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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후회남
둥시 지음, 홍순도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말 한마디가 지니는 파급효과는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만큼 위력적이다. 잘못 뱉은 한마디로 인해 구설수에 오르는 것은 물론이요 때로는 그 화때문에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정치인이나 연예인 같이 적극적인 대중의 관심속에서 사는 이들이 말 한마디 때문에 무너져 가는 것을 수도 없이 우리는 보아왔으며, 근거없는 루머가 그들을 벼랑으로 몰아넣는 사태 또한 끊임없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이 그들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관계와 관계 속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말로 인해 생길수 있는 모든 문제는 자신만이 감당해야할 몫이며 그 누구도 책임질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때때로 그러한 말의 중요성을 잊어버리고 사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중국의 소설가 둥시의 이 작품 <미스터 후회남>은 순간순간의 말 한마디로 인해 평생을 후회속에서 사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우리에게 다시금 돌아볼 기회를 주는듯 하다.
소설은 중국의 문화대혁명이 시작되던 1960년대부터 시작된다. 문화혁명은 중국 사회의 많은 구조를 바꾸어 놓은 일대 사건이다. 그때까지 남아있던 이른바 지주계급을 비롯한 모든 착취계급이 남겨놓은 낡은 사상과 문화 그리고 풍속까지도 모두 바꾸어 모든 인민을 조직적으로 관리하는 하나의 시스템이기도 했다. 그러한 혼란의 시기 중학생이던 주인공 쩡광셴의 아버지 쩡창펑 역시 문화혁명이라는 시대의 대세앞에 집안 대대로 내려오던 많은 재산을 다 잃어버리고 유일하게 남은 창고에서 이전까지 자신의 집 하인이던 위파러와 자오라오스 가족과 함께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옛부터 부자들이 많은 처첩을 거느렸던 것처럼 쩡창펑 역시 여자에 대한 욕심이 무척이나 많은 인물이다, 하지만 동물원에 다니던 그의 아내이자 광셴의 어머니 우성은 당에서 운영하던 학습반에 다닌 이후로 그를 근처에도 오지 못하게 한다. 욕구불만에 쌓인 그는 하인이었던 자오영감의 배려하에 그의 딸 자오산허와 불륜을 저지르지만 하필이면 그 광경을 광셴에게 들키고 만다. 어머니 조차도 쉬쉬하던 그 일은 광셴의 입을 통해 자오산허의 오빠 자오완녠에게 알려졌고 일자무식이지만 당에 의해 노동자 계급을 대표하는 지위를 갖고 있던 그는 쩡창펑을 끌고 가버린다. 아마도 그 이후부터 광셴의 입에서 나오는 한마디 한마디가 계속해서 수많은 재앙을 몰고 온다. 도색잡지를 보던 아버지를 고발해 아버지가 또다시 잡혀가는 것은 물론 그들 삶의 터전이던 창고까지 몰수되어 버린다. 그러한 상황들을 참지 못해 집을 뛰쳐나간 어머니 역시 성추행을 당하는 모습을 아들 광셴이 목격하자 여동생 쩡팡마저 어디론가 보내버리고 수치심에 목숨을 끊어버리고 만다.
소설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물론 광셴의 입에서 나오는 말로 인해 터지는 사건의 연속들이다. 작가는 그 대부분의 사건들을 광셴의 성에 대한 호기심과 갈망으로 엮어낸다. 이를테면 어릴때부터 보아온 아버지의 부도덕한 욕구 때문에 생긴 반감으로 인해 자신에게 적극적인 애정을 표시하는 샤오츠를 물리치기도 하는 것이다. 성인이 되고 부터 그는 어머니를 대신에 동물원에 들어간다. 그곳에서도 광셴의 입은 쉬질 않는다. 잘못된 정보로 인해 동료 자오징둥을 죽음에 이르게 하며, 자오징둥의 사촌누나 장나오에게 첫눈에 반해 그녀의 방에 들어갔다가 강간범의 누명을 쓰고 투옥되기도 한다. 이 정도까지 수많은 사건에 휘둘리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주변엔 늘 여자들이 끊이지 않는다. 단 한번만이라도 광셴이 정신을 차렸다면 광셴은 아버지와 화해할수도 있었고 예쁜 손자를 아버지에게 안겨줄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광셴을 철저히 망가뜨리려 하는 것 같다. 아무리 재수가 없고 인생이 꼬여도 광셴만큼 그러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 않아도 될 말 때문에도 그러하지만 신중하지 못한 성격때문에 언제나 그릇된 선택을 하고 만다. 10년에 가까운 감옥생활 끝에 그는 아이러나하개도 무죄로 풀려난다. 출옥후에도 그의 삶은 여전히 비틀려 있다. 여자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헤매고 중심을 잡지 못하는 그를 보고 있노라면 애처롭기까지 할 뿐이다.
오십을 다 되어버린 중년의 나이가 되어서도 광셴은 여전히 숫총각이다. 안마시술소의 아가씨가 혹시나 손바닥에 점에 있는 헤어진 그의 여동생이 아닐까란 생각 때문에 여자를 안을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그럴수 밖에 없는 것이 그의 성격이며 또한 작가가 만들어낸 광셴의 캐릭터이기도 하다. 그는 이제 안마시술소의 아가씨에게 후회만이 가득한 자신의 삶을 들려주고 있다. 그의 기나긴 이야기를 아무도 들어주지 않으려하기에 그는 이 나이가 되서야 겨우 이렇게 입을 떼었나 보다.
"이건 아가씨에게 주는 팁이야. 밤새 내 얘기를 들어줘서 정말 고마워."
어쩌면 우리는 후회라는 단어에 대해 너무나 익숙하다. 그때 내가 그러지 않았으면... 혹은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식의 후회는 어느 순간에나 우리를 지배하는 생각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빨리 떨어버리려 노력한다. 지나간 일을 후회해봐야 다시 돌이킬수도 없는 노릇이고 앞으로 다가올 시간에도 그리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현대사회는 우리에게 후회라는 단어를 오래도록 곱씹고 있을만한 시간적 여유조차 제공하질 않는다. 하지만 주인공 광셴의 경우에는 후회가 쌓여 회한이 되어 버렸다. 우리들 늘 삶에서 쉽게 떨쳐낼 수 없는 것이 후회이긴 하겠지만 적어도 이 처절한 삶을 살아온 광셴 만큼이야 하겠는가. 문화혁명이라는 시대적 배경이 있긴 하지만 이 모든 사건은 모두 광셴의 말과 우유부단한 성격탓에 일어난 일이다. 물론 작품의 급변하는 중국의 변화를 빼놓을순 없지만 그것마저도 해학적으로 그려내는 작가의 기지가 남달라보일 뿐이다. 삶을 통틀어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광셴의 삶을 통해 후회라는 감정이 주는 진한 아픔만을 느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