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원리 - 스마트버전
차동엽 지음, 김복태 그림 / 동이(위즈앤비즈)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흔히 자기계발은 마음으로부터의 시작이다. 내가 변화되지 않고는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이 없다. 제 아무리 위대한 꿈과 비전도 사소한 하나의 행동에서부터 출발이다. 나 스스로 긍정을 품고 변화를 주도한다면 성공의 티켓을 움켜쥐게 된다. 이러한 변화의 모토가 원리를 만들고 삶을 자극하는 동기는 될지언정 의식과 습관을 바꾸지 않고는 사상누각(沙上閣)이나 다름없다. 이처럼 의식의 변화는 근본적인 개혁이다. 하지만 변화의 시작이 쉽지만은 않은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도움을 받고 그 속에서 길을 찾을 수밖에 없다.

이 책 <무지개 원리>는 입소문을 타고 독자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시중의 자기계발서와 유사한 모습을 보이는 현실임을 감안할 때 대단한 성과다. 아마도 차동엽 신부의 진실한 믿음과 그만의 철학이 오롯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우리식 정서에 맞아 떨어졌다는 것도 이 책을 성공으로 이끈 견인차다. 이처럼 대중의 반향을 일으키고 변화의 물꼬를 튼 이 책의 핵심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무지개 원리로 대변되는 7가지 원리로만 설명하기는 더욱 어렵다.

사실 이 책과 대등한 위치에서 인기를 이어가는 론다 번의 <시크릿>이나 박지성 작가의 <꿈꾸는 다락방>처럼 그 얼개나 형태는 얼추 비슷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믿음으로부터의 자기변화가 세상을 바꾸고 꿈을 이루게 되며 성공을 성취하게 된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러한 본질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는 공통분모에 있다. 하지만 이 책이 그들과 다른 커다란 차이점은 우리의 의식과 태도를 지배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실제 성공의 주된 요인 중 하나인 긍정의 힘은 이제 식상한 키워드인지 모른다. 부정적 사고를 극복하고 역경을 뛰어 넘는 행동의 힘이 바로 긍정이다. 이러한 긍정의 힘에 대한 중요성은 보편타당한 원칙이다. 그래서 어쩌면 너무도 당연하기에 변하지 않는 초석이 된다. 사고의 경직은 성공의 기회를 포착하지 못하고 도전정신을 꺾어 버리는 암초와 같다. 그러므로 변화의 시발점은 긍정으로부터다.(무지개 원리 1.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지혜는 험난한 인생을 항해하는 도구인 등불과 같다. 난관을 돌파하고 단점을 장점으로 체질개선을 하는 원동력이 된다. 하지만 지혜는 교만과 자만을 경계해야 한다. 외우고 익혀 지식으로 단순히 쌓는 것과 지혜로 만드는 것은 천양지차다. 무엇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는 더불어 사는 상호공존의 지혜의 기준이기 때문이다.(무지개 원리 2. 지혜의 씨앗을 뿌려라.)

이렇게 형성된 좌뇌의 숨은 지성계발을 통해 발견한 진리를 토대로 저자는 우뇌의 감각적이고 직관적인 영역을 개발하기를 주문한다. 바로 목적을 실현하는 꿈을 품으라는 원리로 직결된다 하겠다. 꿈은 비전이며 미래의 의지이다. 우리가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원천이 바로 미래의 꿈이다. 꿈은 지속적이며 생생하게 시각화를 통해서 가능하다. 이러한 원리는 확대 재상산되며 가치를 이루는 근본이 된다. 끌어당기고 상응하고 소통하는 것의 의미 또한 신념의 확고한 의지표현이다.(무지개 원리 3. 꿈을 품으라.)

의지가 행동의 밑바탕이 되는 꿈을 세우는 것이라면 믿음은 결과를 돕는 행위다.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믿음은 신념을 재충전하고 자극하는 자양분이다. 저자는 확신을 위한 행동으로 3P를 통한 긍정적 사고를 요구한다. 즉, 긍정적(Positive)이고 현재형(Present)이며 개인적(Personal)이어야 한다.([p.134) 그러나, 타인을 위한 행위가 아닌 나를 위한 행위여야 한다. 충전된 기대감은 변화를 주도하는 新에너지 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다.(무지개 원리 4. 성취를 믿으라.)

이 책에서 소개된 <탈무드>의 명언 중 세상에서 ’가장 악한 것’과 ’가장 선한 것’으로 인간의 ’혀’를 꼽는다. 말은 행동을 지배하고 인격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부정의 언어보다 긍정의 언어를 선호해야만 하는 이유는 지극히 간명하다. 내뱉은 말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은 다름 아닌 자신이다. 우리은 이러한 부정적 영향을 간과하고 묵살하는 경향이 크다. 이미 발생한 결과에 대해 불평과 불만을 토로하고 과거에 집착하는 현실은 미래를 바꾸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안다는 것과 실천한다는 것의 차이는 실로 엄청나다.(무지개 원리 5. 말을 다스리라.)

생각이 말을 바꾸고 말이 행동을 바꾸고 행동이 습관을 바꾸고 습관이 인격이 된다고 하는 무지개 원리 전도사 차동엽 신부의 말은 가히 촌철살인이다. 생각을 바꾼다는 것은 어찌 보면 모든 것을 바꾸는 계기이자 시초인지 모른다. 인간이 습관을 들이기에는 대개 21일이 걸리고 습관으로 정착하는 데는 100일이 걸린다고 한다. 이처럼 생각의 파급효과는 어떻게 사느냐의 방식으로 집중됨을 의미한다.(무지개 원리 6. 습관을 길들이라.)

아울러 이 책은 인생의 가치가 어디에 있느냐는 근원적인 성찰을 요구한다. 인생의 목적을 발견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가치를 정립하고 목적을 분명하게 세울 것을 바라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보면 성공의 키워드가 확고한 믿음과 의지로부터 발현됨을 인식하게 된다. 이렇게 배양된 목적은 불굴의 의지와 실천으로 포기를 극복하는 시금석이기 때문이다.(무지개 원리 7.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

이렇듯 의식의 전환을 통해 길러 낸 무지개 원리는 나약한 체질을 개선하고 변화시킨다. 더 나아가 꿈을 성취하고 성공으로 충만하는 긍정의 물결이 넘치기를 바란다. 동시에 항상 감사하는 자세로 더불어 사는 참다운 삶의 지혜를 깨닫기를 바란다. 이러한 공존의 세상은 우리 모두의 원대한 희망이자 진정한 목적이다. 저자가 고안해 내고 제시한 무지개 원리는 이제 그의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를 위한 우리 모두가 지향해야 할 담대한 목표이자 행동지침이다. 분명한 것은 꿈을 이루는 모든 것의 첫걸음은 사소한 하나의 움직임에서 부터임을 잊지 말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밀레니엄 3 - 상 - 바람치는 궁전의 여왕 밀레니엄 (아르테) 3
스티그 라르손 지음, 박현용 옮김 / 아르테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제 끝이다. 더 이상 밀레니엄의 놀라움을 기대할 수 없다. 밀레니엄은 마치 빠지면 헤어날 수 없는 늪과 같다. 방대한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촘촘하게 짜여 진 그물망에 걸리면 헤어 나올 길이 없기 때문이다.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치밀한 이야기 전개와 스펙터클한 서사구조에 필설로 형용하기 힘들 정도다. 장르를 파괴하며 관성을 무시하는 저자의 필력에 온전히 몰입하는 것 외에는 달리 저항할 틈이 없다.

 

밀레니엄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감정과 이성, 논리의 결합체다. 이야기를 이루는 근간이 지극히 현실적이며 실체적 진실과의 괴리감이 없다. 그 속에서 세워 진 가설의 틀은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유기적으로 엮이게 조합하며 자연스럽게 완성도를 높인다. 이렇게 만들어진 흐름의 견고함은 두 주인공 리스베트 살란데르와 미카엘 블롬크비스트를 중심으로 연결된 상상의 세계를 이끄는 도화선이 된다.

 

밀레니엄 시리즈는 각 권마다 에피소다가 각기 따로 움직이지만 사건의 중심축은 전권을 가로지르는 실타래처럼 조밀하게 엉켜 있다. 에피소드의 개별성은 저자의 경험과 관심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가 르포르타주기자로 현실의 부조리와 사회문제를 전 방위적 감각으로 온몸으로 익혔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처럼 모티비의 파격적 채택은 현실로부터의 출발점을 만든다. 부정부패, 패륜범죄, 비윤리적 행위, 폭력, 성차별 등 우리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인 세계를 이 한권의 소설에 녹여냈다는 것은 감히 범접하기 힘든 천착의 결과다.

 

뿐만 아니라 1편에서부터 이어진 두 주인공의 정체성 구축과 분명한 알고리즘은 마치 페르마의 방정식을 풀어 가는 것처럼 모종의 쾌감이 뒤따른다. 미카엘을 이루는 신뢰, 용기, 결단과 리스베트의 의지, 천재성, 슈퍼키드, 대담함은 현실 속의 영웅을 만들어 내는 캐릭터의 절대점이다. 이렇게 다듬어진 캐릭터들의 절묘한 트릭, 상상 그 이상의 반전이 거듭되는 미스테리한 전개는 이 소설을 이루는 재미의 큰 축이다.

 

3편은 2편의 속편처럼 이어진다. 리스베트와 그의 생부 살라첸코, 이복형제 니더만의 처절한 전투 끝에 생사여부를 가르던 장면으로 끝을 맺었던 2부의 끝에서부터 이어진다. 여태껏 리스베트의 트라우마로만 인식되던 불우한 과거의 기억들이 형상화되어 대결구도를 걷게된다. 이처럼 이 소설을 이루는 또 하나의 중심축은 선악의 대결구조다. 하지만 자세히 드려다보면 절대선도 절대악도 존재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이 책의 기저에 깔린 대결구도는 저자의 상상력을 통해 만들어진 치열한 두뇌싸움으로 전개되는 양상을 보인다. 장면과 장면을 마치 35㎜ 실사필름으로 재현하듯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즉각적인 반응과 폭발적인 캐릭터의 세세한 심리묘사, 표정, 행위 등 전지적인 시점에서 가공한 그들을 통해 작가의 트릭의 세계로 쉽게 몰입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저자는 일정한 패턴을 유지하며 창조적인 접근과 방법을 시도한 수평적 시선처리가 탁월하다. 그래서 평범하지 않은 그들을 통해 우리는 대리만족의 희열을 오롯이 받는 기회를 거머쥐는지도 모른다.

 

1편에서 소개된 리스베트는 천재적인 기억력과 발군의 해커로 등장한다. 가상의 세계를 안방처럼 드나들며 상대방을 제압하는 모습은 보편적인 능력을 뛰어 넘는다. 게다가 외모는 삐삐 롱 스타킹처럼 마르고 왜소해서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설정도 의도된 장치다. 만약 리스베트가 <레지던트 이블>의 여전사 밀라 요보비치와 닮았다면 지금의 재미가 오히려 반감되지 않았을까? 긴장감을 높이는 상황을 의도적으로 극대화하여 상황을 이용한 것이리라. 반면 미카엘은 소시민적 영웅의 전철을 그대로 밟아 간다. 리스베트와의 관계를 통해서도 변하지 않는 열렬한 지지자로 의리와 신뢰를 생명처럼 수호하는 강직한 인물이다.

 

아무래도 3편의 클라이맥스는 변호사 아니카 자니니와 정신과 의사 페테르 펠리보니안과 펼치는 법정스릴러가 압권이다. 리스베트의 발목을 쥐어 잡던 거대권력의 음모를 통쾌하게 뒤집는 장면은 카타르시스를 온몸으로 느끼기에 더 할 나위 없다. 장르소설이 보여 줄 수 있는 최고봉이자 진수다. 하나 둘 어둠의 장막을 걷어 내는 그들의 실체를 보고 있노라면 결국 악이 선을 지배할 수 없다는 각인된 명제를 발견한다.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이 책은 잘만들어진 책이며 대단하다. 인과율의 관점에서도 심리학적인 관점에서도 그 완성도가 높기 때문이다. 배경의 단단한 주춧돌을 디딤돌 삼아 심리적 인과관계가 치밀한 연결고리로 맞물려 돌아가기에 허점을 발견하기 힘든 구조다. 다만 아쉬움으로 남는다면 10부작을 기획하고 전개된 시나리오가 숨겨든 복선의 암시가 더 이상 빛을 보지 못하는 애석함이다. 아마 이 책이 가진 유일한 단점이 바로 더 이상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이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서아 가비 - 사랑보다 지독하다
김탁환 지음 / 살림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노서아 가비, 커피를 아우르다.




노서아 가비. 러시안 커피란다. 커피를 지독히 사랑하면서도 러시아산 커피는 생소하다. 대개 에티오피아, 콜롬비아, 동티모르 産 커피는 익어도 여태껏 본적도 들은 적도 없다. 제목에서부터 풍기는 궁금증의 유발은 커피처럼 짙고 그윽하기만 하다. 게다가 조선 최초의 바리스타이야기라.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다. 김탁환 작가의 상상력은 기발하다 못해 시쳇말로 죽인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세상과 엮어 뭉개는 이야기는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자신을 스스로 스토리 디자이너로 명명한 정체성과 글발의 화수분은 부럽기 그지없다. 무엇보다 시시콜콜하게 풀어 쓰지도 나열하지도 않고도 자유자재로 상황을 지배하는 필력은 압권이다. 그래서 예의 어색함도 없으며 자연스럽게 사건을 따라 움직이는 이야기의 행방에 어지러움도 없다. 그런데도 이야기의 정점은 첨예하게 얽히고 대립한다. 식상할 법한 이야기도 그의 손을 거치면 새롭게 보이게 하는 마이다스의 손처럼 희한한 능력을 가진 것일까 하는 착각마저 인다. 지나친 과찬인지는 모르겠으나 분명 흠모할 능력임에는 틀림없다.  



조선 최초의 바리스타, 따냐.




이야기는 구한말을 배경으로 거침없이 내달린다. 신문물이 홍수처럼 쏟아지던 그 시절, 새로운 세상과의 조우는 미처 알지 못했던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에 충분하다. 열강의 틈바구니에 끼어 자주성을 상실한 조선의 암울한 운명을 담보로 뽑아 낸 추출물은 커피가 품은 본래의 그것, 검은 색과 동색일지 모른다. 그래도 커피와 조선은 좀처럼 어울리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그것도 뻬쩨르부르크에서 날아 온 생경한 커피이기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저자는 단숨에 들이키듯 조금의 음미할 여유도 허락지 않고 커피로부터 걷어 올린 진한 향을 쏘아 올리기에 정열을 다한다. 자유를 갈구한 보헤미안처럼.

이 책의 두 주인공 따냐와 이안은 노마드적인 삶을 산다. 조선이 가진 보수적 이미지와는 파격적인 변신이다. 우선 조선 최초의 바리스타가 여자라는 것도 그렇고 신분의 벽을 파괴한 것에서부터의 출발도 그렇고 세계를 무대로 영혼을 내맡기는 스케일이 웅장함이 그렇다. 기존의 역사소설과는 그 궤를 견주려도 견줄 수가 없다. 실제와 상상이 혼합된 거침없는 배합은 새로운 농도로 재탄생하여 유혹적인 맛을 생산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방커피도, 카페라떼도, 에스프레소도 아닌 전혀 색다른 커피 맛이 난다. 바로 사랑으로 녹여진 자유를 닮은 강렬한 맛이리라.

역사를 뒤흔든 유쾌한 사기극

구한말 조선의 왕, 고종은 우유부단함이 그림자처럼 따라 붙는다. 외세의 억압에 굴복당하고 치욕의 대표적인 왕으로 그려지기 십상이다. 이런 고종을 중심으로 이 책의 주인공과 얽히고설킨다는 설정은 일종의 나약함을 씻는 정화로부터의 소망이다. 당시 열강이었던 러시아를 무대로 호쾌한 사기극이 통하고 대륙을 호령하는 그들을 통해 전달되는 생생함은 짜릿함마저 배어나게 한다. 어찌 봉이 김 선달을 모를 수 있겠는가? 세련되고 통 커진 19세기 판 신 김 선달이 바로 그들이다.

그래서 일까? 미장센이 화려했던 김지운 감독의 영화 <놈, 놈, 놈>의 그것과 닮았다. 시대적 배경도 엇비슷해서 상상의 밭이 그쪽으로 기우는 것도 한 몫 하겠다. 만주 벌판을 휘젓던 그들과 동토의 자작나무 숲을 무대를 가로지르던 주인공들과 오버랩 되는 것은 자연스러움이 주는 현상이 아닐까? 이 책이 독자들에게 빛을 보기도 전에 영화화 되었다는 것도 그런 방증이겠다. 여기에 돈에 얽힌 기상천외함이 감칠맛을 더하기도 하였으니 말이다. 또한 치밀한 고증과 수집을 통해 파헤친 역사의 흔적과 상식을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다는 것도 이 책이 가진 강점이다.

사랑, 자유에 담긴 커피의 매혹적인 유혹

작가 김탁환은 타냐를 통해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현란한 모습을 펼쳤다. 거짓과 진실 사이를 교묘하게 오고가는 질펀한 심리묘사를 통해 인간 본성의 이면을 내밀하게 보듬었다. 타냐는 신세대 여성이며 개화된 인물이다. 압제와 억압과는 거리가 먼 캐릭터로 어디에고 속박당하지 않는다. 그녀는 자유를 찾아 떠나는 저공비행을 끊임없이 재촉한 캐릭터다. 그러나 타냐가 욕망과 탐욕으로부터 오는 유혹에 철저하게 냉정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은 사랑이다.

사랑이 위대함을 다시 일러 무엇하랴마는 작가가 보여 준 속내는 페미니즘적인 요소가 다분히 포함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이러한 관점은 양비론적인 새로움이다. 타냐의 캐릭터가 계급, 신분, 지위를 뛰어 넘는 초월적 탄생도 시대가 낳았다는 설정보다 작가의 상상이 만든 산물에 가깝다. 희망이 되었든 소망이 되었든 수평적 시선처리를 통해 우리는 모종의 쾌감을 동시에 받기 때문이다. 마치 갓 볶은 커피의 그윽함에서 바리스타의 농염한 기교와 자연이 만든 매혹적인 그 순수한 매혹적인 맛처럼 말이다.

이래저래 이 책은 단숨에 마셔진다. 뜨거움을 느낄새도 없이 순식간에 벌어진다. 혼란한 압록강 국경지대가 펼쳐지다가도 러시아공사관으로, 뻬쩨르부르크로, 뉴욕으로 막힘없이 날아오른다. 살아 내기를 위선으로부터 경계하는 사기꾼의 삶일지라도 타냐와 이안의 숨 막히는 사랑은 정열적이다. 아울러 고종의 보일 듯 말 듯 내비친 타냐와의 연정이 은밀한 삼각관계의 줄타기를 보는 즐거움도 있다. 이처럼 노서아 가비는 시대를 잊게 만드는 어울리지 않는 세계를 제법 어울리게 만든 잘 만든 이야기다. 어느새 끝나 버린 이야기에 언제 있을지 모를 시즌2라도 기대하게 만드는 그런 책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9-08-11 21: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12 09: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즘과 올로지 - 세상에 대한 인간의 모든 생각
아서 골드워그 지음, 이경아 옮김, 남경태 감수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매일 매일 갓 구운 신문의 내용을 드려다 보면 ‘이데올로기’와 ‘이념’이 판을 친다. 이유는 간단하다.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한다는 것이다. 어제의 이론이나 의견이 오늘은 옛것이 되고 또 다른 것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굳이 하나를 더 들자면 이해득실관계로 얽힌 목적 집단의 다량출현에도 있다. 이처럼 생소한 저들을 대하고 있노라면 막연한 불안감마저 치민다. 내가 언제 그들을 보기라도 했던가? 아님 들어 보기라도 했던가? 지식홍수시대에 사는 한 사람으로서 마뜩찮은 현실이다.

 


그래서 나 같은 무지몽매한 인간을 구제하기 위해서, 앞서와 같은 고민을 몽땅 그리 종식시키기 위해서 등장한 책이 바로 <이즘과 올로지>이다. 그 발상이 고맙고 번뜩이는 재치가 더 없이 빛나 보인다. 대략 눈짐작으로 그런 뜻이겠거니 하고 구렁이 담 넘듯 두루 뭉실 넘어 가던 허접한 지식 주머니에 한 가득 채운 심정이다. 게다가 개념 정리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어 더욱 반갑다. 당최 야후가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인간을 빗댄 인종이란 사실을 알기나 했을까?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가 발견했다는 ‘카오스 이론’처럼 복잡다단하기 그지없다.

 


이런 類류의 백과사전식 책들은 손 잡히는 가까이에 두고 읽는 것이 제격이다. 단숨에 읽어 내린다고 게살 뽑아 먹듯 쏙쏙 넘어 오는 짭조름한 맛이 아니기 때문이다. 필요할 때 하나씩 꺼내 읽으면 긴요하게 여러모로 쓰임새가 클 것 같다. 하지만 딱딱하게 느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모양이다. 지식 전달자로서의 용도가 우선이니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래도 읽다보면 제법 구미가 쏠쏠 당기는 것이 동종의 것들과는 다른 새로운 호기심이 그득하다.

 


인간이 만든 사회는 일정한 틀이나 법칙으로 움직이게 마련이다. 그러다보니 사상이나 이념으로 묶인 틀은 상호연관성으로 얽히게 된다. 그 다양한 이념의 줄기들은 인간을 둘러싼 모든 것들에 흡수되어 새롭게 변태하고 파생되었다고도 볼 수 있겠다. 이 책에서 정치, 역사, 철학, 예술, 과학, 경제, 종교, 성도착 등의 카테고리로 나열한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사실 인간이 만든 어떤 사상이나 이념을 자세히 드려다 보면 그 기저에는 일정한 틀이 있음을 발견한다. 성취하고자 하는 목적이 그 이념 속에 다량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저항과 지배의 대립이자 사회적 소통이며 역사의 순환이다.

 


이 책에서 선보인 이즘과 올로지의 근간은 생소한 줄기다. 전적으로 미국식 자유주의에 의해 저술된 탓도 크다 하겠으나, 저자가 파헤친 직관의 우듬지 또한 대단하다. 종횡으로 넘나드는 지식의 방대함이 산을 이룬다. 비록 미국식 사상과 색깔에 맞춘 렌즈로 인화된 가치관의 집대성이 진하게 담겨 배어 있긴 해도 가볍게 넘기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백과사전이 주는 태생적 한계도 있거니와 시각적 편협함과 치우침을 차치하더라도 이 책이 가져 다 주는 가치는 사상의 주류적 흐름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시대를 대변하는 가치관이나 이데올로기를 바로보고 이해하는 것은 불변의 진리다. 지식전달의 이면을 뛰어 넘어 인간의 모든 생각을 관통하는 그것은 지혜의 산물이다. 초끈이론에서 드러난 불일치의 패턴처럼 사회구조, 인간 심리, 철학, 사상이 하나의 고리로 연결되어 이어진 관계의 나선형을 이룬다는 것이다. 저자가 짚어 내다 본 통찰의 핵심이 바로 이것이다. 이즘이 만든 허깨비의 딜레마에서 빠져 나와 사상적 자유를 회복하고 인식의 범위를 확산하고자 위함이다.

 

이렇듯 인간이 생산한 이념의 방정식의 해법이 이 안에 모두 녹아 있다면 무리겠으나 설령 그렇지 못하더라도 지혜의 갈증을 해소시켜 줄 좋은 길라잡이가 될 것 같다. 아울러 이 책을 통해 생경한 날것 그대로의 지식의 자양분을 오롯이 흡수한다면 앎이 가져 다 주는 포만감에 절로 배부르지 않을까?

 


신에 대한 두려움은 지혜의 시작이 아니다. 신에 대한 두려움은 지혜의 죽음이다. 회의론에 사로잡히고 의심이 들면 연구와 조사를 하게 된다. 그리고 이 조사야말로 지혜의 시작이다.

(p.330, 클래런스 대로의 <왜 나는 불가지론자가 되었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중지능혁명 - 내 아이의 성공적인 미래 설계
홍성훈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누구나 IQ지수에 대한 사연 하나 즈음은 가지고 있지 싶다. 넌 평균에도 못 미친다느니, 원숭이와 사촌해도 되겠다느니 하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말이다. 한낱 지능측정결과물에 불과한 지능수치의 높낮이에 일희일비했던 웃지 못 할 해프닝의 결과다. 마치 한 인간의 능력을 결정하는 절대적인 재능처럼 인식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현재는 어떤가? IQ(논리지능), EQ(감성지능), MQ(도덕지능), 각종 지능이 넘쳐 난다. 이쯤 되면 지능지수에 의해 운명이 결정된다 해도 과언이 아닌 지수공화국이라 할 법도하다. 그만큼 인간의 능력을 측정하고 분석한다는 것이 하나의 잣대로 가늠하기에는 턱 없이 부족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현실이리라 본다.

 


이 책은 기존의 다양한 지능이론이 포섭하지 못하는 간극과 전체성을 다중지능을 통해 엮었다. 다중지능의 프리즘을 통해 생산해 낸 결과물은 8가지의 현란한 스펙트럼으로 재배치하였으며 인간의 생애전반을 통해 들여 다 보았다. 다중지능이론은 단순한 지적능력이 아닌 여러 가지 다양한 지능으로 구성된다. 상호협력하고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인간의 사고체계를 아우르는 지능의 총체다. 그래서 이 이론의 창시자인 하워드 가드너는 어느 누구보다 다중지능이론이 가진 무한한 패러다임에 주목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책의 저자 홍성훈 교수 또한 같은 이유다.

 


인간의 이성적 능력과 사고는 인지체계의 상호협력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구체적이고 특정한 행위로 이전하는 과정에 하나의 인지체계만 순수하게 작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컨대, 유창한 말재주와 탁월한 글 솜씨로 세상을 이해하는 능력인 언어지능과 대인관계를 잘 이끌어가는 친화능력인 인간친화지능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융합하여 창조된 결과치다. 이렇게 상호협업관계를 유지하며 보완, 발전해 나가는 것이 다중지능이론의 핵심이자 얼개다.

 


다중지능이론은 크게 8개로 나누어진다. 언어지능, 음악지능, 논리수학지능, 공간지능, 신체운동지능, 인간친화지능, 자기성찰지능, 자연친화 지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다중지능의 8가지 기본 지능은 누구나 가지고 있으며, 지능은 모두 동일한 중요도를 가진다. 또한 8개의 지능은 독립적으로 움직이고 함께 작용한다. 아울러 개인마다 독특한 프로파일을 나타낸다. 이처럼 다중지능은 경험과 환경의 지배를 받으며 지능 간 상호보완으로 자신에게 맞는 적합한 훈련체계가 가능하다. 이른바 강점지능과 약점지능으로 나뉘는 다양성의 출현이다. 이외에도 실존지능이라는 미완성의 영역도 있다.

 


다중지능은 뛰어난 재능으로 탁월한 성과를 내는 소수의 영재나 천재만을 위한 이론이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윤택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또 다른 힘도 갖고 있다.(P.39)


8개의 다중지능은 모두 독립적인 별개의 능력이지만, 한 개인의 삶에서는 몇 개의 지능끼리 한데 어울려 작동한다.(P.90)

 





이 책은 다중지능의 현상과 이해를 직시하고 어떻게 아이의 지능을 개발하고 키워줄 것인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더 나아가 아이의 강점지능 통해 적성을 찾고 직업까지 연결하는 교육의 연속적 흐름이 돋보인다. 이러한 지능의 발굴의 지대한 역할은 의미 있 타인으로의 부모의 몫이다.

 


예컨대, 김연아의 뛰어난 신체운동능력이 저절로 나오지는 않았을 터 이 또한 부모의 역할이 지대했다. 베타맘(서포트형)에 머물기보다 알파맘(매니저형)의 상황 주도적 개입이 적절하였다는 말이다. 따지고 보면 아이의 능력이 제대로 영글고 알차지려면 부모의 역할을 빼놓을 순 없다. 하지만 조바심은 금물이다. 결과에 집착하여 과정의 애착을 가리는 우를 범하지 말기를 통렬하게 지적한 저자의 의미심장한 일침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지능의 탐색방법은 생활 장면을 통한 자연적인 탐색, 다중지능 박물관을 활용한 탐색, 검사 지를 통한 전형적인 방법을 꼽는다. 어느 것이든 상황에 맞게 사용하면 되겠지만 무엇보다 아이의 기본적인 자질과 특성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겠다. 베타맘이든 알파맘이든 상황에 따라 시의 적절하게 대처하는 현명한 지혜가 필요함은 당연한 이치다.

 



지능계발 과정에서 부모가 유의할 사항


1. 강점지능 뿐만 아니라 약점 지능에도 관심을 가려라.

2. 지능 계발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해 유의하라.

3. 자녀에게 특정 지능 분야를 강요하거나 유도하지 마라.

4. 여러 지능을 동시에 길러라.

5. 강점 지능을 활용하여 약점 지능을 길러라.

6. 계발의 최적 시기는 지능마다, 아이마다 다르니 여유와 인내심을 가져라.

 


다중지능이론에 맞추어 아이의 적성을 면밀하게 파악하는 것은 아이가 가진 자연성(自然性)의 토양의 상태에 따라 방법을 달리 하는 파종의 시기에 준한다. 그래서 저자는 재능을 발견하고 개량하는 작업이 중요함을 시종일관 역설한다. 이렇게 다듬어진 재능은 인성과 윤리의식과 결합할 때 제대로 된 합일체가 된다.

 


이렇듯 저자는 다중지능이론을 통해 자신의 아이들을 믿음을 통한 자율을 심어 스스로 독립한 인격체로 성장시켰다. 제도권의 교육을 거부하고 호기심이 꼬리를 무는 창의성이 넘치는 아이로, 게다가 약학의 전공에 희곡작품까지 써 내려가 신춘문예에 당선하였다는 것은 믿기 힘든 재능의 발현이다. 만약 저자의 렛잇비 철학(순리대로 맡겨라)이 없었다면 재능은 함몰되고 틀 속에 갇힌 맹아는 사라지고 말았으리라. 그래서 아는 만큼 거둔다는 저자의 말처럼 노력하고 배워야 하는 세상이기에 부모라면 (다중지능을) 제대로 알고 실천해야 되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