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라, 잡상인 - 2009 제3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우승미 지음 / 민음사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언젠가부터 불행을 소외의 다른 이름으로 이해한다. 경쟁을 공공의 선으로, 인간이 만든 작위적이고 시니컬한 현실에 동화되지 못하고 굴복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현실과 이상의 관계에서 오는 간극은 채우기조차 요원하다. 경쟁에 내몰리고 속임수와 비겁함으로 무장한 각박한 현실은 삶의 희망마저 감춘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과 타협의 다양성을 구사하는 능력이 있는 모양이다. 불행의 순간에도 사랑과 믿음으로 타오른 희망의 빛을 감출 수 없다.

 


불안과 희망은 한 배에서 나온 운명공동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엎치락뒤치락 어느 것이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네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기준점이 된다. 이 책의 캐릭터들은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다. 소위 잘 나가는 주류사회에 가려진 별 볼일 없는 3류 인생이자 잉여의 산물로 투영된다. 이들을 이어주는 공감의 틀은 그들에게 개껍찔처럼 달라붙은 핸디캡이 생산한 사회적 약자에게 내어 준 지위의 소산이다.

 


저자는 막장인생이나 다름없는 그들을 통해 줄지어 늘어 선 선형의 동질감을 발견하고 블링 블링한 희망을 품는다. 웹에 익숙한 문체와 사실감 있는 간접경험의 소묘는 적절하게 익은 김장김치와 같은 알싸함이 배어난다. 여류작가라고는 믿기 힘든 남성중심세계의 현실감 있는 반영에 절로 주억거리게 만든다. 철저한 사전작업과 고증을 거쳤음을 보여주는 반증이다.  낭중지추처럼 날카롭고 예리하기까지 하며 저자의 깜냥이 대단하다.

 


이야기의 전개과정은 깨알 같은 글씨로 잘 정리된 노트를 보는 것처럼 산만함이 없는 개운함이 주는 특유의 매력이다. 인물에 따라 달라지는 다양성을 자연스럽게 창조하고 추구하고자 하는 의도를 집중과 선택의 황금율로 건져 올린 아이템은 군더더기 없이 뻗어 나아가는 필력까지 엿보인다. 이러한 책은 단숨에 읽기에는 아까움마저 들게 만들지만 어김없이 끝장을 뒤적이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밀고 당기기와 웃겨야 할 때 여지없이 웃음코드를 자극하는 한편의 슬랩스틱의 진수라고나 할까.

 


맛깔스럽게 이야기를 자유자재로 조합하여 이끌어 나가는 글을 볼 때면 시크하다는 표현이 제격이다. 매끄럽게 넘어가는 표현과 단락의 호환을 통해 작가의 관념, 철학과 삶의 경험과 통찰을 오롯이 엿 볼 기회를 잡기 때문이다. 소설은 이런 면에서 본다면 독자와의 직접적인 교감을 쟁취하는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다. 전체를 감싸고도는 가상의 공간을 통해 타자와 소통하는 창구의 중요한 매개체로서, 또한 탁월한 생명력과 공감의 힘을 아울러 가지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불행을 구원할 매개체로 빛과 희망을 동질화 시키는 작업을 은연중에 깔고 간다. 번번이 고배의 쓴잔을 마시는 별 볼일 없는 개그맨 지망생 철이에게서, 지하철 잡상인의 전설적 존재로 분한 미스터 리 사부에게서, 장애로 인해 앞을 볼 수 없는 수지에게서, 수지의 아픔을 나누는 다중장애인 동생 효철과 그의 약혼녀 지효에게서 불행을 끊는 도구로 작용한다. 순수한 빛의 원형이, 희망의 다른 이름임을 선연하게 의미한다.

 


이처럼 일정한 알고리즘으로 연결된 밀접한 관계를 통해 연민과 사랑으로 이어지고 확대재생산 되는 상황은 불가의 연기설(緣起說)의 큰 중심축과 맞닿아 있다. 아울러 저자가 이 책의 모티브로 추출한 지하철은 비유적 의미가 무엇보다 크다. 덜 가진 계층을 대변하는 상징물을 통해 개선하기 힘든 희망발전소가 사라진 탐욕으로 점철된 뒤틀린 사회를 적나라하게 꼬집는다. 아울러 현대적 의미의  해학과 유머로부터 결락된 사랑의 형질에 성큼 다가선다. 어떻게 본다면 실험적일수도 비현실적일수도 있는 세계를 현실로 만든 것은 공감의 힘이다.

 


인간은 고립된 섬과 같아서 혼자서는 살 수 없다. 이해와 타협으로부터 공존의 가치를 배운다. 불행의 힘겨움은 골짜기를 넘어서기 위한 잠시의 고통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소외된 그들 또한 우리의 모습이다. 질시와 반목, 선입견의 색안경은 마음의 장애다. 신체의 장애보다 마음의 장애는 우리 모두를 병들게 한다.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인간의 이중성의 거대담론을 웃음으로 승화시켜 재가공한 이 책, 근간에 보기 드문 수작이라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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