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의 경제학
폴 크루그먼 지음, 안진환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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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비이성적 불황, 케인스주의에서 해답을 찾다 

최근 발생한 경제위기를 암흑의 1930년대 미국 발 대공황에 빗댄다. 글로벌 경제화 되고 세계화된 작금의 현상이 우리의 허리띠마저 졸라매게 하였다. 물 건너 촉발된 경제위기가 우리 경제에는 대공습의 전야를 방불케 한다. 그렇다면 왜 우리에게 더욱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것이며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슬금슬금 오르기 시작한 물가와 경제 후퇴는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일까? 아울러 이러한 모든 경제 현상의 주범은  누구일까? 깊이 고민할 필요성조차 없이 지금 나에게 묻는다면 바로 신자유주의자들을 지목할 것이다. 교묘하게 조작되고 가공된 첨단금융공학시스템을 내세 워 건전한 펀더멘탈을 흔들고 시장을 교란하고 파국으로 몰고 간 사악한 악의 축에 다르지 않다. 
 

 

 

실제 우리는 1988년 미국의 배후 조정아래 있던 IMF으로부터 처절한 경제굴욕을 경험했다. 통화정책의 실패로 물가불안과 신용경색상황의 공포는 패닉상태로 이끄는 그 자체였다. 당시 회생을 위한 돌파구는 긴급원조였으며 그 대가는 실로 가혹했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시장개방(특히, 금융부문) 등을 통해 미국이 원하는 세계경제의 열린 시장의 일원으로 알몸으로 내던져 졌다. 하지만 그 결과는 아직도 허약한 경제기반구조를 드러내며 신뢰를 구축하지 못하였으며 이리저리 조난당한 모습을 여전히 보여준다.


지금에서야 악몽 같았던 당시를 회고할 여유가 조금은 남아 있다지만 답답하기 이를 때 없던 시기였다. 별다른 과오나 아무런 이유가 없음에도 실업자의 대열에 편승한 88만원 세대인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불평등한 사회구조였다. 이러한 불균형과 지독한 불황의 단초를 제공한 주된 원유는 바로 방만한 자유방임, 규제완화정책, 글로벌경제화, 민영화가 주역이라 할 수 있다.


이 책 <불황의 경제학>의 저자 폴 크루그먼은 2008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 프린스턴대학 경제학교수이다. 그가 작금의 시점에 이 책을 통해 지난 1세기 동안 각 나라의 경제를 위협한 구조적 원인과 불황의 양상을 소개한 목적에는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직간접적으로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현재 미국이 처해있는 금융위기의 촉매제가 그림자금융으로 명명된 유사금융 파생상품의 난립과 헤지펀드의 예측 불가해성에 초점이 맞추어 져 있기 때문이다.


지난 30년간 세계 경제는 동서 이데올로기의 변화, 자본주의체제 강화 등을 통해 경제시스템의 강력한 통합 체제를 탄생하였다. 저자가 짚은 신자유주의 경제주의(신고전주의) 역시 이러한 맥락과 이념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렇게 전통 자본주의 강대국인 영국(대처주의)과 미국(레이거니즘)의 지배적 이념이 어떻게 제3세계 국가와 신흥국가에 영향을 미치는지 이 책은 상세하게 보여 준다.


다른 경제학 저서와는 달리 단편적 조치나 개념분석에 그치지 않고 왜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는지를 경제후퇴(불황)의 현상과 결부시켜 알기 쉽게 보여 준다는 점은 탁월한 차별성이 돋보이게 하는 책이다. 전통적으로 동남아시아 국가(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등)는 정실자본주의(정계유착)의 연결고리가 짚은 국가적 특성을 보이는 곳이며 우리나라 또한 유래 없는 독점재벌경제를 키웠다. 기실 건전한 경제의 선순환 고리는 신뢰를 바탕으로 형성된다고 볼 수 있는데 특이한 경제구조로 인해 상당부분 견실한 자본시장을 형성하기엔 무리가 있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저자가 아시아의 경제요동현상을 전후로 구원이라는 미명아래 사악한 무리들을 앞세워 시작된 신자유주의자들의 간섭은 더욱 자생적 경제토양과 기반을 허약하게 하였다는 데 있다. 분명 선진경제의 지원과 정책으로 상황이 개선되어야 함에도 오히려 악화된 것의 이면에는 이익은 사유화하고 피해는 국유화하는 이념적 흐름이 짙게 깔려 있기 때문이다. 신뢰기반이 붕괴된 경제는 연쇄부도로 이어지고 모라토리엄(국가부도)의 상태까지 몰릴 수밖에 없다. 더불어 심각한 경제 불황의 전방위적 원인을 제공한 금융 부실은 비열한 모럴헤저드를 양산하였음을 이 책은 또한 정확하게 복기한다.


세계의 경제주체는 정보의 비대칭성에 빠지는 우를 상당기간 범했다. 이 책의 주요테마로 소개된 라틴아메리카의 사례, 멕시코의 테킬라위기, 인도네시아 • 한국의 통화위기와 특히 일본의 유동성 함정은 수없이 많은 불황의 심각성을 예고하였음에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자승자박의 참혹한 결과였다. 이처럼 세계 경제를 처절하게 굴복시키고 무너뜨린 주된 이유에는 현대 거시경제학에서 간과한 즉, 신자유주의경제가 묻어 버린 경제 주체 간  신뢰와 예측하지 못한 비이성적 행동(행동경제학)이 대표적인 원인이다.


저자가 밝힌 문제의 주된 원인도 그 범주와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미국이 1930년대 경제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국가의 강력한 금융통제와 수혈자금의 사회간접자본으로의 유입과 투자는 공황의 끝을 막는 중요한 열쇠가 되었다. 또한 때마침 발발한 제2차 세계대전은 경제를 살리는 소방수로, 커다란 동력이 되었음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처럼 미국이 공황의 그늘을 벗어날 수 있었던 핵심역량은 당근과 채찍의 적절한 사용 즉, 규제와 보호의 울타리를 튼튼하게 채웠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금융위기는 어떠한가? 구멍 난 물독처럼 제3세국가가, 일본의 덫이 그러했던 것 보다 훨씬 강력하게 울트라 괴물로 변신한 셈이다.


거품경제(닷컴붕괴, 주택붕괴)가 꺼지기 시작하면서 항공모함 미국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다. 흥청망청 한도를 넘어 써 버린 과소비의 책임을 호되게 받고 있는지 모른다. 이러한 불황의 타개책으로 저자는 신용경색완화와 소비지원을 꼽는다. 이처럼 미국경제의 앞날이 불투명한 현실이 우리 경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저자의 주장처럼 공황은 희박하나 불황은 지속될 것이라는 말처럼 하루 빨리 자유방임의 방만한 경제를 붙들어 매지 못한다면 희망의 불씨를 살리기에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작금의 경제현실을 어느 책보다 잘 분석한 이 책을 MB정부에게 일독하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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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적인 글쓰기의 모든 것 - 글쓰기의 달인을 위한
로버트 그레이엄 외 지음, 윤재원 옮김 / 베이직북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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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다는 것은 마음을 담는 것이다. 형식이나 틀에 구애받지 않고 끼적이는 글이라도 글쓰기를 통해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들을 빚어내고 소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쓰기가 생각처럼 실타래를 술술 풀어 가 듯 막힘없이 쉽게 만들어 가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글쓰기에 대한 인간의 욕구는 내밀한 원형적인 본능에서 촉발된 관계가 사회적 인식과 지위를 확인코자 하는 의도된 목적에서 온다. 아울러 글쓰기를 통해 다양한 의견과 시각, 함의, 단상 등의 건전한 의식거리를 제공하는 순기능적 요소이다.




글쓰기의 순기능을 차치하더라도 오로지 작가의 깜냥을 통한 허구의 세계를 창설하는 문학적 순수성으로서의 기능은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의 범주를 가늠하기 힘들다. 만약 작가라면(설령 아니더라도) 혼을 쏙 빼 놓을 만큼 공감 가는 글을 언제고 어느 때고 생산해 내기를 소망하기 때문이다. 독자의 열렬한 반응으로부터 살벌한 외면까지 결국은 살아 숨 쉬고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글쓰기를 해야 한다는 작가의 로망인지 모른다.




이처럼 글쓰기에 관한 모든 길라잡이가 있다면 백군만마를 얻는 것과 같을 것이다. 이 책 <창의적인 글쓰기의 모든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비롯되었다. 그렇다고 이 책의 내용이 전적으로 창의적인 글을 쓰고 사용설명서처럼 기능할 수는 없다. 소재를 발굴하고 다듬고 내러티브를 씨줄과 날줄처럼 정밀하게 조합하는 것은 부단한 노력과 역량이 관건이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우리가 소홀하게 넘어 갈 수 없는 것은 기본 즉, 주춧돌의 튼실함이라 하겠다.




이 책을 통해 글쓰기의 영감과 번득이는 창의성을 개발한다면 금상첨화 아니겠는가? 아마도 베스트셀러작가를 꿈꾸는 것이 로망이라면 반드시 읽어 봄직한 내용이다. 평범한 일상의 특별할 것 없는 소재를 사실적 묘사, 감정이입, 회상으로 단단한 플롯의 뿌리내림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하나의 통과의례다. 이러한 전개를 통해 담고자 하는 목적과 의도가 분명해 진다.




책은 글쓰기의 메커니즘 순으로 엮은 전형적인 교과서의 형태를 보인다. 크게 6장으로 분류하여 1장에서는 글쓰기를 위한 준비 작업을 제시하고 2장에서는 사회적 관념과 일반적인 태도, 젠더, 인습 등의 다양한 주제를 공통된 틀로 갈무리하였다. 3장에서는 글쓰기를 위한 기법과 장치를 통해 완성도 높은 글로 바꾸는 테크닉을 열거하였다. 4장에서는 글의 형식과 장르를 통해 문법의 적절한 사용법을 5장에서는 탈고된 원고의 다듬기를 위한 출판의 정보를 실었다. 끝으로 6장에서는 작가로서의 이념과 삶을 통해 정체성을 발견하고 소신 있는 자세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혹자는 글쓰기를 위해 뼈 속까지 써 내려갈 것을 요구하며 영혼을 흔드는 글담이 되어야 함을 피력한다. 이 모든 글쓰기를 위한 필요충분조건은 공감이 아닐까? 인간의 오랜 열망과 꿈을 플롯에 담고 감동의 물결을 일으키는 살아 있는 내러티브는 신과의 교감처럼 신성함 마저 든다. 또한, 인간이 타고난 본성이 완성체로 끊임없는 자아의 성찰과 정체성 확립은 글쓰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것이 어떤 장르라 할지라도 인간이 만든 물질세계를 투영하지 않고는 시놉시스조차 건져 올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문예창작을 준비하는 사람과 글쓰기의 실제와 이론정립을 다지고자 하는 이라면 든든한 길라잡이로 작용하겠다. 물론 다독을 통한 필사와 습작이 선행되어야 하며 간접경험과 자료 수집을 통해 무의식 세계의 무한 영역을 채워 나가야 하겠지만 글쓰기를 위한 이념정립 또한 이에 뒤지지 않게 중요하다. 글쓰기의 성공이 천부적인 재능과 타고난 능력으로부터 좌지우지 된다고 할지언정 순수함과 열정이 없다면 창의적인 글쓰기 또한 요원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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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완벽한 하루
멜라니아 마추코 지음, 이현경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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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운명론을 그다지 믿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무수히 많은 운명의 갈래 중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될지에 대한 의문은 석연치 않은 게 사실이다. 운명의 우듬지처럼 다양한 색깔을 뽐내고 어떤 선택과 결정에 따라 달리 변한다는 것은 어쩌면 숙명일지도 모른다. 인간만이 고민하고 갈등하는 운명의 판도라 상자에서 각자의 삶을 결정지으며 받아들이는 몫은 오로지 자신이다.

 


그로부터 파생된 운명의 향방은 불가피하게 타인과의 관계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우리의 삶에 원하든 원하지 않던 간에 생명의 존귀와 같은 존엄성의 가치를 넘어 신분의 계층과 지위로부터 오는 양극화는 알게 모르게 엄연한 경계선을 구분한다.

 


이 책의 모티브는 운명이다. 인간의 심리 속에 내재된 복잡한 상태를 감정의 선을 따라 정체성을 찾아 가는 이야기다. 전형적인 인간 군상의 롤 모델을 통해 열망, 갈등, 반목, 시기, 질투, 부러움, 죄의식을 시립도록 차갑게 소묘하였다. 모니카 벨루치가 열연한 ⟪말레나⟫에서 보았던 대중심리의 이중적 태도와도 일맥상통하며 로베르토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의 시대적 어둠 속에서도 끈끈한 가족애의 결정체를 갈망한 오마주의 흔적이 역력하다.

 


프롤로그의 낯선 총격사건을 뒤로 하고 이야기는 하루 24시간을 따라 째깍거리듯 달려간다. 재선이 불확실 되는 타락한 국회의원 엘리오와 그의 경호 팀장 경장 안토니오의 가족을 중심으로 파상적으로 분포된 갈등의 연결고리를 하나의 알고리즘으로 묶어 전개한다. 구태여 사회적인 신분과 지위를 이분법적인 도해로 나누어 재단하지 않아도 사회적 계층과 경제력의 척도에 따라 운명이 나뉜다는 일그러진 출발이 이 책을 휘감는 얼개이다.

 


이는 마치 마크 트웨인의 고전 ⟪왕자와 거지⟫의 현대적 해석과 재탄생으로 볼 여지가 충분한 강한 인상을 남긴다. 그 속에 담긴 고전의 순수함과 현대적 의미에 맞게 혼합첨가물을 섞어 일차적 영향의 범주를 확장한 것으로도 보아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한 제목에서 주는 강한 반어적 의미의 속내는 상당한 아이러니를 불러일으킨다. 어느 것 하나 완벽할 수 없는 삶의 편린들을 등장인물들의 사실적 심리묘사를 통해 재구성해 나간다는 설정은 가히 압권이라 할 만하다.

 


더불어 강한 집착과 강박증세로 인한 편집증과 의처증에 사로잡힌 안토니오를 통해 손창섭의 ⟪잉여인간⟫에서 익히 보았던 현실부적응자를 손쉽게 떠올리게 만든다. 갈피를 잃고 허우적대는 모습을 통해 우리의 정서에 낯익은 인간군상과 오버랩되고 행운과 불행의 갈래에서 얄궂은 운명의 양면성을 그대로 재현한 것과 같은 착각과 익숙함을 엿 볼 수 있다.

 


저자가 창조한 다양한 캐릭터의 사실성을 통해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 회고하게 되고 산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반추하게 만든다. 그녀의 필력을 통해 우리는 대서사적 구조의 지배적 제어와 완벽에 가까운 통제의 정교함에 새삼 놀라게 한다. 진공청소기로 빨아 들이 듯 감각적으로 묘사된 이야기는 우리를 거침없는 몰입의 세계로 빠져 들게 하며 통속적인 관념마저 송두리째 날려 버리게 만든다. 흡인력이 대단한 작품이다. 어느 누구도 비켜갈 수 없는 운명의 몸부림과 손짓은 독자의 호기심으로 가득 찬 마음을 훔치기에 부족함이 없다.

 


뿐만 아니라 대립각을 세우는 갈등구조가 조밀하게 짜여 져 있는 것 또한 이 책의 또 다른 볼거리다. 엘리오와 안토니오를 주축으로 한 행복과 불행의 뒤엉킨 삶의 향방은 극과 극의 대립적 관계의 설정으로부터 파생된다. 성공을 거머쥔 계층과 성공을 향한 가지지 못한 자의 열망의 범주가 그들 사이를 지리멸렬하게 관통함을 알 수 있다. 거스름처럼 일어난 가난의 굴레가 안토니오와 엠마, 그의 자녀 케빈, 발렌티나를 향해 끈질기게 괴롭히는 광경을 지켜보는 것은 오염된 늪처럼 그 깊이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또 엘리오와 마샤, 그의 자녀 제로(아리사), 카멜라의 사회적 신분으로 무장한 이중적 심리세계는 탐욕과 부를 향한 열망과 지독한 집착의 부르주아적 이미지를 그대로 재현하였다.

 


이렇게 그들에게서 얽힌 관계의 틀은 운명의 큰 울타리 속으로 쉴 새 없이 돌고 도는 쳇바퀴 속 다람쥐를 연상케 하며 현재와 과거의 시간을 시나브로 넘나든다. 인생의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 삶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 채 인식하기도 전에 아스라이 사라져 버리는 삶의 오묘한 진리는 인간을 고뇌하고 사색하게 만드는 영원한 화두인지 모른다.

 


정상과 바닥의 간극이 반드시 존재하듯 황폐한 침묵의 늪 속으로 빨려 들어가 허무하게 사라져 버리는 안토니오의 가족들의 비극적 운명을 통해 우리는 다시금 성찰하고 삶의 목적을 회고하는 계기를 생산할 것 같다. 첨언컨대 여유로운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이 책의 내용을 음미한다면 숨은그림찾기의 재미와 같은 흥미로움과 묘한 느낌을 오롯이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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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태스킹은 없다 -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멀티태스킹
데이비드 크렌쇼 지음, 이경아 옮김 / 아롬미디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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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축구에서 현란한 동작과 몸놀림으로 종횡무진 누비는, 일정한 포지션 없이 공격과 수비를 아우르는 포지션을 리베로라고 한다. 대개 이러한 포지션을 멀티 플레이어라고 부른다. 비단 축구에서만 국한된 것이 아니기에 이러한 멀티 플레이어에 대한 열광은 다른 분야에까지 그 효과를 미치기 마련이다. 이러한 효과는 일반 사회 저변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다재다능한 재능을 가진 사람으로 존경해 마지않는다. 그런 이유로 동시에 여러 가지 업무를 척척해 내는 만능 멀티 플레이어를 대놓고 선호하는 세상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멀티태스킹이 과연 생산성 대비 효율성이 뛰어날까? 소위 일 잘하고 능력 있는 사람의 업무 스타일에서 오는 즉시성과 동시다발성에 대한 반응에서 일반적인 착오를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네들은 평범한 보통 사람들보다 빠른 업무처리와 임기응변으로 팔색조의 재능을 갖춘 것으로 넘겨짚어 인식하며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무리 없이 해 내는 것으로 보기에 무리가 없다. 하지만 그것이 착각이었다면 얼마나 우린 지독한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던 걸까?

 


이 책 ⟪멀티태스킹은 없다⟫는 말 그대로 업무수행의 이중성에서 오는 폐해를 신랄하게 꼬집었다. 저자가 지적한 멀티태스킹으로 인해 -외관상 보기에는 열심히 일하는 것 같이 보여도- 실상은 실속 없기가 이루 말 할 수 없는 속빈 강정이란다. 이유인즉슨 우리가 여태껏 알고 있던 멀티태스킹은 스위치 태스킹에 다름 아니며 마치 형광등스위치를 켜고 끄는 행위처럼 한 가지 일을 하기 위해서는 다른 일을 접어두고 처음부터 다시 집중해야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두서없이 헤매는 것과 똑같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비단 이러한 멀티태스킹의 문제가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문제에만 국한될까? 저자가 짚어 낸 핵심적인 문제는 다중 노출된 업무환경이 오히려 한 가지 일에 집중하고 진행하는 것에 비해 두 배 이상의 업무성과가 벌어진다는 것에 주목한 것이다. 책은 이러한 핵심적인 문제를 중심으로 비즈니스 우화형식을 빌려 조근 조근 나열하였다. 직접적이고 실생활에서 언제든지 일어나는 현상을 드려다 보았기에 흔히 접하는 일상과 다르지 않다.

 


이러한 멀티태스킹의 폐해가 기실 엄청난 부작용이 있음에도 개선하지 않고 깨닫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일까? 조급함에서 오는 심리적 부담감이 주요 동인이다. 즉각적이고 가시적으로 드러날 수 있는 업무성과에 주안점을 맞추고 그것에 목매기 때문이다. 일종의 연극과도 같은 심리적 위안감이다. 멀티태스킹으로 인해 자신의 드러난 역량이 남들보다 탁월하고 괄목할만한 업무실적을 보이고 있음을 보여 주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인지 모를 일이다.

 


이 책의 문제의 의뢰자로 등장한 헬렌의 이야기나 직속부하 샐리의 업무일상이 글로벌시대를 사는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결국은 효율적인 성과는 시간 관리에 맞닿아 있으며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의 마련이다. 불필요한 시간을 제거하고 업무공조를 통한 시간개념의 재정립은 간과해서 안 될 강력한 무기와 같다.(비즈니스시스템과 개인시스템의 조화) 시간을 다스리는 것은 신뢰를 쌓고 여유를 되돌려 주며 숨은 역량을 발휘하게 한다.

 


따지고 보면 이러한 자기관리서적의 공통된 맥락은 나무를 보느라 숲을 보지 못하는 인간의 허약한 의지를 바로세우는 좋은 지침이 됨을 알 수 있다. 읽다 보면 하나같이 틀린 것이 없을 정도로 우리의 일상과 닮아 있고 금세 동화됨을 인식하는 것은 통합된 세상에 살고 있다는 좋은 반증이다. 글로벌 시대를 사는 현대인에게 있어 바른 길로 인도하고 흐트러지기 쉬운 마음가짐을 다 잡아 주는 이런 유의 책들은 언제 봐도 행간의 숨은 가치가 분명한 책이기에 명쾌함이 돋보인다. 더불어 이 책에서 제시한 방법대로 따라하다 보면 정말 홍명보 선수같이 멋진 리베로가 되어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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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산책하는 낭만제주
임우석 지음 / 링거스그룹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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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있어 제주는 희망을 부풀게 하는 곳이다. 제주에 대한 관념이 굳어지기 시작한 것 또한 아무래도 쉽게 가지 못함에서 오는 거리감일 것이다. 지금이야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상태지만 굳이 물리적 거리를 차치하더라도 심리적 거리는 멀기만 하다. 한번 여행이라도 할라치면 큰 맘 먹고 준비를 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까? 제주에 대한 동경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품어봄직한 막연한 설렘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훌훌 버리고 떠나갈 아련한 노스탤지어를 끝없이 속삭인다.

 


이 책 <낭만제주>는 경쾌함이 묻어난다. 형식이나 틀에 구애받지 않고 제주의 푸른 올레길을 따라 작가의 마음 가는대로 소탈한 단상을 날로 옮겼다. 더욱 도드라지는 것은 아무래도 그의 연인과 함께한 제주의 풍광일 게다. 여행이 줄 수 있는 환상적인 순간을 위한 최상의 조건을 모두 갖추었기에 부럽기 짝이 없는 내용 일색이다. 때로는 사색에 잠겨 상념의 열변을 안주거리 삼아 질겅이게 하기도 하고, 객기를 닮은 호기는 청춘이 주는 열정에 동하기도 한다. 이처럼 자연 그대로의 원형을 흠모하는 순수의 감정만이 파상적으로 펼쳐 져 코발트 내음 물씬 풍기는 고즈넉한 맛이 곁으로 흘러넘친다.

 


제주는 자연과 인간의 절묘한 조화를 이룬 곳이다. 인간의 배타적인 탐욕이 생산한 난개발로 인해 유린당하기도 하고 태곳적 신비 그대로를 고이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걷는 곳 가는 곳곳마다 남태평양의 에메랄드 깊은 눈부심과 싱그런 푸름이 엘돌핀을 폐부 깊숙이 용솟음치게 한다. 아마도 저자 또한 이런 매혹적인 신성함에 도취되어 그리도 뻔질나게 드나들었는지 모른다. 미처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를 찾아 가는 흥분과 낭만은 듣기만 해도 짜릿해 진다. 해 보지 않았으면 말을 하지 말라는 개그처럼 읽는 것만으로 부풀어진 가슴을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게 만든다.

 


책은 제주의 마을, 풍광, 이어진 길을 중심으로 때로는 광각의 넓은 풍경을, 때로는 조밀한 사람내음을 담았다. 알려진 곳이 아닌 제주의 석회암처럼 풍화된 기록의 흔적을 모았기에 기존 여행서의 획일성과는 차별화 되는 것이 특색이다. 여느 판에 박힌 가이드가 아닌 점이 무엇보다 마음을 잡아 붙들어 맨다. 그가 찾아 간 이름도 낯선 어느 고즈넉한 마을의 한적함에 심신의 피로감을 몰아내기에는 더 없이 좋을 듯하다. 시간의 색깔을 희석한 예배당의 고풍스러움과 섬사람의 애환을 담은 지신(地神)의 소통은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기존의 제주여행은 남과 서를 기점으로 구분한다. 최근에야 올레길의 발굴과 복원으로 쉬엄쉬엄 걸으며 체험하는 곳이 많아졌지만 대개 처음 제주를 찾으면 어김없이 평범한 여행코스를 택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기존의 여행 로를 고집하는 것이 나쁠 것까지야 있겠냐마는 이왕이면 저자가 따라 간 길처럼 인적 드문 곳을 따라 흘러가는 것 또한 운치가 있을 것 같다. 이름난 여행지가 최상의 상태를 갖춘다는 것은 자연과 조화로운 개발이 우선이다. 저자가 명소가 아닌 곳만을 밟은 이유 또한 다르지 않다.

 


이렇듯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꿈길처럼 아름다운 제주여행의 묘미는 낭만 바로 그 자체다. 어느 순간, 어느 장소든 그(그녀)와 함께라면 추억을 저장하고 감정을 업그레이드 해 줄 것 같다. 이국적인 풍경과 뜻하지 않는 기대감이 숨 쉬는 제주의 아름다움을 이 책에서 제시한 대안여행지로 선택해서 함께 한다면 색다른 추억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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