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게임 1 ㅣ 잊힌 책들의 묘지 4부작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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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권의 책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의 파괴력은 그 어떤 이미지보다 더 강하다. 한 줄 한 줄 엮인 글자의 움직임은 무에서 유로 나아가는 경이적인 방법이다. 하여 천재작가가 쓴 이 책의 감흥은 수초처럼 온몸을 감싸는 치명적인 유혹과도 같다. 버둥거릴수록 빨려 들어가는 보이지 않는 공포의 위력이다. 손발이 오그라든다는 표현은 이럴 때 써야 할 것 같다. 아니 어쩌면 극한의 공포심을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을 때 써야 한다. 무서움이 자극하는 인간을 향한 원형의 감정을 통해 그 상태 그대로 숨이 멈출 것 같은 두려움과 홀로 조우해야 하기 때문이다. 

평소 공포물을 달가워하지 않는 이유도 물론 있겠지만 이 책이 던진 시선의 모든 것이 인간내면 심연에 깃든 어둠을 향한다. 하드 보일드한 문체에 숨은 플롯의 빼어난 전개의 간결함을 통해 감정전이의 격랑을 온몸으로 받아 내야한다는 것도 큰 이유 중 하나겠다. 놀라운 것은 끔찍하고 호러적인 요소가 극히 드물다는 점이다. 단지 행간 사이사이에 숨어 알알이 박힌 감정의 연결고리를 작가의 순발력과 창의력으로 인해 가공할 만한 상태로 이끈다는 것이며 헤집어 버린다는 것이다.

<천사의 게임>은 기대하지 못한 반전의 패러독스와 거미줄처럼 얽힌 알고리즘의 치밀함에 저항 없이 굴복당하는 모종의 쾌감을 주는 책이다. 감춰두었던 두려움의 원형과 실체를 조심스럽게 수면위로 끌어 올려 해부하고 자세히 관찰해 그대로의 상태를 보여 주는 사실적 묘사에 근접해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데블스 에드버킷>에서 타락한 변호사로 등장한 어리석은 인간의 탐욕을 꿰뚫어 본 악마의 치명적인 유혹처럼, 이 책 또한 인간의 본성에 엉겨 붙은 악의 유혹처럼 타락천사 루시퍼의 욕망의 굴레에 사로잡힌다.

이 책의 배경이 되는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는 내홍으로 불타던 시절이었다. 과도기적 상황과 불안정한 정치구조는 당시의 시대상황이 저주받은 도시처럼 암울한 시기였음을 말해준다. 침통하고 냉소적인 당시상황을 감안한다면 잊힌 책으로부터 연결고리를 찾은 저자의 모티브는 시의적절함을 넘어 딱 들어맞는다. 감정을 억압당하고 권력을 향한 폭정은 닮은꼴처럼 엇비슷하다. 따라서 불가피하든 그렇지 않든 반영되는 작가의 경험적 소산은 이야기의 얼개를 만드는 틀과 같다.

글을 쓰는 작가의 로망이라면 글로부터 촉발하는 독자와의 짜릿한 교감의 순간을 갈구하지 않을까. 이야기를 만들고 글을 쓴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읽히기를 바란다. 창작의 고통을 오롯이 이겨내고 혼을 담은 글쓰기를 통해 타자를 사로잡는 공감의 무엇을 생산해 낸다면 오르가즘처럼 짜릿한 쾌락의 순간일지 모르겠다. 저자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은 책에 영혼이 담긴다는 철학으로부터 사유했다.  

다비드의 타자를 위한 삶은 목적과 방향을 혼동한다.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지 못하는 얄궂은 운명에 유린당하고 고통당하는 나약한 순간을 통해 천사인지 악마인지 모를 정체불명의 유혹은 너무도 인간적이다. 여기에 몽환적이고 암울한 분위기를 의도적으로 배열하며 연결하는 서사구조는 인간 내면 심연의 원초적인 모습을 날것 그대로 보여주기에 적합해 보인다. 책에 담긴 사유의 바다가 영혼을 지배하고 삶을 통제하는 판도라 상자가 된다는 발상이 전환이 신선하다.

이처럼 초자연적이고 종교적인 색채가 첨가된 작품들은 인간의 본질에 초점을 맞추어 탐구하는 공통점이 있다. <파우스트>의 괴테가 그랬듯 <천사와 악마>의 댄 브라운이 그랬던 것처럼 인간과 매우 근접한 거리감을 유지하며 유혹의 손길을 뻗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대천사가 하느님의 명을 거역하고 반란을 일으켜 지옥으로 떨어졌다는 루시퍼의 출현과 일맥상통한다. 루시퍼를 통해 인간이 접할 수 있는 모든 운명의 순간을 나선형 구조로 배열하고 그 속에서 번민하고 집착하는 인간의 욕망과 고뇌를 드려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비드를 둘러싼 크리스티나, 이사벨라로 묶인 애정관계 또한 이야기의 생동감을 불어 넣는 좋은 재료이자 기교적 장치다. 또한 우호적인 인물들을 배치하고 뜻밖의 인물의 등장과 출현을 통해 반전의 효과를 기대하는 구조는 흔히 볼 수 있는 구조다. 하지만 반전의 순간이 호락호락 예측가능하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마치 덫에 걸린 것처럼 막다른 골목에 몰린 외길을 가는 확신의 순간을 불측의 미로 속으로 밀어 버리는 것이 진정으로 예상을 뒤엎는 반전이지 않겠는가. 하여 섣부른 추리로 예단하다 작가의 필력에 농락당하지 마시기를.  

어스름한 밤 혼자 읽으면 괴괴함에 오싹해진다. 칠흑의 어둠 저편으로 누군가가 바라보며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릴 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힌다. 마치 저주받은 도시로부터 날아든 천사의 밀랍이 봉인된 편지로부터의 유혹이 시간을 마비시키는 팜므파탈의 매혹과도 같다. 이로써 우리는 다비드를 따라 투영되는 세계가 현실처럼 쏟아지고 시리도록 차가운 어둠의 공포가 대기를 얼게 만든다. 밤늦은 시각 이 책을 읽지 마시라. 검은 피처럼 퍼지는 무서움에 몸서리치는 공포가 엄습할 것이며 뜬눈으로 지새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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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을 쏴라 - 2009년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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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을 쏴라“는 일견 섬뜩한 말이다. 지극히 은유적 표현임에도 드러난 상태는 두렵기 그지없다. 자유롭지 못하다면 죽음보다 못하다는 감추어진 의미를 차치하고라도 직설적이고 자극적이기까지 하다. 읽는 내내 편하질 못하다. 야릇하게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이것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마음 한편 애써 누른 저릿한 동통이 동반해 온다. 낯익지 않은 정경으로부터 오는 혼동일까? 아니면 단단한 껍질에 갇힌 불편한 진실일까?


이 책은 제목에서부터 다양한 상념에 물들게 한다. 무엇을 그리고 어떤 것을 담았기에 이토록 절절할까하는 의구심부터 성큼성큼 내지르게 만든다. 두 남자, 이수명과 류승민의 기막힌 삶. 그들은 인간으로부터 절절히 미치고 붙들려 갇혀서 제대로 미쳐 버렸다. 양극단을 오고 가는 곡예단과 같은 삶에 피멍든 20대 끊어 넘치는 열정의 영혼이다. 그런데 그들은 존재감이 상실된 무형의 인간이자 잉여인간이다. 인간이 인간을 가둘 작위적인 명분에 의해 분류된 수리희망병원 인내반 아무개에 지나지 않았다.


저자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그들을 통해 자유를 향한 원초적인 오랜 물음에 답을 구하고자 하였다. 익숙지 않은 배경을 무대로 도두라진 상호대비감을 극대화하였으며 선명하게 부각시키는 효과를 기대하였다. 이야기는 씨줄과 날줄이 맞물려 돌아가 듯 치밀한 구성과 전개로 진하게 우려 낸 감동을 자아낸다. 한 번에 몰아치는 호흡이 아닌 여러 번에 나누어 걸친 호흡과 템포는 절정으로 향할수록 거침없이 달뜬다. 그들에게 자유의 본질을 구하는 순간부터 예견된 신념을 향한 여정은 잠시의 망설임도 없다. 아니 어쩌면 여유를 잃어 버렸는지 모른다. 이미 승민과 수명의 만남 그 순간부터 운명처럼 드리워진 삶의 무게였는지 모른다.


더욱 아이러니컬한 것은 그들이 선 곳은 정신병원이다. 그들을 둘러 싼 군상들 또한 정상적이지 못하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이 나눈 편견에 불과했다. 오히려 위선도 가식도 없는 순수함에 더 가까운지 모른다. 단지 마음이 아플 뿐이지 다른 것은 어떤 것도 없다. 우리는 살기 위해 자유를 조금씩 양보하고 내어 준다. 그 속에서 정체성의 현기증에 타협하고 순응하며 언제 있을지 모를 미래의 그날을 갈구하며 그렇게 영혼을 갉아 먹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들은 이른바 정신병자다. 심각한 공황장애와 적응장애로 진단된 부적응자다. 그들은 정상의 삶을 살지 않았음에도 너무도 정상에 가깝다. 타자로부터 빼앗긴 자유의 항거는 인간이 가진 최소한의 행복추구를 위한 몸부림이며 처절함이다. 수명과 승민을 이렇게 만든 현실은 진정한 애정과 교감이 결핍된 소통과 공존의 부재에서부터다. 이해와 신뢰가 절실하였음에도 그들에게는 사치이며 벼랑 끝으로 밀려 나기에 급했다.


극단의 우울증을 앓던 어머니를 유기하여 죽음으로 던진 책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수명의 삶에 사생아로 태어나 이복형제들과의 유산다툼에 휘말린 승민의 기구한 운명은 자신을 지배하던 통제된 삶의 전형이다. 사실 정신병원은 눅진하고 괴기스러운 인상을 강하게 풍긴다. 제 아무리 좋게 봐 주려해도 꺼림칙한 것이 사실이다. 그 속에서 일어나는 일상이 단조롭지 못하다는 것은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는다.





인간이 만든 전체를 가르는 구분에 우리는 편견의 벽을 쌓고 사는지 모른다. 그들에게 단순히 장애는 정신질환이다. 몸이 아파 병원에서 치료를 받듯 정신이 병들고 힘든 상태다. 하지만 엄청난 충격에 의해 입은 내상은 겉으로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묻히기 쉬우며 다름을 식별할 수 없다. 편견이 생산한 착각이자 오만이다. 오만은 구속을 합리화하고 폭력에 무뎌지게 한다.


우리는 그들을 통해 그들도 인간임을 뒤늦은 깨우침을 얻는다. 정신지체를 가진 한이와 지은이를 통해 인간의 기본권마저 철저히 유린당한 영혼에 분개하고 생니를 송두리째 뽑아 내 버리는 것으로 울분을 토로하는 한이의 절규에 인간을 혐오하게 한다. 누군가에게 군림한다는 것은 영혼마저 앗아 오는 것으로 인간을 오염시키는 오랜 망령이다. 이처럼 수리정신병원에 수감된 영혼들은 구구절절한 사연을 하나쯤은 간직한 힘없는 영혼들이다.


저자의 경험칙에서 불러 온 그들을 통해 차별을 목도하고 수명과 승민을 통해 자유를 보았다. 청춘에게 받치는 거창한 헌사가 아니라도 당당히 나설 명분을 얻는다. 인간의 내밀한 본성을 치밀하게 소환해 낸 저자의 필력이 대단하다. 비열, 외면, 위선, 두려움의 원형은 껍질에 불과하며 세상과 맞서기 위한 수단에 불과함을 이토록 멋지게 담아 낸 그녀의 역량에 차재의 행보가 기대된다.


말랑말랑 굳어 버린 그것은 바로 자유를 향한 치열한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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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원리 - 스마트버전
차동엽 지음, 김복태 그림 / 동이(위즈앤비즈)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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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자기계발은 마음으로부터의 시작이다. 내가 변화되지 않고는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이 없다. 제 아무리 위대한 꿈과 비전도 사소한 하나의 행동에서부터 출발이다. 나 스스로 긍정을 품고 변화를 주도한다면 성공의 티켓을 움켜쥐게 된다. 이러한 변화의 모토가 원리를 만들고 삶을 자극하는 동기는 될지언정 의식과 습관을 바꾸지 않고는 사상누각(沙上閣)이나 다름없다. 이처럼 의식의 변화는 근본적인 개혁이다. 하지만 변화의 시작이 쉽지만은 않은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도움을 받고 그 속에서 길을 찾을 수밖에 없다.

이 책 <무지개 원리>는 입소문을 타고 독자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시중의 자기계발서와 유사한 모습을 보이는 현실임을 감안할 때 대단한 성과다. 아마도 차동엽 신부의 진실한 믿음과 그만의 철학이 오롯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우리식 정서에 맞아 떨어졌다는 것도 이 책을 성공으로 이끈 견인차다. 이처럼 대중의 반향을 일으키고 변화의 물꼬를 튼 이 책의 핵심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무지개 원리로 대변되는 7가지 원리로만 설명하기는 더욱 어렵다.

사실 이 책과 대등한 위치에서 인기를 이어가는 론다 번의 <시크릿>이나 박지성 작가의 <꿈꾸는 다락방>처럼 그 얼개나 형태는 얼추 비슷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믿음으로부터의 자기변화가 세상을 바꾸고 꿈을 이루게 되며 성공을 성취하게 된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러한 본질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는 공통분모에 있다. 하지만 이 책이 그들과 다른 커다란 차이점은 우리의 의식과 태도를 지배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실제 성공의 주된 요인 중 하나인 긍정의 힘은 이제 식상한 키워드인지 모른다. 부정적 사고를 극복하고 역경을 뛰어 넘는 행동의 힘이 바로 긍정이다. 이러한 긍정의 힘에 대한 중요성은 보편타당한 원칙이다. 그래서 어쩌면 너무도 당연하기에 변하지 않는 초석이 된다. 사고의 경직은 성공의 기회를 포착하지 못하고 도전정신을 꺾어 버리는 암초와 같다. 그러므로 변화의 시발점은 긍정으로부터다.(무지개 원리 1.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지혜는 험난한 인생을 항해하는 도구인 등불과 같다. 난관을 돌파하고 단점을 장점으로 체질개선을 하는 원동력이 된다. 하지만 지혜는 교만과 자만을 경계해야 한다. 외우고 익혀 지식으로 단순히 쌓는 것과 지혜로 만드는 것은 천양지차다. 무엇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는 더불어 사는 상호공존의 지혜의 기준이기 때문이다.(무지개 원리 2. 지혜의 씨앗을 뿌려라.)

이렇게 형성된 좌뇌의 숨은 지성계발을 통해 발견한 진리를 토대로 저자는 우뇌의 감각적이고 직관적인 영역을 개발하기를 주문한다. 바로 목적을 실현하는 꿈을 품으라는 원리로 직결된다 하겠다. 꿈은 비전이며 미래의 의지이다. 우리가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원천이 바로 미래의 꿈이다. 꿈은 지속적이며 생생하게 시각화를 통해서 가능하다. 이러한 원리는 확대 재상산되며 가치를 이루는 근본이 된다. 끌어당기고 상응하고 소통하는 것의 의미 또한 신념의 확고한 의지표현이다.(무지개 원리 3. 꿈을 품으라.)

의지가 행동의 밑바탕이 되는 꿈을 세우는 것이라면 믿음은 결과를 돕는 행위다.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믿음은 신념을 재충전하고 자극하는 자양분이다. 저자는 확신을 위한 행동으로 3P를 통한 긍정적 사고를 요구한다. 즉, 긍정적(Positive)이고 현재형(Present)이며 개인적(Personal)이어야 한다.([p.134) 그러나, 타인을 위한 행위가 아닌 나를 위한 행위여야 한다. 충전된 기대감은 변화를 주도하는 新에너지 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다.(무지개 원리 4. 성취를 믿으라.)

이 책에서 소개된 <탈무드>의 명언 중 세상에서 ’가장 악한 것’과 ’가장 선한 것’으로 인간의 ’혀’를 꼽는다. 말은 행동을 지배하고 인격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부정의 언어보다 긍정의 언어를 선호해야만 하는 이유는 지극히 간명하다. 내뱉은 말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은 다름 아닌 자신이다. 우리은 이러한 부정적 영향을 간과하고 묵살하는 경향이 크다. 이미 발생한 결과에 대해 불평과 불만을 토로하고 과거에 집착하는 현실은 미래를 바꾸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안다는 것과 실천한다는 것의 차이는 실로 엄청나다.(무지개 원리 5. 말을 다스리라.)

생각이 말을 바꾸고 말이 행동을 바꾸고 행동이 습관을 바꾸고 습관이 인격이 된다고 하는 무지개 원리 전도사 차동엽 신부의 말은 가히 촌철살인이다. 생각을 바꾼다는 것은 어찌 보면 모든 것을 바꾸는 계기이자 시초인지 모른다. 인간이 습관을 들이기에는 대개 21일이 걸리고 습관으로 정착하는 데는 100일이 걸린다고 한다. 이처럼 생각의 파급효과는 어떻게 사느냐의 방식으로 집중됨을 의미한다.(무지개 원리 6. 습관을 길들이라.)

아울러 이 책은 인생의 가치가 어디에 있느냐는 근원적인 성찰을 요구한다. 인생의 목적을 발견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가치를 정립하고 목적을 분명하게 세울 것을 바라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보면 성공의 키워드가 확고한 믿음과 의지로부터 발현됨을 인식하게 된다. 이렇게 배양된 목적은 불굴의 의지와 실천으로 포기를 극복하는 시금석이기 때문이다.(무지개 원리 7.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

이렇듯 의식의 전환을 통해 길러 낸 무지개 원리는 나약한 체질을 개선하고 변화시킨다. 더 나아가 꿈을 성취하고 성공으로 충만하는 긍정의 물결이 넘치기를 바란다. 동시에 항상 감사하는 자세로 더불어 사는 참다운 삶의 지혜를 깨닫기를 바란다. 이러한 공존의 세상은 우리 모두의 원대한 희망이자 진정한 목적이다. 저자가 고안해 내고 제시한 무지개 원리는 이제 그의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를 위한 우리 모두가 지향해야 할 담대한 목표이자 행동지침이다. 분명한 것은 꿈을 이루는 모든 것의 첫걸음은 사소한 하나의 움직임에서 부터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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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3 - 상 - 바람치는 궁전의 여왕 ㅣ 밀레니엄 (아르테) 3
스티그 라르손 지음, 박현용 옮김 / 아르테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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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끝이다. 더 이상 밀레니엄의 놀라움을 기대할 수 없다. 밀레니엄은 마치 빠지면 헤어날 수 없는 늪과 같다. 방대한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촘촘하게 짜여 진 그물망에 걸리면 헤어 나올 길이 없기 때문이다.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치밀한 이야기 전개와 스펙터클한 서사구조에 필설로 형용하기 힘들 정도다. 장르를 파괴하며 관성을 무시하는 저자의 필력에 온전히 몰입하는 것 외에는 달리 저항할 틈이 없다.

 

밀레니엄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감정과 이성, 논리의 결합체다. 이야기를 이루는 근간이 지극히 현실적이며 실체적 진실과의 괴리감이 없다. 그 속에서 세워 진 가설의 틀은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유기적으로 엮이게 조합하며 자연스럽게 완성도를 높인다. 이렇게 만들어진 흐름의 견고함은 두 주인공 리스베트 살란데르와 미카엘 블롬크비스트를 중심으로 연결된 상상의 세계를 이끄는 도화선이 된다.

 

밀레니엄 시리즈는 각 권마다 에피소다가 각기 따로 움직이지만 사건의 중심축은 전권을 가로지르는 실타래처럼 조밀하게 엉켜 있다. 에피소드의 개별성은 저자의 경험과 관심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가 르포르타주기자로 현실의 부조리와 사회문제를 전 방위적 감각으로 온몸으로 익혔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처럼 모티비의 파격적 채택은 현실로부터의 출발점을 만든다. 부정부패, 패륜범죄, 비윤리적 행위, 폭력, 성차별 등 우리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인 세계를 이 한권의 소설에 녹여냈다는 것은 감히 범접하기 힘든 천착의 결과다.

 

뿐만 아니라 1편에서부터 이어진 두 주인공의 정체성 구축과 분명한 알고리즘은 마치 페르마의 방정식을 풀어 가는 것처럼 모종의 쾌감이 뒤따른다. 미카엘을 이루는 신뢰, 용기, 결단과 리스베트의 의지, 천재성, 슈퍼키드, 대담함은 현실 속의 영웅을 만들어 내는 캐릭터의 절대점이다. 이렇게 다듬어진 캐릭터들의 절묘한 트릭, 상상 그 이상의 반전이 거듭되는 미스테리한 전개는 이 소설을 이루는 재미의 큰 축이다.

 

3편은 2편의 속편처럼 이어진다. 리스베트와 그의 생부 살라첸코, 이복형제 니더만의 처절한 전투 끝에 생사여부를 가르던 장면으로 끝을 맺었던 2부의 끝에서부터 이어진다. 여태껏 리스베트의 트라우마로만 인식되던 불우한 과거의 기억들이 형상화되어 대결구도를 걷게된다. 이처럼 이 소설을 이루는 또 하나의 중심축은 선악의 대결구조다. 하지만 자세히 드려다보면 절대선도 절대악도 존재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이 책의 기저에 깔린 대결구도는 저자의 상상력을 통해 만들어진 치열한 두뇌싸움으로 전개되는 양상을 보인다. 장면과 장면을 마치 35㎜ 실사필름으로 재현하듯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즉각적인 반응과 폭발적인 캐릭터의 세세한 심리묘사, 표정, 행위 등 전지적인 시점에서 가공한 그들을 통해 작가의 트릭의 세계로 쉽게 몰입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저자는 일정한 패턴을 유지하며 창조적인 접근과 방법을 시도한 수평적 시선처리가 탁월하다. 그래서 평범하지 않은 그들을 통해 우리는 대리만족의 희열을 오롯이 받는 기회를 거머쥐는지도 모른다.

 

1편에서 소개된 리스베트는 천재적인 기억력과 발군의 해커로 등장한다. 가상의 세계를 안방처럼 드나들며 상대방을 제압하는 모습은 보편적인 능력을 뛰어 넘는다. 게다가 외모는 삐삐 롱 스타킹처럼 마르고 왜소해서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설정도 의도된 장치다. 만약 리스베트가 <레지던트 이블>의 여전사 밀라 요보비치와 닮았다면 지금의 재미가 오히려 반감되지 않았을까? 긴장감을 높이는 상황을 의도적으로 극대화하여 상황을 이용한 것이리라. 반면 미카엘은 소시민적 영웅의 전철을 그대로 밟아 간다. 리스베트와의 관계를 통해서도 변하지 않는 열렬한 지지자로 의리와 신뢰를 생명처럼 수호하는 강직한 인물이다.

 

아무래도 3편의 클라이맥스는 변호사 아니카 자니니와 정신과 의사 페테르 펠리보니안과 펼치는 법정스릴러가 압권이다. 리스베트의 발목을 쥐어 잡던 거대권력의 음모를 통쾌하게 뒤집는 장면은 카타르시스를 온몸으로 느끼기에 더 할 나위 없다. 장르소설이 보여 줄 수 있는 최고봉이자 진수다. 하나 둘 어둠의 장막을 걷어 내는 그들의 실체를 보고 있노라면 결국 악이 선을 지배할 수 없다는 각인된 명제를 발견한다.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이 책은 잘만들어진 책이며 대단하다. 인과율의 관점에서도 심리학적인 관점에서도 그 완성도가 높기 때문이다. 배경의 단단한 주춧돌을 디딤돌 삼아 심리적 인과관계가 치밀한 연결고리로 맞물려 돌아가기에 허점을 발견하기 힘든 구조다. 다만 아쉬움으로 남는다면 10부작을 기획하고 전개된 시나리오가 숨겨든 복선의 암시가 더 이상 빛을 보지 못하는 애석함이다. 아마 이 책이 가진 유일한 단점이 바로 더 이상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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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서아 가비 - 사랑보다 지독하다
김탁환 지음 / 살림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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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서아 가비, 커피를 아우르다.




노서아 가비. 러시안 커피란다. 커피를 지독히 사랑하면서도 러시아산 커피는 생소하다. 대개 에티오피아, 콜롬비아, 동티모르 産 커피는 익어도 여태껏 본적도 들은 적도 없다. 제목에서부터 풍기는 궁금증의 유발은 커피처럼 짙고 그윽하기만 하다. 게다가 조선 최초의 바리스타이야기라.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다. 김탁환 작가의 상상력은 기발하다 못해 시쳇말로 죽인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세상과 엮어 뭉개는 이야기는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자신을 스스로 스토리 디자이너로 명명한 정체성과 글발의 화수분은 부럽기 그지없다. 무엇보다 시시콜콜하게 풀어 쓰지도 나열하지도 않고도 자유자재로 상황을 지배하는 필력은 압권이다. 그래서 예의 어색함도 없으며 자연스럽게 사건을 따라 움직이는 이야기의 행방에 어지러움도 없다. 그런데도 이야기의 정점은 첨예하게 얽히고 대립한다. 식상할 법한 이야기도 그의 손을 거치면 새롭게 보이게 하는 마이다스의 손처럼 희한한 능력을 가진 것일까 하는 착각마저 인다. 지나친 과찬인지는 모르겠으나 분명 흠모할 능력임에는 틀림없다.  



조선 최초의 바리스타, 따냐.




이야기는 구한말을 배경으로 거침없이 내달린다. 신문물이 홍수처럼 쏟아지던 그 시절, 새로운 세상과의 조우는 미처 알지 못했던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에 충분하다. 열강의 틈바구니에 끼어 자주성을 상실한 조선의 암울한 운명을 담보로 뽑아 낸 추출물은 커피가 품은 본래의 그것, 검은 색과 동색일지 모른다. 그래도 커피와 조선은 좀처럼 어울리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그것도 뻬쩨르부르크에서 날아 온 생경한 커피이기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저자는 단숨에 들이키듯 조금의 음미할 여유도 허락지 않고 커피로부터 걷어 올린 진한 향을 쏘아 올리기에 정열을 다한다. 자유를 갈구한 보헤미안처럼.

이 책의 두 주인공 따냐와 이안은 노마드적인 삶을 산다. 조선이 가진 보수적 이미지와는 파격적인 변신이다. 우선 조선 최초의 바리스타가 여자라는 것도 그렇고 신분의 벽을 파괴한 것에서부터의 출발도 그렇고 세계를 무대로 영혼을 내맡기는 스케일이 웅장함이 그렇다. 기존의 역사소설과는 그 궤를 견주려도 견줄 수가 없다. 실제와 상상이 혼합된 거침없는 배합은 새로운 농도로 재탄생하여 유혹적인 맛을 생산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방커피도, 카페라떼도, 에스프레소도 아닌 전혀 색다른 커피 맛이 난다. 바로 사랑으로 녹여진 자유를 닮은 강렬한 맛이리라.

역사를 뒤흔든 유쾌한 사기극

구한말 조선의 왕, 고종은 우유부단함이 그림자처럼 따라 붙는다. 외세의 억압에 굴복당하고 치욕의 대표적인 왕으로 그려지기 십상이다. 이런 고종을 중심으로 이 책의 주인공과 얽히고설킨다는 설정은 일종의 나약함을 씻는 정화로부터의 소망이다. 당시 열강이었던 러시아를 무대로 호쾌한 사기극이 통하고 대륙을 호령하는 그들을 통해 전달되는 생생함은 짜릿함마저 배어나게 한다. 어찌 봉이 김 선달을 모를 수 있겠는가? 세련되고 통 커진 19세기 판 신 김 선달이 바로 그들이다.

그래서 일까? 미장센이 화려했던 김지운 감독의 영화 <놈, 놈, 놈>의 그것과 닮았다. 시대적 배경도 엇비슷해서 상상의 밭이 그쪽으로 기우는 것도 한 몫 하겠다. 만주 벌판을 휘젓던 그들과 동토의 자작나무 숲을 무대를 가로지르던 주인공들과 오버랩 되는 것은 자연스러움이 주는 현상이 아닐까? 이 책이 독자들에게 빛을 보기도 전에 영화화 되었다는 것도 그런 방증이겠다. 여기에 돈에 얽힌 기상천외함이 감칠맛을 더하기도 하였으니 말이다. 또한 치밀한 고증과 수집을 통해 파헤친 역사의 흔적과 상식을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다는 것도 이 책이 가진 강점이다.

사랑, 자유에 담긴 커피의 매혹적인 유혹

작가 김탁환은 타냐를 통해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현란한 모습을 펼쳤다. 거짓과 진실 사이를 교묘하게 오고가는 질펀한 심리묘사를 통해 인간 본성의 이면을 내밀하게 보듬었다. 타냐는 신세대 여성이며 개화된 인물이다. 압제와 억압과는 거리가 먼 캐릭터로 어디에고 속박당하지 않는다. 그녀는 자유를 찾아 떠나는 저공비행을 끊임없이 재촉한 캐릭터다. 그러나 타냐가 욕망과 탐욕으로부터 오는 유혹에 철저하게 냉정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은 사랑이다.

사랑이 위대함을 다시 일러 무엇하랴마는 작가가 보여 준 속내는 페미니즘적인 요소가 다분히 포함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이러한 관점은 양비론적인 새로움이다. 타냐의 캐릭터가 계급, 신분, 지위를 뛰어 넘는 초월적 탄생도 시대가 낳았다는 설정보다 작가의 상상이 만든 산물에 가깝다. 희망이 되었든 소망이 되었든 수평적 시선처리를 통해 우리는 모종의 쾌감을 동시에 받기 때문이다. 마치 갓 볶은 커피의 그윽함에서 바리스타의 농염한 기교와 자연이 만든 매혹적인 그 순수한 매혹적인 맛처럼 말이다.

이래저래 이 책은 단숨에 마셔진다. 뜨거움을 느낄새도 없이 순식간에 벌어진다. 혼란한 압록강 국경지대가 펼쳐지다가도 러시아공사관으로, 뻬쩨르부르크로, 뉴욕으로 막힘없이 날아오른다. 살아 내기를 위선으로부터 경계하는 사기꾼의 삶일지라도 타냐와 이안의 숨 막히는 사랑은 정열적이다. 아울러 고종의 보일 듯 말 듯 내비친 타냐와의 연정이 은밀한 삼각관계의 줄타기를 보는 즐거움도 있다. 이처럼 노서아 가비는 시대를 잊게 만드는 어울리지 않는 세계를 제법 어울리게 만든 잘 만든 이야기다. 어느새 끝나 버린 이야기에 언제 있을지 모를 시즌2라도 기대하게 만드는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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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11 21: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12 09:0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