이 아닐 수 없다.

김훈은 자신의 글쓰기가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통해서 시작되었다고 고백한다. 영미문학을 전공한 그이지만 정작 그를 사로잡은 것은 무장 이순신의 간결하면서도 절제된 글쓰기였다. 27년의 기자생활을 접고 전업소설가로 나섰을 때 이런 그를 진정한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은 결국 <칼의 노래>였다. 그가 <난중일기>를 내면화하여 삭히고삭힌 글이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김훈의 소설만 좋아했었는데 이 책을 통해 그의 수필까지 읽을 필요를 느꼈다. 그의 글쓰기와 사유 방식을 배우고 싶어서다.

이 책의 단점은 순수한 수필집이라 보기 힘든 데 있다. 즉 기 발표한 책의 서문과 수상소감문을 수록한데다 다른 매체를 통해 기고한 글들이 제법 실렸기 때문이다. 다소 아쉬운 대목이다. 게다가 이 책을 출간한 ‘생각의나무‘ 출판사도 사라져서 오직 중고서점에서만 구매할 수 있다는 점이 걸린다. 물론 도서관에서 빌릴 수도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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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식 2017-01-31 0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칠면서 섬세한 작가같아요^^

knulp 2017-01-31 10:52   좋아요 1 | URL
네 그래보여요. 평범치 않은.

캐모마일 2017-02-05 0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첨엔 김훈 작가님 문체가 어려웠어요. 때로는 간결해서 그리는거 같고 때로는 의인화(맞는 표현일지..)로 인해서 읽다가 걸리기도 했네요. 생각의 나무에서 작숨 여럿 나왓는데 출판사 사라지니 저도 아쉬웠어요...ㅜㅜ

knulp 2017-02-05 09:31   좋아요 0 | URL
그래서 헌책으로 김훈의 책을 사 모으고 있습니다. ㅎㅎ 그의 글에 어려움을 겪은 이가 저만 아니어서 다행이네요^^
 
게르마늄의 밤
하나무라 만게츠 지음, 양억관 옮김 / 씨엔씨미디어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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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뭐랄까... 눈길을 주지 말았어야 할 책이었다. 일본 소설을 읽고픈 마음에, 일본의 저명한 문학상을 받았기에 별다른 주저없이 고른 책이었는데 결국은 실수였다. 독자들을 불편하게 만들겠다는 저자의 목적은 달성했는지 모르겠지만 책을 덮기 전까지 던져버리고 싶은 욕망이 든 게 한 두 번이 아니다. 저자가 묘사한 배경과 상황들은 내가 받아들이 힘든 수준이었다. 변태, 엽기, 폭력이 버무러진 내용은 나 같은 이에게는 맞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성스럽고 비폭력적인 것은 선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수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 소설은 19금이었다. 선택은 독자들의 몫이겠지만 나는 그다지 권하고 싶지 않다. 쩝... 시간낭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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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하라
스테판 에셀 지음, 임희근 옮김 / 돌베개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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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읽기 시작해 가슴에 뜨거운 무언가를 남긴 책!

부조리한 현실에 눈 감지 말고 사회 정의를 위해 분노하라! 그리고 이를 고치기 위해 사회 문제에 적극 참여하라. 에셀의 가르침을 요약하자만 이렇지 않을까 싶다. 90대 노익장이라고 표현하면 저자에게 누가 될지 모르겠지만 이 나이 든 청년에게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현안에 무관심하고 눈 돌려온 것이 현실의 우리였다. 내가 바쁘고 여유가 없기에 남에게 무관심해진 것이다. 그 결과는 지금 오늘의 우리 모습 아닐까? 우리는 87년 민주항쟁 이후로 민주화의 길을 걸어왔지만 수구권력층은 이 길을 거슬러 가려 하고 했다. 그리하여 우리 사회는 다시금 운동화 끈을 매고 거리로 나서야 했다. 그들 탓을 했지만 무관심했던 우리 탓이기도 했다. 이에 저자는 분노하고 (우리식으로 말해) 촛불을 들라고 하지만 나는 짱돌을 들고 싶다. 그리고 저편에 던지고 싶다.

얇은 책 한 권이 사람을 들끓게 한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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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7-01-30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노대신에 체념이 앞선 시대가 된듯....그러게요..

knulp 2017-01-30 11:36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체념 대신 분노와 짱돌이 필요한 시대인데요. 연휴엔 잘 쉬셨는지요.

:Dora 2017-01-30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노는 00의 힘

knulp 2017-01-30 11:39   좋아요 1 | URL
00이 누구죠? ㅎㅎ 점점 분노 조절이 힘들이지네요^^ 확! 어떻게 해버리고픈 심정입니다.

:Dora 2017-01-30 11:43   좋아요 0 | URL
나 너 우리.. 아무나 쓰셔도 무방합니다 ^^ 그런데 분노가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건강에 좋지 않습니다

knulp 2017-01-30 11:45   좋아요 1 | URL
ㅍㅎ 공감합니다. 이젠 행동으로!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 - 18세기 조선의 문화투쟁
백승종 지음 / 푸른역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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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정조에 대한 평가와 상당히 많이 다른 주장이다. 여기에 흔히 말하는 ‘정조대왕‘이라는 표현도 어울리지 못할 것 같다. 그렇다면 정조 년간에 일어난 사회, 문화적 변화는 정조와 별 관련이 없는 건가? 책을 읽으며 넘쳐나는 궁금증을 주체치 못하겠다. 300쪽을 넘겨 읽은 시점에서 궁금함을 미리 정리해두지 않았을 후회한다. 바보 같으니라구!!!!

교과서에 있는 정조는 여전히 개혁군주로 굳건하다. 아무래도 그 위상은 쉽게 변할 것 같진 않다. 그래도 그에 대한 이런 새로운 평가와 주장이 있다는 것은 그에 대해 연구할 것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정조는 연구자들에게 매력적인 인물이 아닌가 싶다. 연구할 주제가 많으니 말이다.

정조는 지적인 면에서 18세기의 어떤 성리학자보다 탁월했다. 하지만 이념적 성향은 진보적이라 볼 수 없다. 정조는 새로운 이념을 추구하지도 않았고, 정치 제도의 근본적인 혁신을 꽤한 적도 없었다. 일부 역사가들은 그를 개혁군주로 높이 평가하지만, 그것은 과장된 것이다. 그의 개혁은 기존의 성리학적 가치관을 수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 백승종,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 푸른역사, 2011, 346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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