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노무현 - 대한민국의 가시고기 아버지
장혜민 지음 / 미르북스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노무현, 당신을 사랑합니다.

노무현,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을 영원히 사랑합니다.       -당신을 가슴에 묻던 날, 영결식 노제 中 도종환 시인의 말-




2009년 5월 23일, 나는 이날을 잊지 못한다. 거대한 큰마음의 별을 잃은 날이다. 14줄의 짧은 유서만을 휑뎅그렁하니 남긴 채 그렇게 자연으로 돌아갔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질곡과 영욕으로 점철된 애증의 삶을 버리고 창공을 향해 영원히 날아 가버렸다. 당신을 그리워하던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지워지지 않는 굳은 비석만을 세긴 채 말이다.


바보 노무현. 굽히지 않는 원칙과 소신으로 현실에 타협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무너지지 않는 원칙과 신념으로 끊임없는 도전과 저항을 받았다. 혹자는 그를 일러 싸움꾼이라고도 이상주의자라고도 하며 현실을 부정하는 사람이라 비아냥거렸다. 참여정부 내내 괴롭히던 개혁과 보수의 갈등을 통해 그들은 물어뜯고 깎아 내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가진 것 없고 출신이 비천하며 그들과는 다르다는 터무니없는 이유로 천길 벼랑 끝으로 밀어버렸다. 그렇게 우리 사회는 돌려 세우기에 급급했으며 비겁했다.


아직 충격이 가시지 않는 지금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보고자 하는 것은 그를 그리워하고 우상화시키고자 함이 아니다. 그가 걸어 온 인생역정과 생전에 보인 영욕의 삶을 통해 우리를 가둔 허상을 걷어내고자 함이다. 강한 자에게 더 없이 강하고 약한 자에게 더 없이 약했던 강단한 그의 삶이 이제 와서 제대로 보이는 이유도 그것에 있다. 돌이킬 수 없는 값비싼 희생을 치르고 얻은 소중한 가치를 깨우친 우리는 모두 바보다.




그는 전후세대가 그랬듯 지지리도 가난한 유년기를 거쳤다. 단단한 차돌처럼 불의에 저항하는 굳은 신념을 키운 것도 유복하지 못한 환경의 영향이 컸다. 어려운 이에게 선뜻 가진 모든 것을 내 주기를 주저하지 않고 옳지 않다면 쉬운 길도 돌아서 가는 뚝심도 거기서 비롯되었다. 학창시절 그가 겪었던 원칙을 뒤흔드는 부정의 유혹은 어떠한 회유와 협박에도 굴복하지 않았다. 열등감을 극복하고 비겁함을 물리치고 원칙과 신념을 체득한 순간이다.


이렇게 다듬어 그를 세운 이념의 토대는 지난한 세월을 준비하는 발판이었다. 지치지 않는 도전과 열망으로 성취한 사법고시합격은 그를 더 큰 세계로 이끌었다. ‘원진레이온 사건’으로 불거진 계기는 낮은 곳을 대변하는 든든한 횃불이 되게 만든 촉발제가 되었다. 힘없고 가진 것 없는 자들을 위해 개인의 영달과 이익을 모두 버리고 담대한 바보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청문회가 낳은 스타라는 별명을 위시해 그는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한 수구보수 세력과의 지리멸렬한 투쟁을 이어갔다. 철옹성으로 막힌 그들의 아성을 향한 도전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었다. 동서로 갈라진 지역갈등과 계층갈등에 굽실거리지 않았으며, 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도전했던 삶 그 자체였다. 이러한 그의 용기와 희망이 통해서였을까? 그래도 우리는 환멸스럽고 역겨운 구태의 정치를 청산하고 더불어 잘 사는 새로운 세상을 열기를 그를 통해 희망하였다.




권력의 정점에 오른 그는 권력의 시녀노릇을 해오던 검찰, 국세청, 국정원 등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개혁의 성과를 보였다. 어떠한 권력도 이익을 위해서 사용치 않았다. 견제와 균형을 통한 국민이 주인이 되는 참된 민주주의의 얼개를 구축하였으며 공약으로 내건 가치를 하나씩 차근차근 바꾸어 나갔다. 또한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대통합의 정치로 영도적 대통령의 권한을 포기하고 대화를 통한 화합의 장을 달성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하지 못했다. 고용 없는 성장의 늪에 빠져 분배와 성장의 경계에서 심각한 도전을 받았다. FTA 협약 문제, 국민연금개혁문제, 비정규직처우문제, 부동산규제문제, 광우병사태 등 민생과 직결된 민감한 사안에서 이렇다 할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지 못했다.  이러한 허점과 간극은 기득권자와 보수 세력에게는 더 없이 좋은 빌미를 제공하였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아마추어정권이니 무능하고 미숙한 집단이니 운운하며 비하시키며 국민의 눈과 귀를 오도하며 혼란으로 빠트렸다.




호시우행(虎視牛行). 호랑이처럼 보고 소처럼 걷는다는 말처럼 그는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찾고 근원에서부터 신중하게 접근하였다. 이러한 그의 우직한 행보는 즉각적인 성과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씨를 뿌리고 열매를 맺는 과정과 흡사하다. 바로 이것이 그를 있게 한 소신이자 성품이다. 또한 한 가지 일에 쉬지 않고 꾸준하게 매진한다면 마침내 큰일을 이룬다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성정은 인기에 영합하지 않는 인간의 참된 자세를 여실히 보여 주는 대목이다.




그랬을까? 우리의 바람과 기대는 성급한 게눈과 같았다. 어서 빨리 성과를 내놓으라고 다그쳤으며 그들과 달라진 게 없다는 불평과 불만을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냈다. 점점 타성과 광기에 물들어 그의 행보와 거침없는 발언에 불안을 감출 수 없었으며 믿음마저 내던졌다. 지난 600년 동안 이어온 반칙과 편법의 달콤함에 취해 그 고통을 감내하기 힘들었다. 그가 그토록 바라던 건전한 대화와 소통을 통한 상식이 통하는 공감의 물결을 우리 스스로 걷어차 버린 셈이다.




그런 그가 국정을 떠나 15개월 만에 한 줌의 흙이 되었다. ‘노간지’로 ‘노짱’으로 평범한 서민으로 거듭났던 그를 더 이상 볼 수 없다. 그를 키우고 길러 낸 봉화마을의 넉넉한 품으로 돌아갔다. 그를 위협하고 회유했던 수구세력도, 헌정사의 한 페이지로 기록될 탄핵소추도 그를 넘어트리지 못했다. 하지만 그를 지탱했던 국민의 믿음과 신뢰가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공범이다.




이 책이 노무현 대통령을 회고하며 왜 그가 그토록 모진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는지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보수와 진보를 가르고 계층 간 불화를 조장하기 위해서는 더 더욱 아니다. 원칙과 신념이 짓밟히고 이상이 추락한 암울한 세상을 일깨워 주기 위해서이다. 언제나 그가 바라보았던 ‘그 너머’의 상식이 통용되는 부정과 비리가 다시는 발붙이지 못하는 그런 사회를 말이다. 그것이 고인의 큰 뜻이었으리라.




당신을 사랑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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