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의 명문가 -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위하여
조용헌 지음, 백종하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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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향 그윽이 풍기는 고풍스런 고택에 들어 서 나온 기분이 이러할까. 읽는 내내 개운함으로 온몸을 휘감아 돌더니 종내에는 흐릿한 정신을 명징하게 해 준다. 실로 고마운 책이지 싶다. 역사에 분연히 스며든 명문가들의 향기에 취해 어떻게 지나쳐 버렸는지 모르게 홀연 진한 여운을 오래도록 남긴다. 아마도 그들의 족적에서 드러난 비범한 기개와 장중한 스케일에 절로 압도당하여 숙연해짐을 느껴서 인지 모르겠다.


저자 조용헌이 생생하게 온몸으로 체득하여 담아 펼쳐 낸 <명문가>는 참으로 깊은 맛이 우러난다. 첨단산업화 시대에 함몰된 우리네 얼을 되살리고 무엇이 올바른 삶인지,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본보기가 무엇인지 따끔한 일침을 놓는다. 흥망성쇠의 부침을 당하는 수모를 겪으면서도 지켜낸 그것은 지조에 다름 아니라 하겠다.


책은 고택을 중심으로 분연히 살아 버팀목이 되고 있는 명문가를 중심으로 소개하였다. 여기에 해박한 풍수지리를 바탕으로 명문가가 발원한 지역을 살피고 재미난 일화를 곁들여 놓아 또 다른 재미를 더한다. 이렇게 저자가 밟아 찾아 간 명문가를 따라가다 보면 볼거리 많은 문화유산답사 기행을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저자는 우리네 민족에 담긴 명문가를 통해 사분오열 갈라진 우리 사회를 통합하는 본보기로 삼고자 하였음을 말한다. 구태의연한 사고의 일환으로 가두어 버리기에는 담긴 가르침의 깊이가 넓고 크다 하겠다. 혈통을 따져 묻기 이전에 명문가에 발현된 가풍, 규율, 원칙은 아무나 흉내 내어 따라 할 수 없음은 두말할 나위 없음은 물론이다.


나라가 위태로움에 빠져 풍전등화의 시국에 이르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분연히 일어나 큰일을 도모하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우당 집안과 창평 고씨 집안에게서 우리는 갚을 수 없는 빚을 졌다는 저자의 말에 뼈저리게 통감하게 한다. 진정한 오피니언 리더이기에 가능한 것으로 제 몸 건사하기에 바쁜 현재의 우리와 비교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대목이다.


명문가의 가풍은 반듯한 기운에서 비롯되어서 그런지 남달리 출중한 인재를 배출한 모양이다. 대개는 한 가문에 두서너 명의 수재만 나와도 바라보는 모양새가 달라지는 법인데 인동 장씨의 계보에서 드러난 탁월한 수재의 면면은 분명 명문가의 DNA와 평범한 필부의 그것과는 차원이 달라도 한참을 다른 모양이다.


경물중생(輕物重生). '외물(名利)을 가볍게 여기고 생명을 중시한다.'는 인본중심의 사상을 몸소 실천한 평산 리의 강진 김씨, 일제의 억압에 굴복당하지 않고 분개한 안동 고성 이씨의 행적에서 외경심마저 샘솟게 한다.


분명 지켜낸 외양은 달라도 그들에게서 고유한 정취와 기풍을 흠뻑 젖게 한다. 씨줄과 날줄처럼 얽힌 신산한 삶을 걸어 온 명문가의 고단한 삶이 교활한 수단과 재력을 통해 일군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임은 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하겠다.


조선의 얼은 우리 것에 깃들여 있다는 보편적인 진리를 펼쳐 보인 간송 전형필의 대범한 행적은 오늘날 재력가의 본보기가 아니라 할 수 없다. 우리네 문화를 지켜 내기 위해 조선왕조의 진정한 로열패밀리의 자존감이 무엇인지를 보여 준 전주 이 씨의 행적은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 하겠다.


옛것에 대한 각별한 관심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역사를 통해 오늘을 되살리고 매몰된 민족정기를 이어가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후손들의 몫임은 자명한 이치이다. 세계화되고 평준화된 이때 혈통을 중심으로 가문의 우열을 논하는 것이 자칫 하릴없는 일로 여겨질 수는 있을지 모르나 그 속에 담긴 역사의 흔적은 무시할 수 없다 하겠다. 흔적에 담긴 명문가의 정신은 동천경지(動天驚地)함 그 이상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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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 윈프리의 시대 - 대통령을 만든 미디어 권력
제니스 펙 지음, 박언주.박지우 옮김 / 황소자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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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프라 윈프리, 미국을 대표하는 문화아이콘으로 추앙받는 움직이는 미디어 신화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그녀가 가진 핸디캡과 불우한 환경을 극복하고 기회의 땅, 미국에서 성공을 거머쥔 당찬 유색인종으로 입지전적적인 인물이다. 그녀가 이룬 성과는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사회문화 전반에 걸친 상관관계는 가히 파격적이라 할만하다.  


치솟는 인기의 비결에 자신감 넘치는 긍정에너지에서 찾는다. 현재의 그녀를 만든 배경이 무엇인지, 그녀가 가진 삶의 철학은 무엇인지에 관해 끊임없이 회자되며 대통령을 만든 무소불위의 권력에 놀라움을 넘어 경이로운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꾸준한 자기관리와 변신으로 난공불락의 요새를 만든 그녀의 이면을 내밀히 드려다 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 하겠다.  


이 책 <오프라 윈프리의 시대>의 저자 제니스 펙은 오프라가 뿜어내는 아우라의 허상과 사회적 현상에 대해서 집중 해부하고 그녀가 지향하는 가치관을 총체적으로 분석하여 이념적 접근을 시도하였다. 누구나 그녀의 성공적인 삶을 동경하는 사회적 통념 속에 비판적인 시각으로 우상을 깨트리기란 쉽지 않은 일임에 분명하다. 그러하기에 저자의 용기와 건전한 비판의식이 돋보이는 책이라 하겠다.  


저자는 오프라를 둘러 싼 배경을 논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학문적 접근과 시대 배경적 상황을 통찰하여 객관적 검증의 담보가치를 높여 놓았다. 1970년대 들어 미국사회는 이념적 이데올로기의 소강상태에 접어들어 새로운 사상의 출현에 목말라 하였다. 이러한 배경적 필요에 의해 자유 시장 경제체제를 주축으로 한 자본주의를 더욱 강화한 신자유주의가 도출되었으며, 이는 사회계약관계의 기저를 이루는 공동사회의 기반을 허물고 이익사회로의 이전을 불가피하게 하였다.  

  

신자유주의는 국가의 참여를 제한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형성하고 책임에 대한 분배를 오롯이 개인으로 전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개인에 대한 책임의식은 주류미국사회에 불안한 동요를 형성하게 되고 갈피를 잃은 국민정서를 통합하는 의식강화로 신사상이 만연하는 상태로 진입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태에 오프라는 기존의 신변잡기식의 토크쇼를 탈피하고 테라피 요법으로 무장한 개인역량강화에 주력하는 시대적 담론을 충실히 따르게 되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와 같이 오프라가 포착한 사상적 본질에 렌즈를 맞추어 놓고 있다. 오프라 쇼에서 보여 지는 실제 이미지와 달리 불평등한 구조적 차별을 조심스럽게 담론화 시킴으로써 오프라의 속살 벗기를 시도하였다. 더불어 오프라가 신자유주의에 기반을 둔 이념적 토대이외에도 그녀를 재무장시킨 배경으로 고대 힌두교를 바탕으로 발전한 신사상이 한 몫 하였음은 책 전반을 통해 내비치고 있다.  

 

국내에도 열광적인 인기몰이를 하였던 <시크릿>의 이념적 토대에 오프라는 취사선택하는 임기응변적 면모를 보였다. 줄 곧 그녀가 보여 온 정신요법과 개인의식강화가 실언이 아니었음을 현실화 시킨 구체적인 증거로 <시크릿>의 “구하라, 믿으라, 받으라.”의 행동강령을 보기 좋게 재포장하였음 두말할 나위 없다.

  

 

이처럼 오프라가 가진 역량은 시대 흐름을 동물적인 감각으로 잡아 붙들어 매는 것에 있음을 알게 된다. 이미 기존의 가치체계를 무너뜨리고 우월적인 지위를 형성한 담론들에 대해 치부를 드러내는 비판적 시선을 보내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라 할 만큼 무모한 일로 비쳐질 수 있다 하겠다.  



하지만 저자의 용기 있는 건전한 비판은 건강한 사회를 이루는 요소임에는 분명하다 하겠다. 저자가 주장하는 오프라의 이중성과 신귀족계층에 기댄 우민화 과정은 암묵적 합의로 이루어 진 비열한 세계의 한 단면이라 하겠다. 그녀가 보인 오만함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자기강화를 빗댄 이념적 자포자기에 다름이 아닌 것은 씁쓸한 현실이 아니라 할 수 없다.  



사회적 담론이 개인의 이익을 보장하고 추구하는 것이 일견 잘못된 시각은 아님에도 승자독식의 원칙에 의한 불가피한 희생은 우리 사회가 책임져야 할 공통의 의무임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기에 저자가 오프라란 거대 미디어 스타를 주목하고 그녀의 영향력이 사회 전반에 건전한 상식을 차단하는 것으로 인식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라 하겠다.  


이렇듯 열광적인 지지에 묻혀 일그러진 속내를 드려다 보는 것은 상식이 통용되는 사회로 진행하는 통과의례로, 저자의 생각과 이야기에서 균형감 있는 유연한 의식을 고양하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으로 보인다. 책 속에 담긴 무수한 단상들을 읽어 내다보면 한층 성숙하고 객관적인 시선을 확보하는 가치를 발견하지 않을까 한다.  


오프라를 통해 오프라를 바라보는 신선한 재미를 오롯이 만끽하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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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이후의 한국경제 - 글로벌 금융위기와 MB노믹스를 넘어 새사연 신서 4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지음 / 시대의창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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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14일 금요일을 기억하라. 자유 시장 자본주의의 꿈이 사망한 날이다. 30년 동안 우리는 시장 주도의 금융 시스템을 추구해왔다…….(중략)...... FRB는 이 시대의 종결을 선언했다.” (P-288, 파이낸셜 타임즈 경제 분석가 마틴 울프의 기고문 중에서)  



우상처럼 신봉하며 절대선 으로 받아 들여 지던 시장자본주의체제가 사망 선고를 받았다. 모래위에 집을 지어도 이보다는 튼튼할 것 같다. 무엇이 이들을 벼랑의 끝으로 내몰았을까? 그보다 더 미국경제의 사망선고가 왜 우리에게 더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것일까? 의문의 꼬리가 소용돌이치는 경제상황은 우울하기만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 주소이다.




미국에서 불어 닥친 금융공황은 우리 경제에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이 책 <신자유주의 이후의 한국경제>를 펴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이하 ‘새사연“이라 함)의 글은 가히 충격을 넘어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다. 새사연은 한국경제의 정체성과 신자유주의와의 관계를 명확하게 규정하고 정부의 엉성한 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통렬하게 담았다.




경제학의 기본적인 원리를 이해하지 못해도 현재의 한국경제가 위태로운 상황임은 모두 인식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경제의 살얼음판 걷기를 구경하는 국민들로서는 그들과의 역학관계가 우리와 무관하지 않음에 모든 촉각이 맞추어 진 상태다. 하지만 정부의 시각과 언론사들의 태도는 위기 속의 기회로 다듬어 상황에 대한 긴박성을 느슨하게 하며 심각성을 반감시키는 것으로 새사연은 말하고 있다.

 



이 책은 1960년대부터 등장한 신자유주의 시장주의에 대한 개념적 이해와 실물경제가 금융경제에 예속되는 과정을 미국사회를 통해 생생하게 담아 놓았다. 신자유주의는 시장의 자기조절능력에 탁월한 능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경제구조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게 되고 규제완화와 감세로 무한자유경쟁체제로의 연착륙을 수월하게 진행하는 역할을 하였다. 여기에 월가를 주름잡던 영리한 인재들이 모여 금융공학이라는 새로운 첨단무기를 통해 파생상품을 개발해 내게 되고 신자유주의의 첨단동력엔진으로 단숨에 천문학적인 이익을 생산해 내는 기폭제 역할을 하였다 한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의 정책은 세계무대를 하나의 큰 틀로 통합시키고 파생상품의 대표주자인 사모펀드, 헤지펀드의 양산으로 고용 없는 성장이 관행으로 인식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연하게 만들고 근로 계층의 심각한 분화와 양극화로 몰고 가는 파행적인 현실을 맞았다. 이에 주주자본주의는 서민들을 상대로 약탈적 가수요를 촉발하고 급기야는 서브프라임모기로 불거진 거품종양이 곪아 터지면서 작금의 시대가 온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렇다면 새사연이 현재의 신자유주의의 붕괴에 주목하는 이유는 한국경제의 취약한 구조적 모순과 정책의 방향성의 부재에 있다 하겠다. 더욱 염려스러운 것은 현 정부가 이미 사망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는 신자유주의에 기반을 둔 정책의 위험성에 포커스를 맞춘다는 점에 있다. 규제완화와 감세, 민영화와 자본시장 개방, 금융화는 이미 레이건 정부의 전유물인 정책을 표방한 것으로 이를 답습할 경우 그 수혜자는 대다수 국민이 아닌 가진 자의 몫이 될 수밖에 없음은 보수 기득권을 대변하는 것으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라 하겠다.




여기에 한국경제의 중추를 이루는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비열한 예속관계인 납품가 연동제의 우월적 지배를 통한 거래관행을 지적하고 태생적 기반이 열악한 자영업의 구조적 취약점 및 심각한 고용대란의 위험성을 시의 적절하게 분석하여 놓았다. 더불어 공공산업성격이 강한 공기업의 민영화에 대한 통렬한 비판은 어디서도 찾아 볼 수 없는 글로 촌철살인이라 할 만 하다 하겠다.




실제 이명박 정부가 정권을 잡은 지 이제 1여년 남짓 흘렀다. 대통령이 자신 있게 공약한 7%성장, 4만불 시대, 7대강국의 소위 747공약은 공염불이 된 지 오래다. 오죽하면 취업준비생에 불과한 미네르바의 글에 신드롬을 가져다 줄만큼 열광하는 성난 민심이 되었겠는가? 마이너스 성장을 예고하는 불운한 시국에 새사연의 글이 이념적 갈등으로 얼룩진 현실에 신선한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기대된다.




새사연이 역설하는 대기업과 금융자본의 대승적인 약자 끌어안기와 사회 서비스분야를 개척하고 신규 고용 인력을 창출하여 내수경기를 활성화 시키는 것이 최우선이며 이 모든 정책의 중심에 국가가 나서야 할 때라는 주장은 흘려들을 소리가 아님을 자각하여야 할 때이다. 이제 시장의 시대는 가고 국가의 시대가 왔다는 충언이 실제로 반영되기를 바라며 이익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시킨 미국의 전철을 따라 가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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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사람들 - 양해남 사진집
양해남 지음 / 연장통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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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기록을 담는 매개체이다. 그 속에는 다양한 표정들과 삶의 모습이 살아 움직인다. 감정으로 표현하기 힘든 순간의 기록이 삶의 한 조각으로 재탄생하는 순간이다. 소박한 표정과 어디서나 봄직한 평범한 인물을 대상으로 잡아 낸 사진은 추억에 다름 아니다. 저자 양해남이 담아 낸 <우리 동네 사람들>은 일상적인 우리네 삶을 이야기 하는 풋풋한 사진첩이다.


디지털 사진기술의 발달과 보급으로 누구나 사진으로 그들만의 세계를 만든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부자연스럽기만 하다. 인위적이고 작위적인 표현에 열광하며 연출된 상황을 담는 것에 공을 들이는 현실이기에 정작 내면은 들여 다 보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세태와 비교해 본다면 작가의 사진은 쏟아지는 햇살만큼이나 더할 나위 없이 따스하게 느껴진다.


작가가 담은 피사체에는 인물에만 중점을 둔 사진 기법을 사용하여 대부분 아웃 포커싱 처리가 되어 있다. 두드러진 인물의 섬세한 표정을 되살리고 빛의 자연스러운 광선 처리는 풍부한 계조로 표현되었다. 따라서 작가의 의도적인 인물구도의 집중은 생동감 있는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시각적 분산효과를 차단하는 효과가 있어 사진 간의 연계성을 극대화 한다.


다듬어 진 것 없이 날것 그대로 형상화하고 찰나에 깃든 순수함을 담고자 하였음은 굳이 일러주지 않아도 오롯이 전해온다. 수줍은 아이들의 천진난만함, 삶의 역경과 풍파를 온몸으로 체득한 노인들의 주름 깊은 표정 뒤 감추어 둔 인자한 웃음, 옛 향수를 자극하는 놀이에 흠뻑 빠진 동네 개구쟁이들에 이르기까지 일상에 스며든 소소한 우리네 모습을 프리즘을 통해 심도 깊게 재현하였다.


작가의 사진세계를 따라가다 보면 절로 마음이 편해진다. 판박이 성형미인이 판치고 외모지상주의에 사로잡힌 우리에게 우리 동네 사람들은 진정한 아름다움의 소박한 표현이지 싶다. 아스라이 지워져 가는 기억의 그림자 뒤로 우리가 잃어 간 것에 대한 애환과 향수를 드러내니 말이다.


날로 발전하는 첨단문명만큼 매번 추억의 한 움큼씩을 세월이라는 시간으로 흘려보내고 살아간다. 문명화로 편향된 사회구조는 도시화의 미명아래 확대 재생산되었다. 떠나 버린 빈자리는 남겨 진 자의 몫으로 인식될 뿐 더 이상 모두의 아픔으로 기억되지 않는다. 이러한 지역 사회 재편은 더 이상 농촌사회의 낯선 풍경이 아니다. 작가의 안타까움이 기록된 빈 여백의 미완의 주인공에 대한 애석함은 단절된 흔적임을 사진은 말한다.


그래도 어디든 사람 모여 사는 곳에는 사람 내음이 서려 있기 마련이다. 도시로 떠나보낸 이들을 뒤로하고 남겨진 그들에게는 인간미 풀풀 넘치는 자연 그대로의 멋이 담겨 있다. 때 묻지 않은 꿈을 간직한 해맑은 아이들의 표정에서 새로운 희망의 빛을 읽어 내게 한다. 고단한 일상에서도 이 땅의 토박이로 구수함과 정겨움을 고스란히 간직한 우리 동네 사람들에게서는 순정함 그 자체의 향을 진하게 퍼트린다. 


이처럼 사진은 작가가 표방한 세계와의 깊이 있는 교감의 순간이라 하겠다. 매몰된 인간성을 회복하고 삶의 본질적 가치가 무엇인지 다시금 반추하게 되는 것을 보면 그들 속에 깃든 삶의 단상이 우리네 모습의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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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틱스 강의 하우스보트
존 켄드릭 뱅스 지음, 문지영 옮김 / 크롭써클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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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제목과 강렬한 표지에 이끌려 책을 집어 들고 읽다 보면 생경함이 가득 묻어나는 경우가 있어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이 책 <스틱스강의 하우스보트>는 기존의 기억들을 철저하게 무시하는 실험적인 구조를 띈다. 저자 존 캔드릭 뱅스의 시대적 상황이나 문학사조의 분위기를 감안한다하더라도 쉽게 읽어 내기가 쉽지 않은 책이다.




이 책은 시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등장인물에 대한 지식과 논쟁의 대상이 되는 뜨거운 감자로 활활 타오르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반 없이는 터무니없는 황당무계함 자체로 아무런 감흥 없이 달아나 버릴지 모르겠다. 이러한 관점의 다양성과 문학사적 배경지식을 견지하고 이 책을 바라본다면 조금은 그 무게감을 가벼이 할 것 같다.




하지만 저자가 일종의 블랙 코미디의 허무하고 조소적인 풍자와 해학적 구조를 시종일관  사용하여 이끌어 내고자 하는 것은 공허한 위트 속에 숨은 일반적 관점을 뒤트는 불합리성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아닐까 한다. 따라서 내밀한 인간심리 속에 숨은 본성의 온전한 드러냄에 그 가치를 두고 충실하게 수면위로 떠오르게 하여 기존의 관습을 재조명하고 다각도로 분석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 그 주된 이유라 하겠다.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의 죽음의 신 하데스가 지배하는 영혼의 강인 스틱스 위에 떠다니는 커다란 하우스보트를 무대로 전개된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서 이미 역사 속의 뒤안길로 사라진 위대한 문학가, 지도자, 영웅, 제왕, 신화적 인물, 작품 속 인물 등 다양한 인간군상의 등장으로 현세에서 그들이 남긴 업적과 행위들을 뒤트는 작업을 시작한다.




각 각의 인물들은 서로 간에 대립과 모방을 조장하고 중개하는 역할을 통해 시각적 다양성을 부각하며 저자의 창조적인 판단을 통해 새롭게 해석하는 논쟁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이러한 복합적인 갈등구조는 하우스 보트의 비판의 대상으로 물망에 오른 희생양의 치명적인 상처를 날카롭게 헤집는다.




비꼬는 듯 내뱉어 내는 대화의 방향은 인간 본성에 호소하는 유약한 모습을 흔들어 보여 준다. 이러한 비판의 종국은 대상의 자조적인 합리화와 그들에 대한 가려진 실체적 진실을 의도적으로 노출함으로서 이 논쟁의 중재자인 하우스보트 위원회로 슬며시 넘겨 버리는 위험성을 회피하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대문호 셰익스피어에 관한 작품진위논란은 아직도 많은 의혹을 불러  일으킨다. 그러한 논란의 바탕에 저자는 작위적인 상황을 연출하여 셰익스피어와 필적하였던 영국의 유명한 철학자 베이컨과 벤 존슨의 대화를 통해 추론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가설은 19세기의 주류적 사상을 담고 있는 것으로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실제 베이컨이 쓴 것이라는 학문적 주장을 토대로 한다. 아직 구체적으로 실체가 드러난 것 없이 베일 속의 미스터리로 남아 있기는 하나 논란의 여지는 계속 남아 있는 상태라 하겠다.




저자는 위대한 문호들에 대한 학계의 치열한 논쟁거리뿐만 아니라 다윈의 진화론과 같은 획기적인 과학적 발견에 대한 일반의 냉소적 반응과 남성우월중심사회 속의 여성참여에 대한 현실적 괴리감에 대한 비중 있는 주제를 희극적 요소를 가미하여 실체감 있게 다룸으로서 장르를 넘나드는 해박함을 과시한다.




이렇듯 저자의 다분히 컬트적인 색채에 대하여 문단에서는 ‘뱅시안 판타지’로 고유의 장르로 재해석하고 있으며 그의 심오한 작품세계에 대하여 신선한 시각을 견지하고 있는 것 같다. 한 세기가 지난 후 그의 작품을 접하는 지금으로서는 다소 아이러니컬한 문체와 선문답의 구조가 어색한 것은 사실이나 그 속에 녹아든 시대 현실적 비판의식은 즉각적인 것에 길들여진 현재에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 기회를 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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