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이레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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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 자신이 책 읽어 주는 미하엘이라면 어떤 선택으로 운명의 여신에게 몸을 내맡겼을까? 미하엘이 두려워하고 회피하려 했던 그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제도적 관습에서 일탈한 사랑 그것도 아니면 제국주의 그늘에 얼룩진 연정의 어두운 과거의 망령. 미하엘을 통해 바라 본 세상은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는 연약한 모습 그대로이다. 진정으로 안나의 행위에 대해 낙인을 찍고 분연히 책임을 전가할 수 있을까? 그녀 또한 복종할 수밖에 없는 명령에 의해 자유의지를 상실하였다면 말이다.


이 책 <더 리더; 책 읽어 주는 남자>는 1950년대를 배경으로 파격적인 사랑과 대중의 자기 기만적인 심리를 섬세하고도 담백하게 터치한 풍경화 같은 글이다. 저자 베른하르트 슐링크는 독일의 유명한 <양철북>의 작가 권터 글라스 이후 주목받는 인물로 전후세대간 갈등을 사실감 있게 묘사하여 독자들의 찬사를 한 몸에 받았다.


자분자분 미하엘을 따라 가는 이야기구조는 적절한 완급조절과 숨고르기가 매력적인 책이다. 더불어 파격적인 성애의 표현은 은밀히 감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호기심 저편 너머로 들여다 본 미하엘의 낯선 경험은 설익은 남자아이의 성적 쾌락의 충족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그들의 사랑에 담긴 감미로운 숨겨진 맛이 흥미롭게 한다.


이 책은 숨 막히는 대결구조나 절정의 극한 대립상황이 없음에도 한동안 먹먹한 상태가 지속되게 한다. 잘 된 책은 어색함이 없다. 저자의 감정의 끝선과 교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감정이입을 통해 상황적 모순이 자의식을 구속하고 동조하게 하는 행위의 책임은 고찰하게 만드는 힘이 드러난다.


미하엘이 안나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 나이를 뛰어넘는 연정을 통한 번민과 집착의 과정은 통념의 상식을 지우게 하기에 제격이다. 그들의 어색한 교감이 실사 그대로 재현되는 상황에 다양한 상념이 교차점은 애간장 졸이게 만들게 한다. 책을 통해 매개된 그들의 행위는 속세의 부정과는 유리된 진실로 긴밀한 연정 상태를 형성하고 심리적 불안감을 해소하는 장치로 사용된다.


아슬아슬 위험한 외줄타기 같은 행위는 책을 통해 연결되고 그들을 감싸고도는 건조하기 짝이 없는 대기는 그대로 전달되어 온다. 서서히 빠져 드는 책을 읽고 듣는 밀착된 관계는 서로에게 도피와 안정을 주고 부정한 심리상태가 인정으로 바뀌는 관찰을 공유한다. 뒤이어 찾아든 안나의 부재와 실종이 미하엘의 삶의 방향을 틀어 버리게 하고 공허감에 깃든 주변인으로 맴돌게 하지만 결국 운명의 장난은 풀리지 않은 관계를 매듭짓는 것으로 전개된다.


갑작스런 안나의 실종은 미하엘의 대학 재학 시절 법정에서 조우하게 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수용소 간수로 근무하며 학살의 한 가운데 있었던 엄청난 비밀이 드러나면서 일순간 과거와 현실을 오가는 긴장관계가 조성된다. 미하엘은 15세 소년을 통해 보았던 36세의 여인의 모습과 현실에서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상황에 현기증이 인다.


단죄를 받기 위해 결연한 모습으로 의연히 대처하는 안나와 그녀를 주동자로 몰고 가는 동조세력간의 군중심리묘사는 이 책의 압권이자 백미이다. 미카엘이 안나를 올가미에서 풀어 주는 실마리를 쥔 키 메이커임에도 나아갈지를 망설이는 대목은 자아 고찰에 대한 철학적인 물음을 던지게 한다. 작위와 부작위의 끊임없는 갈등은 두려움이 유발한 자기 도피이다. 행위를 실행에 옮김으로서 감내하여야 할 현실적 중압감은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게 만든다. 안나를 주홍글씨로 몰아간 군중심리의 메커니즘 역시 통합하지 못하는 세대 간 갈등의 양상을 띤다 하겠다.


이처럼 이야기 속에 드러난 표면과 달리 은밀한 관계로부터 형성된 자기관찰 상황은 일정한 궤적을 통과해 전체를 파고드는 지배적 상태로 표출된다. 안나가 군중심리에 의해 희생당하게 된 것 또한 증오와 위선의 집단적 행동이자 무의식적 자기 합리화의 표현이다. 유발한 책임의 떠넘기기 상황으로 치닫는 구조는 통합하지 못한 시대적 아픔을 반영한다. 이야기를 관통한 심리적 추적과 관찰은 자기성찰에서 오는 내면적 결핍상태의 아쉬움을 진하게 남긴다.


인간이 만든 제도와 규범의 틀은 자유와 책임을 양분한다. 명령에 의해 자유의지를 상실 유린당한 상태에서 원칙에 입각한 주어진 임무를 수행한 피동적 행위의 책임을 위법의 논리로 단죄하는 것이 쉽지 않을 일이다. 야만적이고 파괴적 상황이 위험한 상태의 행위임은 분명하나 유기한 책임을 전적으로 기계에 불과하였던 구성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상황에서 누구든 개운치 않게 한다.


악마의 달콤한 유혹처럼 나치즘을 촉발하고 망령과 광기로 물들었던 세대의 책임과 안주하고 회피하며 부인한 부작위로 일관한 자들의 책임을 지켜보는 이후 세대의 시각은 동일 선상에 열과 대오를 맞춘 집단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음을 인식한다. 미카엘의 안나에 대한 의도적 방관과 유기상황은 집단과 개인의 차이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다를 것 하나 없어 보인다.


전쟁의 광기는 보이지 않던 진실한 인간의 이면을 그대로 투영한다. 상황에 따라 사물을 판단하는 행위의 가치가 변화하는 상황과 불합리한 심리적 태도는 사회를 통합하는 장애요인이 된다. 우리에게 이처럼 기만적인 상황을 대처하는 규범과 장치가 없다면 무엇으로 타자를 판단할 명확한 근거를 제시할 수 있을까? 자칫 군중심리에 이끌려 행위책임에만 국한시킨다면 실체적 진실을 판단치 못할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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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의 기술 - 심리학자 가브리엘 뤼뱅의 미움과 용서의 올바른 사용법
가브리엘 뤼뱅 지음, 권지현 옮김 / 알마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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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든 분노든 나와 무관한 사람과 연관을 맺기는 참으로 힘들다. 증오의 대상이 한정적이고 지엽적인 것은 관계의 한정에서 오는 것일 게다. 그러니 증오가 애증이 얽힌 형태이다 보니 드러나는 것 외에도 내상을 입는 경우가 태반이다. 하지만 가슴 깊이 침전되어 가라 앉아 있기 때문에 잊고 지내며 용서했다고 생각하는 착각으로 산다.




이 책 <증오의 기술>은 프랑스의 심리학자 가브리엘 뤼벵이 임상실험을 통해 상담한 사례들을 모아 증오의 개념을 고찰하였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던 증오의 막연함을 대상의 구체화를 통해 증오의 상대와의 관계로부터 피해자가 달라 질수 있음을 역설하였다.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외면 받거나 크게 실망한 경우, 용서의 과정을 거치기 전 우리는 증오나 분노의 감정을 거치게 된다. 감정조절과 자기 통제가 실패를 거듭하다 보면 결국 증오의 피해자는 나 자신이 되었던 기억을 안다. 이렇게 증오의 상대방이 인지를 하던 하지 않던 관계에서 발생한 증오의 침전물은 우리를 병들게 하는 무서운 외상을 남긴다.




저자는 증오의 피해자를 감정의 상호작용의 관점에서 분류하였다. 첫 번째 유형은 정상적인 상황에서라면 사랑을 주었을 사람이 고통을 준 경우는 가해자의 책임이 백퍼센트이다. 두 번째 유형은 가해자가 고의가 아니거나 무의식적으로 피해자에게 고통을 준 경우로 책임이 일정부분 전가된 경우다. 마지막 유형은 무고한 가해자로 대상의 부재이다. 특수한 경우이기는 하나 증오의 책임은 오롯이 피해자가 전적으로 넘겨받는다.




이처럼 증오는 피해자로 하여금 심각한 정신적 외상을 남기고 무의식의 영역에 흔적을 남기고 성장하게 한다. 어린 시절 겪은 상처 ,즉 트라우마는 정상의 심리상태를 보이지 않으며 관계 부적응자가 될 확률이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피해자는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서 균형을 잡지 못하며 심리적 이완이 충돌하는 긴장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실제 우리가 정신분열이라는 대상은 정신적 충격에서 비롯됨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대개 증오를 유발하게 하여 분노를 표출하는 대상이 나와는 무관한 상대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증오의 대상이 일종의 믿음과 신뢰에서 발현된다는 저자의 시각이 정확하다는 것은 우리 또한 심리적 상흔을 안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 책의 사례에 등장하는 피해자와 동일한 연장선상에서 바라 볼 수는 없으나 우리의 현실세계에서 파생된 모순적 현실의 분출에 다르지 않다. 결국 증오는 상대방을 지목한 자신의 학대, 마조히즘이라 할 것이다.




믿음과 환상이나 망상에는 아주 근소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세 가지 모두 외부 현실을 고려하지 않는다. 그것은 욕망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p-224)




증오가 좋지 못한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진실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가 언급한 바와 같이 적절한 관계의 회복을 위해서는 증오의 기술이 절실함은 두말할 나위 없다 하겠다. 사랑을 바닥에 깔고 있는 애증의 형태 또한 증오이다. 이처럼 증오가 막연히 상대방의 정신을 피폐하게 하고 황폐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경계해야 됨은 물론이다.




이 책에서 보여 준 정신적 외상을 입은 피해자들의 모습을 정신이상자로 몰고 가기에는 감추고 덮어 버린 불편한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 소아 성애자와 같은 가족을 둔 경우나 부모의 부정으로 영향을 받은 경우가 흔치 않은 사례이다. 분명 희박한 사례로 정상의 심리상태를 가진 사람에게 별반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나 알고 보면 조금씩은 그 경계의 둘레를 밟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이렇듯 저자가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의 이론을 실제의 사례를 통해 담은 이야기는 사뭇 흥미롭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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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빈 토플러, 불황을 넘어서 -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앨빈 토플러, 하이디 토플러 지음, 김원호 옮김, 현대경제연구원 감수 / 청림출판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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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세기 들어서 산업화의 가속도는 가일층 빨라졌다. 점차적으로 좁혀지는 세계무대의 간격은 경제무대의 범위를 더욱 확장시켰으며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렇게 다극화와 전면화로 치닫는 계기는 경제발전의 속도와 평준화에서 찾을 수 있겠다.


앨빈 토플러. 20세기가 낳은 최고의 미래학자로 추앙받는 살아 있는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의 저서 <불황을 넘어서>는 1972년에 출판되었다. 당시 수많은 석학들의 찬사와 격찬을 한 몸에 받으며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이 불투명한 미래 사회를 전망하기 위한 지침서로 활용할 정도로 인기를 누렸다. 이 책이 아직도 뜨거운 주목을 받고 이유는 다름 아닌 그의 전망이 30년 뒤인 현재에 놀라우리만큼 정확하게 펼쳐지고 있다는 것이다.


1930년대 미국을 암흑의 구덩이로 몰고 간 경제대공황은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하였다. 달러화에 연동하여 움직이던 경제시스템은 고정환율제도의 한계와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으로 경제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이후 미국은 강력한 경제성장정책인 마셜플랜으로 기사회생하였으나 당시의 악몽은 여전히 앙금으로 남아 있다.


이처럼 세계 경제를 파국으로 몰고 간 경제대공황의 모델로 미래를 예측한 그의 논리는 선견지명을 넘어 마치 미래를 옮겨 놓은 듯 정확하다. 경제, 법률, 환경, 문화 등 다방면에 걸친 예측은 통찰의 범주를 전체적이며 거시적인 관점에서 분석하였다. 불황의 파고를 넘을 경제시나리오를 고찰하고 그 속에서 나아갈 방향을 짚은 그의 논점은 탁월함 그 자체다.


경제의 발전은 산업사회와 달리 속도감과 다양성이 최대의 특징이다. 이러한 현상은 기존 케인즈 식 경제모델로는 더 이상 예측할 수 없는 한계상황을 봉착하게 하였으며 첨단통신기술의 발달로 지구촌을 하나로 묶는데 성공하였다. 따라서 더 이상 지역 간, 국가 간의 경계는 무의미하게 되었으며 허물어진 틈사이로 다국적 기업의 출현은 배타적 행태로 야기되었다.


이러한 다국적 기업의 출현과 산업화에서 정보화 사회로의 이전은 사회의 생태적인 모습 또한 탈바꿈하여 기존의 노동집약적 산업이 감퇴하고 지식노동사회로 변모하였다. 블루칼라계층의 감소는 노동실업을 증가하며 연기금의 고갈로 정부를 압박하는 요인이 되었으며 경제상황은 악화일로로 치닫게 되었다. 소위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그레샴의 법칙이 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요인으로 악순환의 미궁으로 빠져 들게 되었다. 또한 불안한 달러화폐의 불건전성은 고정환율제를 포기하고 변동환율제로 채택하게 되었으며 유로달러의 사용을 허용하는 결과를 도출하였다. 금융환경은 더욱 세분화되고 수많은 파생상품의 출현으로 레버리지에 의한 거품경제를 유도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더욱이 중동오일달러의 압력은 석유카르텔을 형성하고 세계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으며 대체에너지개발의 모티브를 제공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화석화 연료의 무분별한 사용은 환경오염의 문제를 야기 시키고 이전보다 더워진 지구의 환경은 식량문제를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수확량의 감축은 국가 간 갈등상황으로 내달렸다.


지금까지 살펴 본 상황은 저자가 예측한 미래 즉 현재의 세계경제이다. 어느 것 하나 잘못되었거나 빗나간 것이 없을 정도로 일치된 의견을 보인다. 미국 발 글로벌 경제위기는 동반추락의 재앙을 유발하였으며 배타적인 관념이 지배하는 경제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자국 내 보호 장벽에 대한 암묵적인 허용으로 숨 쉬기 조차 곤란한 경제를 살리기 위해 각 나라들은 여념이 없다.


저자가 예측한 모델의 핵심은 기존 경제관념의 허무와 경제속도에 있다. 후생경제를 비롯하여 사회문화와 관련한 다양한 변수를 포함한 행동에 의한 경제원칙을 확립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임을 제시한다. 더불어 에코스패즘으로 발생한 문제에 선제적인 방식으로 접근하여 통제 가능한 범위내로 편입시키고 다국적 기업에 대한 제어와 집중으로 경제주체를 회복할 것을 권고한다.


따라서 저자가 짚은 미래사회의 문제는 다양성의 인정과 유연한 대처에 있다. 탄력적인 근무환경의 조성과 대체에너지의 개발은 수요의 긴장관계를 해소하고 국지적인 갈등을 종식시키는 대처방안이 된다. 하물며 미래 사회로의 전망이 비관적이고 불투명하다 할지라도 오만과 탐욕을 경계한다면 지금의 불안은 점차적으로 해소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토플러의 예지력은 금세기를 불황의 늪에서 탈출할 돌파구로 사용될지 모르겠다. 미래학자인 벅민스터 플러가 주장한 협력과 공생의 관념은 인류가 생존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라 하겠다. 배타적이고 교만한 시각에서 벗어나 역사의 반복된 실수를 자인하고 불황의 늪에서 탈출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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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 없는 남자, 속 좁은 여자 - 그 男子, 그 女子의 대화법
이정숙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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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하면 눈이 멀고 그 향에 취해 판단력이 흐려진다. 모든 세상의 기준이 그 사람을 중심으로 시작해서 끝난다. 이것도 잠시, 사랑의 묘약이 풀리면 긴장관계가 이완되어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반복된 만남과 대화로 지리멸렬한 관계가 지속되는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오는 것이 대개의 경우다. 하지만 남녀관계라는 것이 일정한 공식을 가지고 대입하여 해답이 나오는 자동판매기가 아닌 것처럼 밀고 당기기의 팽팽한 신경전은 보이지 않는 중에도 계속 충돌된다. 아마 인류가 존재하는 한 남녀관계는 탐색과 견제의 끝없는 소모전이 지속될지 모를 일이다.




여태껏 우리는 남녀의 특성과 관점에 대한 생각에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 일반적이며 보편적 견해이다. 하지만 무엇이 어떻게 다르고 어떤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판단하는지 구체적인 이해와 관심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이 책 <눈치 없는 남자, 속 좁은 여자>의 저자 이정숙은 이러한 남녀관계의 문제를 감각적인 문체와 멜랑꼴리한 시선을 곁들인 맛깔나게 버무린 이야기를 펴냈다. 한마디로 연애전도사로 나선 셈이다.




이미 시중에 출간되어 넘쳐나는 남녀관계에 대한 도서들에서와는 달리 관념적이고 상투적인 견해와 이론중심의 논리를 탈피하고 가상의 커플들을 설정해 스토리텔링형식으로 일상에서 누구나 접할 수 있는 에피소드를 풀어 설명하였다. 또한 캐릭터의 다변화를 통해 상황에 따라 달리 대처하는 남녀관계의 관점과 시선을 중심으로 갈등상황을 해결하는 적절한 팁과 어드바이스를 첨가해 톡톡 끄집어내는 경쾌함이 돋보인다.




저자는 인간이 오랜 역사적 적응의 산물에 결과에 따라 남자는 사냥꾼의 두뇌모드로 여자는 파수꾼의 두뇌모드로 나뉘어 진화하였다고 설명한다. 남자가 사냥꾼의 기질인 전체적이고 입체적인 사물판단과 직접적이며 몰입하는 속성 강하며 동적인 것을 즐기는 것에 주력하고 반대로 여자는 파수꾼의 미시적인 관찰과 세밀하고 섬세하며 지엽적인 사실에 보다 관심을 가지며 정적인 형태로 표출된다고 이른다.




실제 남녀관계를 구별 짓는 생리적 특징 외에 심리적 특징으로 양분한다는 것이 현대사회에서는 상당부분 희석되고 중화된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옅어지고 경계가 모호한 상태가 인간의 평균적인 특성을 나누는 정도는 아닌 만큼 저자의 생각이 더욱 흥미롭다. 결국은 남녀관계의 근본적인 문제의 원인은 차이에서 오는 낯선 상황이 문제이다.




상대방이 지닌 내밀한 특성을 보듬어 주고 이해해주며 관점, 시선, 태도, 언어의 차이를 구별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 말한다. 다시 말해 소통과 배려의 문제다. 서로의 차이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배려를 주춧돌로 한 대화가 지속된다면 소통은 물 흘러가듯 막힘이 없다. 비단 남녀관계의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 보편적 진리가 아닐까.




남녀관계가 쉽지만은 않다. 사랑에 상처 받고 가슴 졸이며 어리둥절한 게 만드는 요상한 녀석의 상황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어렵고도 벅차다. 그래도 사랑은 끌림에서 오는 강력한 마법과 같아서 삶을 빛나게 해준다. 저자가 일러주는 조언을 가벼운 마음으로 읽고 보듬어 읽다 보면 차이에서 오는 어색함을 상당부분 줄여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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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
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 / 부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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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명박 정부는 감세정책을 통한 경기부양책을 발표하여 공격적인 경제드라이브를 걸었다. 세금을 낮춰 줌으로써 부자들의 지갑을 열고 경기를 돌게 하겠다는 속내이자 골고루 혜택을 주겠다는 취지이다. 더불어 양도소득세에 대한 중과세를 폐지 또는 상당부분 감액시켰다. 이 또한 실물자산과 연계한 경기 흐름, 즉 돈이 돌게 하겠다는 뜻이다.




가만 생각해 보면 틀린 게 하나도 없다. 하지만 장하준 교수가 빗댄 부자 나라의 나쁜 사마리아인들과 어찌 이리도 닮았는지 어리둥절하기 까지 하다. 이 책의 저자 장하준이 지은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관통하는 핵심에는 신자유주의의 경제이데올로기의 허상과 부자나라의 탐욕을 호되게 까발렸다. 어느 누구도 직접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서술한 책을 익히 본적이 없다. 한마디로 까무러치리만큼 무섭다.




우리에게는 IMF라는 잊기 싫은 국가위기상황이 있었다. 그 상황 속에서 우리를 바라 본 경제선진국 즉,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우리의 튼튼하였던 관세보호라는 장막의 환경을 무장 해제시켜 버렸다. 여기에 더해 금융환경의 과도한 변화를 요구하였다. 그 속에서 체질이 허약한 기업들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수많은 실업자를 양산해 냈다. 마치 길바닥에 맨몸으로 내동댕이쳐진 것과 같이 살기 위한 절규와 몸부림의 암울한 세월을 보냈다. 이러한 과도한 참견의 주체는 IMF이다. 저자가 지목하는 사악한 삼총사의 하나이다.




이처럼 잘 나가던 전도유망한 기업이 세계무대의 평평하지 못한 경기장에 던져 지는 행위가 -소위 자유시장이라는 미명아래- 공정하지 못함은 정정당당하지 못한 페어플레이가 아님에 있다. 장하준 교수가 신자유주의이데올로기를 핏발 세워가며 비판하는 속사정도 다름 아닌 불공정하며 공평하지 못하다 환경에 있는 것이다. 아직 보호 장구에 의지하며 체질이 개선되지 못한 엉성한 개발도상국의 경제 환경을 -허울 좋은 자유무역협정으로- 수면위로 끌어 올려 제 배불리기에 혈안인 현실을 직시하자는 취지이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의 핵심은 감세, 작은 정부를 통한 공기업의 민영화, 시장의 자율성에 있다. 감세는 양극화를 가속화시키고 공기업의 민영화는 공공민간산업의 고비용 전환으로 살인적인 비용을 국민에게 전가한다. 또한 시장의 자율은 거품경제로의 전이가 쉬운 불안정한 구조를 발발시킨다. 이러한 현상은 지난 4반세기동안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던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나라에서 발생한 현실이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의 위험성을 장하준 교수는 통렬하게 경고한다. 자국의 지적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해 터무니없이 긴 세월을 보장하는 것은 경쟁관계를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지적재산권이 개인의 창작과 발견에 대한 보상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보호해야 할 가치임에는 분명하다. 장하준 교수가 주창하는 것은 보상의 실질적인 측면이 지나치다는 것에 있는 것 같다. 과도한 진입장벽은 우월적 지위를 허용하는 꼴로 국수화와 편협화로 세계적 양극화를 부추기는 결과만을 예상할 뿐이다.




알고 보면 부자나라들이 부르짖는 신자유주의는 산업혁명이후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나라들의 진입을 제한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탐욕스럽고 뻔뻔한 짓인가. 노암 촘스키가 지적한 바와 같이 그들이 떠드는 경제논리가 허황되고 황당한 교리로 구성되어 있는지 대번에 알 수 있게 한다. 개발도상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하지 못하는 주된 이유가 문화적 이유 즉, 게으름에서 비롯된다니 참으로 할 말을 잃게 하는 대목이다. 이 밖에도 신자유주의자가 들먹이는 사유로 부정부패, 자유무역, 민족성에서 찾는다.




결국은 경제의 성장과 발전은 적절한 국가의 통제와 유치산업의 보호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불환화폐가치가 금본위제도의 시절보다 유동적인 이유도 건전하지 못하다는 것이 진실이다. 적자재정을 통해서라도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고 새로운 선도 산업으로 나아가는 것이 현재의 개발도상국이 갖추어야 할 무기이겠다.




현재 우리가 처한 작금의 경제 불황이 장하준 교수의 불투명한 미래를 반영해 주는 것처럼 내달린다. 부자나라의 탐욕의 늪에 더 이상 허덕일 수는 없을 것 같다. 장하준 교수의 글이 정책입안자의 마음 속 깊이 각인되어 고통 받는 민중들의 현안을 치유해 주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이데올로기의 허상에만 치우칠 것이 아니라 실제에 대처 가능한 실용적 경제노선이 절실한 때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하겠다.

 

2009.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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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쁜 사마리아 인들 - 장하준
    from 행복을 찾아서... 2009-04-26 02:15 
    국방부 불온서적으로 지정되었던 좋은(?)책. 단지 불온서적이라는 이유 만으로 구매했다가, 절반 정도 읽고나서, 쉽게 손을 대지 못했던 책이다. 새로 책을 몇 권 구매하면서 큰 마음 먹고 마저 읽었다. 나쁜 사마리아인들 카테고리 경제/경영 지은이 장하준 (부키, 2007년) 상세보기 장하준 / 대학교수 출생 1963년 10월 7일 신체 팬카페 상세보기 이 책의 원 제목은 Bad Samaritans - The Myth of Free Trade and 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