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 - 마음을 얻는 지혜 위즈덤하우스 한국형 자기계발 시리즈 2
조신영 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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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매너리즘에 허덕일 즈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일도 그렇고 삶도 그렇고 꽤나 재미가 없었던 시절이었다. 무미건조함 외엔 달리 설명할 그것도 없다. 아마 반복되는 일상에 지쳤을 테고 변하지 않는 세상에 적잖이 실망했을 테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은 번득이는 뭔가가 있었다. 혹자는 밋밋한 스토리라인에 그저 그런 내용으로 윤리선생님을 연상케 한다고 독설을 퍼부어 댔었지만 나에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공명통에서 흘러나오는 바이올린 선율처럼 현을 가르며 울려 퍼지는 진득한 맛이 좋았다.  

 

누구나 힘들고 아프기 마련이고 날선 세상에 베이는 법이다. 그렇게 아프기를 반복하고 삶에 스며든 진리를 깨닫는 순간이 시나브로 오는지 모르겠다. 이 책을 가르는 화두인 소통의 단절은 어느 곳, 어디에서나 천원마트의 상품처럼 흔하다. 확성기를 통해 끊임없이 반복 재생되는 생선장수의 절규(?)처럼 일방통행인 세상을 산다. 배려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보려 해도 힘들만큼 자기의 언어로만 떠들어 댄다. 마치 낯선 이방인들이 모여 사는 동네에 등 떠밀러 온 것 같은 심정이랄까?


이 책의 주인공은 이청이다. 잘 나가는 악기회사의 과장으로 아내와는 별거중이다. 이유인즉슨 아이의 발달장애가 그 원인이다. 평소 그는 어두운 가정환경 영향으로 건성으로 주위사람들을 대했다. 타인에게 귀 기울이지 못하는 전형적인 마음의 장애를 가진 캐릭터로 이런 그를 불러 이토벤이라 불렀다. 이토벤은 베토벤처럼 귀가 먹지 않았음에도 먹은 것처럼 행동한다는 뜻에서 따 온 비아냥거림이다.


그에게 찾아 든 회사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은 그를 갈등의 기로에 빠트린다. 회사의 달콤한 유혹에 못 이겨 구조조정의 소방수를 자임하며 동료들의 질타와 비난을 한 몸에 받는다. 이렇게 어렵사리 회사가 쥐어 준 대리점 개설권을 거머쥐지만 오픈당일 그에게 찾아 온 불행의 사신은 뇌줄기 암이라는 치명적인 시한부 선고다.


하지만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은 생에 대한 집착이다. 집착은 현실을 개선하려는 강인한 의지를 보였으며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으려는 믿음으로 발화된다. 그의 지독한 독선에 희생당한 자신의 가족과 특히, 아이에게 무엇인가를 남겨 주기 위해 떠올린 것이 바로 바이올린이다. 그는 바이올린을 만들기 위해 평소 친분 있던 악기공장의 지인을 통해 무보수로 일하며 제작과정을 배우게 된다. 이 과정에 소통하지 못했던 그의 과거의 망령이 팀원들을 통해 발견하게 되며 불협화음의 무서움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이심전심이랄까? 이토벤의 변화된 모습과 경청의 지혜가 그들을 한 팀으로 묶고 각각의 고유음을 통해 제 색깔이 절묘하게 배합된 하모니를 찾게 된다. 갖은 우여곡절과 천신만고 끝에 찾아든 진실한 마음은 서로를 녹이고 갈등을 허무는 계기가 된다. 이토벤은 이제 독선의 대명사에서 화합의 아이콘으로 탈바꿈하는 순간이다.


이러한 그의 변화에 더 큰 도화선이 되는 사건은 바이올린 제작과정의 마지막 재료를 구하면서 부터다. 그는 좋은 목 재료를 구하기 위해 일부러 찾아 든 첩첩산중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만다. 당연히 이쯤되면 주인공을 도와주는 인물이 나오기 마련인지라 그를 마음의 소리로 인도하는 달인을 만나게 된다. 이렇게 목숨을 부지한 달인은 마음을 비우고 경건한 자세로 자연을 받아들일 때 진실의 문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여기까지가 이 책의 대강의 줄기다. 색다를 것도 없거니와 특색 있는 것도 없다. 하지만 이 책을 파고드는 통찰은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모습을 회고하게 만든다. 과연 난 듣기의 지혜를 알고 있는가? 말해 무엇 하겠냐 만은 잘못되어도 한참을 잘못되었다. 사실 제대로 듣기를 해 본적이 언제였는지 싶다. 성급한 판단은 앞서가고 귀 기울이기는 뒷전이었다. 알량한 지식조각이 쌓은 우매함이자 참담한 결과다.


다시 이 책을 손에 든 이유 또한 이것이다. 이 책을 나누는 키워드의 경구처럼 현실을 다 잡는 내면의 울림으로부터 나를 발견하고 공감을 통한 이해의 눈을 뜨며 이를 통해 창조적 공존으로 가는 상생의 이청득심(以聽得心)의 지혜가 절실한 지금이기 때문이다. 경청, 변하지 않는 진실의 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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