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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과 올로지 - 세상에 대한 인간의 모든 생각
아서 골드워그 지음, 이경아 옮김, 남경태 감수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매일 매일 갓 구운 신문의 내용을 드려다 보면 ‘이데올로기’와 ‘이념’이 판을 친다. 이유는 간단하다.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한다는 것이다. 어제의 이론이나 의견이 오늘은 옛것이 되고 또 다른 것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굳이 하나를 더 들자면 이해득실관계로 얽힌 목적 집단의 다량출현에도 있다. 이처럼 생소한 저들을 대하고 있노라면 막연한 불안감마저 치민다. 내가 언제 그들을 보기라도 했던가? 아님 들어 보기라도 했던가? 지식홍수시대에 사는 한 사람으로서 마뜩찮은 현실이다.
그래서 나 같은 무지몽매한 인간을 구제하기 위해서, 앞서와 같은 고민을 몽땅 그리 종식시키기 위해서 등장한 책이 바로 <이즘과 올로지>이다. 그 발상이 고맙고 번뜩이는 재치가 더 없이 빛나 보인다. 대략 눈짐작으로 그런 뜻이겠거니 하고 구렁이 담 넘듯 두루 뭉실 넘어 가던 허접한 지식 주머니에 한 가득 채운 심정이다. 게다가 개념 정리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어 더욱 반갑다. 당최 야후가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인간을 빗댄 인종이란 사실을 알기나 했을까?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가 발견했다는 ‘카오스 이론’처럼 복잡다단하기 그지없다.
이런 類류의 백과사전식 책들은 손 잡히는 가까이에 두고 읽는 것이 제격이다. 단숨에 읽어 내린다고 게살 뽑아 먹듯 쏙쏙 넘어 오는 짭조름한 맛이 아니기 때문이다. 필요할 때 하나씩 꺼내 읽으면 긴요하게 여러모로 쓰임새가 클 것 같다. 하지만 딱딱하게 느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모양이다. 지식 전달자로서의 용도가 우선이니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래도 읽다보면 제법 구미가 쏠쏠 당기는 것이 동종의 것들과는 다른 새로운 호기심이 그득하다.
인간이 만든 사회는 일정한 틀이나 법칙으로 움직이게 마련이다. 그러다보니 사상이나 이념으로 묶인 틀은 상호연관성으로 얽히게 된다. 그 다양한 이념의 줄기들은 인간을 둘러싼 모든 것들에 흡수되어 새롭게 변태하고 파생되었다고도 볼 수 있겠다. 이 책에서 정치, 역사, 철학, 예술, 과학, 경제, 종교, 성도착 등의 카테고리로 나열한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사실 인간이 만든 어떤 사상이나 이념을 자세히 드려다 보면 그 기저에는 일정한 틀이 있음을 발견한다. 성취하고자 하는 목적이 그 이념 속에 다량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저항과 지배의 대립이자 사회적 소통이며 역사의 순환이다.
이 책에서 선보인 이즘과 올로지의 근간은 생소한 줄기다. 전적으로 미국식 자유주의에 의해 저술된 탓도 크다 하겠으나, 저자가 파헤친 직관의 우듬지 또한 대단하다. 종횡으로 넘나드는 지식의 방대함이 산을 이룬다. 비록 미국식 사상과 색깔에 맞춘 렌즈로 인화된 가치관의 집대성이 진하게 담겨 배어 있긴 해도 가볍게 넘기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백과사전이 주는 태생적 한계도 있거니와 시각적 편협함과 치우침을 차치하더라도 이 책이 가져 다 주는 가치는 사상의 주류적 흐름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시대를 대변하는 가치관이나 이데올로기를 바로보고 이해하는 것은 불변의 진리다. 지식전달의 이면을 뛰어 넘어 인간의 모든 생각을 관통하는 그것은 지혜의 산물이다. 초끈이론에서 드러난 불일치의 패턴처럼 사회구조, 인간 심리, 철학, 사상이 하나의 고리로 연결되어 이어진 관계의 나선형을 이룬다는 것이다. 저자가 짚어 내다 본 통찰의 핵심이 바로 이것이다. 이즘이 만든 허깨비의 딜레마에서 빠져 나와 사상적 자유를 회복하고 인식의 범위를 확산하고자 위함이다.
이렇듯 인간이 생산한 이념의 방정식의 해법이 이 안에 모두 녹아 있다면 무리겠으나 설령 그렇지 못하더라도 지혜의 갈증을 해소시켜 줄 좋은 길라잡이가 될 것 같다. 아울러 이 책을 통해 생경한 날것 그대로의 지식의 자양분을 오롯이 흡수한다면 앎이 가져 다 주는 포만감에 절로 배부르지 않을까?
신에 대한 두려움은 지혜의 시작이 아니다. 신에 대한 두려움은 지혜의 죽음이다. 회의론에 사로잡히고 의심이 들면 연구와 조사를 하게 된다. 그리고 이 조사야말로 지혜의 시작이다.
(p.330, 클래런스 대로의 <왜 나는 불가지론자가 되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