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 보급판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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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의 깊음을 흠모하고 그 알 수 없는 존재감에 빠져 들지 않은 이가 있을까? 점점이달리 듯 박힌 억겁의 별들 사이로 상상을 쫓던 기억이 아득하기만 하다. 인간이 어디서부터 생겨났든 어디로 흘러가든,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존재의 힘은 인간을 우러르게 한다. 그런 광활한 우주를 이제야 보았다. 카오스의 격렬한 몸부림으로부터 촉발된 코스모스의 거대한 힘을 나는 이제야 보았다. 내가 태어나기 훨씬 오래 전부터 있었으며 앞으로도 계속 될 존재이며 나 또한 코스모스로 돌아 갈 가이아, 어머니의 품처럼 말이다. 

 

칼 세이건은 20세기가 낳은 최고의 천문과학자다. 그가 이 책 <코스모스>를 통해 보여 준 업적은 베일에 싸인 우주의 비밀과 인간의 존재의미를 전 세계로 전파시켰다.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 열기가 식을 기미조차 없다. 마치 수소의 핵융합반응으로  엄청난 에너지를 통해 남은 재에서부터 인류가 기원되었다는 진실처럼 놀라움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하다. 칼 세이건이라는 석학의 손을 통해 인류는 우주를 향한 발걸음을 진일보하였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코스모스>는 지난 1976년 텔레비젼 프로그램으로 기획되어 전 세계 60개국, 6억 명의 시청자를 끌어 모은 대단한 위력을 발휘했다. 우주개발이라는 시대적 사명에 부흥했던 것도 이유겠지만 우주의 발생에서부터 인류의 기원에 이르기까지 전 방위의 학문적 제 영역을 넘나들며 아우르는 방대함에 열광했던 것이 주효했다. 실제 당시의 미국과 구소련의 우주프로젝트는 정치적, 경제적 함수를 포함한 외부적 압력이 컸던 것도 사실이다. 군비경쟁을 위한 구실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우주개발계획은 일정부분 정치적 압력아래 있었다. 이러한 외부변수에 의한 변질된 상황을 획기적으로 바꾸고 인식의 패러다임을 전환하게 된 큰 길라잡이가 바로 <코스모스>다. 인간을 이해하고 우주를 경영할 책을 꼽는다면 단연 이 책이다.

 

코스모스는 카오스의 반대어다. 질서와 혼동은 양날의 검처럼 공세와 수세를 함께 도모한다. 명멸할 듯 꺼지는 별의 최후는 초신성으로 분해 신명의 빛을 토해 낸다. 유는 무로 바뀌고 무는 다시 유로 변환한다. 힌두교의 진언처럼 영원한 억겁의 순리처럼 순환되고 반복되는 체계적 질서를 의미하는 것이 곧 코스모스다. 이처럼 지극히 완벽한 상태를 추구하려는 코스모스를 칼 세이건은 힌두교의 사상에서 해답을 구했다. 아무것도 없던 암흑의 저 편에 대한 추적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자가당착의 모순에 빠진다.

 

때문에 인간은 하늘을 경외하고 신의 영역으로 격상하려는 노력을 현재도 진행 중이다. 칼 세이건은 종교를 부정하지도 긍정하지도 않았으나 우리가 모르는 차원의 존재의미를 열어 두었다. 이 책을 관통하는 유물론의 기저 또한 미답의 문제를 자연스럽게 넘기는 윤활유 역할을 해 주며 우리를 끝없는 우주의 바다로 인도한다. 이에 더해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가 더욱 매력적인 이유는 유려한 글쓰기에 있다. 영혼에 호소하고 인간이 밝힌 모든 것들에 겸손함을 불러일으키는 그의 글쓰기는 천부적 능력에 다름 아니다.

 

책은 전체 13부로 나뉘어 TV시리즈물과 궤를 같이 하였다. 우주의 시원(始原)을 통해 천체의 모습, 행성과 별의 식별, 태양계의 생성, 생명의 출현, 우주의 진행, 별의 생애 등을 상세하고 유기적으로 풀어 차근차근 나열하여 알기 쉽게 설명하였다. 책을 통해 칼 세이건은 과학하기의 존재의미를 부각시키고 인간을 향한 계몽의식을 제고하기를 강력하게 희망하며 호소한다. 케플러의 법칙을 통해 견고하기만 하던 우주의 빗장이 스스로 풀려 버린 것처럼 칼 세이건은 인간이 코스모스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알려진 유일한 존재에 감사하고 겸허함을 도모하기를 바란다.

 

인간이 진화의 대변혁을 거쳐 완성된 유일무이한 종임에는 틀림없다. 그 근본이 어디에 가 닿든 현재의 인간이 미래의 또 다른 진화의 시계에 어느 종보다 앞서는 것은 사실이다. 우주력에 비한다면 찰나에 불과한 시간이겠으나 그동안 인간이 폭발적인 능력을 발휘하여 현재를 이룩한 성과는 주목할 만한 결과치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인간이 앞으로 밝혀 내야할 영역 또한 무한하다는 것도 미래를 불가해한 영역으로 내모는 미지의 영역과 같다. 이러한 심연과도 같은 인간의 미래를 칼 세이건은 이제 시작된 인간의 무한 가능성에 무게를 두었다. 우리는 더욱 전문화되고 체계적인 접근과 방법으로 미지의 세계를 정복해 나갈 것이며 그 중심에 인간의 뇌가 촉수처럼 가동되는 우주선의 사령탑이 될 것이다.

 

세이건은 과학자이기 이전에 민주주의의 신념을 믿고 환경의 소중함을 부르짖던 철저한 환경주의자였다. 인간이 코스모스로부터 발견하고 발명한 기계화로 인한 지구 온난화를 치유하는 길이 급선무임을 설파하였다. 또한 종교 근본주의자들의 극단을 치닫는 위험천만한 행동을 누구보다 우려하였다. 그러한 우려를 반증하듯 2001. 9. 11. 테러사건은 인류의 삶을 벼랑으로 몰고 그 상황을 악용하는 정치적 시도는 지금껏 쌓아 온 성과를 무참히 짓밟는 행위임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불을 다스리고 빛을 넘어서며 중력을 극복하는 과학의 혜택도 인간을 향하는 무자비한 살육도구와 뿌리가 같음을 칼 세이건은 염려하였다.

 

어찌 보면 인간은 자신이 만든 제도와 규범 속에서 지리멸렬한 투쟁을 계속 이어 나가는지 모른다. 칼 세이건이 코스모스를 통해 드려다 본 진실의 정체도 인간의 이중성에 방점을 찍는다. 인간이 수천 년을 이어 온 압력과 탐욕에 굴복하지 않고 저항할 수 있었던 것도 인간이기에 가능했다. 우주 혼돈의 순간에 심연을 떠돌던 티끌이 모여 터지고 식기를 반복하면서 탄생된 지구도 그 숙명의 과업을 시나브로 이어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미 인류가 지워져 버린 무지의 천년을 극복하고 일보후퇴 이보전진의 기치를 이어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수천억 개가 넘는 별을 거느린 우주에서의 정체성을 찾을 날이 오지 않겠는가. 이 모든 순간을 칼 세이건은 바랐고 이 책이 앞으로도 생명력을 잃지 않을 원동력이다. 

 

이 책을 과학도서로 묶어 두기에는 그 가치나 위용이 너무도 찬란하다. 우주를 이해하기를 원하고 인간이 무엇인지를 되새기기 위해서는 이 책에게 묻는 것이 선답(先答)이겠다. 그리하여 시대착오적인 색깔론으로부터 하루 빨리 벗어 나는 길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 급선무다. 해서 인류의 대승적 통합과 융합을 통한 상생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인류가 나아가야 할, 21세기를 살아 가는, 방향이자 지향점이다. 이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며 이 책에 해답이 있음은 중언부언임은 두말할 나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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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아이즈 2010-01-21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곡우님 글쓰기 굉장히 정제되어 있어서 볼 때마다 부럽습니다. 그나저나 이 책 토론도서로 활용해도 될까요? 주부들 상대로 부담스러울까요?

穀雨(곡우) 2010-01-21 23:03   좋아요 0 | URL
정제되어 있다는 말씀이 왜 이렇게 낯선지요. 어느 늙은 작가가 그러더군요. 쓰고 뭉개기를
골백번을 더해도 미덥지 않은 것이 자기의 거친 글이라고 말이지요. 전 여태껏 제 글에 잔뜩
묻은 무거움을 빼려 노력하지만 너무 힘이들더군요.

그리고 이 책이 어느 단체, 누가 선정한 우수도서라서이기보다 접근대상의 호응도가 더욱
중요할 것이라 보이는데요. 주부이기 이전에 인간을 탐구하고 배운다면 전 좋을 것으로
보입니다. 7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 속에 먼 별나라 이야기만 가득하다면 아무리 좋은
이야기도 흥미를 반감시킬겁니다. 그러나 이 책은 물리학, 기하학, 생물학, 유전자학,
인류학, 천체학, 화학 등 두루두루 그 깊이를 넘나드는 옹골짐이 좋습니다.

아울러 세이건의 탐나는 글쓰기의 전형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기에 읽는 재미도 더욱
좋으리라 생각됩니다. 전 천천히 아주 꼭꼭 씹어서 읽었습니다. 제겐 좋았습니다.

2010-01-22 17: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22 17:2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