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 산책하는 낭만제주
임우석 지음 / 링거스그룹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나에게 있어 제주는 희망을 부풀게 하는 곳이다. 제주에 대한 관념이 굳어지기 시작한 것 또한 아무래도 쉽게 가지 못함에서 오는 거리감일 것이다. 지금이야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상태지만 굳이 물리적 거리를 차치하더라도 심리적 거리는 멀기만 하다. 한번 여행이라도 할라치면 큰 맘 먹고 준비를 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까? 제주에 대한 동경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품어봄직한 막연한 설렘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훌훌 버리고 떠나갈 아련한 노스탤지어를 끝없이 속삭인다.

 


이 책 <낭만제주>는 경쾌함이 묻어난다. 형식이나 틀에 구애받지 않고 제주의 푸른 올레길을 따라 작가의 마음 가는대로 소탈한 단상을 날로 옮겼다. 더욱 도드라지는 것은 아무래도 그의 연인과 함께한 제주의 풍광일 게다. 여행이 줄 수 있는 환상적인 순간을 위한 최상의 조건을 모두 갖추었기에 부럽기 짝이 없는 내용 일색이다. 때로는 사색에 잠겨 상념의 열변을 안주거리 삼아 질겅이게 하기도 하고, 객기를 닮은 호기는 청춘이 주는 열정에 동하기도 한다. 이처럼 자연 그대로의 원형을 흠모하는 순수의 감정만이 파상적으로 펼쳐 져 코발트 내음 물씬 풍기는 고즈넉한 맛이 곁으로 흘러넘친다.

 


제주는 자연과 인간의 절묘한 조화를 이룬 곳이다. 인간의 배타적인 탐욕이 생산한 난개발로 인해 유린당하기도 하고 태곳적 신비 그대로를 고이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걷는 곳 가는 곳곳마다 남태평양의 에메랄드 깊은 눈부심과 싱그런 푸름이 엘돌핀을 폐부 깊숙이 용솟음치게 한다. 아마도 저자 또한 이런 매혹적인 신성함에 도취되어 그리도 뻔질나게 드나들었는지 모른다. 미처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를 찾아 가는 흥분과 낭만은 듣기만 해도 짜릿해 진다. 해 보지 않았으면 말을 하지 말라는 개그처럼 읽는 것만으로 부풀어진 가슴을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게 만든다.

 


책은 제주의 마을, 풍광, 이어진 길을 중심으로 때로는 광각의 넓은 풍경을, 때로는 조밀한 사람내음을 담았다. 알려진 곳이 아닌 제주의 석회암처럼 풍화된 기록의 흔적을 모았기에 기존 여행서의 획일성과는 차별화 되는 것이 특색이다. 여느 판에 박힌 가이드가 아닌 점이 무엇보다 마음을 잡아 붙들어 맨다. 그가 찾아 간 이름도 낯선 어느 고즈넉한 마을의 한적함에 심신의 피로감을 몰아내기에는 더 없이 좋을 듯하다. 시간의 색깔을 희석한 예배당의 고풍스러움과 섬사람의 애환을 담은 지신(地神)의 소통은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기존의 제주여행은 남과 서를 기점으로 구분한다. 최근에야 올레길의 발굴과 복원으로 쉬엄쉬엄 걸으며 체험하는 곳이 많아졌지만 대개 처음 제주를 찾으면 어김없이 평범한 여행코스를 택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기존의 여행 로를 고집하는 것이 나쁠 것까지야 있겠냐마는 이왕이면 저자가 따라 간 길처럼 인적 드문 곳을 따라 흘러가는 것 또한 운치가 있을 것 같다. 이름난 여행지가 최상의 상태를 갖춘다는 것은 자연과 조화로운 개발이 우선이다. 저자가 명소가 아닌 곳만을 밟은 이유 또한 다르지 않다.

 


이렇듯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꿈길처럼 아름다운 제주여행의 묘미는 낭만 바로 그 자체다. 어느 순간, 어느 장소든 그(그녀)와 함께라면 추억을 저장하고 감정을 업그레이드 해 줄 것 같다. 이국적인 풍경과 뜻하지 않는 기대감이 숨 쉬는 제주의 아름다움을 이 책에서 제시한 대안여행지로 선택해서 함께 한다면 색다른 추억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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