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노래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역사는 남겨진 자에 의해서 기술되고 현재의 흔적을 통해 과거를 더듬는 추적의 지난한 과정이다. 드러난 사실이나 결과도 현장성이 부재한다면 과정의 중추를 제대로 읽어 내릴 수 없다. 사실과 결과의 상호연관에서 우리는 모종의 흔적을 발견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과거가 기억한 현장을 현재에 부쳐 사실로 믿게 되며 기록이 된다. 그러므로 역사는 객관성이 전제된 주관적 해석이 박혀 있는 필요의 모순인 셈이다. 어제까지 굳건히 믿어 왔던 가치의 진실이 하나의 사소한 오류로 다시금 해석되고 베어 나가고 살아나가는 현장을 보면 태생적 모순의 환경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역사를 드려다 보는 해석 작업은 다변적 변수를 이용한 하나의 객관적 과정으로 팩트와의 인과적 연결관계를 되살리는 작업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 

 

그러하기에 어떠한 방식으로든 기록된 사실을 토대로 뼈대를 맞추며 살을 붙이고 형상을 만든다는 것은 매우 힘겨운 작업임에 틀림없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보다 오히려 더욱 심오한 작업이 선행되어야 하는지 모른다. 그것은 동일한 결과가 어떤 지점에서 연유하여 흘러 나왔는지를 묻는 것이 아니라 과정의 인과관계를 묻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 <칼의 노래>는 역사소설의 축을 따르지만 전혀 뜻밖의 곳에서 의도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과감함을 생생하게 여쭌다. 마치 경험하지 못한 자를 위해 현장의 살아 움직이는 숨결을 한 움큼 끄집어 와 소중히 들쳐 향유케 하는 그런 수고스러움이 전체를 아우른다. 따라서 팩션은 사실을 배제하고는 힘을 얻지 못한다. 사실과 재창조가 조화를 이룰 때 하나의 새로운 사실로 인식되는 바탕이 되는 것이며 상황을 제대로 보는 얼개에 다름 아니다.

 

이순신은 그 유명함을 언급할 필요조차 없이 우리나라의 얼이자 기개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이순신의 업적은 뛰어난 전략적 전술로 세계사에 유래가 없는 대승을 이뤄 낸 것을 필두로 그의 리더십, 통솔력, 강인함 등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남다름을 보였다.  이러한 사실은 글을 지어 만드는 사람에게는 엄청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자칫 편향된 방향으로 흐르면 돌이킬 수 없는 비판과 통속소설의 한계를 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훈 선생은 이 책을 통해 성웅 이순신의 새로운 면모를 부각시키는 작업을 완벽에 가깝게 소화해 냈다. 바로 인간 이순신의 모습과 정체성의 다각적 분석이다.

 

우리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경계에서 산다. 또한 드러난 사실과 드러나지 못한 사실에서, 보이는 것과 드러난 것에 의지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순신 장군의 인간적 고뇌와 번민을 보듬기보다 그 공과에 더 열광하는지 모른다. 베지 못하는 적과 벨 수 없는 적의 차이를 단 한 줄의 문장으로 완전하게 연결시키는 김훈 선생의 글이 아니었다면 우리에게 이순신 장군은 어느 영웅과 단 1g으l 차이도 없는 역사가 기억한 인물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은 지우고 쓰기를 무던히 반복하며 각고의 시간을 통해 완성된 노작가의 노고가 가득 담긴 작품이다. 한 줄 한 줄 읽는 이로 하여금 보이는 것의 오류를 치유하는 역동의 에너지로 충만하다. 절제된 언어의 사용과 조화로운 문장력은 글에 날개를 달고 창공을 나는 디딤돌이 된다. '버려진 섬에도 꽃은 피었다.'로 시작하는 책의 서두는 시대적 상황, 계절적 변화, 화자의 심정 등을 그 어느 것보다 잘 대변해 준다. 이와 같은 사물에 의한 상징적 상황설명은 이순신의 번민의 순간을 통해 적절하게 부각됨을 볼 수 있다. 번민은 누구나에게 있는 지극히 대중적이며 인간적인 본성이다. 상황적 지배를 해소하려는 인간적 노력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그래서 김훈 선생은 청정수를 애타게 갈구하던 이순신 장군의 갈증상황을 통해 갈등을 일시에 해소하려는 희망과 바람을 포개어 놓았는지도 모른다.

 

또한 이순신장군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대결상황에서 고뇌하며 표리부동하는 현실에서 갈등한다. 구국을 위한 충정과 백성을 걱정하는 마음에서의 갈등과 외부의 적과 내부의 적으로 둘러싸인 숨 막히는 순간을 끊임없이 되풀이한다. 이러한 무한 압력이 지속되는 상황에 굴복하지 않고 스스로 극복하였기에 이순신 장군이 더욱 우러러 보이는 인물인 것은 모두 아는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과정의 던적스러움을 이성적으로 이해하나 감성적으로는 그다지 교류하지 못한다. 김훈 선생은 지독한 안개와 같이 온몸으로 퍼지는 이순신 장군의 몸 속 깊이 스며든 아픔의 후유증을 간결한 형상화를 통해 심경을 적절하게 대변해 준다.  이처럼 전기소설의 형식을 표방하며 유지하는 이 책은 더 나아가 인간을 이해하고 인간을 보듬는 성격소설에 가깝다.  그래서 김훈 선생의 글은 더욱 빛을 발한다. 노을이 쓰러지고 일어나는 현상의 다채로움을 통해 인간적 변화를 형상화에 가 닿는다는 것은 세밀하게 구구절절 읊어 나가는 상황적 설명보다 더욱 힘을 얻는다. 굳이 일러 주지 않아도 통한의 아픔과 나아가지 못하는 자의 슬픔을 몰입하여 전달해 준다. 이러한 모든 문장들이 합해지고 더해져 비로소 인간 이순신으로 대면하게 되는 순간의 기쁨을 우리는 접하게 되는 것이리라.

 

이처럼 장면 장면 펼쳐지는 인간적인 모습은 이순신 장군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좋은 밑바탕이 된다. 자신의 셋째아들 면의 안타까운 죽음에서 드러내지 못하는 슬픔을 통해서도 그렇고 가뭄과 적의 약탈로 굻어 죽는 이가 속출하는 과정에서도 자신들의 주린 배를 채우는 역설적인 상황에서도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이해할 수 있다. 비록 가설적 상황이 주는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충분히 짐작 가능한 대목이기에 공감의 효과는 더욱 극대화된다. 이순신 장군이 왕(선조)의 정치적 상황에 춤추는 모습에서 안타까움을 느끼고 명나라의 간교한 참여를 통한 탐욕적인 속내에 혐오를 공유하게 만든다. 또한 김훈 선생은 후각적 채취의 정서적 교류를 극대화시키는 작업을 잊지 않았다. 아들 면의 비릿한 젖내음과 연민의 정으로 품었던 여진의 젖국냄새, 아궁이처럼 솎아 붙은 어미의 채취를 통해 인간미를 더욱 진하게 우려낸다.

 

벨 수 없는 것과 벨 수 있는 것의 경계는 삶과 죽음의 변주다. 전쟁의 상황은 오직 죽음과 삶만이 교차한다. 이순신 장군은 필사즉생이면 필생즉사의 심정으로 극한의 순간을 견뎌냈다. 적에게 다가 서지 못하는 번민의 심경을 칼에 새겨 오염된 조국의 바다를 적의 피로 물들이려는 염染의 절박함은 겪어 보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는 생경함이다. 긴장의 고삐를 놓을 수 없는 순간을 마치 그 계통의 무모함을 이해하려는 포용의 심정이다. 이렇듯 이 책을 아우르는 인간적 채취는 인간을 매료시키고 실존적 고뇌를 이해하는 대작임에 틀림없다. 칼의 몸부림을 통해 '징징징' 울리는 서슬 퍼런 소리는 인간의 희로애락이 오롯이 담겨 숨 쉰다. 인간의 유약한 현실과 불투명한 미래를 푸는 열쇠를 찾기 위해 무단히 고뇌하던 성웅 이순신을 통해 우리는 많은 것을 상념하게 된다. 그러하기에 이 책,<칼의 노래>는 남겨진 자가 먼저 간 이에게 바치는 노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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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아이즈 2010-01-28 0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전, 칼의 노래 이 첫 문장을 저~얼~대 잊을 수 없습니다. 소설 문장을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라는 충격을 받은 이래 김훈이라면 누가 뭐래도 신뢰합니다. 그가 마초든, 허무주의자든, 방관주의적 밥벌이주의자든...
그나저나 코스모스 배달되어 왔던데 기겁할 뻔 했어요. 엄청난 두께더군요. 토론용으로는 무리이겠고, 덕분에 혼자 야금야금 파먹겠습니다.

穀雨(곡우) 2010-01-28 08:57   좋아요 0 | URL
김훈 선생님의 저 첫문장이 모두를 사로잡았더군요. 언어의 미학의 경지, 뭐 그런...^^
마치 시로 소설을 쓴 것처럼 말이지요. 전 학창시절 배운 김수영 시인의 <풀>을 대하는
느낌처럼 그렇더군요.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이야기 속 곳곳에 배치된 김훈선생의 필력이 무엇인지, 이번에 새삼 느꼈지요.

아, 코스모스가 두께감이 있다는 말씀을 제가 드리질 못했군요. 제가 괜히 일만 번거롭게 만든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한번은 읽어봄직하기에 그것으로 위안을 삼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