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이레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나 자신이 책 읽어 주는 미하엘이라면 어떤 선택으로 운명의 여신에게 몸을 내맡겼을까? 미하엘이 두려워하고 회피하려 했던 그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제도적 관습에서 일탈한 사랑 그것도 아니면 제국주의 그늘에 얼룩진 연정의 어두운 과거의 망령. 미하엘을 통해 바라 본 세상은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는 연약한 모습 그대로이다. 진정으로 안나의 행위에 대해 낙인을 찍고 분연히 책임을 전가할 수 있을까? 그녀 또한 복종할 수밖에 없는 명령에 의해 자유의지를 상실하였다면 말이다.


이 책 <더 리더; 책 읽어 주는 남자>는 1950년대를 배경으로 파격적인 사랑과 대중의 자기 기만적인 심리를 섬세하고도 담백하게 터치한 풍경화 같은 글이다. 저자 베른하르트 슐링크는 독일의 유명한 <양철북>의 작가 권터 글라스 이후 주목받는 인물로 전후세대간 갈등을 사실감 있게 묘사하여 독자들의 찬사를 한 몸에 받았다.


자분자분 미하엘을 따라 가는 이야기구조는 적절한 완급조절과 숨고르기가 매력적인 책이다. 더불어 파격적인 성애의 표현은 은밀히 감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호기심 저편 너머로 들여다 본 미하엘의 낯선 경험은 설익은 남자아이의 성적 쾌락의 충족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그들의 사랑에 담긴 감미로운 숨겨진 맛이 흥미롭게 한다.


이 책은 숨 막히는 대결구조나 절정의 극한 대립상황이 없음에도 한동안 먹먹한 상태가 지속되게 한다. 잘 된 책은 어색함이 없다. 저자의 감정의 끝선과 교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감정이입을 통해 상황적 모순이 자의식을 구속하고 동조하게 하는 행위의 책임은 고찰하게 만드는 힘이 드러난다.


미하엘이 안나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 나이를 뛰어넘는 연정을 통한 번민과 집착의 과정은 통념의 상식을 지우게 하기에 제격이다. 그들의 어색한 교감이 실사 그대로 재현되는 상황에 다양한 상념이 교차점은 애간장 졸이게 만들게 한다. 책을 통해 매개된 그들의 행위는 속세의 부정과는 유리된 진실로 긴밀한 연정 상태를 형성하고 심리적 불안감을 해소하는 장치로 사용된다.


아슬아슬 위험한 외줄타기 같은 행위는 책을 통해 연결되고 그들을 감싸고도는 건조하기 짝이 없는 대기는 그대로 전달되어 온다. 서서히 빠져 드는 책을 읽고 듣는 밀착된 관계는 서로에게 도피와 안정을 주고 부정한 심리상태가 인정으로 바뀌는 관찰을 공유한다. 뒤이어 찾아든 안나의 부재와 실종이 미하엘의 삶의 방향을 틀어 버리게 하고 공허감에 깃든 주변인으로 맴돌게 하지만 결국 운명의 장난은 풀리지 않은 관계를 매듭짓는 것으로 전개된다.


갑작스런 안나의 실종은 미하엘의 대학 재학 시절 법정에서 조우하게 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수용소 간수로 근무하며 학살의 한 가운데 있었던 엄청난 비밀이 드러나면서 일순간 과거와 현실을 오가는 긴장관계가 조성된다. 미하엘은 15세 소년을 통해 보았던 36세의 여인의 모습과 현실에서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상황에 현기증이 인다.


단죄를 받기 위해 결연한 모습으로 의연히 대처하는 안나와 그녀를 주동자로 몰고 가는 동조세력간의 군중심리묘사는 이 책의 압권이자 백미이다. 미카엘이 안나를 올가미에서 풀어 주는 실마리를 쥔 키 메이커임에도 나아갈지를 망설이는 대목은 자아 고찰에 대한 철학적인 물음을 던지게 한다. 작위와 부작위의 끊임없는 갈등은 두려움이 유발한 자기 도피이다. 행위를 실행에 옮김으로서 감내하여야 할 현실적 중압감은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게 만든다. 안나를 주홍글씨로 몰아간 군중심리의 메커니즘 역시 통합하지 못하는 세대 간 갈등의 양상을 띤다 하겠다.


이처럼 이야기 속에 드러난 표면과 달리 은밀한 관계로부터 형성된 자기관찰 상황은 일정한 궤적을 통과해 전체를 파고드는 지배적 상태로 표출된다. 안나가 군중심리에 의해 희생당하게 된 것 또한 증오와 위선의 집단적 행동이자 무의식적 자기 합리화의 표현이다. 유발한 책임의 떠넘기기 상황으로 치닫는 구조는 통합하지 못한 시대적 아픔을 반영한다. 이야기를 관통한 심리적 추적과 관찰은 자기성찰에서 오는 내면적 결핍상태의 아쉬움을 진하게 남긴다.


인간이 만든 제도와 규범의 틀은 자유와 책임을 양분한다. 명령에 의해 자유의지를 상실 유린당한 상태에서 원칙에 입각한 주어진 임무를 수행한 피동적 행위의 책임을 위법의 논리로 단죄하는 것이 쉽지 않을 일이다. 야만적이고 파괴적 상황이 위험한 상태의 행위임은 분명하나 유기한 책임을 전적으로 기계에 불과하였던 구성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상황에서 누구든 개운치 않게 한다.


악마의 달콤한 유혹처럼 나치즘을 촉발하고 망령과 광기로 물들었던 세대의 책임과 안주하고 회피하며 부인한 부작위로 일관한 자들의 책임을 지켜보는 이후 세대의 시각은 동일 선상에 열과 대오를 맞춘 집단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음을 인식한다. 미카엘의 안나에 대한 의도적 방관과 유기상황은 집단과 개인의 차이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다를 것 하나 없어 보인다.


전쟁의 광기는 보이지 않던 진실한 인간의 이면을 그대로 투영한다. 상황에 따라 사물을 판단하는 행위의 가치가 변화하는 상황과 불합리한 심리적 태도는 사회를 통합하는 장애요인이 된다. 우리에게 이처럼 기만적인 상황을 대처하는 규범과 장치가 없다면 무엇으로 타자를 판단할 명확한 근거를 제시할 수 있을까? 자칫 군중심리에 이끌려 행위책임에만 국한시킨다면 실체적 진실을 판단치 못할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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