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노래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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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역사는 남겨진 자에 의해서 기술되고 현재의 흔적을 통해 과거를 더듬는 추적의 지난한 과정이다. 드러난 사실이나 결과도 현장성이 부재한다면 과정의 중추를 제대로 읽어 내릴 수 없다. 사실과 결과의 상호연관에서 우리는 모종의 흔적을 발견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과거가 기억한 현장을 현재에 부쳐 사실로 믿게 되며 기록이 된다. 그러므로 역사는 객관성이 전제된 주관적 해석이 박혀 있는 필요의 모순인 셈이다. 어제까지 굳건히 믿어 왔던 가치의 진실이 하나의 사소한 오류로 다시금 해석되고 베어 나가고 살아나가는 현장을 보면 태생적 모순의 환경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역사를 드려다 보는 해석 작업은 다변적 변수를 이용한 하나의 객관적 과정으로 팩트와의 인과적 연결관계를 되살리는 작업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 

 

그러하기에 어떠한 방식으로든 기록된 사실을 토대로 뼈대를 맞추며 살을 붙이고 형상을 만든다는 것은 매우 힘겨운 작업임에 틀림없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보다 오히려 더욱 심오한 작업이 선행되어야 하는지 모른다. 그것은 동일한 결과가 어떤 지점에서 연유하여 흘러 나왔는지를 묻는 것이 아니라 과정의 인과관계를 묻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 <칼의 노래>는 역사소설의 축을 따르지만 전혀 뜻밖의 곳에서 의도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과감함을 생생하게 여쭌다. 마치 경험하지 못한 자를 위해 현장의 살아 움직이는 숨결을 한 움큼 끄집어 와 소중히 들쳐 향유케 하는 그런 수고스러움이 전체를 아우른다. 따라서 팩션은 사실을 배제하고는 힘을 얻지 못한다. 사실과 재창조가 조화를 이룰 때 하나의 새로운 사실로 인식되는 바탕이 되는 것이며 상황을 제대로 보는 얼개에 다름 아니다.

 

이순신은 그 유명함을 언급할 필요조차 없이 우리나라의 얼이자 기개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이순신의 업적은 뛰어난 전략적 전술로 세계사에 유래가 없는 대승을 이뤄 낸 것을 필두로 그의 리더십, 통솔력, 강인함 등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남다름을 보였다.  이러한 사실은 글을 지어 만드는 사람에게는 엄청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자칫 편향된 방향으로 흐르면 돌이킬 수 없는 비판과 통속소설의 한계를 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훈 선생은 이 책을 통해 성웅 이순신의 새로운 면모를 부각시키는 작업을 완벽에 가깝게 소화해 냈다. 바로 인간 이순신의 모습과 정체성의 다각적 분석이다.

 

우리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경계에서 산다. 또한 드러난 사실과 드러나지 못한 사실에서, 보이는 것과 드러난 것에 의지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순신 장군의 인간적 고뇌와 번민을 보듬기보다 그 공과에 더 열광하는지 모른다. 베지 못하는 적과 벨 수 없는 적의 차이를 단 한 줄의 문장으로 완전하게 연결시키는 김훈 선생의 글이 아니었다면 우리에게 이순신 장군은 어느 영웅과 단 1g으l 차이도 없는 역사가 기억한 인물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은 지우고 쓰기를 무던히 반복하며 각고의 시간을 통해 완성된 노작가의 노고가 가득 담긴 작품이다. 한 줄 한 줄 읽는 이로 하여금 보이는 것의 오류를 치유하는 역동의 에너지로 충만하다. 절제된 언어의 사용과 조화로운 문장력은 글에 날개를 달고 창공을 나는 디딤돌이 된다. '버려진 섬에도 꽃은 피었다.'로 시작하는 책의 서두는 시대적 상황, 계절적 변화, 화자의 심정 등을 그 어느 것보다 잘 대변해 준다. 이와 같은 사물에 의한 상징적 상황설명은 이순신의 번민의 순간을 통해 적절하게 부각됨을 볼 수 있다. 번민은 누구나에게 있는 지극히 대중적이며 인간적인 본성이다. 상황적 지배를 해소하려는 인간적 노력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그래서 김훈 선생은 청정수를 애타게 갈구하던 이순신 장군의 갈증상황을 통해 갈등을 일시에 해소하려는 희망과 바람을 포개어 놓았는지도 모른다.

 

또한 이순신장군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대결상황에서 고뇌하며 표리부동하는 현실에서 갈등한다. 구국을 위한 충정과 백성을 걱정하는 마음에서의 갈등과 외부의 적과 내부의 적으로 둘러싸인 숨 막히는 순간을 끊임없이 되풀이한다. 이러한 무한 압력이 지속되는 상황에 굴복하지 않고 스스로 극복하였기에 이순신 장군이 더욱 우러러 보이는 인물인 것은 모두 아는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과정의 던적스러움을 이성적으로 이해하나 감성적으로는 그다지 교류하지 못한다. 김훈 선생은 지독한 안개와 같이 온몸으로 퍼지는 이순신 장군의 몸 속 깊이 스며든 아픔의 후유증을 간결한 형상화를 통해 심경을 적절하게 대변해 준다.  이처럼 전기소설의 형식을 표방하며 유지하는 이 책은 더 나아가 인간을 이해하고 인간을 보듬는 성격소설에 가깝다.  그래서 김훈 선생의 글은 더욱 빛을 발한다. 노을이 쓰러지고 일어나는 현상의 다채로움을 통해 인간적 변화를 형상화에 가 닿는다는 것은 세밀하게 구구절절 읊어 나가는 상황적 설명보다 더욱 힘을 얻는다. 굳이 일러 주지 않아도 통한의 아픔과 나아가지 못하는 자의 슬픔을 몰입하여 전달해 준다. 이러한 모든 문장들이 합해지고 더해져 비로소 인간 이순신으로 대면하게 되는 순간의 기쁨을 우리는 접하게 되는 것이리라.

 

이처럼 장면 장면 펼쳐지는 인간적인 모습은 이순신 장군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좋은 밑바탕이 된다. 자신의 셋째아들 면의 안타까운 죽음에서 드러내지 못하는 슬픔을 통해서도 그렇고 가뭄과 적의 약탈로 굻어 죽는 이가 속출하는 과정에서도 자신들의 주린 배를 채우는 역설적인 상황에서도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이해할 수 있다. 비록 가설적 상황이 주는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충분히 짐작 가능한 대목이기에 공감의 효과는 더욱 극대화된다. 이순신 장군이 왕(선조)의 정치적 상황에 춤추는 모습에서 안타까움을 느끼고 명나라의 간교한 참여를 통한 탐욕적인 속내에 혐오를 공유하게 만든다. 또한 김훈 선생은 후각적 채취의 정서적 교류를 극대화시키는 작업을 잊지 않았다. 아들 면의 비릿한 젖내음과 연민의 정으로 품었던 여진의 젖국냄새, 아궁이처럼 솎아 붙은 어미의 채취를 통해 인간미를 더욱 진하게 우려낸다.

 

벨 수 없는 것과 벨 수 있는 것의 경계는 삶과 죽음의 변주다. 전쟁의 상황은 오직 죽음과 삶만이 교차한다. 이순신 장군은 필사즉생이면 필생즉사의 심정으로 극한의 순간을 견뎌냈다. 적에게 다가 서지 못하는 번민의 심경을 칼에 새겨 오염된 조국의 바다를 적의 피로 물들이려는 염染의 절박함은 겪어 보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는 생경함이다. 긴장의 고삐를 놓을 수 없는 순간을 마치 그 계통의 무모함을 이해하려는 포용의 심정이다. 이렇듯 이 책을 아우르는 인간적 채취는 인간을 매료시키고 실존적 고뇌를 이해하는 대작임에 틀림없다. 칼의 몸부림을 통해 '징징징' 울리는 서슬 퍼런 소리는 인간의 희로애락이 오롯이 담겨 숨 쉰다. 인간의 유약한 현실과 불투명한 미래를 푸는 열쇠를 찾기 위해 무단히 고뇌하던 성웅 이순신을 통해 우리는 많은 것을 상념하게 된다. 그러하기에 이 책,<칼의 노래>는 남겨진 자가 먼저 간 이에게 바치는 노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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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아이즈 2010-01-28 0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전, 칼의 노래 이 첫 문장을 저~얼~대 잊을 수 없습니다. 소설 문장을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라는 충격을 받은 이래 김훈이라면 누가 뭐래도 신뢰합니다. 그가 마초든, 허무주의자든, 방관주의적 밥벌이주의자든...
그나저나 코스모스 배달되어 왔던데 기겁할 뻔 했어요. 엄청난 두께더군요. 토론용으로는 무리이겠고, 덕분에 혼자 야금야금 파먹겠습니다.

穀雨(곡우) 2010-01-28 08:57   좋아요 0 | URL
김훈 선생님의 저 첫문장이 모두를 사로잡았더군요. 언어의 미학의 경지, 뭐 그런...^^
마치 시로 소설을 쓴 것처럼 말이지요. 전 학창시절 배운 김수영 시인의 <풀>을 대하는
느낌처럼 그렇더군요.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이야기 속 곳곳에 배치된 김훈선생의 필력이 무엇인지, 이번에 새삼 느꼈지요.

아, 코스모스가 두께감이 있다는 말씀을 제가 드리질 못했군요. 제가 괜히 일만 번거롭게 만든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한번은 읽어봄직하기에 그것으로 위안을 삼으시길....^^

 
코스모스 - 보급판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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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의 깊음을 흠모하고 그 알 수 없는 존재감에 빠져 들지 않은 이가 있을까? 점점이달리 듯 박힌 억겁의 별들 사이로 상상을 쫓던 기억이 아득하기만 하다. 인간이 어디서부터 생겨났든 어디로 흘러가든,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존재의 힘은 인간을 우러르게 한다. 그런 광활한 우주를 이제야 보았다. 카오스의 격렬한 몸부림으로부터 촉발된 코스모스의 거대한 힘을 나는 이제야 보았다. 내가 태어나기 훨씬 오래 전부터 있었으며 앞으로도 계속 될 존재이며 나 또한 코스모스로 돌아 갈 가이아, 어머니의 품처럼 말이다. 

 

칼 세이건은 20세기가 낳은 최고의 천문과학자다. 그가 이 책 <코스모스>를 통해 보여 준 업적은 베일에 싸인 우주의 비밀과 인간의 존재의미를 전 세계로 전파시켰다.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 열기가 식을 기미조차 없다. 마치 수소의 핵융합반응으로  엄청난 에너지를 통해 남은 재에서부터 인류가 기원되었다는 진실처럼 놀라움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하다. 칼 세이건이라는 석학의 손을 통해 인류는 우주를 향한 발걸음을 진일보하였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코스모스>는 지난 1976년 텔레비젼 프로그램으로 기획되어 전 세계 60개국, 6억 명의 시청자를 끌어 모은 대단한 위력을 발휘했다. 우주개발이라는 시대적 사명에 부흥했던 것도 이유겠지만 우주의 발생에서부터 인류의 기원에 이르기까지 전 방위의 학문적 제 영역을 넘나들며 아우르는 방대함에 열광했던 것이 주효했다. 실제 당시의 미국과 구소련의 우주프로젝트는 정치적, 경제적 함수를 포함한 외부적 압력이 컸던 것도 사실이다. 군비경쟁을 위한 구실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우주개발계획은 일정부분 정치적 압력아래 있었다. 이러한 외부변수에 의한 변질된 상황을 획기적으로 바꾸고 인식의 패러다임을 전환하게 된 큰 길라잡이가 바로 <코스모스>다. 인간을 이해하고 우주를 경영할 책을 꼽는다면 단연 이 책이다.

 

코스모스는 카오스의 반대어다. 질서와 혼동은 양날의 검처럼 공세와 수세를 함께 도모한다. 명멸할 듯 꺼지는 별의 최후는 초신성으로 분해 신명의 빛을 토해 낸다. 유는 무로 바뀌고 무는 다시 유로 변환한다. 힌두교의 진언처럼 영원한 억겁의 순리처럼 순환되고 반복되는 체계적 질서를 의미하는 것이 곧 코스모스다. 이처럼 지극히 완벽한 상태를 추구하려는 코스모스를 칼 세이건은 힌두교의 사상에서 해답을 구했다. 아무것도 없던 암흑의 저 편에 대한 추적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자가당착의 모순에 빠진다.

 

때문에 인간은 하늘을 경외하고 신의 영역으로 격상하려는 노력을 현재도 진행 중이다. 칼 세이건은 종교를 부정하지도 긍정하지도 않았으나 우리가 모르는 차원의 존재의미를 열어 두었다. 이 책을 관통하는 유물론의 기저 또한 미답의 문제를 자연스럽게 넘기는 윤활유 역할을 해 주며 우리를 끝없는 우주의 바다로 인도한다. 이에 더해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가 더욱 매력적인 이유는 유려한 글쓰기에 있다. 영혼에 호소하고 인간이 밝힌 모든 것들에 겸손함을 불러일으키는 그의 글쓰기는 천부적 능력에 다름 아니다.

 

책은 전체 13부로 나뉘어 TV시리즈물과 궤를 같이 하였다. 우주의 시원(始原)을 통해 천체의 모습, 행성과 별의 식별, 태양계의 생성, 생명의 출현, 우주의 진행, 별의 생애 등을 상세하고 유기적으로 풀어 차근차근 나열하여 알기 쉽게 설명하였다. 책을 통해 칼 세이건은 과학하기의 존재의미를 부각시키고 인간을 향한 계몽의식을 제고하기를 강력하게 희망하며 호소한다. 케플러의 법칙을 통해 견고하기만 하던 우주의 빗장이 스스로 풀려 버린 것처럼 칼 세이건은 인간이 코스모스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알려진 유일한 존재에 감사하고 겸허함을 도모하기를 바란다.

 

인간이 진화의 대변혁을 거쳐 완성된 유일무이한 종임에는 틀림없다. 그 근본이 어디에 가 닿든 현재의 인간이 미래의 또 다른 진화의 시계에 어느 종보다 앞서는 것은 사실이다. 우주력에 비한다면 찰나에 불과한 시간이겠으나 그동안 인간이 폭발적인 능력을 발휘하여 현재를 이룩한 성과는 주목할 만한 결과치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인간이 앞으로 밝혀 내야할 영역 또한 무한하다는 것도 미래를 불가해한 영역으로 내모는 미지의 영역과 같다. 이러한 심연과도 같은 인간의 미래를 칼 세이건은 이제 시작된 인간의 무한 가능성에 무게를 두었다. 우리는 더욱 전문화되고 체계적인 접근과 방법으로 미지의 세계를 정복해 나갈 것이며 그 중심에 인간의 뇌가 촉수처럼 가동되는 우주선의 사령탑이 될 것이다.

 

세이건은 과학자이기 이전에 민주주의의 신념을 믿고 환경의 소중함을 부르짖던 철저한 환경주의자였다. 인간이 코스모스로부터 발견하고 발명한 기계화로 인한 지구 온난화를 치유하는 길이 급선무임을 설파하였다. 또한 종교 근본주의자들의 극단을 치닫는 위험천만한 행동을 누구보다 우려하였다. 그러한 우려를 반증하듯 2001. 9. 11. 테러사건은 인류의 삶을 벼랑으로 몰고 그 상황을 악용하는 정치적 시도는 지금껏 쌓아 온 성과를 무참히 짓밟는 행위임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불을 다스리고 빛을 넘어서며 중력을 극복하는 과학의 혜택도 인간을 향하는 무자비한 살육도구와 뿌리가 같음을 칼 세이건은 염려하였다.

 

어찌 보면 인간은 자신이 만든 제도와 규범 속에서 지리멸렬한 투쟁을 계속 이어 나가는지 모른다. 칼 세이건이 코스모스를 통해 드려다 본 진실의 정체도 인간의 이중성에 방점을 찍는다. 인간이 수천 년을 이어 온 압력과 탐욕에 굴복하지 않고 저항할 수 있었던 것도 인간이기에 가능했다. 우주 혼돈의 순간에 심연을 떠돌던 티끌이 모여 터지고 식기를 반복하면서 탄생된 지구도 그 숙명의 과업을 시나브로 이어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미 인류가 지워져 버린 무지의 천년을 극복하고 일보후퇴 이보전진의 기치를 이어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수천억 개가 넘는 별을 거느린 우주에서의 정체성을 찾을 날이 오지 않겠는가. 이 모든 순간을 칼 세이건은 바랐고 이 책이 앞으로도 생명력을 잃지 않을 원동력이다. 

 

이 책을 과학도서로 묶어 두기에는 그 가치나 위용이 너무도 찬란하다. 우주를 이해하기를 원하고 인간이 무엇인지를 되새기기 위해서는 이 책에게 묻는 것이 선답(先答)이겠다. 그리하여 시대착오적인 색깔론으로부터 하루 빨리 벗어 나는 길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 급선무다. 해서 인류의 대승적 통합과 융합을 통한 상생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인류가 나아가야 할, 21세기를 살아 가는, 방향이자 지향점이다. 이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며 이 책에 해답이 있음은 중언부언임은 두말할 나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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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아이즈 2010-01-21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곡우님 글쓰기 굉장히 정제되어 있어서 볼 때마다 부럽습니다. 그나저나 이 책 토론도서로 활용해도 될까요? 주부들 상대로 부담스러울까요?

穀雨(곡우) 2010-01-21 23:03   좋아요 0 | URL
정제되어 있다는 말씀이 왜 이렇게 낯선지요. 어느 늙은 작가가 그러더군요. 쓰고 뭉개기를
골백번을 더해도 미덥지 않은 것이 자기의 거친 글이라고 말이지요. 전 여태껏 제 글에 잔뜩
묻은 무거움을 빼려 노력하지만 너무 힘이들더군요.

그리고 이 책이 어느 단체, 누가 선정한 우수도서라서이기보다 접근대상의 호응도가 더욱
중요할 것이라 보이는데요. 주부이기 이전에 인간을 탐구하고 배운다면 전 좋을 것으로
보입니다. 7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 속에 먼 별나라 이야기만 가득하다면 아무리 좋은
이야기도 흥미를 반감시킬겁니다. 그러나 이 책은 물리학, 기하학, 생물학, 유전자학,
인류학, 천체학, 화학 등 두루두루 그 깊이를 넘나드는 옹골짐이 좋습니다.

아울러 세이건의 탐나는 글쓰기의 전형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기에 읽는 재미도 더욱
좋으리라 생각됩니다. 전 천천히 아주 꼭꼭 씹어서 읽었습니다. 제겐 좋았습니다.

2010-01-22 17: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22 17: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다 민음사 모던 클래식 10
재닛 윈터슨 지음, 김은정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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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을 때 인간은 더 없는 만족감을 향유한다. 태고적 신비가 진화라는 기억 속에 풀린 그 순간부터 사랑은 인간을 진화케 만들었다. 아마도 인간은 파충류의 냉혈동물에서 포유류의 온혈동물로 진화가 촉발되면서 사랑이라는 미묘한 화학작용을 잉태하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의 통념 상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경계가 어디쯤인지는 부지불식간에 스며드는 빗물처럼 무의식의 영역에 가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정상적인 인간의 삶을 산다는 것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 객체가 동성이 아닌 이성에 가 있어야 한다는 필연적 귀결에 빠진다. 그런데 만약 내가 이성이 아닌 동성을 연모하고 사랑한다면?

 

이처럼 인과율의 법칙에서 벗어나는 상황은 음으로 양으로 생겨난다. 인간이 만든 제도의 통념이 허락을 하든 말든 반드시 생겨난다. 그렇다면 동성을 사랑하는 감정이 돌연변이에나 해당하는 비정상적인 감정의 변이일까? 동서고금을 통틀어 성 정체성에 대한 논란은 종종 암묵적으로 거론되며, 드러내 놓고 공론화하기에는 뜨거운 감자로 제도의 틀, 즉 경계 외부의 일로 치부되곤 했다. 비록 누군가의 아픔일지라도 제도에 흡수되지 못한 그들만의 아픔으로 외부적 압력에 의해 축소되기까지 했다.

 

문화가 성숙하고 인간의 관습이나 제도 또한 변화된 최근에는 그 사정이 달라졌다. 커밍아웃을 선언하며 공공연히 자신의 성 선택권에 대한 행복결정권을 만천하에 공포하는 연애인에서부터 소리없이 자신의 성 혼란에 따른 부작용을 극복하는 단체까지 생겨났으니 말이다. 이 책 <오렌지만이 과일이 아니다>는 출간된 지 4반세기 정도 되었다. 한 소녀의 성 정체성을 사실적으로 그려 호평을 받은 책이다. 저자 지넷 윈터슨의 자전적 소설로도 유명한 이 책은 제2의 버지니아 울프로 추앙받을 만큼 문단의 주목을 한몸에 받았다. 사실에 기반한 허구와 실제를 오가는 감정의 리터칭은 읽는 이의 마음을 공감으로 이끌어 낸다. 

 

저자 지넷은 작중 주인공인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이 만든 제도와 관습에 대해 심오한 물음을 던진다. 인간은 불투명한 미래를 극복하고 현실의 불안정을 타개하기 위한 방편으로 신에 기대고 종교에 심취한다. 그러나 종교에 대한 신실한 믿음이 주는 외경심으로 인해 판단의 가치가 전도되는 경우도 자주 발견된다. 배척보다는 포용을, 갈등보다는 이해를 종교의 실제적 행위가치라면 이단과 비정상에 향하는 시선은 사뭇 다르다. 결국 저자 지넷이 이 책을 통해 무미건조할 만큼 담담히 그려 간 이야기의 중심은 관습과 미덕이 주는 경계의 속박에 가 다다른다.

 

이러한 저자의 속내가 이야기 곳곳에서 쉽게 모습을 드러낸다. 구약성서에서 따 온 전개방식, 책 속의 또 다른 액자형 이야기인 '아서 왕과 원탁의 기사', 그리고 위닛 스톤자와 마법사의 동화 등은 좀 처럼 보기 힘든 구성방식이다. 소통되지 못하는 폐쇄된 사회에 대한 작가 나름의 특이한 접근방식쯤이라고나 할까. 중심 축과 배치되는 갈등상황은 인간의 광기와 난폭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지넷이 친구 멜라니를 사랑하면서 주류에서 밀려나고 배척당하는 상황을 여과없이 투영한다. 이러한 관습에 대한 도전 내지는 파괴의 객체로 몰리는 현상은 당시의 종교적 폐쇄성에서도 이유를 찾게 된다.

 

지넷이 친모에게서 버림받고 독실한 기독교 가정으로 입양되며 지넷의 양모가 광적일 정도로 삶을 지배당하는 인물로 그려지는 것은 저자가 문제시한 그 사회가 처한 문제의 출발선에 대한 줄긋기이다.  저자의 줄긋기 작업은 집단적 의식과 관습의 충돌에도 그어진다. 소규모 집단일수록 평범함이 오히려 비정상으로 취급받기도 하고 일반적 통념이 배척당하기 쉽다. 그것이 하나의 목적을 추구하는 집단일수록 더욱 취약하다. 이런 사회일수록 비정상적인 행동은 너대니얼 호손의 <주홍글씨>에서 본 혹독한 판단과 증오로 불타오른다.

 

따라서 집단적 무의식 상태나 다양성이 공존하기 힘든 상황에서의 미덕은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는 수동적인 자세에 국한된다. 지넷은 위닛 스톤자의 딸이 관습을 부정하며 신세계를 찾던 모험심에 경의를 표하며 현실에 맞선다. 이 책이 젊은 고전에 반열에 오른 이유는 다름 아닌 인간 본성의 내밀함을 수면 위로 끌어 올렸다는 대담함이다. 타자에 대한 반목, 알력이 적절하게 뒤엉켜 인간 사회의 한 단면을 세밀하게 해부하였다는 것도 이유다.

 

또한 이 책의 제목인 오렌지는 상징적인 소재라는 것은 충분히 인식된다. 오렌지의 속살이 벗겨지고 울툴불퉁한 외피가 오롯이 말랑말랑한 내피로 탈피할 때 인간이 바라 본 표리부동한 현실과 조우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적 바탕은 저자가 목도하고 경험한 현실과의 합일된 소재로 부합한다. 오렌지가 주는 일반적 관념에 더해 다양한 과일이 존재하는 현실상황이 비주류로 밀려난 그들에 대한 포용력을 내심 바라는 의도된 장치다.

 

법이나 종교, 윤리, 제도 등은 항상 옳을 수는 없다. 인간이 가진 존엄성에 비한다면 하찮은 인간의 발명에 불과한 도구일 뿐이다. 만인에 대한 행복을 위해 소수의 행복을 져 버릴 수 없듯 우리 사회는 다양한 개성으로 뭉친 인간들이 공존한다. 주류와 비주류로 나누기 이전에 모두 같은 인간임을 상기한다면 관점에 따라 그 경계나 틀도 변화될 것이다. 이처럼 지넷 윈터슨이 쓴 이 책 <오렌지만이 과일이 아니다>는 제목이 주는 독특함 만큼 생각의 알맹이를 다량 함유하고 있는 잘 만들어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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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아이즈 2010-01-20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쓰는 님 눈여겨 보고 있어요. 오렌지만이 결코 과일이 아니죠.
김조광수 감독의 친구사이 보고 싶은데, 가까운 도시 아트홀에는 벌써 내린 것 같아요.

穀雨(곡우) 2010-01-21 08:52   좋아요 0 | URL
꾸준히 다녀 가는 분들이 계신다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지켜 보고 계신 줄 몰랐네요.
부족한 글, 좋게 봐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예산 노개런티 영화는 가뜩이나 설 곳이 없는 것 같아요. 교차상영의 덫에
막대한 배급사도 기우뚱하는 형편이니 말이지요.
 
버핏 - 21세기 위대한 투자신화의 탄생
로저 로웬스타인 지음, 김기준 외 옮김, 최준철 감수 / 리더스북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흔히 워런 버핏을 두고 투자의 귀재라고 말한다. 살벌한 투자의 세계에서 엄청난 수익률을 오랜 세월 유지할 수 있는 그의 성공을 가리켜 한 말이다. 실로 그가 이룬 성과는 전대미문의 일로 그 가치를 측정키 어렵다. 누구나 닮고 싶을 만큼 그의 투자 철학과 통찰력은 비범함을 넘은 예측불가능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래서 생존하는 인물로서는 드물게 수없이 많은 평전들이 넘쳐난다. 그가 걸어 온 삶을 통해 소신 있는 가치관, 믿음의 실천, 비범한 역량을 아우르는 특별함을 배우고자 함이다. 이러한 모든 관심은 흔들리지 않는 원칙이 만든 변주곡이다.

 

이 책 <워런 버핏>은 1995년에 출간되어 현재까지도 꾸준히 판매되고 있는 스테디셀러다. 그런 만큼 이 책은 버핏을 이해하는 등가공식의 중요한 변수를 모두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저자 로웬스타인의 자연스럽고 매끄러운 전개로 인해 버핏의 세계를 균점한 상태로 만날 수 있는 보기드문 기회를 제공한다. 아울러 숲과 나무를 골고루 완상할 수 있게 하며 핵심적 가치를 짚어 내는 데 주력하였기에 인간미 넘치는 버핏을 재미나게 만나는 잘 다듬어진 평전으로서 손색이 없다.

 

워런 버핏을 연상하면 버크셔 헤서웨이, 찰리 멍거, 벤자민 그레이엄, 버핏투자조합, 버핏의 사람들을 쉽게 떠올리게 된다. 버핏에게서 사람은 중요한 자산이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존재였다. 한번 맺은 인연은 어지간해서는 흔들리지 않는 무한믿음으로 오래도록 그가 성공의 배를 운항하는 요인이었다. 그러한 결과로 10달러에 불과하던 버크셔 헤서웨이의 가치를 10만 달러로 탈바꿈한, 꿈의 실현이다. 이것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복리의 마술, 스노우볼효과다.

 

그렇다면 버핏이 남달랐던 근본적인 차이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책은 그의 유별난 성장배경과 그로 인해 생성된 강인한 의지력에 포커스를 맞춘다. 무엇이든 호기심이 왕성하였으며 항상 집념에 불타올랐으며 호승심 또한 대단한 버핏이었다. 또한 개념과 원리를 터득하는 사고력이 뛰어나 스스로 경제의 원리를 터득하고 어린 나이부터 신문배달, 구슬게임기사업 등 다양한 경험을 축적하여 경제관념을 현실에서 체득하였다. 이러한 끊임없이 도전하는 불굴의 의지가 오늘날의 버핏을 있게한 커다란 이유 중 하나다. 습관이 성격을 만들고 성격이 인생을 지배한다는 명제처럼 그의 삶을 지배한 능동적 사고방식은 그를 만들어 낸 또 다른 이유다.

 

오늘날 버핏의 성공의 원천이 타고난 성격과 후천적 성격이 근간을 이루었다면 그 나머지는 벤자민 그레이엄교수로부터 감명받은 이론적 단단함에서 찾을 수 있다. "담배꽁초이론"으로 유명한 내재된 가치보다 저평가된 주식들만 골라 투자하는 것으로 잠재된 시장가치를 발굴하는 투자개념이다. 당시 어느 누구도 관심 갖지 않던 불모지나 다름없던 꽁초이론은 혁신적인 발견과 유사했다. 이에 버핏은 그에 안주하지 않고 가치투자라는 상대적 개념을 탄생시켜 효율적경제시장이론을 보기 좋게 날려 버리며 계속 기업으로서의 존재가치를 일깨운다. 이러한 이유로 버핏의 성공의 출발의 경계는 여기서부터다. 아울러 이론적 토대가 세워진 시기도 이때부터다.

 

버핏은 벤자민 교수의 이론을 더욱 발전시켜 "유료다리이론"으로 계승시켰다. 불가피한 상황에서 독점적 공급이 허용될 수 밖에 없는 시장의 형태와 메커니즘을 분석해 그 속에서 숨은 보석을 발굴한 접근방식이다. 물론 그가 이러한 접근방식이 일부수단에 불과했음은 당연했으며 불안정한 시장상황을 역으로 지배하는 힘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드라마틱하거나 마법 같은 투자스타일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원칙을 지키고 단기적 변화와 위협에 굴하지 않는 소신과 신념이 만든 합작품으로 어떤 법칙보다 우월한 이유다. 이것이 버핏을 추종하게 만드는 동인이며 그를 현인으로 추켜세우는 원동력이다.

 

또한 버핏은 통 큰 기부가로 유명하다. 상속세폐지를 반대하며 부의 세습을 막고 자본주의의 배금주의사상을 철저히 배제하고자 했다. 그는 재산의 80%를 넘어서는 어마한 금액을 빌 게이츠부부의 재단에 기부하며 그는 은연히 숨었다. 기부도 생색내며 정치적인 수단으로 이용하는 세태와는 너무도 동떨어진 일로 그의 거대한 배포에 절로 압도된다. 끊임없이 더 가지려 하는 인간의 본성을 자신의 굳은 의지와 신념으로 가볍게 누른 그의 원대함은 살아 있는 현인으로서의 위상, 그 자체가 아니겠는가.

 

이러한 버핏에게도 강점만 가질 수는 없다. 인간이기게 고독하고 부족한 부분은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그의 충동적이고 괴짜 같은 기질은 핸디캡이 되기에 충분했지만 그는 슬기롭게 극복했으며 소신 앞에서는 맥을 못 췄다. 항상 그를 걱정하며 도움을 주는 진심어린 사람들 한가운데 있었다. 이처럼 인복이 많다는 세속의 관념으로 해석하기보다 그가 가진 편향적인 성격을 노력으로 극복한 결과가 아닐까싶다. 변함없는 검소함, 부자 같지 않은 소탈함이 그가 오래도록 그의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계기이리라. 실제 버핏은 낭만주의자라기보다는 지독한 현실주의자에 가까웠다. 현실에 집착하였으나 원칙은 변하지 않는 카리스마로 때로는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변하는 상대적 가치관이 그의 인생 전반을 지배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버핏의 행적을 통해 전해오는 선물은 무궁무진하다. 백화점에 들러 마음에 드는 물건을 발견하고 누구보다 먼저 집어 든 순간의 기쁨처럼 버핏에게 우리는 감사해야할 지 모른다. 버핏이 단순히 최고의 부자라서이기 보다 그가 추구해 온 이념인 항상성이 그것이다. 자본주의 원리를 누구보다 잘 소화하고 이해한 그의 이념은 더불어 공존하는 새로운 사회의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오블리주 노블레스의 모범을 보인다. 소위 버핏군단이라는 그의 인맥이 견고하게 유지되고 통합되어 나가는 이유도 바로 그가 나눈 이념의 실천이며, 가치투자의 힘이다.

 

버핏에게서 우리는 많은 것을 얻는다. 적재적소에 선택이 필요한 순간에도 원칙을 지키는 강인한 신념과 장기적 접근에 의한 가치있는 담대한 행동을 통해 우리는 이미 반을 이룬 셈인지 모른다. 다양한 선택의 순간에 현명한 결정을 내리고 효율적인 관리를 이끌어 내기 위해 버핏이 고수한 원칙, 즉 기본적인 소신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은 두말할 나위없다. 이러한 모든 투자 철학을 떠나 버핏의 인간미를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이 한 권의 책이 오래도록 사랑받는 이유인지 모른다. 빌 게이츠가 극찬한 이 책 워렌 버핏, 그는 살아 움직이는 성공메이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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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사랑 이야기 - 깨달음의 나라 인도가 전하는 또 하나의 특별한 선물
하리쉬 딜론 지음, 류시화 옮김 / 내서재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인간이 만약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면 이 얼마나 무미건조하고 메마른 삶일까? 사랑이라는 감정이 유발하는 아름다움은 어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그래서 사랑은 위대하고 오래 참는 것이라고 했다. 아마도 인류가 걸어 온 발자취만큼 사랑의 무게나 밀도가 따라 커져 오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아닌 너를 위해 온몸을 다 바쳐 빠져 든다는 것은 인간을 지탱하고 스스로 나아가게 만드는 계기가 아닐까.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류는 진화의 험준함을 넘는 동시에 멸망해 버렸을지 모른다.

 

이처럼 사랑에 관한 에피소드는 연령, 국경, 지역을 불문하고 언제 들어도 애틋하고 가슴 뭉클하게 만든다. 더 나아가 역경 속에서 피워 올린 사랑의 고결함은 순수함에 가깝다. 이 책 <인도의 사랑 이야기>는 지고지순한 인도인의 사랑이야기다. 책 속에 소개된 4편의 남녀 간의 사랑을 노래한 이야기는 오랜 세월 펀자브 지방에서 구전된 이야기다. 이후 수없이 많은 음유시인에 의해 노래되었으며 기라성 같은 배우들과 감독들에 의해 영화화되어 널리 회자된 보기드문 이야기로 그 세월의 두께가 깊고 넓다. 반드시 오래되어야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 속에 담긴 사랑의 위대함과 각별한 정신은 시간의 의미를 퇴색하게 만드는 원형이다.

 

책은 각 편으로 나누어 옴니버스형태로 엮었다. 두 개의 몸, 하나의 영혼 소흐니와 마히왈, 우리는 다시 만나기 위해 태어났다는 사씨와 푼누, 사랑 안에서 성장한 두 영혼 미르자와 사히반, 모든 것을 사랑에 걸어라는 히르와 란자. 각기 다른 인물들이 다른 모습으로 펼치는 사랑의 대 서사시는 그 위대함만큼 사랑의 모습이나 깊이가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들에게서 발결할 수 있는 공통점은 인내하고 이해하는 이타적 행위이자 배려 넘치는 마음이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 노래가 요즘 정서로는 쉽게 이해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수세기 동안 쌓여서 굳어진 특유의 문화와 관습 등으로 인해 정서적 이질감과 간극이 발생하는 것이 되레 자연스럽다. 비록 인도 특유의 계급문화의 영향으로 카스트 제도와 같은 봉건주의 관습이 그대로 드러나기는 하지만 이것이 그들의 사랑의 신실함을 폄훼하거나 반감시키지는 못한다.  오히려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수단이나 목적을 가리지 않고 이기심에서 비롯된 현재의 막장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사랑의 행위가 더 심각한 게 아니겠는가. 그러하기에 마히왈의 신분을 초월한 사랑이야기나 란자의 목숨을 내 건 사랑의 쟁취는 흘려 보낼 이야기가 아니다. 진부하기는 해도 그 순수함만은 경종을 울릴만 하다.

 

옛말에 이르길 사랑과 가난은 감추려 해도 감출 수 없다고 했다. 사랑과 가난이 불편할지언정 온몸으로 뿜어내어 숨길 수 없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은 아픔을 견디게 만들고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며 그로 인해 완전한 하나의 형태의 완벽함을 구현하는지 모른다.

 

사랑에 대해선 세상사람 모두 틀리다.

사랑하는 두 사람만이 옳다.

(책표지 중에서)

 

사랑은 이렇듯 정답이 없다. 묻고 따지기 이전에 직감으로 깨닫는 게 사랑이다. 그래서 사랑에 눈이 멀고 가슴 시려도 그 속에서 피어난 사랑의 열매는 세상 어느 것보다 값지고 귀하다. 이처럼 인도인이 들려주는 사랑이야기의 독특한 매력에 아살해진다. 남보다 나를 더욱 추켜세우는 오늘과 같은 현실에서 좋은 귀감이 될 이야기겠다. 따스한 햇살이 내리 비취는 오후 향기로운 차와 함께 읽으면 제격이지 싶다.  살을 에는 겨울이지만 인도의 사랑이야기에 한껏 취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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