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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태조 누르하치 비사
후장칭 지음, 이정문 옮김 / 글로연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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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청나라는 우리의 조선과 마찬가지로 중국에서 마지막으로 존재했던 군주국가였다. 비록 외세에 이리저리 휘둘리다 결국 망국의 길을 걷긴했지만 건국이후 중원으로 진출하며 많은 부분에서 동양문화권을 대표하는 국가로 그 입지를 다져왔다. 사실 청은 병자호란과 삼전도의 굴욕이라는 치욕적이고 잊을 수 없는 역사적 아픔을 우리에게 안겨주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서구의 선진문화를 우리에게 전달해주는 창구역할을 해내기도 했던 나라이기도 하다. 그러한 청의 태동을 알리며 일개 이민족이었던 그들을 통합하여 명에 맞설수 있는 강력한 국가로 만들어낸 것이 바로 창업자 누르하치였다.  

 

청은 중국역사에서 원, 금과 함께 이민족이 중원으로 진출한 몇안되는 나라이다. 역사가 그리 길진 않지만 소수의 여진족이 많은 한족들을 지배했던 나라이기도 하다. 이 책<청태조 누르하치 비사>는 중국의 소설가 후장칭이 그러한 위업을 달성한 청을 창업했던 청태조 누르하치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는 역사소설이다. 누르하치는 중국의 변방에 흩어져있는 많은 여진부락중의 하나인 건주여진 추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당시 대부분의 여진족이 그랬던 것처럼 일가를 세운 그의 할아버지 각창안과 아버지 탑극세도 명에 충성을 다하며 복종했지만 일순간 죽음을 당하고 만다. 그때부터 누르하치는 명에 깊은 원한을 가지게 된다. 그때문에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죽인 명의 장군 이성량을 암살하려고도 하지만 실패로 돌아가고 곧바로 누르하치는 자신이 어떻게 해야되는지를 판단한다. 그것은 일단 명에 충성스런 신하가 되는 것이었고 그것은 아버지의 자리를 이어받아 힘을 기르는 것이었다. 누르하치는 황제에게 바칠 공물을 가지고 황제를 알현하지만 그가 만난 명의 황제는 영명한 군주가 아니라 단지 어린 소년으로 보일뿐이었고 누르하치는 어쩐지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고향 협도아락으로 돌아온 누르하치는 본격적으로 힘을 기르기 시작한다. 당시 여진족은 여타 다른 종족들에게도 능욕을 받을 만큼 자체적으로도 안정이 되어있질 못했다. 그는 노비와도 같은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우선 흩어져 있는 여진의 통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야심을 숨긴 채 조용히 실력을 키워가기 위해 명의 황실에 계속해서 공물을 보냄으로서 그들의 비위를 맞추려 노력한다. 그러한 상황에서 누르하치는 조용히 자신의 세력을 키워나가기 시작한다. 작품속 대부분의 내용이 누르하치가 여진을 통일해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다. 누구와도 나눌수 없는 것이 권력이라 했던 것처럼 누르하치의 건주여진 자체에서도 누르하치의 권력에 도전하는 일이 생기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당숙은 물론 친동생까지도 처형한다. 그것은 자신의 자식들에게도 예외가 될수 없었다. 오랫동안 자신을 보좌했던 장남 저영이나 차남 대선 모두 일순간의 잘못을 누르하치는 그대로 묵과하지 않고 끝내 처형한다. 어찌보면 비정한 아비일수도 있겠지만 대의를 위해 작은 것을 버릴줄 아는 그의 결단력이 느껴지기도 한다.

 

아버지가 물려준 열 세벌의 갑옷으로 시작해 여진의 대부분을 통일하며 그전까지 패륵이라 불리우던 누르하치는 마침내 58세가 되어서야 마침내 후금의 칸인 황제로 등극한다. 등극 이후에도 그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명으로 진격한다. 일평생을 전장에서 싸웠고, 단한번도 패하지 않은 그였지만 영원성 전투에서 패해 부상을 입은 채로 후퇴하고 그곳에서 숨을 거두고 만다. 비록 그 자신은 중원 진출의 꿈을 이뤄내지는 못했지만 그가 확립한 단단한 기반이 후대에 이루어진 중원 진출의 기초가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수 많은 여인네의 치마폭에서 안주할 수도 있었고, 그때까지 이루어낸 자신의 과업에 만족할 수도 있었지만 계속해서 그는 계속해서 앞만 보고 달렸다.

 

하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비록 비정한 애비가 되기도 하고, 일체의 용서가 없는 냉혹한 사람으로 비춰질수도 있겠지만 자신을 가로막는 모든 난관을 이겨내는 누르하치의 생애는 진정 비범한 영웅의 생애가 아닐까 생각해 보게 만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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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추악한 배신자들 - 조선을 혼란으로 몰아넣은 13인
임채영 지음 / KD Books(케이디북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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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기나긴 역사의 흐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수없는 이름없는 민중들의 생생한 기록이겠지만 지금의 우리가 지금 바라볼 수 있는 것은 그 민중들위에 서서 전횡을 일삼은 소수의 권력자들의 흔적일 뿐이다. 또한 역사는 우습게도 그러한 소수의 권력자에 의해 쉽게 좌우되며 크게 요동치는 질곡의 세월을 겪기도 한다. 성리학이라는 철저한 유교적 관습 아래 봉건적 사상이 지배적이었던 조선사회 역시 그러한 역사의 흔적들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물론 이기주의적 성격이 팽배한 현대의 관점에서 볼때는 이상할게 없지만 적어도 의리와 충절을 숭상했던 조선사회의 성격에 비춰본다면 군왕을 베신하기도 하고 나라를 배신하기도 하는 인간의 욕심이란 끝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책 <조선의 추악한 배신자들>은 제목처럼 조선의 역사에서 자신의 이름에 결정적인 오점을 남길 수 밖에 없었던 인물들을 다루고 있다. 어쩌면 그들 자신은 살아있는 동안 권력과 그에 따르는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린 인물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역사의 흐름속에서 그들은 배신자라는 타이틀을 달 수 밖엔 없는 인물들로 평가받았으니 어쩌면 역사의 아이러니일런지도 모른다. 책은 크게 세가지 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첫째장은 조선을 피로 물들이며 권력에 다가선 인물들을 소개한다. 피로서 쟁취한 권력은 언제나 정당성이 부족하기 마련이다. 어린 조카의 왕위를 찬탈했던 수양 역시도 그러한 중압감에서 쉽게 벗어날 순 없었다. 하지만 한명회란 희대의 모사꾼은 그러한 수양을 부추겨 결국엔 권력을 쟁취하고야 말았다. 떠오르는 신성 남이를 죽음으로 몰고갔으며 개인적인 원한에서 비롯해 무오사화라는 끔직한 장면을 연출해낸 유자광, 폭군 연산을 있게 한 임사홍, 붕당정치 속에서 오로지 자신의 영달만을 꾀했던 이이첨과 김자점은 개인의 욕심이 얼마나 많은 희생을 불러 왔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증거이기도 하다.

 

2장은 조선의 극악했던 왕비 세명에 대해 다루고 있다. 조선역사상 가장 극악했던 왕비로 첫손에 꼽히는 문정왕후는 자신에게 그토록 효성을 다했던 인종을 독살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비록 자신이 낳은 아들은 아니었지만 중전시절 그녀는 마치 자신의 아들인양 인종을 아꼈다. 하지만 명종을 낳으면서 그녀는 돌변했고 이제 권력에 대한 야욕은 끝내 인종을 독살하기에 이른다. 얼마전 TV드라마 이산에서 배우 김여진이 연기했던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 역시 절대 문정왕후에 밀리지 않는다. 그녀 역시 자신의 손자뻘이 되는 정조의 독살설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66세의 영조에게 시집왔던 15세의 어린 왕비가 권력에 대한 달콤한 맛에 다가서는 것은 잠깐일 뿐이었다. 정조 재위시절 오랫동안 물러나있던 권력에서 정조 사후 그 중심으로 돌아오는데는 잠깐이면 족했을 뿐이었다. 세도정치의 배경이 되었던 순원왕후 역시 조선을 파탄에 몰고간 주범이라는 역사의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안동김씨가 정권의 중심에 서있던 60여년간 조선은 철저히 망가져 갔으며 그러한 현실에 아랑곳없이 그들은 그저 자신들이 가진 권력이 언제나 계속될 것이라고만 생각할 뿐이었다.

 

3장은 이른바 나라를 팔아먹은 을사오적에 대해 다루고 있다. 1장이나 2장에서 다룬 인물들과 달리 을사오적은 이완용으로 대표되는 이름이외에는 그다지 알려진 것이 없기도 하다. 그렇기에 이 책의 다른 파트 보다 우선 눈길이 가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들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권력의 정점에 다가섰으며 실제 당시의 비판적인 여론을 뒤로하고 과연 자신들의 의지대로 조약에 서명했는지에 대해 의문이 많았다. 책의 내용에 따르면 어쩌면 그들은 당시의 대세를 누구보다도 빨리 읽어낸 기회주의자라 할 수 있는 것 같다. 일찍부터 권력에 다가서려 했던 이근택이나 끝까지 반대했으면서도 조약에 서명한 후 그 누구보다도 철저한 친일주의자가 되엇던 박제순, 그리고 오늘날 역적의 대명사라 일컬어지는 이완용까지 방법은 모두 달랐지만 그들의 선택은 우리 역사를 뒤로 돌린 반역행위 임에는 틀림없다. 누구보다도 앞서 싸워야 했던 한나라의 대신이라는 자들이 그러했으니 조선의 종말이 그러할순 밖엔 없었나 보다.

 

역사의 평가는 언제나 냉정하다. 설사 당대의 흐름이 그들에게 그러한 선택을 강요했다 할지라도 그들의 그러한 선택은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받게 만들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보여지는 역사의 증거는 결코 그들을 정당하게 평가하지는 않는 것 같다. 1장에 소개된 한명회, 유자광, 임사홍, 이이첨, 김자점 등이 대부분 그 직후의 역사에서 부관참시를 당하거나 영원한 역적의 이름에 오른 반면 을사오적의 후손들은 지금 당당히 그들의 재산을 돌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물론 그들의 후손에겐 죄가 없지만 그러한 요구에 대해 재판을 거쳐야 할만큼 그들이 또한 당당할 이유조차 없다. 그것이 나라를 팔아먹고 일제에게서 얻어낸 댓가라는 것을 그들이 인식한다면...

 

지금의 정세역시 조선과 그리 다르지 않음을 느낄수 있다. 붕당정치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여야가 끊임없이 대립하는 정당정치로 이어지고 있다. 국익을 앞세운 미국산 쇠고기 사태는 정국을 커다란 혼란과 국론의 분열로 몰고 오기도 했다. 저자 역시 책을 통해 그렇게 국익이라는 입에 발린 말을 통해 역사가 반복되는 것을 원치않는다고 하고 있다. 모든 것은 역사가 말해준다. 개인의 사리사욕을 앞세워 역사의 흐름을 바꾸려 한 이들에게 어떠한 결과가 왔는지를, 또한 그것은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똑같이 주어진 물음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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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사 장기려
손홍규 지음 / 다산책방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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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중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빠르고 각박한 사회속에서 그저 자신만을 또는 자신의 가족만을 위해 살아갈 뿐이다. 혹자는 그것을 현대인들이 남을 생각하는 배려가 부족하다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물론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생활방식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지나쳐 너무나 개인주의적인 삶에 젖어있는 것은 아닐까. 여기 자신의 인생을 바쳐 남에게 봉사와 배려가 무엇인지 진정으로 보여준 인물이 있다. 지나칠 정도로 남을 생각했기에 정작 그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여든 다섯의 나이로 운명한 이후 그가 누울 변변한 자리조차도 없었을 정도였다고 하니 그를 일컬어 사람들은 한국의 슈바이처라고 부른다. 그가 바로 성산 장기려 박사이다. 일평생 그는 그에게 주어진 의사라는 직업을 천직으로 알고 그를 통한 사랑과 봉사가 무엇인지를 그의 전 생애를 통해 우리들에게 보여준 인물이기도 하다. 바보스러울 정도로 환자만을 위했던 그는 의사이기에 앞서 성자의 삶을 살다간 인물일 것이다.

 

이 책 <청년의사 장기려>는 장기려 박사의 학창시절 부터 전쟁의 혼란 속에서 부산으로 내려오기까지의 과정을 소설적인 구성으로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다. 제목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장기려 박사의 청년시절에 그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평전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평안북도 용천에서 비교적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개성으로 올라와 송도고보에 진학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과 교유하며 비로소 세상에 눈을 뜨기 사작한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그에게 뚜렷한 목표는 없었다. 일제하의 현실은 부당하기만 했고 고보의 청년들은 동맹휴업에 참여하지만 그는 급격하고 과격한 변화보다는 신념과 끈기를 가지고 현실을 개선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그에게 늘 뜨거운 사람이 되라고 했던 할머니의 죽음은 그의 인생의 지표를 찾아주게 된다. 할머니의 소천을 기리는 교회의 종소리를 들으면서 그는 충동적으로 세례를 받게 된다.
"사람을 살리는 일에 뜻을 세워야지."
고향에서 종기의로 일하는 박의원의 권유를 통해 그는 자신의 원죄의식을 느낀다. 그리고 친구 김주필의 어머니의 죽음을 통해 그는 의사가 되어 가난한 사람들을 모른척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이제 그의 목표는 정해졌고 그는 드디어 경성의전에 진학한다.


그가 대학에서 만난 스승 백인제는 뛰어난 의사였지만 장기려의 눈에는 현실을 외면하는 사람으로만 보여질 뿐이었다. 하지만 그가 장티푸스에 걸린 일본인 간호원의 뺨을 때린 사건으로 용서를 구하러 갔을때 스승은 그에게 진정한 의사의 길을 나지막히 이야기 한다.
"지금 당장 자네 앞에 고난이 있다 해도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말게. 우리 같은 의사들에게 고난이란 기회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네. 나는 자네를 믿네. 자네는 ... 조선의 의사니까."
스승은 그에게 본교의 교수자리나 대전 도립병원의 외과과장직을 권유했지만 그는 자신의 서원을 잊지않고 그 좋은 자리들을 마다한다. 결국 그가 선택한 것은 평양의 기흘병원,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지금껏 모른척 했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의사가 되는 첫발을 장기려는 그렇게 내딛는다.

 

책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있는 유명인사와 장기려 박사의 인연을 중간중간 소개하고 있다. 수련의 시절 그의 환자로 만났던 춘원 이광수는 그를 모델로 소설을 쓰기도 했으며, 우연히 만난 함석헌 선생과는 일생을 들어 좋은 인연으로 함께 했음을 여러차례 소개하기도 한다. 특히 김일성의 맹장 수술을 그가 직접 집도했다는 것은 그만큼 의사로서 그의 실력을 입증하는 일화이기도 하다. 평양에서 그는 새로운 세계를 만난다. 의술과는 전혀 거리가 먼 그들을 바라보면서 그는 그가 해야될 것이 무엇인지를 직감한다. 평양을 휩쓸고 간 대규모 물난리 속에서 그는 그저 외로울 뿐이었다. 그 어떤 의사도 전염병이 도는 홍수지역에 나타나지 않았다. 자신의 피를 뽑아 수혈을 하면서까지 그는 환자를 살리기 위해 애를 쓰고 마침내 그는 쓰러져 버린다. 평양에서 해방을 맞고 소련군의 진주를 보면서도 그는 오로지 환자만을 위해 살아간다. 그에게 이념이나 분단은 그저 남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폭격의 와중에서도 수술을 집도했을 만큼 그는 의사를 천직으로 알고 있다. 평양을 국군이 점령하면서 그는 이제 인민에서 국민이 된다. 하지만 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을 뿐이었다. 어차피 그는 의사였기에...

 

다시 밀고 내려오는 중공군의 위세에 눌려 국군은 평양을 내주고 후퇴하기 시작한다. 그 최악의 상황에서 그의 아내는 5남매중 둘째 아들만을 그에게 먼저 데리고 갈 것을 부탁한다. 중공군이 국군에 협조한 젊은 사내만을 죽인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렇게 해서 그는 둘째만을 데리고 남으로 가는 앰뷸런스에 오른다. 그리고 그게 그의 가족과 그의 마지막 만남이 되고 만다. 부산에서 그는 북한에서 주요 요직을 지냈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고초를 겪기도 한다. 그렇게 그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그는 그 전쟁의 와중에서 이미 양수가 터진 산모의 수술을 통해 자신이 의사라는 것을 다시 깨닫는다.

 

가난한 사람들과 환자들만을 위해 살아갔던 장기려 박사는 성자의 삶을 살아간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몇 년전 TV 다큐멘터리를 통해 장기려 박사의 에피소드를 본 것이 기억에 남는다. 수술을 마친 환자가 돈이 없다고 하니 그 병원의 원장이었던 그가 모두가 잠든 새벽 병원 뒷문을 열어줘 그 환자를 도망시켜 주는 장면이었다. 그는 그런 의사 였다. 그가 북에서 유일하게 데리고 온 둘째 아들 역시 아버지의 길을 따라 걸었다고 한다. 서울대 의대에서 정년퇴직해 올초 운명을 달리했던 장가용 박사가 바로 그의 유일한 남쪽 혈육이다. 기사로 접한 그의 생전 인터뷰는 그의 아버지 장기려 박사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생생하게 들려준다.

 

장기려 박사는 이땅에 그의 이름 뿐만 아니라 많은 것을 남기고 떠났다. 사랑과 봉사라는 그가 일생을 바쳐 실천했던 의미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참다운 삶이 무엇인지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만 같다. 바보 의사란 소릴 들을 정도로 우직하게 그리고 묵묵하게 하늘이 준 자신의 소임을 다하고 떠난 그는 분명 살아있는 성자였다. 또한 그가 보여준 의사의 정의는 지금도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것만 같다.  

"왜 아픈 사람을 일컬어 환자라고 하는지 아나? 환(患)은 꿰맬 관(串)과 마음 심(心)으로 이루어져 있다네. 상처받은 마음을 꿰매어야 한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네. 다시 말해 환자란 다친 마음을 어루 만져줄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야. 눈에 보이는 상처는 치유하기 쉽지만 마음에 새겨진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네. 자네가 진정한 의사가 되려면, 무엇보다 먼저 환자의 마음을 고치는 의사가 되어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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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의 리더십 - 열린 대화로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는 미래형 문제해결법
아담 카헤인 지음, 류가미 옮김 / 에이지21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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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에서 분쟁이란 언제나 있어왔던 서로간의 충돌이며 그것은 조금이라도 자신의 이익을 확보하려는 개인 혹은 그 개인이 소속된 집단의 양보할 수 없는 존재의지이기도 하다. 그렇게 서로 다른 두 개의 견해가 맞부딪히면서 발생하게 되는 분쟁은 힘의 우위에 의해 강제적으로 판가름나거나 아니면 그대로 만성적으로 해결이 되지 않은채 고질적인 문제거리로 남게 된다. 우리는 그러한 어려운 문제들의 해결을 위해 노력하지만 서로 다른 방향만을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에서 절충을 찾기란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님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지금도 세계곳곳은 첨예한 대립이 진행중이며 각 이해 당사자들은 자신의 입장만을 내세워 조금의 양보도 없이 대치하고 있다. 지난 20여년간 그러한 분쟁과 갈등의 현장에서 직접 그들과 부딪히며 함께 대화하고 토론하는 워크숍을 진행했던 아담 카헤인은 이 책 <통합의 리더십>을 통해 그러한 갈등의 해결에 또다른 방법이 있음을 이야기하려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들어갔던 직장에서 저자는 파벌과 왜곡이라는 불합리를 직접 경험하게 되고 결국은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 다음으로 그가 선택한 직장이 세계적인 석유회사 쉘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경영진의 창조성을 자극하고 사고방식을 넓히며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욕을 넓혀줄 아이디어를 생산해내 그들의 토론능력을 높여주는 일을 하게 된다. 그 방법중의 하나가 바로 시나리오를 만드는 것이었고 그것은 그가 이후에도 많은 분쟁의 현장에서 대립을 막고 보다 진지한 토론이 이루어질수 있게 만드는 최고의 방법이자 수단으로 이용하게 된다. 그는 그일을 진두지휘하는 자보르스키를 만나게 되면서 현실적이기만한 자신의 과학적 사고방식이 변화하고 있음을 직감하게 되고 그의 지도를 통해 자신이 대학시절 꿈꾸었던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다시금 살아나는 것을 느끼게 된다. 

 

1991년 중반 회사가 시도하는 새로운 시나리오의 기획팀을 돕기 위해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보내진 그는 워크숍의 진행을 맡게 되면서 보다 현실 참여적인 시나리오를 비로소 접하게 된다. 아파르트 헤이트라는 지독한 분리정책이 서서히 풀어지는 시점에서 그때까지 억눌려만 있던 다수의 흑인들은 몽블레라는 곳에 모여 저마다의 다양한 견해를 내세우며 부딪히기 시작한다. 그러나 저자는 그들이 남아공화국이라는 그들의 국가의 현재 상황이 잘못되었다고 느끼고 그것을 고치는데 헌신하기 위해 이 워크숍이 기획되었음을 알고 있었고, 얼마전까지만해도 죽느냐 사느냐하는 격렬한 투쟁을 하던 그들이 밝고 창조적이고 열린 마음으로 함께 문제를 풀어가는 것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게 된다. 그에게 몽플레 기획은 놀라운 발견이었고 새로운 깨달음이었던 것이다. 결국 그는 그들의 열정과 열린 마음에 반해버린 저자는 쉘이라는 안정된 직장을 포기하고 그곳에 남을 것을 결심한다. 그리고 몽플레 기획이 왜 그토록 중요했는지 어떻게 워크숍 참가자들은 그러한 일을 해낼수 있었는지 고민해보게 된다. 그는 자신의 전공인 물리학적인 분석을 통해 그는 몽플레 기획이 중요하고 특별했던 이유가 그들이 사회를 창조적으로 혁신하는데 매우 알맞는 상황을 만들었기 때문이으며, 또한 워크숍 참가자들이 그러한 놀라운 성과를 이루어냈던 원동력이 말하기와 듣기를 통해 이루어졌음을 알게 된다.

 

우리는 상대방과 어떠한 논쟁을 할 때 결코 상대방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것은 마음속에서 미리 결정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가 가장 간과하고 있는 말하기와 듣기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이해를 도우려 노력한다. 폭력이 난무하던 콜롬비아에서 열린 워크숍에서 그는 참여조차 하지 않으려던 좌파 게릴라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 워크숍에 참여하는 데 유일한 조건이 있다면 그것은 기꺼이 자신의 주장을 말하고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겁니다."
남아공화국의 몽플레 기획이 직접적으로 나라를 변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데 비해 콜롬비아에서의 워크숍은 그들의 나라에서 벌어지는 폭력을 해결해내지는 못했지만 상대편을 믿고 신용하며 안전하게 대화할 수 있는 자리로 그들을 이끌어 냈다. 무엇보다도 솔직함이라는 요소가 그들을 대화로 이끌어낸 것이다.

 

저자는 열린마음으로 듣는 것이 모든 창조의 바탕이라고 이야기하며 혁신적인 프로그램으로 사업을 이끌었던 제록스의 부사장 존 엘터의 말을 인용한다.
"열린 마음으로 듣는 것, 그게 전부입니다... 진짜 어려운 문제는 사람들 사이의 권력투쟁을 해결하고 서로에 대한 신뢰를 형성하고 타협하는 일이죠... 우리가 열린 마음으로 듣지 않는다면, 우리는 전혀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없을 겁니다." 

말하기와 듣기를 통해 우리는 세상과 소통한다. 하지만 그저 쉽사리 내뱉고 남의 이야기들어도 스쳐 지나가듯 흘려보낼 뿐이다. 하지만 우리가 처한 상황속에서 새롭고 보다 나은 미래를 창조해내기 위해서는 잠재되어 있는 최상의 가능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과테말라에서 벌어진 비젼 과테말라 워크숍에서 저자는 오차에타라는 인물을 통해 감정이입과 신성에 대해 배우며 마침내 치유라는 문제해결에 대해 인식하게 된다.

 

현재 우리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어려움 역시 소통의 부족에서 왔음을 우리 모두가 인식하고 있다. 그것은 소수의 권력자와 리더에 의해 지금껏 진행되어 왔던 문제 해결에 이제 모두가 대화로 문제해결을 해야 함을 주장하는 것이다. 단방향적인 정책만을 고집해왔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던 우리들에게 어쩌면 지금의 혼란은 앞으로 더 나은 미래로 가는 새로운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대화가 부족하고 좀처럼 남의 말을 듣지않으려 하는 지금의 분위기에 이 책은 어쩌면 새로운 돌파구를 만드는 해결책이 되어 주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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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도쿄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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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젊은 날의 꿈과 추억을 떠올릴 때마다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생기는 것은 누구에게나 그 시절이 어느때 보다도 아름다웠고 행복한 순간으로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시절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고 해보겠다는 열정이 있었으며 또한 젊음이라는 최고의 무기가 있었기에 거칠 것이 없어만 보였다. 세상에 대한 두려움도 무언가 옥죄는 듯한 답답함도 그저 모두 헤쳐나가기만 하면 될 것처럼 보일뿐 나를 붙잡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젊음의 특권이니까...

 

번역되어 출간되는 책마다 많은 이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오쿠다 히데오의 신작 <스무살, 도쿄>는 작가의 전작들과는 조금은 다른 분위를 지닌듯 하다. <공중그네>에서 <인더풀>과 <면장선거>로 이어지면서 수많은 팬을 낳았던 엽기의사 이라부와는 달리 <스무살, 도쿄>의 주인공 다무라 히사오는 웬지 평범해 보이기까지 한다. 오쿠다 히데오의 히트 캐릭터 이라부가 특유의 무덤덤함을 내세워 현실에 대한 대한 냉소와 그에 따른 허무한 폭소를 자아내게 했다면, 히사오는 모두가 한번쯤은 겪었을 만한 젊은 날의 기억을 통해 책을 읽는 독자들까지도 자신의 지나간 시절을 그리워하게 만드는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만 같다.

 

"한눈에 반하는 건 사랑이 아냐. 발작이지."
삼시 세끼 밥보다 록음악이 더 좋은 히사오는 사실은 음악평론가가 되고 싶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음악평론가가 되는지도 몰랐고 또한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 조차도 없다. 다만 고향인 나고야의 집을 떠나고 싶었고 그것이 도쿄라면 더욱 좋다고 생각해 볼 뿐이었다. 자신의 희망대로 집을 떠나 도쿄에 왔지만 아무 할일이 없다. 1년간의 재수끝에 대학에 합격하지만 여전히 뚜렷한 목적의식이나 앞날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도 없다. 스쳐 지나가는 순간의 선택으로 전공을 선택하기도 하고 연극부라는 서클 역시도 별 이유없이 가입하고 만다. 하지만 좋아하는 선배 나호코만큼은 늘 관심의 대상이다. 그러나 눈길 한번 주지않는 선배와는 달리 술에 취하면 망나니가 되어버리는 입학동기 고야마 에리는 늘 히사오의 주변을 맴돈다. 별 생각없이 했던 뚱뚱하다라는 한마디로 에리는 상처를 받고 그런 그녀를 달래기 위해 히사오는 하루종일 그녀를 찾아다니다가 결국 그녀와 키스를 하게 되고 그렇게 첫사랑의 기억을 가슴에 담는다.

 

다시 1년이 지났다. 히사오는 대학을 중퇴하고 '신광사'라는 작은 광고대행사의 카피라이터로 일하게 된다. 경험도 없고 나이도 이제 겨우 스물한 살이지만 세명의 부하직원을 거느리고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일상속에서 살아간다. 점심도 제대로 챙겨먹을 수 없는 고달픈 일상속에서 히사오는 문득 존 레넌의 '이매진'을 듣는다. 가는 곳마다 존 레넌의 이야기 뿐이다. 일을 마치고 회사로 돌아오면서 문득 히사오는 존 레넌의 죽음을 실감한다. 하지만 음악을 좋아했던 그였지만 히사오의 현실은 그것 조차도 돌아올 겨를이 없는 나날일 뿐이다.

 

 

작품은 모두 여섯개의 장이 나열되어 있다. 1978년 재수를 준비하기위해 도쿄에 올라온 첫날, 79년 대학 신입생 시절 첫키스를 하던 날, 80년 대학을 중퇴하여 갓 입사여 정신없이 보내던 나날, 어느 정도 일에 자신감을 갖기 시작하는 81년의 어느 날, 회사에서 나와 독립하고 요코와 맞선을 보았던 85년, 서른을 눈앞에 둔 89년의 어느날까지 모두 여섯해의 하루하루가 모아져 한권의 소설로 이루어지고 있다. 작품속에 나열된 날들은 히사오의 기억에도 특별한 나날들의 연속이지만 오쿠다 히데오는 그날들을 일본 사회의 트렌드를 상징하는 날들로 묶어내는 조합을 가한다. 오랫동안 사랑을 받았던 아이돌 스타가 은퇴공연을 하기도 하고, 전설적 야구스타가 많은 비난속에서 데뷔하는 날이기도 하며, 세기의 스타인 비틀즈의 존 레넌이 암살당하는 날이기도 하다. 작가는 그러한 조합들이 인위적으로 엮어놓았지만 소설속에서 그 흐름들은 너무나 자연스럽다는 것을 우리는 깨닫게 된다. 소설속의 히사오처럼 우리들 누구에게나 그러한 날들이 몇 번씩은 있을 테니까...
    
작품의 마지막 에피소드인 1989년 11월 10일은 독일이 통일되고 자유로운 왕래가 허용되기 시작한 날이기도 하다. 그것은 오랜동안 지속되었던 동서냉전의 마지막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렇게 한 체제의 종말을 고하는 것은 또한 한 시대가 막을 내리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한 과정들을 지켜보며 히사오와 친구들은 자신들 역시 이십대가 끝나고 서른이 됨을 직감한다. 누군가 새로운 시작이라고도 하지만 누군가는 '청춘은 끝나고 인생은 시작된다.'라고도 한다. 그렇게 히사오는 서른이 된 자신을 발견한다.

주인공 히사오의 나이는 공교롭게도 작가 오쿠다 히데오와 같다. 그렇기에 작가 자신이 느끼고 체험했던 시대상이 고스란히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히사오가 서른의 관점에서 스무살을 돌아보건 아니면 지금 현재의 관점에서 지난 날을 돌아보건 간에 애틋하고 지나간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만큼은 아마도 모든이의 공감을 얻어내기에 충분해 보이기만 한다. 소설을 읽는 내내 나 역시도 지난 스무살 시절을 가끔 떠올리곤 했다. 스무살의 나도 거침없이 달렸었지만 서른살엔 하나의 시대가 막을 내리는듯한 느낌을 받았던 것 같기에...       

 

문득 도쿄로 떠나는 히사오에게 어머니가 들려주던 말이 생각난다.
"너는 남한테 고개 숙이는 일에는 소질도 없고, 그냥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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