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의 시대 - 누가 세계를 더 가난하게 만드는가?
장 지글러 지음, 양영란 옮김 / 갈라파고스 / 200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모든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적어도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인간들에게 그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며 또한 인간으로서 살아가야할 최소한의 권리이기도 하다. 현재의 우리나라 역시 개개인 모두에게 내일에 대한 희망이 있고 그것을 향해 우리 모두는 살아간다. 적어도 그것이 우리들의 존재이유이며,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전히 지구상의 어느 곳에서는 당장 한끼의 식량이 없어 죽어가는 이들이 존재한다. 그들에게 한끼의 식량은 인간의 존엄성도 희망의 모습도 아닌 생명의 몸부림 바로 그것이다. 이미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통해 기아와 불합리한 세계 식량 문제에 대해 낱낱이 고발하며 문제를 제기했던 유엔 인권위원회 식량문제 특별조사관 장 지글러는 이 책 <탐욕의 시대>를 통해 혁명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진다.

 

"기아는 하루하루 대규모 학살을 저지르지만 이는 냉혹한 현실일 뿐이다. 이 지구상에서는 5초마다 10세 미만의 어린이 한명이 기아로 목숨을 잃는다. 비타민 A의 부족으로 4분에 한명씩 시력을 잃는다."

지구 반대쪽 아프리카나 남미 국가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선은 올곧지 못하다. 우리는 그들이 천성적으로 게으르고 나태하기 때문에 제대로 일을 하지 않고 그렇기에 그들은 늘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알고 있다. 혹은 부패한 정권이 일반 민중들을 핍박하여 소수 권력자들만이 그 모든 부를 향유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장 지글러는 그것이 반은 맞고 반은 틀림을 지적한다. 물론 미국이나 여타 강대국의 입김에 의한 정권이 들어선 곳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구조적인 문제 즉, 가난이 가난을 낳고 있는 끝이 없는 현재의 신자유주의 국제 시장 경제가 주요원인이라 이야기한다. 그것은 현재 지구상에서는 객관적으로 재화가 부족하다기 보다는 그 재화 자체의 공평한 분배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저자는 그 주요 원인을 부채라고 답한다. 강대국이나 그 주요 기업들이 후진국에 빌려준 부채는 해당국의 발목을 죄고 있다. 그 부채를 갚기 위해 농업을 개량할 수도 없고 도로와 같은 사회기반시설에 투자할 수 없기에 생산을 하여도 운송을 할 수 없는 결론에 이르고 만다. 결국 부채는 부채를 낳고 또한 기아를 낳는다. 그리고 후진국들은 그 부채의 덫에서 영원히 헤어나올수 없는 것이 현재의 시스템인 것이다. 현재 세계인구의 1퍼센트가 매년 사망하는데 그중 굶어죽거나 영양결핍이 그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즉, 기아는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커다란 사망원인인 것이다. 우리에게 절망을 주는 것은 바로 그 기아가 인간이 만들어낸 살인무기가 되어버린 부채라는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 또한 공허한 헛소리에 불과하다. 현재의 고통은 영원히 계속되는 고통이며, 어디에도 희망은 없다."
살인은 어떤이가 다른 어떤 이를 죽이는 행위를 말한다. 즉, 저자 지글러가 부채를 살인이라 한 것은 누군가에 의해 그 행위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일컫기도 한다. 다시 말해 살인을 막을수 있는 것처럼 기아 역시도 얼마든지 막을 수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상호성의 단절과 구조적인 폭력은 그 모든 가능성에 재앙으로 다가온다. 자원을 놓고 벌이는 의미없는 전쟁은 언제나 그 선두에 서있으며 테러와의 전쟁 역시 희망없는 그들을 더더욱 나락으로 몰아넣을 뿐이다. 그 비용의 일부 만이라도 그들을 위해 사용한다면 그 절망에서 그들을 구할 수 있다 저자는 단언한다. 하지만 그들 뿐만 아니라 신흥 봉건적 권력인 거대 다국적 기업은 오히려 그들보다도 더 많은 지배자가 되어 그들 앞에 나타난다. 사실상 커피생산 하나만으로 생계를 유지해온 브라질, 에티오피아, 베트남 등 세계 70여개국 수많은 농부들의 생산 지급단가를 줄여 그들에게 절망을 안긴 이들을 저자는 봉건제후라 명한다. 우리에게도 익히 알려진 네슬레를 필두로한 세계 5대 커피기업의 막강한 지배력 앞에 그들의 아이는 죽어가지만 그들은 원가는 줄이고 상품가격은 높이는 철저한 자본주의의 이념 아래 창립이후 최고의 이익을 창출해내며 계속되는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중이다. 네슬레의 담당자가 하는 얘기는 무책임을 넘어 가히 충격적이다.
"커피 생산자가 2500만명쯤 되는데 이들 중에서 적어도 1천만명은 기꺼이 사라질 것을 수락해야 한다."    

  

저자 장 지글러 자신이 유엔에 속해 있기에 그는 개인적으로 유엔의 이름으로 그러한 문제에 다가설 것을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미 모든 것이 백악관의 승인하에 이루어지는 유엔과 유엔이라는 이름하에 조성된 국제법의 효력은 아무런 희망이 없음을 발견한다. 1999년 다보스 포럼에서 채택된 유엔과 주요 다국적 기업과의 글로벌 콤팩트(Global Compact)는 생산국들의 인권과 노동시장에 대한 차별을 금지했고 '모두를 위한 보다 나은 세계'라는 기본 강령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그들에겐 기업 이미지 제고 뿐만 아니라 유엔로고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혜택까지 누리게 된다. 하지만 5년이 지난후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이 협약에 대해 국제적인 모니터링 기관을 창설하자는 제안을 하자 그들은 뜻을 모아 만장일치로 그 제안을 부결되고 만다. 새로운 희망은 커녕 무엇이 현실인지 보여주는 신랄한 사례이기도 하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다.'
기아와 질병으로 인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는 난민들의 행렬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유럽연합은 최첨단 군사장비를 동원해 그들의 행렬을 강제로 저지한다. 바다로 탈출한 난민들은 끝없이 표류하다 결국 사라져 간다. 저자 지글러는 그러한 절망과 어둠 사이에서 프랑스 혁명과 이마누엘 칸트를 떠올린다. 프랑스 혁명이 비록 추구하던 모든 것을 이루어내지는 못했지만 모순된 사회현실을 딛고 일어나 살기 위한 자유의 몸부림을 보여주었고 민주적인 집단 저항운동의 불씨가 되었던 것처럼, 사회적 불의에 분노하던 칸트가 가난한 자들의 해방이 실현될 수 있는 가능성을 프랑스 혁명에서 본 것처럼 그 정신의 계승이 오늘날의 세계 시민에게 공통적으로 던져진 화두임을 지글러는 일깨워 준다. 오늘날 신흥봉건제후들의 행위는 모든 인간규범 자체를 부정하고 자본의 흐름이 지배하는 시장경제만의 모습을 내세울 뿐이다. 제3 세계 국민들이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는 부채를 아무런 조건없이 탕감하더라도 부자들은 여전히 부자이며 가난한 사람들은 조금더 가난해질 뿐이다.   

 

그릇된 탐욕만이 남아있는 지금의 세상은 혼란스럽다. 하지만 우리는 그 누구도 그것을 우리 자신의 문제라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듯 하다. 우리나라 역시도 그 어두운 그늘에서 벗어난지 불과 얼마되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기억조차 떠올리려 하지 않는다. 그것이 얼마나 아픈 기억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글러 역시 이 책 한권으로 모든 것이 바뀔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부조리에 반하는 정의감이 우리들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것부터가 그 시작임을 믿고 있을 것이다. 더이상 나빠질 것도 없는 모든 구조적, 인위적 병폐의 극한점인 지금 그는 앞장서 외친다.     
"다시 혁명을 시작하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뒤적뒤적 끼적끼적 : 김탁환의 독서열전 - 내 영혼을 뜨겁게 한 100권의 책에 관한 기록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책에 대한 책은 언제나 우리를 매혹시키기에 충분하다. 그도 그럴것이 시중에는 온갖 장르에 걸쳐 수없이 많은 책들이 출간되고 이내 사라져간다. 그러한 책의 홍수속에서 우리는 과연 자신에게 필요한 좋은 책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저 베스트셀러라는 허울에 빠져 선택 아닌 선택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아마도 그때문이 아닐까. 그만큼 좋은 책을 선택하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 그럴때 누군가 감명깊게 읽었던 책을 소개해 주는 것처럼 책에 대한 책은 우리에게 좋은 메세지가 되어 다가오기도 한다. 우리는 이를 통해 다른 이의 독서 스타일과 자신의 스타일을 비교할수도 있거니와 흙 속에 묻혀 있는 진주같이 좋은 책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만들수도 있기 때문이다. 탄탄한 이야기 구성으로 출간하는 책마다 좋은 반향을 얻고 있는 인기작가 김탁환의 독서기록인 이 책 <뒤적뒤적 끄적끄적>은 그런 면에서 책이 주는 감동이 무엇인지 우리가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줄 수 있는 좋은 책이 될 수 잇을 것이다.

 

저자 김탁환은 그간 많은 소설을 통해 그가 가진 역사관과 삶의 방향에 대해 보여주었다. <불멸>을 통해 잊혀져가던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새롭게 조명해보기도 했고 <방각본 살인사건>부터 시작된 백탑파 시리즈는 상당한 매니아층을 만들어내며 그에게 열광하게 했다. 지난해 출간된 <혜초>의 경우 기획과정부터 힘들었던 취재과정 그리고 집필과정까지 책이 만들어지는 모든 순간들이 소개되며 책을 쓴다는 것이 작가에게도 그리 쉽지 않은 작업임을 보여주기도 했다. 우리가 이 책에 주목할 만한 이유는 어쩌면 이 책이 책과 관련된 철저한 저자 개인의 일상에 대한 기록임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글을 쓰는 작가이기 때문일 것이다.

 

책에는 모두 100권의 책이 소개되고 있다. 각박한 일상에 지쳐 신음할 때 위로를 준다는 폴 오스터의 <빵 굽는 타자기>부터 50년이 지난 미래의 모습을 가늠해보는 페이스 팝콘의 <미래생활사전>까지 다양한 종류의 책들을 통해 저자의 독서세계를 엿볼 수 있다. 한 권의 책은 크게는 개인의 삶의 방향까지도 바꿔놓을 수 있는 위력을 지닌 것은 물론 답답하고 힘든 난제에 부딪혔을때 그러한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저자 역시도 책의 곳곳에서 그러한 지난 시절의 모습을 회상하며 그 책이 자신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그리고 그 책이 어떻게 자신에게 닥친 난제의 열쇠가 되었는지 기억해 낸다. 낯선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의 책들이 아마도 그러했던 것 같다. 단어는 비틀리고 문장은 비명을 질러댔다라고 기억할 만큼 글이 만들어지지 않던 때 에르노의 책들은 그에게 침묵이라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기도 한다. 애드거 앨런 포의 <도둑맞은 편지>를 통해서는 추리소설에서 그 자신이 작가가 아닌 소설속의 숨긴자의 입장이 되는 것을 배우기도 했음을 전하기도 한다. 또한 법정 스님의 <인도기행>이나 유길준의 <서유견문>을 통해서 현실을 떠나 보다 자유롭고 평온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글쓰기의 방법이 됨을 전하기도 한다.

 

책에 소개된 모든 작품을 언급할 수 없지만 책을 통해 무엇인가를 느끼고 또한 배우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대목이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180여권에 이르는 <완월희 맹연>을 읽어낸 뚝심이나 <삼국지>의 수많은 인물들 중에서 순욱이라는 상대적으로 비중이 떨어지는 인물을 기억하고 그의 슬픔을 헤아리는 시각은 분명 저자만이 가진 책을 보는 남다른 시선이다. 아마도 그것이 그를 작가로 있게 하는 힘이 되지 않을까. 책은 늘 소설을 통해 독자들과 만나던 저자의 개인적인 일상을 엿볼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던 것 같다. 또한 창작의 과정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임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무엇보다도 책을 통해 좋은 책을 소개받은 것에 무한한 감사를 해야 할 것 같다. 당장 오늘부터 읽고 싶은 책이 생겨나는 것을 보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난세에 답하다 - 사마천의 인간 탐구
김영수 지음 / 알마 / 200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누구에게나 세상살이가 그리 쉽지는 않다. 더군다나 지금의 우리앞에 닥친 어려운 경제적 난국은 더욱 우리를 움츠려들게 만들기만 할 뿐이다. 하지만 삶에 있어 누구나 한두번의 위기가 다가온다고 했던 옛 말처럼 그것이 보다 나은 미래로 가기위한 고비라 생각하고 조금은 신중한 마음으로 그 어려움을 딛고 일어나야 할 것이다. 결국 그러한 어려움이나 위기를 돌파하는 것은 전적으로 개인에게 달려있다고 봤을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려하는 타성적인 무사안일보다는 창조적이고 진취적인 지성일 것이다. 개인적인 아픔을 딛고 인류사에 <사기史記>라는 커다란 선물을 전해준 사마천은 그런면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본받아야할 지성의 모습이기도 하다. 史記는 그 자체만으로 보더라도 단순한 일개 역사서의 범주를 넘어서는 역작이라 할 수 있다. 이후의 많은 사서에 영향을 준 것은 물론이며 이후 사서의 역사 서술방식까지도 정해주었기 때문이다.

 

이 책 <난세亂世에 답하다>는 EBS에서 방송되었던  "김영수의 사기와 21세기" 특강을 책으로 엮어낸 작품이다. 저자는 사마천의 역작 史記에 담긴 인간사의 흥망성쇠를 통해 현대를 사는 오늘의 우리들에게 좀 더 슬기롭고 현명한 내일을 기대해보자고 말한다. E.H 카가 <역사란 무엇인가>를 통해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다."라고 했던 것처럼 인간이 하나의 사회 혹은 국가를 이루어 살아가는 것이 당연하다면 그 안을 살아갔던 인간들 역시 어느 정도의 시대적 상황이 다른 것을 제외한다면 역시나 똑같은 삶을 언제나 살아가고 있기에 인간과 인간의 관계라는 그것에서부터 역사가 주는 교훈을 얻을수 있을 것이다. 책은 史記에 담긴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서술하기보다는 어떠한 역사적 사실들을 기술한뒤 그것이 현재의 우리와 어떠한 연관관계가 있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형식을 띠고 있다.

 

史記에는 본래 중국문명의 형성기부터 사마천이 살던 전한前漢 당시까지의 역사가 담겨 있다. 아마도 그 시기는 이전의 혼란스러웠던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한 왕조에 의해 정치적 통합은 물론 경제의 안정과 황제에 의한 중앙집권적 지배가 강화되어가는 대체적으로 안정적인 시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의 제목에 '난세'가 들어간 것처럼 당시의 중국은 반천년에 걸친 춘추전국시대와 유방과 항우의 쟁패라는 난세를 지나왔다. 책에 그 두 시대가 많이 언급된 것은 단순히 난세의 정치적 흥망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시의 시대적 요구였던 개혁이 바로 지금의 우리에게도 요구되기 때문일 것이다. 사마천 역시 그 시대의 생존방식을 개혁이라는 커다란 명제 속에서 파악하려 했다. 주周왕조 초기 무려 1,800여개에 달하던 제후국은 춘추시대에 들어오면서 24개로 줄어들었고, 전국시대에 들어오면서 단 7개로 줄어든다. 물론 그 수많은 제후국들이 사라져간 이유들 중에는 당시의 척도이던 군사력으로 인한 것도 있었지만 의외로 내분으로 망하거나, 민심을 잃어 망한 경우도 많았다. 결국 그것은 사회가 변화하는 속도만큼이나 빠른 개혁을 시대는 요구했기에 그 속도에 맞춰 개혁을 성공시킨 나라들만이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단순히 史記라는 사서의 기록만이 아닌 끊임없는 변화와 자기개발만이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생존전략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듯 하다. 저자 역시 시대와 대세를 읽는 통찰력을 얻는 것이 史記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가장 커다란 교훈이 아닐까 이야기 한다.
 
물론 혼란의 시대에 그 분수령이 되었던 것은 인재의 발굴이다. 총 130권에 이르는 史記중에서 제후를 다룬 세가世家가 30권인데 비해 그 시대를 살아간 인물들의 이야기인 열전列傳이 70권이나 되는 것을 보면 사마천의 시각 또한 역사를  만드는 것이 제왕이나 제후만이 아닌 구체적인 개개인의 인간이라 여겨 그들에 의해 역사가 창조되고 움직인다는 것을 열전을 통해 밝히려 한 듯 하다.  여기서 우리가 다시금 주목해야 하는것이 인간관계이다. 시기와 질투, 배신과 복수는 인간의 삶을 바꾸는 결정적 요소로 작용한다. 어쩌면 사적인 감정이랄수도 있지만 史記에서 이르는 것처럼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 언제나 그 성패를 좌우했던 것 또한 사실이다. 사마천 역시도 이릉을 변호했던 것 때문에 궁형宮刑이라는 참혹한 결과를 맞게 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그렇게 만든 갈등과 절망, 울분과 좌절감을 딛고 자신의 삶의 전부를 역사적 진실로 보편화 시켰다. 결국 이릉의 사건이 없었다면 史記는 역사의 기록과 평가라는 사서의 본질에 입각한 책으로 남았을런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인간의 삶에 초점을 맞춘 역사인식을 통해 역사 전반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일관된 입장을 史記라는 사서에 담아낸다. 결국 한차원 높은 비판의식 아래 저술된 작품이 史記이기에 오랫동안 사랑받는 고전으로 남아있는 것이 아닐까.  

 

책을 통해 오늘을 사는 지혜 뿐만 아니라 여러가지를 배운다. 인간의 심리부터 인간관계, 인재의 발굴, 국제정세를 보는 눈, 시대를 읽는 코드인 여론 그리고 돈과 관련된 경제문제까지... 고전古傳은 시대를 불문하고 인간의 삶에 생명력을 불러 일으킬수 있는 인류의 위대한 유산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터넷이라는 화려하고 감각적인 정보매체에 익숙해져버린 지금의 우리들에게 고전은 그저 어렵고 따분게만 느껴질 뿐이다. 하지만 이 책  <난세에 답하다>에 소개된 史記에서 볼 수 있듯 우리는 고전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인간적 삶의 가치와 의미를 풍요롭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스터 후회남
둥시 지음, 홍순도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말 한마디가 지니는 파급효과는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만큼 위력적이다. 잘못 뱉은 한마디로 인해 구설수에 오르는 것은 물론이요 때로는 그 화때문에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정치인이나 연예인 같이 적극적인 대중의 관심속에서 사는 이들이 말 한마디 때문에 무너져 가는 것을 수도 없이 우리는 보아왔으며, 근거없는 루머가 그들을 벼랑으로 몰아넣는 사태 또한 끊임없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이 그들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관계와 관계 속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말로 인해 생길수 있는 모든 문제는 자신만이 감당해야할 몫이며 그 누구도 책임질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때때로 그러한 말의 중요성을 잊어버리고 사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중국의 소설가 둥시의 이 작품 <미스터 후회남>은 순간순간의 말 한마디로 인해 평생을 후회속에서 사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우리에게 다시금 돌아볼 기회를 주는듯 하다.

 

소설은 중국의 문화대혁명이 시작되던 1960년대부터 시작된다. 문화혁명은 중국 사회의 많은 구조를 바꾸어 놓은 일대 사건이다. 그때까지 남아있던 이른바 지주계급을 비롯한 모든 착취계급이 남겨놓은 낡은 사상과 문화 그리고 풍속까지도 모두 바꾸어 모든 인민을 조직적으로 관리하는 하나의 시스템이기도 했다. 그러한 혼란의 시기 중학생이던 주인공 쩡광셴의 아버지 쩡창펑 역시 문화혁명이라는 시대의 대세앞에 집안 대대로 내려오던 많은 재산을 다 잃어버리고 유일하게 남은 창고에서 이전까지 자신의 집 하인이던 위파러와 자오라오스 가족과 함께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옛부터 부자들이 많은 처첩을 거느렸던 것처럼 쩡창펑 역시 여자에 대한 욕심이 무척이나 많은 인물이다, 하지만 동물원에 다니던 그의 아내이자 광셴의 어머니 우성은 당에서 운영하던 학습반에 다닌 이후로 그를 근처에도 오지 못하게 한다. 욕구불만에 쌓인 그는 하인이었던 자오영감의 배려하에 그의 딸 자오산허와 불륜을 저지르지만 하필이면 그 광경을 광셴에게 들키고 만다. 어머니 조차도 쉬쉬하던 그 일은 광셴의 입을 통해 자오산허의 오빠 자오완녠에게 알려졌고 일자무식이지만 당에 의해 노동자 계급을 대표하는 지위를 갖고 있던 그는 쩡창펑을 끌고 가버린다. 아마도 그 이후부터 광셴의 입에서 나오는 한마디 한마디가 계속해서 수많은 재앙을 몰고 온다. 도색잡지를 보던 아버지를 고발해 아버지가 또다시 잡혀가는 것은 물론 그들 삶의 터전이던 창고까지 몰수되어 버린다. 그러한 상황들을 참지 못해 집을 뛰쳐나간 어머니 역시 성추행을 당하는 모습을 아들 광셴이 목격하자 여동생 쩡팡마저 어디론가 보내버리고 수치심에 목숨을 끊어버리고 만다. 

 

소설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물론 광셴의 입에서 나오는 말로 인해 터지는 사건의 연속들이다. 작가는 그 대부분의 사건들을 광셴의 성에 대한 호기심과 갈망으로 엮어낸다. 이를테면 어릴때부터 보아온 아버지의 부도덕한 욕구 때문에 생긴 반감으로 인해 자신에게 적극적인 애정을 표시하는 샤오츠를 물리치기도 하는 것이다. 성인이 되고 부터 그는 어머니를 대신에 동물원에 들어간다. 그곳에서도 광셴의 입은 쉬질 않는다. 잘못된 정보로 인해 동료 자오징둥을 죽음에 이르게 하며, 자오징둥의 사촌누나 장나오에게 첫눈에 반해 그녀의 방에 들어갔다가 강간범의 누명을 쓰고 투옥되기도 한다. 이 정도까지 수많은 사건에 휘둘리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주변엔 늘 여자들이 끊이지 않는다. 단 한번만이라도 광셴이 정신을 차렸다면 광셴은 아버지와 화해할수도 있었고 예쁜 손자를 아버지에게 안겨줄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광셴을 철저히 망가뜨리려 하는 것 같다. 아무리 재수가 없고 인생이 꼬여도 광셴만큼 그러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 않아도 될 말 때문에도 그러하지만 신중하지 못한 성격때문에 언제나 그릇된 선택을 하고 만다. 10년에 가까운 감옥생활 끝에 그는 아이러나하개도 무죄로 풀려난다. 출옥후에도 그의 삶은 여전히 비틀려 있다. 여자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헤매고 중심을 잡지 못하는 그를 보고 있노라면 애처롭기까지 할 뿐이다.

 

오십을 다 되어버린 중년의 나이가 되어서도 광셴은 여전히 숫총각이다. 안마시술소의 아가씨가 혹시나 손바닥에 점에 있는 헤어진 그의 여동생이 아닐까란 생각 때문에 여자를 안을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그럴수 밖에 없는 것이 그의 성격이며 또한 작가가 만들어낸 광셴의 캐릭터이기도 하다. 그는 이제 안마시술소의 아가씨에게 후회만이 가득한 자신의 삶을 들려주고 있다.  그의 기나긴 이야기를 아무도 들어주지 않으려하기에 그는 이 나이가 되서야 겨우 이렇게 입을 떼었나 보다.
"이건 아가씨에게 주는 팁이야. 밤새 내 얘기를 들어줘서 정말 고마워."

 

어쩌면 우리는 후회라는 단어에 대해 너무나 익숙하다. 그때 내가 그러지 않았으면... 혹은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식의 후회는 어느 순간에나 우리를 지배하는 생각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빨리 떨어버리려 노력한다. 지나간 일을 후회해봐야 다시 돌이킬수도 없는 노릇이고 앞으로 다가올 시간에도 그리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현대사회는 우리에게 후회라는 단어를 오래도록 곱씹고 있을만한 시간적 여유조차 제공하질 않는다. 하지만 주인공 광셴의 경우에는 후회가 쌓여 회한이 되어 버렸다. 우리들 늘 삶에서 쉽게 떨쳐낼 수 없는 것이 후회이긴 하겠지만 적어도 이 처절한 삶을 살아온 광셴 만큼이야 하겠는가. 문화혁명이라는 시대적 배경이 있긴 하지만 이 모든 사건은 모두 광셴의 말과 우유부단한 성격탓에 일어난 일이다. 물론 작품의 급변하는 중국의 변화를 빼놓을순 없지만 그것마저도 해학적으로 그려내는 작가의 기지가 남달라보일 뿐이다. 삶을 통틀어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광셴의 삶을 통해 후회라는 감정이 주는 진한 아픔만을 느낄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치팅컬처 - 거짓과 편법을 부추기는 문화
데이비드 캘러헌 지음, 강미경 옮김 / 서돌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2007년 대한민국은 학력위조파문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문화적 현상을 맞이했다. 어느 한 개인의 신상문제에서 시작된 진위논쟁은 걷잡을수 없는 사회적 파장을 불러왔고 공공연히 감추어졌던 비밀은 봇물 터지듯 연이어 모든 언론을 장식했다. 이른바 사회지도층 인사라는 이들을 비롯해 언제나 대중의 시선속에서 살아가는 연예인들에 이르기까지 그러한 도덕적 해이는 우리 사회의 현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이기도 했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 자신을 속이고 개인의 양심을 파는 것에 우리는 분노했지만 우리 역시도 그러한 모습에서 그리 자유로운 것만은 아니다. 우리들의 평범한 일상에도 어느 정도의 허위와 가식 혹은 위선이 늘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우리 사회만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세계를 선도하며 모든 분야에서 리더임을 자처하는 미국에서도 그러한 모습은 이미 만연해있는 사회적 병폐이기도 하다. 미국의 공공정책 연구기관에 재직중인 데이비드 캘러헌은 자신의 책 <치팅 컬쳐>를 통해 거짓과 편법이 지배하고 있는 미국의 오늘을 진단한다.

 

허위진단, 뇌물공여, 학력위조, 불법 다운로드, 작가들의 표절. 저자는 미국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각종 속임수를 들춰내며 그것이 이미 자연스런 문화의 하나가 되었다며 책의 서두를 연다. 또한 그러한 속임수에 대해 누구도 그 의미를 밝히려 하지 않으며 더 나아가 어느 경우든 속임수를 쓰면서도 부끄럽다는 생각마저도 갖지 않는다 이야기 한다. 저자는 2차대전 이후 자유로운 개척정신들이 서서히 사라지며 나타난 개인주의가 그러한 생각의 연원이 되었으며, 70년대 이후 극단적인 자본주의 시대는 더더욱 그것을 부추겼다 이야기 한다. 결국 경쟁이라는 현대사회의 대세앞에 이기주의와 자기중심의 사고방식은 물질만능주의와 상대방에 대한 시기로 나타났고 그 모든 것들은 탐욕으로 변질되어 간 것이다. 즉, 승자가 모든 것을 가져가는 세상에서 물질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도덕적으로도 우월하다는 그릇된 문화로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책에는 다양한 사례의 거짓과 편법이 고발된다. 저자는 보다 확실한 근거를 제시하며 미국 사회의 치부를 드러낸다. 불특정한 사회의 어떤 부분이 아니라 구체적인 개인의 실명이나 기업의 이름이 거론되며 그들이 어떠한 방법으로 대중을 속이고 자신의 사욕을 채웠는가에 대해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그를 통해 저자는 이만큼 미국을 키워온 자유시장이 그 하나임을 이야기하려는 것 같다. 호황은 수많은 신규사업을 탄생시켰고 성과에 의한 소득분배는 많은 부를 창출해냈다. 하지만 능력과 지위에 따라 조금씩 차이를 보이던 소득은 어느새 엄청난 격차를 보이며 시대에 역행해 왔고 그 결과는 극심한 빈부격차로 나타났다. 실제 책에는 현재 미국 상위 1퍼센트 가구가 전체 가구중 40퍼센트의 부를 소유하고 있으며, 그것은 그들의 부가 하위 90퍼센트 가구를 모두 합친 것보다도 많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결국 그러한 불평등의 심화가 미국 사회를 문화적, 지리적으로 갈라놓는 무엇보다 큰 요인이 된 것이다.

 

저자는 속임수의 증가로 개인주의가 극심한 이기주의로 바뀌었고, 돈이 사람보다 중요해졌으며, 경쟁은 훨씬 더 치열해진 반면 약자나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줄어드는 세가지 변화가 나타났다 진단한다. 부를 가진 자들 중심으로 세상이 흘러가면서 정치권 역시도 부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만 흘러간다. 그들은 탈세를 일삼고도 무사하고, 그렇게 모은 돈으로 정치인을 매수하고 자신들의 자녀를 편법으로 명문인 아이비리그 대학에 입학시킨다.
"부유한 사람들은 조금씩이나마 더 행복해지는데 비해 가난한 사람들은 점점 더 슬퍼하고 있다. 부유한 사람들은 재정상태와 직업에 대해 갈수록 만족도가 높아지는데 비해 가난한 사람들의 경우에는 그 반대다." 
결국 그것이 중산층의 사소한 거짓을 불러온 것이다. 직장에서 지급하는 볼펜을 아무 거리낌없이 집에 가져오고, 자동차 보험료를 줄이기위해 다른 가족의 명의로 보험에 가입하고, 인터넷상에 떠도는 음원을 대가없이 다운로드하는 등의 행위는 이제 거짓으로조차 느껴지지도 않을 정도가 되어 버렸다. 결국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사회계약의 적법성이 깨어져 버린 것이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선 때로 정직성을 희생해야 하기도 한다."
속임수는 이제 세상에서 뒤쳐지지 않는 자연스런 생활양식이 되어 버린지 오래다. 컨닝으로 점수를 올려 대학에 진학해 거짓이 담긴 이력서로 좋은 직장에 들어가 교묘한 계획으로 고객이나 투자자를 속여 자신의 잇속을 챙긴다. 설령 적발되더라도 경미한 수준의 경제적 처벌만을 받는다. 오히려 정직하게 사는 것이 부정을 일삼아 사는 것 보다 못한 삶이 되었다.

 

저자는 그러한 속임수의 문화와 맞서 싸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 일한 만큼의 대가가 따르는 건강한 사회를 이야기한다. 즉 균등한 소득의 분배인 것이다. 그것은 결국 현대의 자유 시장 논리로는 암울한 미래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기도 하다. 책의 모든 내용에 있어 우리 사회와 그리 다르지 않음을 발견한다. 오히려 우리 사회가 휠씬 더 내부적으로 곪아 있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좀더 적극적인 정부의 압력과 기업 내부의 체질개선 역시도 당연히 그리해야 하겠지만 성과주의와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의견에는 좀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현대 자유 시장논리는 어느날 갑자기 태어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현재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모든 이가 서로 믿고 다같이 잘 사는 사회를 이야기하는 저자의 모습이 조금은 막연해 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상의 세계가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그만큼 이루어지기 힘든 이유 때문일 것이다. 결국 인간의 이성에 호소할 수 밖에 없는 우리의 현실이 조금은 애처로워 보이기도 한다. 아마도 그때문에 저자가 호소하는 인식의 전환이 그리 쉬워 보이지만은 않는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