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아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두행숙 옮김 / 상상공방(동양문고)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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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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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마르그, 그곳은 세상의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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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뿌윰한 대기 중으로 바스락 바스락 빨려 들어가 소리 없이 흩어져 버릴 것 같은 잿빛이 감도는 이야기에 시선을 멈추게 한다. 아픔을 겪은 기억의 조각들이 인간의 감정을 황폐하게 만들고 또 다른 아픔을 조장하는 것은 일종의 강박 관념일까? 더 이상 소통할 길 없어 평행선을 달리는 인간들에 대한 심리세계의 소묘는 가히 이 소설의 백미라 할만하다.


예정된 것 없는 우연의 시간 속에서 전직 외과의사 아드리안 헤르초크와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레아의 아버지인 대학교수 반 블리에트는 서로의 아픔을 붙들어 매는 것으로 시작한다. 저자는 두 인물간의 낯설음을 매개체로 그들 속에 내재된 감정변화에 따른 기복에 맞춰 스멀스멀 다가오듯 어색하게 내맡긴다. 아드리안의 시점을 통해 반 블리에크의 레아에 대한 집착과 애증이 생산한 현실과 과거를 넘나드는 기억의 편린을 바라보듯 진득하게 투영한다.


반 블리에크는 지독하게 사랑했던 아내 세실의 죽음으로 8살 레아와 아픔의 상처를 마음속 깊이 각각 안고 살아간다. 우연히 베른의 한 역사에서 마주친 기이한 바이올리니스트의 연주장면을 목격한 레아는 엄마의 부재에 대한 허무함을 바이올린을 통해 치환하려 한다. 반면 반 블리에크는 바이올린이 딸과의 관계를 개선시켜 주는 동시에 자신으로부터 앗아 가 버릴 것 같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인다.


이러한 불안감은 레아의 천재적이고 매혹적인 선율을 통해 현실에 반영되고 타인의 감정이 레아의 마음속에 깃드는 또 다른 아픔을 겪게 된다. 성장할수록 레아는 바이올린에 더욱 집착하게 되고 소통의 유일한 매개체로 이용하고자 하나 어둡고 음습한 감정들에 지배당하게 되며 교만과 광기 어린 모습으로 정상인의 범주를 벗어난다.


광기의 소나타는 레아의 레슨교사 마리를 통해 서서히 드러나며 스폰서 레이와의 조우에서 폭발적인 감정의 변주 속으로 빠져든다. 레아의 황폐한 감정은 더욱 피폐하게 되고 반 블리에크는 나약함과 불안 속에 어린 시절 꿈꾸었던 도박사, 지폐위조를 꿈꾸던 소년의 허상을 간절히 갈구하게 되는 훗날 갈등의 소재가 될 것을 암시한다.


저자는 반 블리에크와 아드리안을 통해 소통부재에서 오는 신경성 강박 증상을 공유하게 되며 서로 간에 일종의 심리적 유대감과 묘한 연대의식을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관계 속에 반 블리에크는 레아가 레이와의 허무하게 무너진 결별의 충격으로 침잠된 감정을 회복시키고자 한다. 반 블리에크는 자신의 연구지원금을 횡령하게 되고 최고의 바이올린 과르네리 델 제수를 얻기 위해 일생일대의 도박을 벌이게 되는 이성적 제어를 상실하게 된다.


결국 반 블리에크가 레아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기 위해 보인 비현실적이고 위험천만한 현실은 길을 잃고 어둠 속으로 잦아들게 되며 피할 수 없는 지독하고 냉정한 현실만이 그를 반기게 된다. 저자는 이를 통해 반 블리에크가 행한 비윤리적 행위가 자기 위안에서부터 파생된 억눌려진 자아의 또 다른 표출임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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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우리가 무엇을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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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적 현실은 무자비하고 파괴적인 종국을 예고하게 되며 레아와 반 블리에크를 이어 주던 바이올린은 더 이상 제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아드리안은 극도로 우울한 감정의 끝에서 시리도록 차가운 냉소적 허무함과 조우하게 되고 자신의 영혼을 갉아 먹고 있는 감정의 그늘이 릴리아네의 부재임을 인식하게 된다. 
 


델마와 루이스. 지나 데이비스와 수전 서랜드가 열연한 그랜드 캐년의 벼랑 끝으로 질주하게 되는 라스트 신과 반 블리에크의 광란의 질주 속에는 잃어 버린 그들의 인생을 살기 위한 서투른 몸짓에 불과하였음을 저자는 대비시켜 보여 준다.   

 






익숙지 않은 바라보기에 머뭇거림이 다소 거슬리게 하지만 독특한 서사구조의 낯선 스케치로 이내 적응하게 한다. 이렇듯 저자는 자아의 인식이 타자의 인식 속에 교차되듯 넘나드는 교감관계와 자연스럽게 처리한 심리묘사가 일품이라 하겠다.  몽환적인 레아를 중심으로 흘러가듯 풀어가는 이야기의 깊은 심연으로 빨려 들어 갈수록 알 수 없는 그들의 방황에 모종의 연대감과 연민의식을 느끼게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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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선 지구호 사용설명서
R. 벅민스터 풀러 지음, 마리 오 옮김 / 앨피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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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를 살아가는 지구인들은 매일 쓰고 버리는 행위의 반복된 삶을 산다. 진정한 삶의 행복이 보다 나은 소비를 위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지상 최대의 마지막 임무과제인양  그렇게 살아간다. 소유에 대한 집착은 정말 이 책의 저자 벅민스터 플러가 말하듯 대해적이 오랜 세월 그들의 부를 독점하기 위한 수단으로 무지몽매한 대중들을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비밀스런 지배의 결과일까?




저자 벅민스터 플러는 ‘20세기 낳은 다빈치‘로 명명되며 그가 주장한 지구경영에 대한 미래예측에 대한 논거는 21세기를 사는 현대인들에게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 하겠다. 이미 그가 이 책을 통해 인간의 탐욕스러운 소유욕을 경계하고 자원에너지에 대한 절제와 협력, 공정한 분배에 의하여 인류 전체가 진정한 살 길을 모색할 것을 주장한 진정한 지구인으로 추앙받는 입지전적적인 인물이다.




인간의 역사에 대한 시각은 그의 독특한 대해적 인간경영 이론은 기존의 관념을 흔드는 무엇이 있다. 인간의 정신은 수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나 드넓은 대양大洋을 정복한 대해적의 출현으로 지구의 독점이라는 미명아래 전문화의 어둠의 저편으로 가라앉았다 한다.




학교를 통해 전문화된 인재의 배출은 인류의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는 견인차 역할을 하게 되며 산업 과학이라는 괴물의 출현으로 대해적은 몰락하게 된다. 결국 관념적 지성이 물질적 자연을 정복하는 순간으로 지성은 이제 모든 분야에서 물질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음을 말한다.




이러한 인간의 진보는 근본적으로 지성을 통해서만 의미가 있는 것으로 물질이 관념적 정신을 지배하는 것은 멸망이라 호소한다. 이러한 지나친 전문화로 인해 범적응성은 떨어지게 되고 희생이 뒤따르는 자명한 결과를 초래하게 한다. 저자는 이것이 바로 지나친 특수화는 멸망이라는 불변의 진리를 언급하고 있음이다.




인간의 지성에 더해 지구호는 인간이 출현한 200만년 동안 아무런 문제없이 항해하고 있으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짜여진 정교한 우주선이지만 사용 설명서가 전무하기에 숨겨진 일반원리를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라 한다. 일반원리에 담긴 숨은 진실이 인류의 생존과 발전을 담보하는 중요한 역할을 가지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음에 분명하다.




일반 시스템 이론과 이제는 보편화된 상호작용을 통해 물질과 관념을 유지시키는 시너지현상을 통해 우주선 지구호의 선장인 인간이 진정한 부의 풍요로움을 공유하고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이라 한다.




“부는 인류가 육체적으로 건강하고 물질적ㆍ정신적으로 부족함 없는 미래를 누릴 수 있도록, 환경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우리의 조직적 능력이다.”(p-118)




그러나 인간 지성의 무절제한 방향을 잃은 발전이 통제 불가능한 인간의 집착과 불합리적인 경제적 시스템의 고착화가 부의 불평등한 분배를 가져오게 하며 끝없는 열망의 나락으로 빠져 들게 한다. 이는 지구호가 오염으로 뒤덮이는 화석에너지에 대한 무분별한 남용의 결과가 인간 정신에 대한 도외시에서 비롯되었음을 일컫는다 하겠다.




저자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당면한 문제인 비현실적인 경제ㆍ회계시스템의 전폭적인 수정이 전제되어야 하며 산업화 현상에 의해 밀려난 노동자들을 교육을 통해 연구개발 영역으로의 이전 시켜 화석에너지를 대처할 에너지 자원을 개발하는 인적 자원의 집중이 우선이라 한다. 그가 주장한 교육은 인간의 전문화가 아님은 물론이다.




R. 벅민스터 플러는 19세기에 태어나 20세기를 살았으며 21세기를 바라본 인물이라 한다. 약 45년전에 그가 펴낸 이 책 <우주선 지구호 사용설명서>의 다양한 함의를 통해 예측한 오늘날은 현재와 다르지 않음을 안다. 인간이 만든 산업화로 인해 환경오염, 생태변화, 불안정한 기후변화 등은 불안한 미래를 여는 우울한 단상이다.

 

저자의 예측을 통한 미래에 대한 총체적인 고찰은 그의 논거가 몽상적 감상에 젖은 희망이라 할지라도 인식의 확대를 통한 가치공유가 필요한 의미 있는 일이라 하겠다. 이를 통해 우주선 지구호의 숙달된 사용법을 익히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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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기별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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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바다가 노래한다. 저자 김훈이 들려주는 삶에 대한 단상은 아득히 품은 감정의 오롯한 기억저편을 되살린다. 드러낸 것과 드러내지 않은 것의 경계에서의 사유와 헛헛이 쌓이는 삶에 대한 근원적 물음들에 공감하게 되고 그 수고스러움에 감동의 여운이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울리게 한다.


저자는 현대사회가 품은 시대적 격동의 풍파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감내하며 겪은 삶에 대한 원형적인 통찰을 관조적인 시선으로 읊조린다. 시대가 배출한 태생적 암흑 속에서 표현치 못해 묻어 두어 명멸하지 하지 못한 채 오그라든 아픔의 기억들을 되뇐다. 인생의 무상함을 남가일몽에 실어 자연에 빗대오며 흐르듯 휘적휘적 흘러간다.


참으로 저자의 상념이 뜨겁고 수많은 여운의 가지를 뻗어 나게 한다. 아무런 동질감이 없어 보이는 무채색의 실체 없는 것들에 대한 저자의 단상들이 하나의 큰 틀 속에 묶여 움직일 수 없는 현실적 번민의 무게감으로 반영한다.


지극히 사변적이고 철학적인 이야기로 짧으나마 오래도록 감정의 끄트머리를 거머쥐게 하는 힘을 느끼게 한다.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더 이상 그만의 이야기가 아닌 독자들의 마음으로 온전히 전해 퍼져 오는 우리의 이야기가 됨을 말이다.


이로서 저자는 습관처럼 기록된 감정의 단조로움을 무수한 표현의 바다로 이끌며 생명에 대한 개별성을 통해 지극히 평범한 사물에 대한 단편적 시선을 시각적 다양화를 통해 새로운 익지 않은 날것의 원형적 모습으로 변모하게 한다.


이렇듯 글이나 말로 표현된 사물에 대한 고착화된 이미지의 틈바구니에서 행간의 의미를 깨우치게 한다. 더불어 사실로 인식된 것들에 대한 의견으로의 인식과 의견으로 불완전한 의미를 사실로 명명하는 잘못된 언어적 습관을 통렬히 비판하고 하릴없는 수사적 조사의 남용의 허무함을 비판한다.


그 언어가, 이 사회적 담론이 의견과 사실을 구별하는 능력을 상실한 지 이미 오래됐기 때문에,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는 것이죠. 이 사회의 지배적 언론과 담론들이 의견을 사실처럼 말하고 사실을 의견처럼 말해버리는 거예요.(p-135)


저자는 신념의 언어 즉, 정서적 수용의 언어적 관점을 경계할 것을 일갈하고 주변의 세계를 과학적으로 인식하는 힘을 기를 것을 요구한다. 이는 정서적 인식의 근원적인 형태인 이분법적인 편 가르기식 사고의 한계를 명확하게 인식할 필요를 일깨우기 위한 커다란 가르침의 근원일 것이다.


언어가 가져다주는 -특히 우리나라 말의 기술적 특성상- 모호함이 우선시 되어 그 자연적 아름다움이 반감되며 표현이 주는 의뭉스러운 속내의 경계를 파악하기 힘든 기술적 한계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이렇듯 저자는 영미문학의 서정주의적 아름다움이 우리말로 번역되어 지는 과정에서 그 순수 이상향을 추구하는 감성적 기저의 근원적 본성이 퇴색되게 되고 그 변모하는 감정의 기복들을 온전히 담아내기에는 역부족임을 갈파한다.



저자는 우리말이 아직 덜 체계화되고 발전되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나 일면 수사적 조사의 발달이 거추장스러운 것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저 두리 뭉실 묻혀 사실과 의견을 구별하지 못하는 작금의 현실을 못내 안타까워하는 주관적 감상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언어적 한계에 대한 저자의 불편한 주관적 진실에 대한 담론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영역이 아님을 알게 한다. 언어가 시간을 표현치 못하고 언어가 포착할 수 없는 과학적 규정이 수없이 많음에 동조하게 되고 동어반복에 의한 익숙한 반복에 지나지 않음을 진실은 저자의 이면을 그대로 대변한다.


바다가 들려 준 소식은 그 깊은 심연의 밑바닥으로부터 저자를 통해 우리의 것으로 함께 어우러지게 한다. 초로에 접어 든 저자의 반듯한 상념들이 동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에게 참됨과 올바름을 구별하는 인식의 영역을 확장시켜 주고 사실과 의견의 구별로부터 자유로운 사변적 세계의 커다란 즐거움을 선사할 계기를 마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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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1 - 하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ㅣ 밀레니엄 (아르테) 1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아르테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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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독스러우며 강렬한 눈길로 공허한 어둠의 시선을 응시하는 어린 소녀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디자인으로 장식된 이 책 「밀레니엄」은 보는 이의 시선을 옭아맨다. 전형적인 성 대결구도를 암시하는 내용으로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제법 자극적인 문구로 유혹한다.  


이 책 「밀레니엄」은 스웨덴의 르포르타주 기자 출신 스티그 라르손이 집필하였으며 꾸준하게 독특한 문체와 장대한 서사구조가 가진 매력으로 독자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이미 2부를 먼저 접한 터라 1부의 스토리라인을 파악하고 어림짐작하고 있었으나 그런 연유로 재미가 반감될 것이라 우려는 단숨에 날려 버리게 만들고 생활을 마비시켜 버린다.




저자는 장르소설이 가진 소재, 주제, 양식 등의 전형적인 구조라인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스스로 지배함으로써 소재가 주는 심리적 긴장관계를 생동감 넘치게 흘러가게 한다. 이따금 맥없이 풀려 버리는 뒷심 부족의 책을 접하노라면 처음의 기대감은 여지없이 무너지게 하는 이중성을 갖게 하나 이 책은 쉼 없이 말려들게 하는 숨 막히는 대결구조에 정신 줄을 놓아 버릴 지경으로 거침없이 내몬다.




저자는 오랜 기자 생활에서 터득하며 다루어 왔던 사회적 이슈에 대한 스웨덴 여성의 성폭력에 대한 침묵과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한 비윤리성을 수면위로 끌어 올리면서 소재가 주는 무거움을 치밀한 스토리텔링으로 극복하였다. 사회적 문제에 대한 통찰은 장르소설에서 보기 드문 참신함으로 파괴적이고 기괴함마저 감도는 여타 장르소설의 통속성을 과감히 뛰어 넘는 것으로 저자의 필력에 새삼 혀를 내두르게 한다.




소설은 1966년 반예르 가문의 손녀 하리에트 반예르의 실종사건을 발단으로 밀레니엄의 편집주간 미카엘 블롬크비스트와 천재 해커 리스베트 살란데르의 놀라운 두뇌플레이를 통해 암흑 속 범인을 찾아내는 서사적 구조로 시작된다.




미카엘은 헨리크 반예르로부터 의뢰받은 하리에트 실종에 대한 추적 조사를 통해 반예르가문의 추잡성과 기형적 모습에 의문을 품게 되고 그를 도와 리스베트의 독특한 천재적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함으로서 36년 동안 미궁 속에 갇힌 사건을 해결하게 된다.




저자는 미카엘을 통해 익숙한 기자의 생리적 이면과 권력암투에 대한 그늘진 모습을 중간 중간 투영함으로서 사실감을 더 해 준다. 이는 이 책 「밀레니엄」이 순간적인 감성에 젖어 일필휘지로 휘둘러 쓴 것이 아닌 상당한 시간과 공을 들 인 흔적을 보여 주는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사실적 문체완성에 더 해 저자는 스웨덴의 국민적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영향을 받았음을 드러내며 그에 대한 오마주로 ‘슈퍼 블롬크비스트‘와 리스베트의 이미지가 ’말괄량이 삐삐‘에서 차용하였음을 소개한다.




이렇듯 빠른 전개와 갈등을 증폭시키는 치밀한 복선구조로 독자들에 대한 기대심에 대한 배려 및 호기심의 충족을 아낌없이 눈앞에 펼쳐 보이게 한다. 대부분의 반응이 대동소이한 것은 적확한 표현력과 살아 있는 전달력이 두드러지게 탁월한 만큼 시간적 투자에 대한 충분한 희열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저자가 뿜어내는 「밀레니엄」의 흥미진진한 세계로 - 그저 편안함을 돕는 주전부리와 함께 - 빠져 드는 즐거움을 만끽하기를 권해 본다. 반전이 거듭되는 「밀레니엄」의 이야기는 감히 상상하기 힘든 현실의 반영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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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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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이 세상에서 글이나 말로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의 또 다른 의미가 아닐까? 엄마는 그저 떠올려 부르고 듣기만 해도 포근히 스며드는 따스함에 절로 겨워 그 존재감을 잊게 하는 익숙함에 있다. 이처럼 머리가 굵어지면서 어미가 보인 내리사랑의 고마움에 뒤늦은 후회로부터 목이 메게 하는 것은 당연함으로 무장한 이기적인 발로이지 싶다.  


이 책 「엄마를 부탁해」는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먹먹함이 오롯이 스며든 가슴 저린 이야기다. 초반부터 시종일관 내비치는 익숙한 어미의 내음에 종내에는 말라버린 눈물샘을 자극하고 그칠 줄 모르게 한다. 저자는 그런 일을 마치 예견이라도 한 듯 인칭의 바라보기를 ‘너’로 돌려 세워 애써 감춘 부담감의 무게를 온전히 감내하기를 요구한다.  


이야기는 늙은 어미의 행방불명으로부터 시작된다. 완고하고 가부장적인 아비와의 우연하고 예견된 단절로 영원히 사라지고 마는 엄마의 모습에 품었던 가슴 속 착각의 환상으로부터 철저하게 깨트려 지는 결계의 가녀림에 결별을 예고하게 한다.  


엄마가 사라지고 난 후 바라보기는 아들의 마음속으로 들어 와 어미의 모든 것을 뒤바꾼 삶의 일면이 그려진다. 이야기 속 엄마가 가진 박소녀의 이름처럼 아이러니하게도 아내로서의 삶을 걷기 시작한 순간부터 여성으로서의 백합 같은 순수함은 봄날 꽃망울과 같이 시들어 버린 지 오래지 싶다. 체념적 순간이 다시금 인내와 희망을 열망하여 노래하는 것은 오로지 당신의 살 내음 가득 사랑을 품어 기른 아들에게로 전이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들은 제 어미가 가슴으로 품어 기른 사랑의 눈물겨움에 사회적 편견과 인습에 물들어 잊고 지낸 나날들에 반추하며 눈시울을 붉히게 한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고 나에게만은 변절하지 않을 것 만 같은 지독스러운 이기심이 이제는 부끄러움을 넘어 회한의 눈물로 어미를 가슴에 묻게 한다.  


다시 바라보기는 어미의 삶을 닮아 가는 딸들을 지켜보는 시선으로 옮겨 온다. 뒤옹박 같이 뒤틀린 어미의 인생을 딸에게만은 되물림 하지 않기 위해 아들과는 또 다른 어미의 넉넉한 젖가슴과 같이 사랑을 풍긴다. 시대가 변해 평등한 삶을 살기 위해 드세어진 밤을 사는 막내딸의 모습에서 애잔함을 보여 주고 인텔리로 무탈하게 자라 결국 누군가의 아내로서의당신과 너무도 닮아가는 삶을 살아 내는 큰딸의 모습에서 애처로운 어미의 심정을 보여 주는 것은 모든 어미의 마음을 날 것으로 대변하고 있다.  

 

또한 엄마는 얼굴도 모른 채 지긋지긋한 가난의 허울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선택 당한 지아비를 그윽한 시선으로 응시한다. 말랑말랑하고 생기발랄함을 품어 간직한 18세 소녀의 마음을 무자비하게 난도질하여 세월의 풍파에 딱딱하게 굳어 버리게 만들어 버린 일방적인 남편의 모습에서, 한恨이 승화하여 또 다른 정情의 모습으로 분출되여 녹아내고 있다.  


이에 더 나아가 저자는 기교적 장치의 일환으로 엄마의 여성으로서의 굳은 마음을 뜨겁게 달구어 주고 친구와 같은 존재를 인위적으로 설정하여 엄마의 본성이 중성이 아닌 온전한 여성으로서의 기억의 흔적이 남아 있음을 일깨우게 하는 이성적 대상을 의도적 삽입을 시도한다. 이를 통해 엄마에게 한순간 지나쳐  설레이게 하였던 감정들의 편린들을 끌어 모아 여성으로서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것에 동조하게 한다.  


이야기는 엄마를 찾을 것이라는 희망적 바람은 끝끝내 들어 주지 않을 모양이다. 당신의 몸 건사하기를 사치처럼 치부하며 자식들과 지아비를 돌보기 위한 삶이 숙명인 듯 묵묵히 받아 들여 낡아 해어져 무릎이 나온 펑퍼짐한 몸 빼옷과 세월에 닳아 버린 파란슬리퍼의 수고스러움에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오도카니 커다란 눈망울을 끔뻑이는 어미 소의 모습과 뒤엉키게 한다.   

 

이렇듯 저자가 이야기하는 엄마의 상실로부터 오는 당신의 존재감에 대한 대중적 접근은 치열한 긴장관계를 대비시키지 않고도 세대를 아우르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다. 엄마라는 대상이 가져다주는 심리적 이완작용이 복잡다단한 일상에 우리네 엄마가 가진 자애롭고 넉넉한 미소와 한없는 사랑에 저절로 주억거리게 하는 것은 위대함을 넘어 선 엄마의 단어가 내포한 의미 그 이상이라 하겠다.  


골똘하게 그러모아 생각할 필요도 없이 치밀어 삼킬 듯 끊어 오르는 어미의 모습에 지나간 과거로의 기억 속으로 스며든 사랑의 손길에 다시금 감동받게 되고 어미의 가슴 속 굵어진 주름만큼 못난 빠진 아픔의 자화상을 아로 새기게 한다. 이처럼 저자 신경숙이 자근자근 들려주는 엄마의 부탁은 더 이상 타자의 삶이 아닌 우리의 삶의 엄마에 대한 희망적 부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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