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노무현 - 대한민국의 가시고기 아버지
장혜민 지음 / 미르북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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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노무현, 당신을 사랑합니다.

노무현,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을 영원히 사랑합니다.       -당신을 가슴에 묻던 날, 영결식 노제 中 도종환 시인의 말-




2009년 5월 23일, 나는 이날을 잊지 못한다. 거대한 큰마음의 별을 잃은 날이다. 14줄의 짧은 유서만을 휑뎅그렁하니 남긴 채 그렇게 자연으로 돌아갔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질곡과 영욕으로 점철된 애증의 삶을 버리고 창공을 향해 영원히 날아 가버렸다. 당신을 그리워하던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지워지지 않는 굳은 비석만을 세긴 채 말이다.


바보 노무현. 굽히지 않는 원칙과 소신으로 현실에 타협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무너지지 않는 원칙과 신념으로 끊임없는 도전과 저항을 받았다. 혹자는 그를 일러 싸움꾼이라고도 이상주의자라고도 하며 현실을 부정하는 사람이라 비아냥거렸다. 참여정부 내내 괴롭히던 개혁과 보수의 갈등을 통해 그들은 물어뜯고 깎아 내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가진 것 없고 출신이 비천하며 그들과는 다르다는 터무니없는 이유로 천길 벼랑 끝으로 밀어버렸다. 그렇게 우리 사회는 돌려 세우기에 급급했으며 비겁했다.


아직 충격이 가시지 않는 지금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보고자 하는 것은 그를 그리워하고 우상화시키고자 함이 아니다. 그가 걸어 온 인생역정과 생전에 보인 영욕의 삶을 통해 우리를 가둔 허상을 걷어내고자 함이다. 강한 자에게 더 없이 강하고 약한 자에게 더 없이 약했던 강단한 그의 삶이 이제 와서 제대로 보이는 이유도 그것에 있다. 돌이킬 수 없는 값비싼 희생을 치르고 얻은 소중한 가치를 깨우친 우리는 모두 바보다.




그는 전후세대가 그랬듯 지지리도 가난한 유년기를 거쳤다. 단단한 차돌처럼 불의에 저항하는 굳은 신념을 키운 것도 유복하지 못한 환경의 영향이 컸다. 어려운 이에게 선뜻 가진 모든 것을 내 주기를 주저하지 않고 옳지 않다면 쉬운 길도 돌아서 가는 뚝심도 거기서 비롯되었다. 학창시절 그가 겪었던 원칙을 뒤흔드는 부정의 유혹은 어떠한 회유와 협박에도 굴복하지 않았다. 열등감을 극복하고 비겁함을 물리치고 원칙과 신념을 체득한 순간이다.


이렇게 다듬어 그를 세운 이념의 토대는 지난한 세월을 준비하는 발판이었다. 지치지 않는 도전과 열망으로 성취한 사법고시합격은 그를 더 큰 세계로 이끌었다. ‘원진레이온 사건’으로 불거진 계기는 낮은 곳을 대변하는 든든한 횃불이 되게 만든 촉발제가 되었다. 힘없고 가진 것 없는 자들을 위해 개인의 영달과 이익을 모두 버리고 담대한 바보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청문회가 낳은 스타라는 별명을 위시해 그는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한 수구보수 세력과의 지리멸렬한 투쟁을 이어갔다. 철옹성으로 막힌 그들의 아성을 향한 도전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었다. 동서로 갈라진 지역갈등과 계층갈등에 굽실거리지 않았으며, 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도전했던 삶 그 자체였다. 이러한 그의 용기와 희망이 통해서였을까? 그래도 우리는 환멸스럽고 역겨운 구태의 정치를 청산하고 더불어 잘 사는 새로운 세상을 열기를 그를 통해 희망하였다.




권력의 정점에 오른 그는 권력의 시녀노릇을 해오던 검찰, 국세청, 국정원 등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개혁의 성과를 보였다. 어떠한 권력도 이익을 위해서 사용치 않았다. 견제와 균형을 통한 국민이 주인이 되는 참된 민주주의의 얼개를 구축하였으며 공약으로 내건 가치를 하나씩 차근차근 바꾸어 나갔다. 또한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대통합의 정치로 영도적 대통령의 권한을 포기하고 대화를 통한 화합의 장을 달성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하지 못했다. 고용 없는 성장의 늪에 빠져 분배와 성장의 경계에서 심각한 도전을 받았다. FTA 협약 문제, 국민연금개혁문제, 비정규직처우문제, 부동산규제문제, 광우병사태 등 민생과 직결된 민감한 사안에서 이렇다 할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지 못했다.  이러한 허점과 간극은 기득권자와 보수 세력에게는 더 없이 좋은 빌미를 제공하였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아마추어정권이니 무능하고 미숙한 집단이니 운운하며 비하시키며 국민의 눈과 귀를 오도하며 혼란으로 빠트렸다.




호시우행(虎視牛行). 호랑이처럼 보고 소처럼 걷는다는 말처럼 그는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찾고 근원에서부터 신중하게 접근하였다. 이러한 그의 우직한 행보는 즉각적인 성과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씨를 뿌리고 열매를 맺는 과정과 흡사하다. 바로 이것이 그를 있게 한 소신이자 성품이다. 또한 한 가지 일에 쉬지 않고 꾸준하게 매진한다면 마침내 큰일을 이룬다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성정은 인기에 영합하지 않는 인간의 참된 자세를 여실히 보여 주는 대목이다.




그랬을까? 우리의 바람과 기대는 성급한 게눈과 같았다. 어서 빨리 성과를 내놓으라고 다그쳤으며 그들과 달라진 게 없다는 불평과 불만을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냈다. 점점 타성과 광기에 물들어 그의 행보와 거침없는 발언에 불안을 감출 수 없었으며 믿음마저 내던졌다. 지난 600년 동안 이어온 반칙과 편법의 달콤함에 취해 그 고통을 감내하기 힘들었다. 그가 그토록 바라던 건전한 대화와 소통을 통한 상식이 통하는 공감의 물결을 우리 스스로 걷어차 버린 셈이다.




그런 그가 국정을 떠나 15개월 만에 한 줌의 흙이 되었다. ‘노간지’로 ‘노짱’으로 평범한 서민으로 거듭났던 그를 더 이상 볼 수 없다. 그를 키우고 길러 낸 봉화마을의 넉넉한 품으로 돌아갔다. 그를 위협하고 회유했던 수구세력도, 헌정사의 한 페이지로 기록될 탄핵소추도 그를 넘어트리지 못했다. 하지만 그를 지탱했던 국민의 믿음과 신뢰가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공범이다.




이 책이 노무현 대통령을 회고하며 왜 그가 그토록 모진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는지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보수와 진보를 가르고 계층 간 불화를 조장하기 위해서는 더 더욱 아니다. 원칙과 신념이 짓밟히고 이상이 추락한 암울한 세상을 일깨워 주기 위해서이다. 언제나 그가 바라보았던 ‘그 너머’의 상식이 통용되는 부정과 비리가 다시는 발붙이지 못하는 그런 사회를 말이다. 그것이 고인의 큰 뜻이었으리라.




당신을 사랑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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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숲에서 리더의 길을 찾다
조셉 L. 바다라코 주니어 지음, 고희정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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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리더의 역할과 소임에 대해 많은 것을 기대한다. 굳건한 의지와 강인한 실행력을 바탕으로 대중을 이끌어 나가며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하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하지만 이상과는 달리 현실은 그렇지 못하기 일쑤다. 오만과 편견에 빠져 자가당착의 패착을 두는 가하면 유연하지 못한 원칙론만을 고수하며 조직을 침몰시키는 결과를 좌초하기도 한다. 이러한 본질적 갈등의 중심은 리더의 포용력 있는 너른 통찰, 반듯한 윤리의식, 신념, 원칙과 현실의 조화의 문제로 귀결된다.


실제 리더가 갖추어야 할 덕목과 처세의 미덕은 고래로 끊임없이 회자되곤 한다. 리더는 오랜 단련과 무두질을 통해 끈기와 인내를 배워야 하며 그를 통해 윤리적 틀을 장착하고 치우침 없는 판단의 도구로 삼기를 역사는 일관되게 가르친다. 한 인간으로서의 선택과 행위를 떠나 리더로서의 소임과 사명은 엄청난 영향과 반향을 끼친다는 경험에서 오는 방증이다. 리더는 전염성이 강한 뿌리에 다르지 않다.


이 책에서 제시한 문학 속 주인공의 삶은 리더라면 반드시 겪을 현실의 도전과 과제를 공통의 헤게모니로 복기한다. 허상의 세계에 투영된 작가의 경험과 상상이 빚은 캐릭터를 통해 리더의 본분과 가치를 발견하고 지향의 구심점을 찾고자 함이다. 이렇게 저자가 추출해 낸 문학이야기는 공통된 틀과 방향성으로 결박되어 포위당했다. 한 발자국 떨어 져 지긋이 관조하듯 바라보는 상황의 해석은 인식의 객관성을 담보하기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분명 이 책은 여태껏 보아 온 리더의 자세와 소신을 논하는 책과는 사뭇 차별성이 눈에 띤다. 자칫 범하기 쉬운 주의의 열거도 흔히 사용되는 원칙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단지 전 방위적 접근을 통해 추출한 담론만이 오롯이 남는다. 마치 실험대에 오른 개구리처럼 날카로운 메스만이 번뜩인다. 이처럼 저자가 제시한 통찰은 깊고 분명하다. 얼기설기 얽힌 복잡하고 난해한 과정의 불순물을 제거하고 걸러 낸 결과물의 결정체인 엑기스를 최종 수혜자로 달콤한 특권만을 누리기를 바랄 뿐이다.


하지만 비틀어서 곱씹어보면 누구나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받아들여야 피할 수 없는 도전과 현실 문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원칙을 위해 현실을 회피하고 아집과 편견의 악재에 갇히면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내달리기 때문이다. 예는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상황을 판단하는 범주의 잣대를 잃은 리더는 명분의 덫에 걸려 경청의 지혜를 잃게 마련이다. 이처럼 리더는 명확한 신념과 반듯한 고결함을 자양분으로 흐트러진 자신을 곧추세우는 초석으로 작용한다.


책은 9개의 장으로 나누어 8편의 문학을 기반으로 리더를 고찰하였다. 크게 3가지의 틀로 나누어 리더가 부딪히는 공통된 현실 문제를 통해서 윤리의식ㆍ비전ㆍ역할모델의 요구, 리더로서의 자질과 책임감, 원칙과 현실의 조화를 아우르고자 하였다. 여기에 소개된 캐릭터들은 분명한 색깔과 나름의 특성을 갖춘 인물로 허상의 굴레를 통한 현실의 투영이다. 그들을 통해 시각적 차원의 평행선을 넘나들며 본질에 접근할 수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윌리의 집착과 오콩코의 아집은 유연하지 못한 비뚤어진 자질을 여실히 드러낸다. 그들의 방황은 현실과 이상의 경계에서 맴돈다. 이들이 겪은 트라우마는 리더가 갖추어야 할 윤리관의 속성인 명확성과 동기, 우세성의 영향력을 시의 적절하게 보여준다. 겸손과 개방성을 통해 발견된 리더의 길은 어떤 방해물도 성공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음을 이내 깨닫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제리의 회고를 통해 리더를 전환시켜주는 역할모델의 중요성을 발견하고 신중함을 배우게 된다. 신중함은 현실의 압력과 갈등을 푸는 열쇠다. 리더를 채찍질하고 변화시키는 에너지와 같다.


훌륭한 리더에게는 건강한 꿈과 건전한 윤리관, 자기를 자극하는 역할 모델, 일에 대한 강한 헌신이 필요하다. 이러한 내적 자원은 리더에게 방향을 제시하고 영감과 실용적 안내와 돌파할 의지를 제공한다.(p-147)


이렇게 원칙과 소신의 토양을 배양시킨 리더는 자질을 검증 받는 시험대를 거치게 된다. 모두를 배려하고 아우르는 기준을 갖추었는가의 문제와 직결된다. 희생과 헌신을 통해 성공을 쟁취한 먼로에게서, 낯선 사람을 태운 젊은 선장에게서, 성공가도를 달리던 토니에게서, 리더에게 필요한 덕목을 발견한다. 그것은 인내심과 용기, 의지에 달렸다. 무모함과 책임감의 스펙트럼의 양 끝단에서 오는 통합의 요체를 통해 현실을 타개하는 의지를 의미하기도 한다.


자신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고 재능과 추진력으로 사회적 위치에 올랐을 때, 우리는 또 다른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원칙과 현실 사이의 충돌이 그것이다. 이 도전은 강한 개인적 원칙과 진지한 현실적 책임의 직접적이고 피할 수 없는 결과이고 리더의 캐릭터를 시험하는 가장 어려운 테스트 중 하나이다.(p-201)


원칙과 현실을 조합하는 문제는 진정한 리더가 되는 최종 관문이다. 왜곡된 선택은 상황을 혼란에 빠트리고 물과 기름처럼 유리된 현실을 조장한다. 로버트 볼트 <사계절의 사나이>의 캐릭터인 토마스 모어를 통해 발현된 모습은 리더의 본보기에 다르지 않다. 원칙과 현실 사이에 침잠한 채 감추어 둔 리더로서의 의식세계를 분연히 드러낸 본보기로 바로 소신이 잉태한 결과물이다. 반면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 속 캐릭터인 크레온과 안티고네의 그릇된 원칙의 강변(强辯)은 경솔함이 유발한 위험성을 의미한다.


분명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진지한 성찰과 신념을 길러야 한다. 이 책의 전반을 통해 제시된 키워드 또한 겸손과 인내의 제고다.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저자 니체의 의미심장한 글로 문을 닫는 이 책은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리더를 생산해 내는 좋은 예시가 될 것이다. 이는 “우리의 삶의 이야기는 바로 삶이 된다.”는 독일 시인 라이젤 뮬러의 말처럼 문학의 숲은 인간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고 내재된 본성에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내게 ‘길’을 묻는 사람에게 ‘이것이 나의 길이오, 당신의 길은 무엇입니까? “라고 대답한다. 길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p.275, 니체의 어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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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단상을 끼적거린 지 이제 10개월 정도 되어간다. 처음 시작된 의도와는 달리 지금은 주객이 전도되어 버린 양상이다. 무엇을 위해, 어떤 목적으로, 왜 읽어 내는지를 간혹 잊어버릴 때가 있다. 책을 통해 길러 낸 지식이든, 감정이든, 정서의 산물이든 어떤 식으로든 부족함을 채워 준 그것이 사그라져 버릴 때는 안타깝다 못해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안중근 의사는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친다고 했건만 (나의 독서편력은) 부끄럽기 짝이 없다. 내용도 없고 허술하여 부실하기 이를 때 없는 것으로 사상누각에 다름 아니다. 책을 읽어 낸다는 것은 작가의 사유와 철학을 하나의 틀로 묶어 오로지 나의 것으로 바꾸어 나가는 작업을 일컬음이다. 이로써 지식과 정서의 샘물을 마르지 않게 유지하며 인생을 통찰하는 지침대로 사용하기에 이른다. 과연 그렇게 하고 있는가?

물론 다독하는 것이 정석이기는 하나 정독 또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물정의 순간과 변화의 다양성은 부족한 나를 일으켜 세우는 주춧돌이 되기에 충분하며 세상과 소통하는 혼선 없는 주파수다. 하지만 목적 없는 책읽기는 바람에 흔들리는 가지와 같다. 팔랑거리는 귀는 개념을 상실하고 혼탁한 눈은 사실과 의견을 혼동한다. 이렇게 혼동된 조합의 화합물은 올바른 판단을 차단하고 껍데기에 집착하는 동굴의 우상에 갇힐지 모른다.

한 번 즈음 되새기고 넘어갈 문제임은 자명하다. 하여 맹목적인 글 읽기를 배척하고 사유의 확장을 도모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이에 단상을 기록하여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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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라, 잡상인 - 2009 제3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우승미 지음 / 민음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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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불행을 소외의 다른 이름으로 이해한다. 경쟁을 공공의 선으로, 인간이 만든 작위적이고 시니컬한 현실에 동화되지 못하고 굴복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현실과 이상의 관계에서 오는 간극은 채우기조차 요원하다. 경쟁에 내몰리고 속임수와 비겁함으로 무장한 각박한 현실은 삶의 희망마저 감춘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과 타협의 다양성을 구사하는 능력이 있는 모양이다. 불행의 순간에도 사랑과 믿음으로 타오른 희망의 빛을 감출 수 없다.

 


불안과 희망은 한 배에서 나온 운명공동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엎치락뒤치락 어느 것이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네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기준점이 된다. 이 책의 캐릭터들은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다. 소위 잘 나가는 주류사회에 가려진 별 볼일 없는 3류 인생이자 잉여의 산물로 투영된다. 이들을 이어주는 공감의 틀은 그들에게 개껍찔처럼 달라붙은 핸디캡이 생산한 사회적 약자에게 내어 준 지위의 소산이다.

 


저자는 막장인생이나 다름없는 그들을 통해 줄지어 늘어 선 선형의 동질감을 발견하고 블링 블링한 희망을 품는다. 웹에 익숙한 문체와 사실감 있는 간접경험의 소묘는 적절하게 익은 김장김치와 같은 알싸함이 배어난다. 여류작가라고는 믿기 힘든 남성중심세계의 현실감 있는 반영에 절로 주억거리게 만든다. 철저한 사전작업과 고증을 거쳤음을 보여주는 반증이다.  낭중지추처럼 날카롭고 예리하기까지 하며 저자의 깜냥이 대단하다.

 


이야기의 전개과정은 깨알 같은 글씨로 잘 정리된 노트를 보는 것처럼 산만함이 없는 개운함이 주는 특유의 매력이다. 인물에 따라 달라지는 다양성을 자연스럽게 창조하고 추구하고자 하는 의도를 집중과 선택의 황금율로 건져 올린 아이템은 군더더기 없이 뻗어 나아가는 필력까지 엿보인다. 이러한 책은 단숨에 읽기에는 아까움마저 들게 만들지만 어김없이 끝장을 뒤적이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밀고 당기기와 웃겨야 할 때 여지없이 웃음코드를 자극하는 한편의 슬랩스틱의 진수라고나 할까.

 


맛깔스럽게 이야기를 자유자재로 조합하여 이끌어 나가는 글을 볼 때면 시크하다는 표현이 제격이다. 매끄럽게 넘어가는 표현과 단락의 호환을 통해 작가의 관념, 철학과 삶의 경험과 통찰을 오롯이 엿 볼 기회를 잡기 때문이다. 소설은 이런 면에서 본다면 독자와의 직접적인 교감을 쟁취하는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다. 전체를 감싸고도는 가상의 공간을 통해 타자와 소통하는 창구의 중요한 매개체로서, 또한 탁월한 생명력과 공감의 힘을 아울러 가지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불행을 구원할 매개체로 빛과 희망을 동질화 시키는 작업을 은연중에 깔고 간다. 번번이 고배의 쓴잔을 마시는 별 볼일 없는 개그맨 지망생 철이에게서, 지하철 잡상인의 전설적 존재로 분한 미스터 리 사부에게서, 장애로 인해 앞을 볼 수 없는 수지에게서, 수지의 아픔을 나누는 다중장애인 동생 효철과 그의 약혼녀 지효에게서 불행을 끊는 도구로 작용한다. 순수한 빛의 원형이, 희망의 다른 이름임을 선연하게 의미한다.

 


이처럼 일정한 알고리즘으로 연결된 밀접한 관계를 통해 연민과 사랑으로 이어지고 확대재생산 되는 상황은 불가의 연기설(緣起說)의 큰 중심축과 맞닿아 있다. 아울러 저자가 이 책의 모티브로 추출한 지하철은 비유적 의미가 무엇보다 크다. 덜 가진 계층을 대변하는 상징물을 통해 개선하기 힘든 희망발전소가 사라진 탐욕으로 점철된 뒤틀린 사회를 적나라하게 꼬집는다. 아울러 현대적 의미의  해학과 유머로부터 결락된 사랑의 형질에 성큼 다가선다. 어떻게 본다면 실험적일수도 비현실적일수도 있는 세계를 현실로 만든 것은 공감의 힘이다.

 


인간은 고립된 섬과 같아서 혼자서는 살 수 없다. 이해와 타협으로부터 공존의 가치를 배운다. 불행의 힘겨움은 골짜기를 넘어서기 위한 잠시의 고통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소외된 그들 또한 우리의 모습이다. 질시와 반목, 선입견의 색안경은 마음의 장애다. 신체의 장애보다 마음의 장애는 우리 모두를 병들게 한다.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인간의 이중성의 거대담론을 웃음으로 승화시켜 재가공한 이 책, 근간에 보기 드문 수작이라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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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게 말걸기
대니얼 고틀립 지음, 노지양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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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릴 적 기억을 떠올려 보면 어른들은 무애 그리 바쁜지 항상 쫓기듯 살아갔다. 일상에 찌들고 치열한 격정의 삶을 살아 내기 위해 그리도 바빴는지 모르겠다. 그땐 이런 모든 것이 이해하기 힘든 불만이었으며 이해할 수 없는 것임을 기억한다. 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의 나의 삶은 어떤가? 복잡다단한 일상에 숨 돌릴 겨를조차 없다. 어릴 적 나의 눈을 통해 보았던 여유를 잃은 삶, 그 모습이다.

 


왜 나는 여유조차 누리지 못할 만큼 바쁜 삶을 살아갈까? 구렁텅이로 빠져 허우적댈 것을 알면서 말이다. 자분자분 생각해보면 관계와 소통의 문제가 일차적인 원인이다. 상호관계가 원활하지 못하고 편견과 오해로부터 발생한 갈등의 골이 서로를 깊게 갈랐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계의 왜곡은 사회 모든 문제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안다. 기실 따지고 보면 결국 마음의 문제로 회귀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이 책 <마음에게 말 걸기>는 오늘을 사는 우리의 모습을 반영한다. 인간이 성장하면서 겪게 되는 불가피한 상황에 대해 적절한 방법과 해결책을 마음으로 건네어 온다. 갈등, 선택, 집착, 번민, 고통, 불안과 같은 인간 본성에 내재된 다양한 현상들에 대해 저자는 자신이 감내한 현실과 경험을 통해 사색과 통찰로 수정처럼 반짝인다. 이미 알려져 있다시피 저자는 불의의 교통사고로 인해 전신마비상태로 30년의 세월을 감내하였으며 희망이 사자졌을 현실을 뛰어 넘은 입지전적인 인물로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방송인이다.

 


그가 이 책을 펴낸 직접적인 동기는 다름 아닌 마음으로부터의 신실한 귀기울림이다. 저자의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킨 사고로부터의 출발은 힘겨운 투쟁의 과정이기도 하다. 이러한 역경을 이겨내며 그의 가족들과 함께 보낸 세월 동안 순간순간에서 뽑아 낸 조각들을 모자이크한 사색의 도출이기도 하다. 이는 그의 인생역정을 통해 우리의 삶을 회고하며 어느새 모두를 둘러싼 우리의 이야기를 대변한다.

 


전작인 <샘에게 보내는 편지>의 호응에 힘입은 바도 있겠거니와 무엇보다 갈피를 잃고 우왕좌왕하는 현대인들의 걱정과 불안감을 함께 고민하고 인생의 길을 찾아가는 대장정에 더불어 동참하기 위해서가 우선이다. 자신에게 닥친 불우한 현실을 그 누구보다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후회 없는 삶을 살아온 그가 펼쳐 낸 인생여정의 통찰은 우리 모두를 위한 마음의 치유, 그것과 같다.

 


모든 사물의 이치는 흐트러짐에 대비해 균형을 잡기 위한 일종의 제어장치인 평형의 상태로 회귀하려는 티핑포인트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균형과 회귀본능은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지나친 맹신으로부터 오는 부작용으로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실제 이 책에서 드러난 에피소드의 큰 밑그림 또한 사물을 바라보는 현상의 편중과 결핍에서 온다. 이러한 삶의 균형의 난제의 해법은 저자가 파헤친 문제의 이면을 통해 가족 간의 소통과 관계의 참된 원형을 그린다 하겠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나뉘어 마음의 지도를 따랐다. 1부에서는 반목과 갈등을 통해 연결된 상호관계의 다양성을 펼쳐 놓고 문제의 핵심을 직접적인 예시로 고찰한다. 대개 심각한 신체장애를 가지게 되면 자포자기상태에 빠지거나 예민한 상태에 빠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저자는 나락의 순간으로부터 마음 다스리기를 통해 자신을 다독이고 갈등의 열쇠를 찾았다. 그가 발견한 열쇠는 우리는 살면서 항상 상처받지만 그 상처는 항상 치유된다. 이는 우리 모두가 피해갈 수 없는 삶의 과정이다(p.52)라고 일갈한다. 이처럼 고착화된 편견의 관점을 내 안에서 걷어 내어 외부로의 도출을 통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임은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사상과 일맥상통한다.

 


2부에서는 삶의 지난한 고통의 순간을 통해 갈고 닦은 천착한 저자의 마음을 대변한다. 집착으로부터 키운 화를 슬기롭게 다스린다. 마치 달구어진 돌멩이를 한가득 손바닥에 올려 놓고 내려놓을 시기를 찾지 못하는 우매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렇게 불안으로부터의 동요는 마음을 흩트리고 안달 나게 한다. 저자가 짚은 평정의 비밀은 마음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아름답게 나이 들어가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다(p.122)

 


끝으로 3부에서는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능력의 위대함을 설파하였다. 우리의 자의식은 자가치유능력을 통해 외부로부터의 공격과 불안으로부터 나름의 보호막을 가지고 태어난다. 하지만 살면서 파생되는 각기 다른 삶의 단상으로 밀도와 강도의 차별화는 피할 수 없는 진실이다. 침잠한 무의식의 본능은 욕망을 갈급하며 현실을 외면하게 된다. 트라우마를 통해 일그러진 마음은 좀처럼 회복하기 힘든 현실의 반영이다. 그러나 저자는 사소한 상실과 박탁의 순간으로부터 욕망을 다스리고 참는 법을 배운다. 욕망은 그저 약간 고통스러울 뿐(p.200)이며 외려 허상에 불과함을 내포한다.

 


흔히 우리는 사랑이란 미명아래 상대방을 구속하기도 하고 참견하며 못미더워 하는 것을 인지상정의 한 단면으로 받아들이며 우리의 모습이로 착각하고 사는지 모른다. 뿐만 아니라 과신과 집착으로부터 오는 편견의 받침대를 통해 평행의 상태를 추구하는지 모른다. 돌이켜 보면 아집, 불평, 불안이 파생한 삶의 우울한 편린에 불과함을 뒤늦게 깨닫고 어리석음의 그늘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결국 저자의 철학처럼 인생이란 어떻게 사느냐도 중요하겠으나 어떻게 받아들이냐도 그 역시 중요함을 사무치게 일깨우는 책이며 각각의 마음의 지도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켜주는 최첨단 내비게이션과 같은 고마움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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