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 - 마음을 얻는 지혜 위즈덤하우스 한국형 자기계발 시리즈 2
조신영.박현찬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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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매너리즘에 허덕일 즈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일도 그렇고 삶도 그렇고 꽤나 재미가 없었던 시절이었다. 무미건조함 외엔 달리 설명할 그것도 없다. 아마 반복되는 일상에 지쳤을 테고 변하지 않는 세상에 적잖이 실망했을 테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은 번득이는 뭔가가 있었다. 혹자는 밋밋한 스토리라인에 그저 그런 내용으로 윤리선생님을 연상케 한다고 독설을 퍼부어 댔었지만 나에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공명통에서 흘러나오는 바이올린 선율처럼 현을 가르며 울려 퍼지는 진득한 맛이 좋았다.  

 

누구나 힘들고 아프기 마련이고 날선 세상에 베이는 법이다. 그렇게 아프기를 반복하고 삶에 스며든 진리를 깨닫는 순간이 시나브로 오는지 모르겠다. 이 책을 가르는 화두인 소통의 단절은 어느 곳, 어디에서나 천원마트의 상품처럼 흔하다. 확성기를 통해 끊임없이 반복 재생되는 생선장수의 절규(?)처럼 일방통행인 세상을 산다. 배려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보려 해도 힘들만큼 자기의 언어로만 떠들어 댄다. 마치 낯선 이방인들이 모여 사는 동네에 등 떠밀러 온 것 같은 심정이랄까?


이 책의 주인공은 이청이다. 잘 나가는 악기회사의 과장으로 아내와는 별거중이다. 이유인즉슨 아이의 발달장애가 그 원인이다. 평소 그는 어두운 가정환경 영향으로 건성으로 주위사람들을 대했다. 타인에게 귀 기울이지 못하는 전형적인 마음의 장애를 가진 캐릭터로 이런 그를 불러 이토벤이라 불렀다. 이토벤은 베토벤처럼 귀가 먹지 않았음에도 먹은 것처럼 행동한다는 뜻에서 따 온 비아냥거림이다.


그에게 찾아 든 회사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은 그를 갈등의 기로에 빠트린다. 회사의 달콤한 유혹에 못 이겨 구조조정의 소방수를 자임하며 동료들의 질타와 비난을 한 몸에 받는다. 이렇게 어렵사리 회사가 쥐어 준 대리점 개설권을 거머쥐지만 오픈당일 그에게 찾아 온 불행의 사신은 뇌줄기 암이라는 치명적인 시한부 선고다.


하지만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은 생에 대한 집착이다. 집착은 현실을 개선하려는 강인한 의지를 보였으며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으려는 믿음으로 발화된다. 그의 지독한 독선에 희생당한 자신의 가족과 특히, 아이에게 무엇인가를 남겨 주기 위해 떠올린 것이 바로 바이올린이다. 그는 바이올린을 만들기 위해 평소 친분 있던 악기공장의 지인을 통해 무보수로 일하며 제작과정을 배우게 된다. 이 과정에 소통하지 못했던 그의 과거의 망령이 팀원들을 통해 발견하게 되며 불협화음의 무서움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이심전심이랄까? 이토벤의 변화된 모습과 경청의 지혜가 그들을 한 팀으로 묶고 각각의 고유음을 통해 제 색깔이 절묘하게 배합된 하모니를 찾게 된다. 갖은 우여곡절과 천신만고 끝에 찾아든 진실한 마음은 서로를 녹이고 갈등을 허무는 계기가 된다. 이토벤은 이제 독선의 대명사에서 화합의 아이콘으로 탈바꿈하는 순간이다.


이러한 그의 변화에 더 큰 도화선이 되는 사건은 바이올린 제작과정의 마지막 재료를 구하면서 부터다. 그는 좋은 목 재료를 구하기 위해 일부러 찾아 든 첩첩산중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만다. 당연히 이쯤되면 주인공을 도와주는 인물이 나오기 마련인지라 그를 마음의 소리로 인도하는 달인을 만나게 된다. 이렇게 목숨을 부지한 달인은 마음을 비우고 경건한 자세로 자연을 받아들일 때 진실의 문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여기까지가 이 책의 대강의 줄기다. 색다를 것도 없거니와 특색 있는 것도 없다. 하지만 이 책을 파고드는 통찰은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모습을 회고하게 만든다. 과연 난 듣기의 지혜를 알고 있는가? 말해 무엇 하겠냐 만은 잘못되어도 한참을 잘못되었다. 사실 제대로 듣기를 해 본적이 언제였는지 싶다. 성급한 판단은 앞서가고 귀 기울이기는 뒷전이었다. 알량한 지식조각이 쌓은 우매함이자 참담한 결과다.


다시 이 책을 손에 든 이유 또한 이것이다. 이 책을 나누는 키워드의 경구처럼 현실을 다 잡는 내면의 울림으로부터 나를 발견하고 공감을 통한 이해의 눈을 뜨며 이를 통해 창조적 공존으로 가는 상생의 이청득심(以聽得心)의 지혜가 절실한 지금이기 때문이다. 경청, 변하지 않는 진실의 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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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노무현 - 대한민국의 가시고기 아버지
장혜민 지음 / 미르북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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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당신을 사랑합니다.

노무현,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을 영원히 사랑합니다.       -당신을 가슴에 묻던 날, 영결식 노제 中 도종환 시인의 말-




2009년 5월 23일, 나는 이날을 잊지 못한다. 거대한 큰마음의 별을 잃은 날이다. 14줄의 짧은 유서만을 휑뎅그렁하니 남긴 채 그렇게 자연으로 돌아갔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질곡과 영욕으로 점철된 애증의 삶을 버리고 창공을 향해 영원히 날아 가버렸다. 당신을 그리워하던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지워지지 않는 굳은 비석만을 세긴 채 말이다.


바보 노무현. 굽히지 않는 원칙과 소신으로 현실에 타협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무너지지 않는 원칙과 신념으로 끊임없는 도전과 저항을 받았다. 혹자는 그를 일러 싸움꾼이라고도 이상주의자라고도 하며 현실을 부정하는 사람이라 비아냥거렸다. 참여정부 내내 괴롭히던 개혁과 보수의 갈등을 통해 그들은 물어뜯고 깎아 내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가진 것 없고 출신이 비천하며 그들과는 다르다는 터무니없는 이유로 천길 벼랑 끝으로 밀어버렸다. 그렇게 우리 사회는 돌려 세우기에 급급했으며 비겁했다.


아직 충격이 가시지 않는 지금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보고자 하는 것은 그를 그리워하고 우상화시키고자 함이 아니다. 그가 걸어 온 인생역정과 생전에 보인 영욕의 삶을 통해 우리를 가둔 허상을 걷어내고자 함이다. 강한 자에게 더 없이 강하고 약한 자에게 더 없이 약했던 강단한 그의 삶이 이제 와서 제대로 보이는 이유도 그것에 있다. 돌이킬 수 없는 값비싼 희생을 치르고 얻은 소중한 가치를 깨우친 우리는 모두 바보다.




그는 전후세대가 그랬듯 지지리도 가난한 유년기를 거쳤다. 단단한 차돌처럼 불의에 저항하는 굳은 신념을 키운 것도 유복하지 못한 환경의 영향이 컸다. 어려운 이에게 선뜻 가진 모든 것을 내 주기를 주저하지 않고 옳지 않다면 쉬운 길도 돌아서 가는 뚝심도 거기서 비롯되었다. 학창시절 그가 겪었던 원칙을 뒤흔드는 부정의 유혹은 어떠한 회유와 협박에도 굴복하지 않았다. 열등감을 극복하고 비겁함을 물리치고 원칙과 신념을 체득한 순간이다.


이렇게 다듬어 그를 세운 이념의 토대는 지난한 세월을 준비하는 발판이었다. 지치지 않는 도전과 열망으로 성취한 사법고시합격은 그를 더 큰 세계로 이끌었다. ‘원진레이온 사건’으로 불거진 계기는 낮은 곳을 대변하는 든든한 횃불이 되게 만든 촉발제가 되었다. 힘없고 가진 것 없는 자들을 위해 개인의 영달과 이익을 모두 버리고 담대한 바보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청문회가 낳은 스타라는 별명을 위시해 그는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한 수구보수 세력과의 지리멸렬한 투쟁을 이어갔다. 철옹성으로 막힌 그들의 아성을 향한 도전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었다. 동서로 갈라진 지역갈등과 계층갈등에 굽실거리지 않았으며, 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도전했던 삶 그 자체였다. 이러한 그의 용기와 희망이 통해서였을까? 그래도 우리는 환멸스럽고 역겨운 구태의 정치를 청산하고 더불어 잘 사는 새로운 세상을 열기를 그를 통해 희망하였다.




권력의 정점에 오른 그는 권력의 시녀노릇을 해오던 검찰, 국세청, 국정원 등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개혁의 성과를 보였다. 어떠한 권력도 이익을 위해서 사용치 않았다. 견제와 균형을 통한 국민이 주인이 되는 참된 민주주의의 얼개를 구축하였으며 공약으로 내건 가치를 하나씩 차근차근 바꾸어 나갔다. 또한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대통합의 정치로 영도적 대통령의 권한을 포기하고 대화를 통한 화합의 장을 달성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하지 못했다. 고용 없는 성장의 늪에 빠져 분배와 성장의 경계에서 심각한 도전을 받았다. FTA 협약 문제, 국민연금개혁문제, 비정규직처우문제, 부동산규제문제, 광우병사태 등 민생과 직결된 민감한 사안에서 이렇다 할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지 못했다.  이러한 허점과 간극은 기득권자와 보수 세력에게는 더 없이 좋은 빌미를 제공하였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아마추어정권이니 무능하고 미숙한 집단이니 운운하며 비하시키며 국민의 눈과 귀를 오도하며 혼란으로 빠트렸다.




호시우행(虎視牛行). 호랑이처럼 보고 소처럼 걷는다는 말처럼 그는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찾고 근원에서부터 신중하게 접근하였다. 이러한 그의 우직한 행보는 즉각적인 성과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씨를 뿌리고 열매를 맺는 과정과 흡사하다. 바로 이것이 그를 있게 한 소신이자 성품이다. 또한 한 가지 일에 쉬지 않고 꾸준하게 매진한다면 마침내 큰일을 이룬다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성정은 인기에 영합하지 않는 인간의 참된 자세를 여실히 보여 주는 대목이다.




그랬을까? 우리의 바람과 기대는 성급한 게눈과 같았다. 어서 빨리 성과를 내놓으라고 다그쳤으며 그들과 달라진 게 없다는 불평과 불만을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냈다. 점점 타성과 광기에 물들어 그의 행보와 거침없는 발언에 불안을 감출 수 없었으며 믿음마저 내던졌다. 지난 600년 동안 이어온 반칙과 편법의 달콤함에 취해 그 고통을 감내하기 힘들었다. 그가 그토록 바라던 건전한 대화와 소통을 통한 상식이 통하는 공감의 물결을 우리 스스로 걷어차 버린 셈이다.




그런 그가 국정을 떠나 15개월 만에 한 줌의 흙이 되었다. ‘노간지’로 ‘노짱’으로 평범한 서민으로 거듭났던 그를 더 이상 볼 수 없다. 그를 키우고 길러 낸 봉화마을의 넉넉한 품으로 돌아갔다. 그를 위협하고 회유했던 수구세력도, 헌정사의 한 페이지로 기록될 탄핵소추도 그를 넘어트리지 못했다. 하지만 그를 지탱했던 국민의 믿음과 신뢰가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공범이다.




이 책이 노무현 대통령을 회고하며 왜 그가 그토록 모진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는지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보수와 진보를 가르고 계층 간 불화를 조장하기 위해서는 더 더욱 아니다. 원칙과 신념이 짓밟히고 이상이 추락한 암울한 세상을 일깨워 주기 위해서이다. 언제나 그가 바라보았던 ‘그 너머’의 상식이 통용되는 부정과 비리가 다시는 발붙이지 못하는 그런 사회를 말이다. 그것이 고인의 큰 뜻이었으리라.




당신을 사랑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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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숲에서 리더의 길을 찾다
조셉 L. 바다라코 주니어 지음, 고희정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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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리더의 역할과 소임에 대해 많은 것을 기대한다. 굳건한 의지와 강인한 실행력을 바탕으로 대중을 이끌어 나가며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하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하지만 이상과는 달리 현실은 그렇지 못하기 일쑤다. 오만과 편견에 빠져 자가당착의 패착을 두는 가하면 유연하지 못한 원칙론만을 고수하며 조직을 침몰시키는 결과를 좌초하기도 한다. 이러한 본질적 갈등의 중심은 리더의 포용력 있는 너른 통찰, 반듯한 윤리의식, 신념, 원칙과 현실의 조화의 문제로 귀결된다.


실제 리더가 갖추어야 할 덕목과 처세의 미덕은 고래로 끊임없이 회자되곤 한다. 리더는 오랜 단련과 무두질을 통해 끈기와 인내를 배워야 하며 그를 통해 윤리적 틀을 장착하고 치우침 없는 판단의 도구로 삼기를 역사는 일관되게 가르친다. 한 인간으로서의 선택과 행위를 떠나 리더로서의 소임과 사명은 엄청난 영향과 반향을 끼친다는 경험에서 오는 방증이다. 리더는 전염성이 강한 뿌리에 다르지 않다.


이 책에서 제시한 문학 속 주인공의 삶은 리더라면 반드시 겪을 현실의 도전과 과제를 공통의 헤게모니로 복기한다. 허상의 세계에 투영된 작가의 경험과 상상이 빚은 캐릭터를 통해 리더의 본분과 가치를 발견하고 지향의 구심점을 찾고자 함이다. 이렇게 저자가 추출해 낸 문학이야기는 공통된 틀과 방향성으로 결박되어 포위당했다. 한 발자국 떨어 져 지긋이 관조하듯 바라보는 상황의 해석은 인식의 객관성을 담보하기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분명 이 책은 여태껏 보아 온 리더의 자세와 소신을 논하는 책과는 사뭇 차별성이 눈에 띤다. 자칫 범하기 쉬운 주의의 열거도 흔히 사용되는 원칙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단지 전 방위적 접근을 통해 추출한 담론만이 오롯이 남는다. 마치 실험대에 오른 개구리처럼 날카로운 메스만이 번뜩인다. 이처럼 저자가 제시한 통찰은 깊고 분명하다. 얼기설기 얽힌 복잡하고 난해한 과정의 불순물을 제거하고 걸러 낸 결과물의 결정체인 엑기스를 최종 수혜자로 달콤한 특권만을 누리기를 바랄 뿐이다.


하지만 비틀어서 곱씹어보면 누구나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받아들여야 피할 수 없는 도전과 현실 문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원칙을 위해 현실을 회피하고 아집과 편견의 악재에 갇히면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내달리기 때문이다. 예는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상황을 판단하는 범주의 잣대를 잃은 리더는 명분의 덫에 걸려 경청의 지혜를 잃게 마련이다. 이처럼 리더는 명확한 신념과 반듯한 고결함을 자양분으로 흐트러진 자신을 곧추세우는 초석으로 작용한다.


책은 9개의 장으로 나누어 8편의 문학을 기반으로 리더를 고찰하였다. 크게 3가지의 틀로 나누어 리더가 부딪히는 공통된 현실 문제를 통해서 윤리의식ㆍ비전ㆍ역할모델의 요구, 리더로서의 자질과 책임감, 원칙과 현실의 조화를 아우르고자 하였다. 여기에 소개된 캐릭터들은 분명한 색깔과 나름의 특성을 갖춘 인물로 허상의 굴레를 통한 현실의 투영이다. 그들을 통해 시각적 차원의 평행선을 넘나들며 본질에 접근할 수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윌리의 집착과 오콩코의 아집은 유연하지 못한 비뚤어진 자질을 여실히 드러낸다. 그들의 방황은 현실과 이상의 경계에서 맴돈다. 이들이 겪은 트라우마는 리더가 갖추어야 할 윤리관의 속성인 명확성과 동기, 우세성의 영향력을 시의 적절하게 보여준다. 겸손과 개방성을 통해 발견된 리더의 길은 어떤 방해물도 성공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음을 이내 깨닫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제리의 회고를 통해 리더를 전환시켜주는 역할모델의 중요성을 발견하고 신중함을 배우게 된다. 신중함은 현실의 압력과 갈등을 푸는 열쇠다. 리더를 채찍질하고 변화시키는 에너지와 같다.


훌륭한 리더에게는 건강한 꿈과 건전한 윤리관, 자기를 자극하는 역할 모델, 일에 대한 강한 헌신이 필요하다. 이러한 내적 자원은 리더에게 방향을 제시하고 영감과 실용적 안내와 돌파할 의지를 제공한다.(p-147)


이렇게 원칙과 소신의 토양을 배양시킨 리더는 자질을 검증 받는 시험대를 거치게 된다. 모두를 배려하고 아우르는 기준을 갖추었는가의 문제와 직결된다. 희생과 헌신을 통해 성공을 쟁취한 먼로에게서, 낯선 사람을 태운 젊은 선장에게서, 성공가도를 달리던 토니에게서, 리더에게 필요한 덕목을 발견한다. 그것은 인내심과 용기, 의지에 달렸다. 무모함과 책임감의 스펙트럼의 양 끝단에서 오는 통합의 요체를 통해 현실을 타개하는 의지를 의미하기도 한다.


자신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고 재능과 추진력으로 사회적 위치에 올랐을 때, 우리는 또 다른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원칙과 현실 사이의 충돌이 그것이다. 이 도전은 강한 개인적 원칙과 진지한 현실적 책임의 직접적이고 피할 수 없는 결과이고 리더의 캐릭터를 시험하는 가장 어려운 테스트 중 하나이다.(p-201)


원칙과 현실을 조합하는 문제는 진정한 리더가 되는 최종 관문이다. 왜곡된 선택은 상황을 혼란에 빠트리고 물과 기름처럼 유리된 현실을 조장한다. 로버트 볼트 <사계절의 사나이>의 캐릭터인 토마스 모어를 통해 발현된 모습은 리더의 본보기에 다르지 않다. 원칙과 현실 사이에 침잠한 채 감추어 둔 리더로서의 의식세계를 분연히 드러낸 본보기로 바로 소신이 잉태한 결과물이다. 반면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 속 캐릭터인 크레온과 안티고네의 그릇된 원칙의 강변(强辯)은 경솔함이 유발한 위험성을 의미한다.


분명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진지한 성찰과 신념을 길러야 한다. 이 책의 전반을 통해 제시된 키워드 또한 겸손과 인내의 제고다.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저자 니체의 의미심장한 글로 문을 닫는 이 책은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리더를 생산해 내는 좋은 예시가 될 것이다. 이는 “우리의 삶의 이야기는 바로 삶이 된다.”는 독일 시인 라이젤 뮬러의 말처럼 문학의 숲은 인간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고 내재된 본성에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내게 ‘길’을 묻는 사람에게 ‘이것이 나의 길이오, 당신의 길은 무엇입니까? “라고 대답한다. 길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p.275, 니체의 어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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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단상을 끼적거린 지 이제 10개월 정도 되어간다. 처음 시작된 의도와는 달리 지금은 주객이 전도되어 버린 양상이다. 무엇을 위해, 어떤 목적으로, 왜 읽어 내는지를 간혹 잊어버릴 때가 있다. 책을 통해 길러 낸 지식이든, 감정이든, 정서의 산물이든 어떤 식으로든 부족함을 채워 준 그것이 사그라져 버릴 때는 안타깝다 못해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안중근 의사는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친다고 했건만 (나의 독서편력은) 부끄럽기 짝이 없다. 내용도 없고 허술하여 부실하기 이를 때 없는 것으로 사상누각에 다름 아니다. 책을 읽어 낸다는 것은 작가의 사유와 철학을 하나의 틀로 묶어 오로지 나의 것으로 바꾸어 나가는 작업을 일컬음이다. 이로써 지식과 정서의 샘물을 마르지 않게 유지하며 인생을 통찰하는 지침대로 사용하기에 이른다. 과연 그렇게 하고 있는가?

물론 다독하는 것이 정석이기는 하나 정독 또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물정의 순간과 변화의 다양성은 부족한 나를 일으켜 세우는 주춧돌이 되기에 충분하며 세상과 소통하는 혼선 없는 주파수다. 하지만 목적 없는 책읽기는 바람에 흔들리는 가지와 같다. 팔랑거리는 귀는 개념을 상실하고 혼탁한 눈은 사실과 의견을 혼동한다. 이렇게 혼동된 조합의 화합물은 올바른 판단을 차단하고 껍데기에 집착하는 동굴의 우상에 갇힐지 모른다.

한 번 즈음 되새기고 넘어갈 문제임은 자명하다. 하여 맹목적인 글 읽기를 배척하고 사유의 확장을 도모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이에 단상을 기록하여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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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라, 잡상인 - 2009 제3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우승미 지음 / 민음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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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불행을 소외의 다른 이름으로 이해한다. 경쟁을 공공의 선으로, 인간이 만든 작위적이고 시니컬한 현실에 동화되지 못하고 굴복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현실과 이상의 관계에서 오는 간극은 채우기조차 요원하다. 경쟁에 내몰리고 속임수와 비겁함으로 무장한 각박한 현실은 삶의 희망마저 감춘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과 타협의 다양성을 구사하는 능력이 있는 모양이다. 불행의 순간에도 사랑과 믿음으로 타오른 희망의 빛을 감출 수 없다.

 


불안과 희망은 한 배에서 나온 운명공동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엎치락뒤치락 어느 것이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네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기준점이 된다. 이 책의 캐릭터들은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다. 소위 잘 나가는 주류사회에 가려진 별 볼일 없는 3류 인생이자 잉여의 산물로 투영된다. 이들을 이어주는 공감의 틀은 그들에게 개껍찔처럼 달라붙은 핸디캡이 생산한 사회적 약자에게 내어 준 지위의 소산이다.

 


저자는 막장인생이나 다름없는 그들을 통해 줄지어 늘어 선 선형의 동질감을 발견하고 블링 블링한 희망을 품는다. 웹에 익숙한 문체와 사실감 있는 간접경험의 소묘는 적절하게 익은 김장김치와 같은 알싸함이 배어난다. 여류작가라고는 믿기 힘든 남성중심세계의 현실감 있는 반영에 절로 주억거리게 만든다. 철저한 사전작업과 고증을 거쳤음을 보여주는 반증이다.  낭중지추처럼 날카롭고 예리하기까지 하며 저자의 깜냥이 대단하다.

 


이야기의 전개과정은 깨알 같은 글씨로 잘 정리된 노트를 보는 것처럼 산만함이 없는 개운함이 주는 특유의 매력이다. 인물에 따라 달라지는 다양성을 자연스럽게 창조하고 추구하고자 하는 의도를 집중과 선택의 황금율로 건져 올린 아이템은 군더더기 없이 뻗어 나아가는 필력까지 엿보인다. 이러한 책은 단숨에 읽기에는 아까움마저 들게 만들지만 어김없이 끝장을 뒤적이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밀고 당기기와 웃겨야 할 때 여지없이 웃음코드를 자극하는 한편의 슬랩스틱의 진수라고나 할까.

 


맛깔스럽게 이야기를 자유자재로 조합하여 이끌어 나가는 글을 볼 때면 시크하다는 표현이 제격이다. 매끄럽게 넘어가는 표현과 단락의 호환을 통해 작가의 관념, 철학과 삶의 경험과 통찰을 오롯이 엿 볼 기회를 잡기 때문이다. 소설은 이런 면에서 본다면 독자와의 직접적인 교감을 쟁취하는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다. 전체를 감싸고도는 가상의 공간을 통해 타자와 소통하는 창구의 중요한 매개체로서, 또한 탁월한 생명력과 공감의 힘을 아울러 가지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불행을 구원할 매개체로 빛과 희망을 동질화 시키는 작업을 은연중에 깔고 간다. 번번이 고배의 쓴잔을 마시는 별 볼일 없는 개그맨 지망생 철이에게서, 지하철 잡상인의 전설적 존재로 분한 미스터 리 사부에게서, 장애로 인해 앞을 볼 수 없는 수지에게서, 수지의 아픔을 나누는 다중장애인 동생 효철과 그의 약혼녀 지효에게서 불행을 끊는 도구로 작용한다. 순수한 빛의 원형이, 희망의 다른 이름임을 선연하게 의미한다.

 


이처럼 일정한 알고리즘으로 연결된 밀접한 관계를 통해 연민과 사랑으로 이어지고 확대재생산 되는 상황은 불가의 연기설(緣起說)의 큰 중심축과 맞닿아 있다. 아울러 저자가 이 책의 모티브로 추출한 지하철은 비유적 의미가 무엇보다 크다. 덜 가진 계층을 대변하는 상징물을 통해 개선하기 힘든 희망발전소가 사라진 탐욕으로 점철된 뒤틀린 사회를 적나라하게 꼬집는다. 아울러 현대적 의미의  해학과 유머로부터 결락된 사랑의 형질에 성큼 다가선다. 어떻게 본다면 실험적일수도 비현실적일수도 있는 세계를 현실로 만든 것은 공감의 힘이다.

 


인간은 고립된 섬과 같아서 혼자서는 살 수 없다. 이해와 타협으로부터 공존의 가치를 배운다. 불행의 힘겨움은 골짜기를 넘어서기 위한 잠시의 고통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소외된 그들 또한 우리의 모습이다. 질시와 반목, 선입견의 색안경은 마음의 장애다. 신체의 장애보다 마음의 장애는 우리 모두를 병들게 한다.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인간의 이중성의 거대담론을 웃음으로 승화시켜 재가공한 이 책, 근간에 보기 드문 수작이라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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