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의 역사와 아이를 가지고 싶은 욕망 ㅣ 과학과 사회 1
피에르 주아네베로니크 나움 그라프 외 13인 지음, 김성희 옮김 / 알마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아이를 가지고 싶은 욕망은 애정과 본능의 감정과 정비례한다. 남성과 여성이 만나 성적인 교합을 통해 임신을 하는 과정은 지극히 당연한 인류적 진실의 소치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아이를 가지기를 원하나 가질 수 없는 구조적 문제를 가진 불임부부가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증가의 원인은 사회구조적 변화와 환경적 영향에서 찾는다.




다행스럽게도 의학의 발전은 더 이상 불임의 영역을 자연의 상태로 방치하지 않는다. 의학의 발전은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일종의 헤라클레스의 도전인 셈이다. 시험관 아기를 통한 정상적인 임신과정의 한 부분을 도와주는 것에서부터 제3자의 정자나 난자를 기증받아 부모와의 완전한 단절로부터의 접근으로 불임부부에게는 메시아로 이해된다.




이 책 < 성의 역사와 아이를 가지고 싶은 욕망>은 의학의 발전이 사회 통념상 자리 잡은 기존의 인문학적 접근과 과학의 출현으로 인한 새로운 접근을 통합적으로 시도하여 가족에 대한 정의와 성의 문화적 현상에 대한 담론을 스케치하고 있다. 프랑스 유수의 신경정신과 의사를 필두로 정신분석학자, 인류학자, 작가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의 입장에서 기존의 가치체계를 흔드는 작업을 일관된 알고리즘으로 연결시키려 하였다.




여성의 사회참여와 활동은 출산의 시기를 늦추는 것으로 이해된다. 개인의 능력발휘와 정체성의 표현은 사회적 교류로 대변된다. 사회적 인식은 여성에 대한 자리 매김에 건조함 일색이다. 여성의 자연스런 출산에 따른 부대조건의 변화에 관심을 가지기 보다는 경제활동의 지속여부에 초점이 맞추어 진 것이 사실이며 출산은 여성과 관련된 지극히 보편적이고 개인적인 현상으로 인식되는 것이 지배적 현상이다.




이러한 출산의 저하는 기존의 가족관계를 서서히 변모하는 것으로 발전하였다. 공저자들의 인식을 관통하는 공통의 담론은 기존 가치체계의 변화에 있다. 변화의 시발점에는 첨단기술사회로의 이전이 일차적 이유로 보인다. 이러한 변화는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성 정체성은 더 이상 굳건한 짜임의 틀로 받아들이기는 힘듦을 말한다. 이로써 기존의 관습과 인식마저 변화시키고 있는 중대한 문화적 침투현상의 표현인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동성애자의 출현과 아이와의 관계의 정의는 반드시 논의되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프랑스의 진보적인 문화적 인식이 우리보다 빠르게 동성애자와 앞서 언급한 제3자의 정자 내지 난자의 기증으로 이루어 진 생물학적 부모의 법적 확립은 사회 전체적으로 논의되어야 할 가치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대리모에 의한 출산과 정자의 냉동보관으로 사후출산으로 인한 아이의 출산은 다양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예컨대 아이를 가지기를 원하는 미혼의 여성이 오빠의 정자를 이용하여 시험관 상태로 수정하여 다시 자궁 내에 착상하는 방법으로 아이를 가진다면 이것을 근친상간으로 벌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사회적 합의 없이는 획일화된 기준으로 접근하기에는 과학의 발전이 너무 앞서가는 모습이라 하겠다.




성에 대한 욕망과 아이의 관계는 여태껏 불가분의 관계로 인식되었다. 출산에 따른 사회적 요구는 부모에 대한 혈통으로 이어지며 정체성의 보편화된 모습으로 촉발되었다. 소위 말하는 혈통, 부계중심의 사회는 기독교의 간섭과 무관하지 않음을 책은 말한다. 인류의 역사상 부계중심의 혈통보존이 확립되고 성이 은밀한 것으로 인식되고 여성의 영향이 축소된 것에 대한 배경으로 기독교를 지목하고 있다.




비단 종교적 이유 이외에도 인간의 본성에도 이유를 찾는다. 일종의 어두움 일색인 고독의 한 단면으로 묘사된 장르인 누아르 소설 속 가족관은 일정한 심리적 투영이라 하겠다. 가족의 전통적인 구조를 해체하고 미완의 구조로 재편되는 현상으로 그려지는 것은 결국 인간의 정체성의 불확실성에서 찾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이 책<성의 역사와 아이를 가지고 싶은 욕망>은 생각의 파편이 꼬리를 물게 만드는 책이다. 철학적 시각의 인식의 틀을 기반에 두고 과학적 현상에 대한 검증된 인식이 상대적으로 접목되어 버무려 져 있다. 가족의 의미를 재해석하고 상징적인 가치를 폭넓게 수용하는 영역의 확대를 가져다 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인식의 유연성은 사회적 담론이 일반화되는 과정에서 거쳐 가는 현상으로 보편적 진리를 허무는 작업으로 시작됨은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기계화되고 변모되어 가는 이 시대, 가족의 의미를 곱씹어 보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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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아빠의 몰락
로버트 H. 프랭크 지음, 황해선 옮김 / 창비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인간의 욕망 중 소유에 관한 집착만큼 포기할 수 없는 현상은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진실이다. 상대적 가치의 증가가 부의 지위를 매기는 소득의 불균형 현상은 이미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아직 때가 덜 묻은 초등학생조차도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의 규모에 따라 친구가 갈리고 무리가 형성되는 것은 애석하게도 상대적 박탈감이 낳은 우울하기 짝이 없는 불편한 진실이라 하겠다.




만약 상대적 박탈감이 만연한 사회 구조가 지속된다면 근로기준법에서 명시하는 주40시간, 일8시간보다 더 많은 근로시간을 희생하면서까지 우리가 성취하는 가치가 진정한 행복이라 논 할 수 있을까? 분배의 패러다임이 현재와 동일하게, 아니 보다 악화된다면 누구나 가지기를 원하는 재화나 서비스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가능할까? 곱씹어 되새겨 볼 내용이다.




이 책 <부자 아빠의 몰락>의 저자 로버트 H. 프랭크는 미국의 경제학자이다. 그가 담은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담론은 단지 미국사회만을 겨냥해서 분석하고 해부했다고 보기에는 우리와 너무도 닮아 마치 거울을 보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이미 인식 있는 식자층에 의해 회자되고 있던 경제적 현상들을 행동경제학의 시각으로 통찰하였다.




신자유의의와 승자독식시장(winner-take-all markets)




미국사회를 지배하던 헤게모니는 냉전시대의 종결로 인하여 자유주의와 시장자본주의의 강화로 이행하였다. 이른바 신자유주의로 불리는 작은 정부, 감세정책, 공공서비스부문의 민간이양 등은 꾸준히 그 영역을 펼치며 세력을 키워 왔다. 저자가 언급하는 미국 전 대통령 부시의 정책의 이념적 핵심은 신자유주의 사상과 맞닿아 있다 하겠다. 이미 레이건 대통령 시절 기반을 놓은 레이거니즘은 클린턴정권을 지나면서 공고히 다져 져 부시정권에 와서는 한계의 분수령을 넘었다. 




이러한 현상은 케인즈식 경제이론을 허물고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고유의 시장기능에 의한 분배와 통제에 내맡기는 자유방임형 구조로 내달렸다. 그 결과는 저자가 지적하는 바와 같이 소득구조의 상대적 집중현상이 불가피하게 양산되었다. 이로써 상위계층의 소득은 급격하게 증가하고 중산층은 현상을 겨우 유지하며 하위층은 파산지경에 내몰리는 아무도 바라지 않던 경제적 불균형 현상이 가시화되었음을 알게 된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미 우리는 알고 있는지 모른다. 무한경쟁에 따른 보상과 기회의 균등분배라는 외투 속으로 가리고 있는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실제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사례와 비교는 우리가 익숙히 알고 있는 사회경제적 담론이다. 이처럼 우리가 승자독식시장에 관용적이고 유순한 태도로 바뀌게 된 것은 사회경제적 구조와 문화적 현상이 근검하고 절약하여서는 뒤처지는 것으로 인식하고 막연한 불안감을 조장하는 탐욕의 부추김현상에서 찾을 수 있다.




성장과 불평등의 관계




성장에 의한 소득의 불평등 분배는 이 책을 관통하는 중요한 함수다. 저자가 파헤친 역학관계는 성장을 통해 최상위층의 소득이 증가하면 지위 유지를 위한(지위재) 소비로 이행되고 이런 과정을 통해 다음 단계의 계층으로 넘어 가는 소위 소비의 도미노현상이 발생하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지출의사결정의 참조틀을 변화시키고 용인할 수 없는 불합리한 현실을 조장하고 결국에는 소득의 지속적인 유입을 위한 방편으로 인간적인 삶을 포기하는 악순환을 야기한다. 다시 말해 부의 불평등이 만든 사회적 계급의 붙들기를 위한 과소비를 부추기는 대부분이 자멸하는 결과라 하겠다.




저자가 지적하는 불평등 현상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인한 감세정책은 정부의 수입을 감소시키고 줄어 든 재원만큼 보충하기 위해 사회공공서비스예산의 감축으로 이어졌다. 이는 저소득층의 국가적 보호를 줄이고 예전과 같은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지출을 필요로 하는 결과를 도출해 내었다. 이른바 개인무한책임으로 회귀하는 작은 정부의 본질이 은밀하게 숨어 있는 한 단면이다.




과세구조의 혁신을 통한 소비구조의 개선




인간의 본성과 경제적 이론의 함수관계를 통해 경제학을 설명하는 함의는 별반 주목을 받지 못하였으며 논의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행복만족도에 대한 개인적 가치측정의 상대성과 관념의 수단으로 치부되어 왔기에 저자의 논의의 밑바탕에 깔린 사상은 실로 대단하다. 간단명료한 설명과 적절한 비유를 통해 이끌어 내는 경제논리의 현상이해는 매끄럽게 다가온다. 우리가 진정으로 고민하여야 할 사회정치적 담론을 이끌어 내는 그의 힘은 사회 구성원 모두의 인식의 전환에 목적이 있다.




우리가 잘 살기 위해 오늘을 산다는 일반적인 관념은 실제는 불필요한 부의 과잉축적이 아니라 상대적 박탈감에서 자유로운 인간 본성의 행복에 기대어 있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구성원 모두의 질적 저하를 초래하는 하향평준화를 바라는 것은 분명 아니다. 이러한 희망의 단초로 저자는 소비세의 누진과세를 통한 세제개혁에서 찾는다.




지금껏 추진해 왔던 감세를 통한 경제성장정책은 미국 사회를 금융 불안에 빠트리는 실패의 초라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경제 성장을 위한 자율시장시스템의 규제완화는 더 이상 빛을 발하지 못한다. 이제 변화를 통한 드라이브를 걸어야 할 때가 도래하였다. 미루기에는 사회적 폐해가 위험수준을 넘어 섰다. 지금껏 논의되어 왔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한 일차적인 원인에는 정치적 역량의 부족에 그 원인이 있다.




이렇듯 설익은 담론처럼 비쳐질지 모르겠으나 저자의 행동경제학에 입각한 사회경제적 통찰은 불안정한 경제구조를 뒤쫓고 있는 우리에게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 하겠다. 개인의 전인격이 호사스러운 사치재로부터 등급이 매겨지는 몰인격한 기현상이 사라지고 순환적 배분을 통한 고른 분배가 선행되어야 한다. 저자의 담론이 하나의 밀알이 되어 우리 사회가 건전한 구조로 재편되는 데 일조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2009.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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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의 명문가 -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위하여
조용헌 지음, 백종하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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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묵향 그윽이 풍기는 고풍스런 고택에 들어 서 나온 기분이 이러할까. 읽는 내내 개운함으로 온몸을 휘감아 돌더니 종내에는 흐릿한 정신을 명징하게 해 준다. 실로 고마운 책이지 싶다. 역사에 분연히 스며든 명문가들의 향기에 취해 어떻게 지나쳐 버렸는지 모르게 홀연 진한 여운을 오래도록 남긴다. 아마도 그들의 족적에서 드러난 비범한 기개와 장중한 스케일에 절로 압도당하여 숙연해짐을 느껴서 인지 모르겠다.


저자 조용헌이 생생하게 온몸으로 체득하여 담아 펼쳐 낸 <명문가>는 참으로 깊은 맛이 우러난다. 첨단산업화 시대에 함몰된 우리네 얼을 되살리고 무엇이 올바른 삶인지,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본보기가 무엇인지 따끔한 일침을 놓는다. 흥망성쇠의 부침을 당하는 수모를 겪으면서도 지켜낸 그것은 지조에 다름 아니라 하겠다.


책은 고택을 중심으로 분연히 살아 버팀목이 되고 있는 명문가를 중심으로 소개하였다. 여기에 해박한 풍수지리를 바탕으로 명문가가 발원한 지역을 살피고 재미난 일화를 곁들여 놓아 또 다른 재미를 더한다. 이렇게 저자가 밟아 찾아 간 명문가를 따라가다 보면 볼거리 많은 문화유산답사 기행을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저자는 우리네 민족에 담긴 명문가를 통해 사분오열 갈라진 우리 사회를 통합하는 본보기로 삼고자 하였음을 말한다. 구태의연한 사고의 일환으로 가두어 버리기에는 담긴 가르침의 깊이가 넓고 크다 하겠다. 혈통을 따져 묻기 이전에 명문가에 발현된 가풍, 규율, 원칙은 아무나 흉내 내어 따라 할 수 없음은 두말할 나위 없음은 물론이다.


나라가 위태로움에 빠져 풍전등화의 시국에 이르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분연히 일어나 큰일을 도모하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우당 집안과 창평 고씨 집안에게서 우리는 갚을 수 없는 빚을 졌다는 저자의 말에 뼈저리게 통감하게 한다. 진정한 오피니언 리더이기에 가능한 것으로 제 몸 건사하기에 바쁜 현재의 우리와 비교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대목이다.


명문가의 가풍은 반듯한 기운에서 비롯되어서 그런지 남달리 출중한 인재를 배출한 모양이다. 대개는 한 가문에 두서너 명의 수재만 나와도 바라보는 모양새가 달라지는 법인데 인동 장씨의 계보에서 드러난 탁월한 수재의 면면은 분명 명문가의 DNA와 평범한 필부의 그것과는 차원이 달라도 한참을 다른 모양이다.


경물중생(輕物重生). '외물(名利)을 가볍게 여기고 생명을 중시한다.'는 인본중심의 사상을 몸소 실천한 평산 리의 강진 김씨, 일제의 억압에 굴복당하지 않고 분개한 안동 고성 이씨의 행적에서 외경심마저 샘솟게 한다.


분명 지켜낸 외양은 달라도 그들에게서 고유한 정취와 기풍을 흠뻑 젖게 한다. 씨줄과 날줄처럼 얽힌 신산한 삶을 걸어 온 명문가의 고단한 삶이 교활한 수단과 재력을 통해 일군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임은 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하겠다.


조선의 얼은 우리 것에 깃들여 있다는 보편적인 진리를 펼쳐 보인 간송 전형필의 대범한 행적은 오늘날 재력가의 본보기가 아니라 할 수 없다. 우리네 문화를 지켜 내기 위해 조선왕조의 진정한 로열패밀리의 자존감이 무엇인지를 보여 준 전주 이 씨의 행적은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 하겠다.


옛것에 대한 각별한 관심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역사를 통해 오늘을 되살리고 매몰된 민족정기를 이어가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후손들의 몫임은 자명한 이치이다. 세계화되고 평준화된 이때 혈통을 중심으로 가문의 우열을 논하는 것이 자칫 하릴없는 일로 여겨질 수는 있을지 모르나 그 속에 담긴 역사의 흔적은 무시할 수 없다 하겠다. 흔적에 담긴 명문가의 정신은 동천경지(動天驚地)함 그 이상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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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 윈프리의 시대 - 대통령을 만든 미디어 권력
제니스 펙 지음, 박언주.박지우 옮김 / 황소자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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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프라 윈프리, 미국을 대표하는 문화아이콘으로 추앙받는 움직이는 미디어 신화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그녀가 가진 핸디캡과 불우한 환경을 극복하고 기회의 땅, 미국에서 성공을 거머쥔 당찬 유색인종으로 입지전적적인 인물이다. 그녀가 이룬 성과는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사회문화 전반에 걸친 상관관계는 가히 파격적이라 할만하다.  


치솟는 인기의 비결에 자신감 넘치는 긍정에너지에서 찾는다. 현재의 그녀를 만든 배경이 무엇인지, 그녀가 가진 삶의 철학은 무엇인지에 관해 끊임없이 회자되며 대통령을 만든 무소불위의 권력에 놀라움을 넘어 경이로운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꾸준한 자기관리와 변신으로 난공불락의 요새를 만든 그녀의 이면을 내밀히 드려다 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 하겠다.  


이 책 <오프라 윈프리의 시대>의 저자 제니스 펙은 오프라가 뿜어내는 아우라의 허상과 사회적 현상에 대해서 집중 해부하고 그녀가 지향하는 가치관을 총체적으로 분석하여 이념적 접근을 시도하였다. 누구나 그녀의 성공적인 삶을 동경하는 사회적 통념 속에 비판적인 시각으로 우상을 깨트리기란 쉽지 않은 일임에 분명하다. 그러하기에 저자의 용기와 건전한 비판의식이 돋보이는 책이라 하겠다.  


저자는 오프라를 둘러 싼 배경을 논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학문적 접근과 시대 배경적 상황을 통찰하여 객관적 검증의 담보가치를 높여 놓았다. 1970년대 들어 미국사회는 이념적 이데올로기의 소강상태에 접어들어 새로운 사상의 출현에 목말라 하였다. 이러한 배경적 필요에 의해 자유 시장 경제체제를 주축으로 한 자본주의를 더욱 강화한 신자유주의가 도출되었으며, 이는 사회계약관계의 기저를 이루는 공동사회의 기반을 허물고 이익사회로의 이전을 불가피하게 하였다.  

  

신자유주의는 국가의 참여를 제한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형성하고 책임에 대한 분배를 오롯이 개인으로 전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개인에 대한 책임의식은 주류미국사회에 불안한 동요를 형성하게 되고 갈피를 잃은 국민정서를 통합하는 의식강화로 신사상이 만연하는 상태로 진입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태에 오프라는 기존의 신변잡기식의 토크쇼를 탈피하고 테라피 요법으로 무장한 개인역량강화에 주력하는 시대적 담론을 충실히 따르게 되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와 같이 오프라가 포착한 사상적 본질에 렌즈를 맞추어 놓고 있다. 오프라 쇼에서 보여 지는 실제 이미지와 달리 불평등한 구조적 차별을 조심스럽게 담론화 시킴으로써 오프라의 속살 벗기를 시도하였다. 더불어 오프라가 신자유주의에 기반을 둔 이념적 토대이외에도 그녀를 재무장시킨 배경으로 고대 힌두교를 바탕으로 발전한 신사상이 한 몫 하였음은 책 전반을 통해 내비치고 있다.  

 

국내에도 열광적인 인기몰이를 하였던 <시크릿>의 이념적 토대에 오프라는 취사선택하는 임기응변적 면모를 보였다. 줄 곧 그녀가 보여 온 정신요법과 개인의식강화가 실언이 아니었음을 현실화 시킨 구체적인 증거로 <시크릿>의 “구하라, 믿으라, 받으라.”의 행동강령을 보기 좋게 재포장하였음 두말할 나위 없다.

  

 

이처럼 오프라가 가진 역량은 시대 흐름을 동물적인 감각으로 잡아 붙들어 매는 것에 있음을 알게 된다. 이미 기존의 가치체계를 무너뜨리고 우월적인 지위를 형성한 담론들에 대해 치부를 드러내는 비판적 시선을 보내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라 할 만큼 무모한 일로 비쳐질 수 있다 하겠다.  



하지만 저자의 용기 있는 건전한 비판은 건강한 사회를 이루는 요소임에는 분명하다 하겠다. 저자가 주장하는 오프라의 이중성과 신귀족계층에 기댄 우민화 과정은 암묵적 합의로 이루어 진 비열한 세계의 한 단면이라 하겠다. 그녀가 보인 오만함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자기강화를 빗댄 이념적 자포자기에 다름이 아닌 것은 씁쓸한 현실이 아니라 할 수 없다.  



사회적 담론이 개인의 이익을 보장하고 추구하는 것이 일견 잘못된 시각은 아님에도 승자독식의 원칙에 의한 불가피한 희생은 우리 사회가 책임져야 할 공통의 의무임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기에 저자가 오프라란 거대 미디어 스타를 주목하고 그녀의 영향력이 사회 전반에 건전한 상식을 차단하는 것으로 인식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라 하겠다.  


이렇듯 열광적인 지지에 묻혀 일그러진 속내를 드려다 보는 것은 상식이 통용되는 사회로 진행하는 통과의례로, 저자의 생각과 이야기에서 균형감 있는 유연한 의식을 고양하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으로 보인다. 책 속에 담긴 무수한 단상들을 읽어 내다보면 한층 성숙하고 객관적인 시선을 확보하는 가치를 발견하지 않을까 한다.  


오프라를 통해 오프라를 바라보는 신선한 재미를 오롯이 만끽하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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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이후의 한국경제 - 글로벌 금융위기와 MB노믹스를 넘어 ㅣ 새사연 신서 4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지음 / 시대의창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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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14일 금요일을 기억하라. 자유 시장 자본주의의 꿈이 사망한 날이다. 30년 동안 우리는 시장 주도의 금융 시스템을 추구해왔다…….(중략)...... FRB는 이 시대의 종결을 선언했다.” (P-288, 파이낸셜 타임즈 경제 분석가 마틴 울프의 기고문 중에서)  



우상처럼 신봉하며 절대선 으로 받아 들여 지던 시장자본주의체제가 사망 선고를 받았다. 모래위에 집을 지어도 이보다는 튼튼할 것 같다. 무엇이 이들을 벼랑의 끝으로 내몰았을까? 그보다 더 미국경제의 사망선고가 왜 우리에게 더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것일까? 의문의 꼬리가 소용돌이치는 경제상황은 우울하기만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 주소이다.




미국에서 불어 닥친 금융공황은 우리 경제에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이 책 <신자유주의 이후의 한국경제>를 펴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이하 ‘새사연“이라 함)의 글은 가히 충격을 넘어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다. 새사연은 한국경제의 정체성과 신자유주의와의 관계를 명확하게 규정하고 정부의 엉성한 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통렬하게 담았다.




경제학의 기본적인 원리를 이해하지 못해도 현재의 한국경제가 위태로운 상황임은 모두 인식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경제의 살얼음판 걷기를 구경하는 국민들로서는 그들과의 역학관계가 우리와 무관하지 않음에 모든 촉각이 맞추어 진 상태다. 하지만 정부의 시각과 언론사들의 태도는 위기 속의 기회로 다듬어 상황에 대한 긴박성을 느슨하게 하며 심각성을 반감시키는 것으로 새사연은 말하고 있다.

 



이 책은 1960년대부터 등장한 신자유주의 시장주의에 대한 개념적 이해와 실물경제가 금융경제에 예속되는 과정을 미국사회를 통해 생생하게 담아 놓았다. 신자유주의는 시장의 자기조절능력에 탁월한 능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경제구조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게 되고 규제완화와 감세로 무한자유경쟁체제로의 연착륙을 수월하게 진행하는 역할을 하였다. 여기에 월가를 주름잡던 영리한 인재들이 모여 금융공학이라는 새로운 첨단무기를 통해 파생상품을 개발해 내게 되고 신자유주의의 첨단동력엔진으로 단숨에 천문학적인 이익을 생산해 내는 기폭제 역할을 하였다 한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의 정책은 세계무대를 하나의 큰 틀로 통합시키고 파생상품의 대표주자인 사모펀드, 헤지펀드의 양산으로 고용 없는 성장이 관행으로 인식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연하게 만들고 근로 계층의 심각한 분화와 양극화로 몰고 가는 파행적인 현실을 맞았다. 이에 주주자본주의는 서민들을 상대로 약탈적 가수요를 촉발하고 급기야는 서브프라임모기로 불거진 거품종양이 곪아 터지면서 작금의 시대가 온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렇다면 새사연이 현재의 신자유주의의 붕괴에 주목하는 이유는 한국경제의 취약한 구조적 모순과 정책의 방향성의 부재에 있다 하겠다. 더욱 염려스러운 것은 현 정부가 이미 사망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는 신자유주의에 기반을 둔 정책의 위험성에 포커스를 맞춘다는 점에 있다. 규제완화와 감세, 민영화와 자본시장 개방, 금융화는 이미 레이건 정부의 전유물인 정책을 표방한 것으로 이를 답습할 경우 그 수혜자는 대다수 국민이 아닌 가진 자의 몫이 될 수밖에 없음은 보수 기득권을 대변하는 것으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라 하겠다.




여기에 한국경제의 중추를 이루는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비열한 예속관계인 납품가 연동제의 우월적 지배를 통한 거래관행을 지적하고 태생적 기반이 열악한 자영업의 구조적 취약점 및 심각한 고용대란의 위험성을 시의 적절하게 분석하여 놓았다. 더불어 공공산업성격이 강한 공기업의 민영화에 대한 통렬한 비판은 어디서도 찾아 볼 수 없는 글로 촌철살인이라 할 만 하다 하겠다.




실제 이명박 정부가 정권을 잡은 지 이제 1여년 남짓 흘렀다. 대통령이 자신 있게 공약한 7%성장, 4만불 시대, 7대강국의 소위 747공약은 공염불이 된 지 오래다. 오죽하면 취업준비생에 불과한 미네르바의 글에 신드롬을 가져다 줄만큼 열광하는 성난 민심이 되었겠는가? 마이너스 성장을 예고하는 불운한 시국에 새사연의 글이 이념적 갈등으로 얼룩진 현실에 신선한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기대된다.




새사연이 역설하는 대기업과 금융자본의 대승적인 약자 끌어안기와 사회 서비스분야를 개척하고 신규 고용 인력을 창출하여 내수경기를 활성화 시키는 것이 최우선이며 이 모든 정책의 중심에 국가가 나서야 할 때라는 주장은 흘려들을 소리가 아님을 자각하여야 할 때이다. 이제 시장의 시대는 가고 국가의 시대가 왔다는 충언이 실제로 반영되기를 바라며 이익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시킨 미국의 전철을 따라 가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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