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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의 경제학
폴 크루그먼 지음, 안진환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비이성적 불황, 케인스주의에서 해답을 찾다
최근 발생한 경제위기를 암흑의 1930년대 미국 발 대공황에 빗댄다. 글로벌 경제화 되고 세계화된 작금의 현상이 우리의 허리띠마저 졸라매게 하였다. 물 건너 촉발된 경제위기가 우리 경제에는 대공습의 전야를 방불케 한다. 그렇다면 왜 우리에게 더욱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것이며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슬금슬금 오르기 시작한 물가와 경제 후퇴는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일까? 아울러 이러한 모든 경제 현상의 주범은 누구일까? 깊이 고민할 필요성조차 없이 지금 나에게 묻는다면 바로 신자유주의자들을 지목할 것이다. 교묘하게 조작되고 가공된 첨단금융공학시스템을 내세 워 건전한 펀더멘탈을 흔들고 시장을 교란하고 파국으로 몰고 간 사악한 악의 축에 다르지 않다.
실제 우리는 1988년 미국의 배후 조정아래 있던 IMF으로부터 처절한 경제굴욕을 경험했다. 통화정책의 실패로 물가불안과 신용경색상황의 공포는 패닉상태로 이끄는 그 자체였다. 당시 회생을 위한 돌파구는 긴급원조였으며 그 대가는 실로 가혹했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시장개방(특히, 금융부문) 등을 통해 미국이 원하는 세계경제의 열린 시장의 일원으로 알몸으로 내던져 졌다. 하지만 그 결과는 아직도 허약한 경제기반구조를 드러내며 신뢰를 구축하지 못하였으며 이리저리 조난당한 모습을 여전히 보여준다.
지금에서야 악몽 같았던 당시를 회고할 여유가 조금은 남아 있다지만 답답하기 이를 때 없던 시기였다. 별다른 과오나 아무런 이유가 없음에도 실업자의 대열에 편승한 88만원 세대인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불평등한 사회구조였다. 이러한 불균형과 지독한 불황의 단초를 제공한 주된 원유는 바로 방만한 자유방임, 규제완화정책, 글로벌경제화, 민영화가 주역이라 할 수 있다.
이 책 <불황의 경제학>의 저자 폴 크루그먼은 2008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 프린스턴대학 경제학교수이다. 그가 작금의 시점에 이 책을 통해 지난 1세기 동안 각 나라의 경제를 위협한 구조적 원인과 불황의 양상을 소개한 목적에는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직간접적으로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현재 미국이 처해있는 금융위기의 촉매제가 그림자금융으로 명명된 유사금융 파생상품의 난립과 헤지펀드의 예측 불가해성에 초점이 맞추어 져 있기 때문이다.
지난 30년간 세계 경제는 동서 이데올로기의 변화, 자본주의체제 강화 등을 통해 경제시스템의 강력한 통합 체제를 탄생하였다. 저자가 짚은 신자유주의 경제주의(신고전주의) 역시 이러한 맥락과 이념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렇게 전통 자본주의 강대국인 영국(대처주의)과 미국(레이거니즘)의 지배적 이념이 어떻게 제3세계 국가와 신흥국가에 영향을 미치는지 이 책은 상세하게 보여 준다.
다른 경제학 저서와는 달리 단편적 조치나 개념분석에 그치지 않고 왜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는지를 경제후퇴(불황)의 현상과 결부시켜 알기 쉽게 보여 준다는 점은 탁월한 차별성이 돋보이게 하는 책이다. 전통적으로 동남아시아 국가(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등)는 정실자본주의(정계유착)의 연결고리가 짚은 국가적 특성을 보이는 곳이며 우리나라 또한 유래 없는 독점재벌경제를 키웠다. 기실 건전한 경제의 선순환 고리는 신뢰를 바탕으로 형성된다고 볼 수 있는데 특이한 경제구조로 인해 상당부분 견실한 자본시장을 형성하기엔 무리가 있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저자가 아시아의 경제요동현상을 전후로 구원이라는 미명아래 사악한 무리들을 앞세워 시작된 신자유주의자들의 간섭은 더욱 자생적 경제토양과 기반을 허약하게 하였다는 데 있다. 분명 선진경제의 지원과 정책으로 상황이 개선되어야 함에도 오히려 악화된 것의 이면에는 이익은 사유화하고 피해는 국유화하는 이념적 흐름이 짙게 깔려 있기 때문이다. 신뢰기반이 붕괴된 경제는 연쇄부도로 이어지고 모라토리엄(국가부도)의 상태까지 몰릴 수밖에 없다. 더불어 심각한 경제 불황의 전방위적 원인을 제공한 금융 부실은 비열한 모럴헤저드를 양산하였음을 이 책은 또한 정확하게 복기한다.
세계의 경제주체는 정보의 비대칭성에 빠지는 우를 상당기간 범했다. 이 책의 주요테마로 소개된 라틴아메리카의 사례, 멕시코의 테킬라위기, 인도네시아 • 한국의 통화위기와 특히 일본의 유동성 함정은 수없이 많은 불황의 심각성을 예고하였음에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자승자박의 참혹한 결과였다. 이처럼 세계 경제를 처절하게 굴복시키고 무너뜨린 주된 이유에는 현대 거시경제학에서 간과한 즉, 신자유주의경제가 묻어 버린 경제 주체 간 신뢰와 예측하지 못한 비이성적 행동(행동경제학)이 대표적인 원인이다.
저자가 밝힌 문제의 주된 원인도 그 범주와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미국이 1930년대 경제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국가의 강력한 금융통제와 수혈자금의 사회간접자본으로의 유입과 투자는 공황의 끝을 막는 중요한 열쇠가 되었다. 또한 때마침 발발한 제2차 세계대전은 경제를 살리는 소방수로, 커다란 동력이 되었음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처럼 미국이 공황의 그늘을 벗어날 수 있었던 핵심역량은 당근과 채찍의 적절한 사용 즉, 규제와 보호의 울타리를 튼튼하게 채웠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금융위기는 어떠한가? 구멍 난 물독처럼 제3세국가가, 일본의 덫이 그러했던 것 보다 훨씬 강력하게 울트라 괴물로 변신한 셈이다.
거품경제(닷컴붕괴, 주택붕괴)가 꺼지기 시작하면서 항공모함 미국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다. 흥청망청 한도를 넘어 써 버린 과소비의 책임을 호되게 받고 있는지 모른다. 이러한 불황의 타개책으로 저자는 신용경색완화와 소비지원을 꼽는다. 이처럼 미국경제의 앞날이 불투명한 현실이 우리 경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저자의 주장처럼 공황은 희박하나 불황은 지속될 것이라는 말처럼 하루 빨리 자유방임의 방만한 경제를 붙들어 매지 못한다면 희망의 불씨를 살리기에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작금의 경제현실을 어느 책보다 잘 분석한 이 책을 MB정부에게 일독하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