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밀레니엄 3 - 상 - 바람치는 궁전의 여왕 ㅣ 밀레니엄 (아르테) 3
스티그 라르손 지음, 박현용 옮김 / 아르테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제 끝이다. 더 이상 밀레니엄의 놀라움을 기대할 수 없다. 밀레니엄은 마치 빠지면 헤어날 수 없는 늪과 같다. 방대한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촘촘하게 짜여 진 그물망에 걸리면 헤어 나올 길이 없기 때문이다.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치밀한 이야기 전개와 스펙터클한 서사구조에 필설로 형용하기 힘들 정도다. 장르를 파괴하며 관성을 무시하는 저자의 필력에 온전히 몰입하는 것 외에는 달리 저항할 틈이 없다.
밀레니엄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감정과 이성, 논리의 결합체다. 이야기를 이루는 근간이 지극히 현실적이며 실체적 진실과의 괴리감이 없다. 그 속에서 세워 진 가설의 틀은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유기적으로 엮이게 조합하며 자연스럽게 완성도를 높인다. 이렇게 만들어진 흐름의 견고함은 두 주인공 리스베트 살란데르와 미카엘 블롬크비스트를 중심으로 연결된 상상의 세계를 이끄는 도화선이 된다.
밀레니엄 시리즈는 각 권마다 에피소다가 각기 따로 움직이지만 사건의 중심축은 전권을 가로지르는 실타래처럼 조밀하게 엉켜 있다. 에피소드의 개별성은 저자의 경험과 관심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가 르포르타주기자로 현실의 부조리와 사회문제를 전 방위적 감각으로 온몸으로 익혔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처럼 모티비의 파격적 채택은 현실로부터의 출발점을 만든다. 부정부패, 패륜범죄, 비윤리적 행위, 폭력, 성차별 등 우리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인 세계를 이 한권의 소설에 녹여냈다는 것은 감히 범접하기 힘든 천착의 결과다.
뿐만 아니라 1편에서부터 이어진 두 주인공의 정체성 구축과 분명한 알고리즘은 마치 페르마의 방정식을 풀어 가는 것처럼 모종의 쾌감이 뒤따른다. 미카엘을 이루는 신뢰, 용기, 결단과 리스베트의 의지, 천재성, 슈퍼키드, 대담함은 현실 속의 영웅을 만들어 내는 캐릭터의 절대점이다. 이렇게 다듬어진 캐릭터들의 절묘한 트릭, 상상 그 이상의 반전이 거듭되는 미스테리한 전개는 이 소설을 이루는 재미의 큰 축이다.
3편은 2편의 속편처럼 이어진다. 리스베트와 그의 생부 살라첸코, 이복형제 니더만의 처절한 전투 끝에 생사여부를 가르던 장면으로 끝을 맺었던 2부의 끝에서부터 이어진다. 여태껏 리스베트의 트라우마로만 인식되던 불우한 과거의 기억들이 형상화되어 대결구도를 걷게된다. 이처럼 이 소설을 이루는 또 하나의 중심축은 선악의 대결구조다. 하지만 자세히 드려다보면 절대선도 절대악도 존재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이 책의 기저에 깔린 대결구도는 저자의 상상력을 통해 만들어진 치열한 두뇌싸움으로 전개되는 양상을 보인다. 장면과 장면을 마치 35㎜ 실사필름으로 재현하듯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즉각적인 반응과 폭발적인 캐릭터의 세세한 심리묘사, 표정, 행위 등 전지적인 시점에서 가공한 그들을 통해 작가의 트릭의 세계로 쉽게 몰입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저자는 일정한 패턴을 유지하며 창조적인 접근과 방법을 시도한 수평적 시선처리가 탁월하다. 그래서 평범하지 않은 그들을 통해 우리는 대리만족의 희열을 오롯이 받는 기회를 거머쥐는지도 모른다.
1편에서 소개된 리스베트는 천재적인 기억력과 발군의 해커로 등장한다. 가상의 세계를 안방처럼 드나들며 상대방을 제압하는 모습은 보편적인 능력을 뛰어 넘는다. 게다가 외모는 삐삐 롱 스타킹처럼 마르고 왜소해서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설정도 의도된 장치다. 만약 리스베트가 <레지던트 이블>의 여전사 밀라 요보비치와 닮았다면 지금의 재미가 오히려 반감되지 않았을까? 긴장감을 높이는 상황을 의도적으로 극대화하여 상황을 이용한 것이리라. 반면 미카엘은 소시민적 영웅의 전철을 그대로 밟아 간다. 리스베트와의 관계를 통해서도 변하지 않는 열렬한 지지자로 의리와 신뢰를 생명처럼 수호하는 강직한 인물이다.
아무래도 3편의 클라이맥스는 변호사 아니카 자니니와 정신과 의사 페테르 펠리보니안과 펼치는 법정스릴러가 압권이다. 리스베트의 발목을 쥐어 잡던 거대권력의 음모를 통쾌하게 뒤집는 장면은 카타르시스를 온몸으로 느끼기에 더 할 나위 없다. 장르소설이 보여 줄 수 있는 최고봉이자 진수다. 하나 둘 어둠의 장막을 걷어 내는 그들의 실체를 보고 있노라면 결국 악이 선을 지배할 수 없다는 각인된 명제를 발견한다.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이 책은 잘만들어진 책이며 대단하다. 인과율의 관점에서도 심리학적인 관점에서도 그 완성도가 높기 때문이다. 배경의 단단한 주춧돌을 디딤돌 삼아 심리적 인과관계가 치밀한 연결고리로 맞물려 돌아가기에 허점을 발견하기 힘든 구조다. 다만 아쉬움으로 남는다면 10부작을 기획하고 전개된 시나리오가 숨겨든 복선의 암시가 더 이상 빛을 보지 못하는 애석함이다. 아마 이 책이 가진 유일한 단점이 바로 더 이상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