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후회남
둥시 지음, 홍순도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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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마디가 지니는 파급효과는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만큼 위력적이다. 잘못 뱉은 한마디로 인해 구설수에 오르는 것은 물론이요 때로는 그 화때문에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정치인이나 연예인 같이 적극적인 대중의 관심속에서 사는 이들이 말 한마디 때문에 무너져 가는 것을 수도 없이 우리는 보아왔으며, 근거없는 루머가 그들을 벼랑으로 몰아넣는 사태 또한 끊임없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이 그들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관계와 관계 속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말로 인해 생길수 있는 모든 문제는 자신만이 감당해야할 몫이며 그 누구도 책임질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때때로 그러한 말의 중요성을 잊어버리고 사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중국의 소설가 둥시의 이 작품 <미스터 후회남>은 순간순간의 말 한마디로 인해 평생을 후회속에서 사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우리에게 다시금 돌아볼 기회를 주는듯 하다.

 

소설은 중국의 문화대혁명이 시작되던 1960년대부터 시작된다. 문화혁명은 중국 사회의 많은 구조를 바꾸어 놓은 일대 사건이다. 그때까지 남아있던 이른바 지주계급을 비롯한 모든 착취계급이 남겨놓은 낡은 사상과 문화 그리고 풍속까지도 모두 바꾸어 모든 인민을 조직적으로 관리하는 하나의 시스템이기도 했다. 그러한 혼란의 시기 중학생이던 주인공 쩡광셴의 아버지 쩡창펑 역시 문화혁명이라는 시대의 대세앞에 집안 대대로 내려오던 많은 재산을 다 잃어버리고 유일하게 남은 창고에서 이전까지 자신의 집 하인이던 위파러와 자오라오스 가족과 함께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옛부터 부자들이 많은 처첩을 거느렸던 것처럼 쩡창펑 역시 여자에 대한 욕심이 무척이나 많은 인물이다, 하지만 동물원에 다니던 그의 아내이자 광셴의 어머니 우성은 당에서 운영하던 학습반에 다닌 이후로 그를 근처에도 오지 못하게 한다. 욕구불만에 쌓인 그는 하인이었던 자오영감의 배려하에 그의 딸 자오산허와 불륜을 저지르지만 하필이면 그 광경을 광셴에게 들키고 만다. 어머니 조차도 쉬쉬하던 그 일은 광셴의 입을 통해 자오산허의 오빠 자오완녠에게 알려졌고 일자무식이지만 당에 의해 노동자 계급을 대표하는 지위를 갖고 있던 그는 쩡창펑을 끌고 가버린다. 아마도 그 이후부터 광셴의 입에서 나오는 한마디 한마디가 계속해서 수많은 재앙을 몰고 온다. 도색잡지를 보던 아버지를 고발해 아버지가 또다시 잡혀가는 것은 물론 그들 삶의 터전이던 창고까지 몰수되어 버린다. 그러한 상황들을 참지 못해 집을 뛰쳐나간 어머니 역시 성추행을 당하는 모습을 아들 광셴이 목격하자 여동생 쩡팡마저 어디론가 보내버리고 수치심에 목숨을 끊어버리고 만다. 

 

소설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물론 광셴의 입에서 나오는 말로 인해 터지는 사건의 연속들이다. 작가는 그 대부분의 사건들을 광셴의 성에 대한 호기심과 갈망으로 엮어낸다. 이를테면 어릴때부터 보아온 아버지의 부도덕한 욕구 때문에 생긴 반감으로 인해 자신에게 적극적인 애정을 표시하는 샤오츠를 물리치기도 하는 것이다. 성인이 되고 부터 그는 어머니를 대신에 동물원에 들어간다. 그곳에서도 광셴의 입은 쉬질 않는다. 잘못된 정보로 인해 동료 자오징둥을 죽음에 이르게 하며, 자오징둥의 사촌누나 장나오에게 첫눈에 반해 그녀의 방에 들어갔다가 강간범의 누명을 쓰고 투옥되기도 한다. 이 정도까지 수많은 사건에 휘둘리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주변엔 늘 여자들이 끊이지 않는다. 단 한번만이라도 광셴이 정신을 차렸다면 광셴은 아버지와 화해할수도 있었고 예쁜 손자를 아버지에게 안겨줄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광셴을 철저히 망가뜨리려 하는 것 같다. 아무리 재수가 없고 인생이 꼬여도 광셴만큼 그러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 않아도 될 말 때문에도 그러하지만 신중하지 못한 성격때문에 언제나 그릇된 선택을 하고 만다. 10년에 가까운 감옥생활 끝에 그는 아이러나하개도 무죄로 풀려난다. 출옥후에도 그의 삶은 여전히 비틀려 있다. 여자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헤매고 중심을 잡지 못하는 그를 보고 있노라면 애처롭기까지 할 뿐이다.

 

오십을 다 되어버린 중년의 나이가 되어서도 광셴은 여전히 숫총각이다. 안마시술소의 아가씨가 혹시나 손바닥에 점에 있는 헤어진 그의 여동생이 아닐까란 생각 때문에 여자를 안을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그럴수 밖에 없는 것이 그의 성격이며 또한 작가가 만들어낸 광셴의 캐릭터이기도 하다. 그는 이제 안마시술소의 아가씨에게 후회만이 가득한 자신의 삶을 들려주고 있다.  그의 기나긴 이야기를 아무도 들어주지 않으려하기에 그는 이 나이가 되서야 겨우 이렇게 입을 떼었나 보다.
"이건 아가씨에게 주는 팁이야. 밤새 내 얘기를 들어줘서 정말 고마워."

 

어쩌면 우리는 후회라는 단어에 대해 너무나 익숙하다. 그때 내가 그러지 않았으면... 혹은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식의 후회는 어느 순간에나 우리를 지배하는 생각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빨리 떨어버리려 노력한다. 지나간 일을 후회해봐야 다시 돌이킬수도 없는 노릇이고 앞으로 다가올 시간에도 그리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현대사회는 우리에게 후회라는 단어를 오래도록 곱씹고 있을만한 시간적 여유조차 제공하질 않는다. 하지만 주인공 광셴의 경우에는 후회가 쌓여 회한이 되어 버렸다. 우리들 늘 삶에서 쉽게 떨쳐낼 수 없는 것이 후회이긴 하겠지만 적어도 이 처절한 삶을 살아온 광셴 만큼이야 하겠는가. 문화혁명이라는 시대적 배경이 있긴 하지만 이 모든 사건은 모두 광셴의 말과 우유부단한 성격탓에 일어난 일이다. 물론 작품의 급변하는 중국의 변화를 빼놓을순 없지만 그것마저도 해학적으로 그려내는 작가의 기지가 남달라보일 뿐이다. 삶을 통틀어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광셴의 삶을 통해 후회라는 감정이 주는 진한 아픔만을 느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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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와 귀울음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0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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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미 많은 작품들을 통해 국내의 독자들과 만나 단단한 매니아층을 형성하고 있을 정도로 온다 리쿠는 인기작가이기도 하다. 일정한 틀에 박힌 어느 한 분야가 아닌 다양한 패턴의 작품들을 통해 그녀만의 독특한 세계를 개척했고 열어갔기에 그러한 인기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보게 되는 작가이기도 하다. 최근의 작품 경향들이 미스터리와 판타지가 적절히 조합된 작품들인데 비해 이 책 <코끼리와 귀울음>은 본격 추리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는듯 하다. 초기작이라 할 수 있는 이 책은 열 두개의 단편이 들어있지만 어느 한 주인공을 통해 전개되는 일종의 연작집이라 할 수 있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또하나의 특징이 그간 온다 리쿠의 작품에 등장했던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주는 친근감일 것이다. 온다 리쿠의 데뷔작이기도한 <6번째 사요코>에 등장했던 슈의 아버지 세키네 다카오가 바로 이 책을 이끌어 나가는 주인공이며, 슈의 형과 누나인 슈운과 나쓰가 곳곳에 게속해서 등장하여 그러한 가족간의 연결고리들을 이어나가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은퇴한 판사 세키네 다카오는 특유의 날카로운 직관력과 평소 즐겨읽는 추리소설로 인해 사물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선을 가진 인물로 표현된다. 때로는 알 수 없는 모호함을 연상케하기도 하지만 자그마한 단서 하나로 사건의 전말을 추리해내는 놀라운 능력은 보는 이로 하여금 경탄을 자아내게 하기도 한다. 첫번째로 실려있는 <요변천목의 밤>은 그러한 그의 성격을 잘 표현하고 있는듯 하다. 순간적으로 스쳐지나가는 생각을 통해 온다 리쿠는 그러한 다카오의 이미지를 조금씩 만들어가고 있다. <뉴멕시코의 달>을 통해 원인을 알 수 없는 연쇄살인사건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주기도 하며 <왕복서신>을 통해 가보지도 못한 곳에서 일어난 사건의 전모를 밝혀내는 놀라움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것은 비단 다카오 뿐만 아니라 그의 장남이자 현직 검사인 슈운 역시도 마찬가지인듯 하다. <대합실의 모험>을 통해 슈운 역시 아버지 못지 않은 관찰력과 예리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더욱이 순발력까지 갖춘 슈운이기에 아버지의 상대가 되기엔 충분해 보이기까지 하다. 마침내 <바다에 있는 것은 인어가 아니다>를 통해서는 그러한 날카로운 부자간의 추리 대결이 벌어지기도 한다. 다카오와 슈운의 추리 모두 어느 하나가 맞다라고 하기보다는 그 추리를 이끌어내는 전개방식에 있어 특유의 날카로운 면모들을 보여주고 있는듯 하다.

 

추리소설의 묘미는 무엇보다 날카로운 논리전개일 것이다. 그것은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원인과 절차를 통해야만 독자로 부터의 이해를 끌어낼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탁상공론>에서는 다카오의 아들과 딸인 슈운과 나쓰의 대결이 펼쳐진다. 현직검사이면서 이전의 작품에서 예의 그 날카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던 슈운과 변호사로 이미 유명해진 나쓰의 대결은 분명 흥미로운 대결이었다. 몇 장의 사진을 놓고 그것이 누구의 방인가를 맞추는 문제였는데 답을 떠나서 그들이 그러한 추리를 이끌어내는 과정을 통해 다카오 일가의 대단함을 엿볼수 있는듯 했다. 모든 작품은 어쨌든 다카오가 등장하거나 또는 그와 연결되어진 사람들의 일상을 쫓는다. 하지만 웬지 등장인물 모두가 다카오의 대단함을 보여주기 위한 조연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왕복서신>과 <마술사>를 통해 결국 온다 리쿠는 다카오의 날카로운 추리력이 최고임을 다시 한번 입증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저 일상에서 벌어진 자그마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몇몇 작품들은 무언가 작가의 메세지가 담겨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신 D고개 살인사건>에서는 대도시의 한복판인 광장에서 죽음을 맞이한 어느 한 남자가 그저 현대인의 이기적인 욕망과 무관심 때문에 그렇게 되었음을 은근히 타락천사 루시퍼에 빗대기도 하면서 어쩌면 그것이 모두의 잘못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갖게 하며, <급수탑>역시 현대 문명에 급속도로 옛모습을 잃어가고 있는 모습을 급수탑이라는 어느 하나의 정경에 빗대어 섬뜩한 추리로 연결해 내기도 한다.

 

온다 리쿠를 그저 한마디로 표현해내기는 쉽지 않을듯 하다. 도코로 일족의 이야기를 통해 몽환적이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고 때로는 성장의 아픔을 때로는 미스터리와 SF적으로 보이기까지한 작품들로 다양한 그녀만의 세계를 연출해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은 그 중에서도 아마 본격 추리소설의 범주의 들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5년여간의 긴 연재기간을 통해 다져진 작품속 인물의 예리한 캐릭터가 그것을 또한 증명해 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작품을 통해 상상력을 배워 보는듯 하다. 살아가면서 어쩌면 그것은 우리에게 너무나 필요한 요소이겠지만 우린 그것을 제대로 써먹지도 개발해낼 여력도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온다리즘이란 말이 나올만큼 매력적인 그녀의 작품을 만나본 시간이 그저 즐거웠던 기억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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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추태후
신용우 지음 / 산수야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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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TV 역사드라마의 패턴이 바뀌었다. 천편일률적으로 조선시대를 중심으로 권력 다툼이나 여인네들의 궁중 암투를 그리던 것에서 벗어나 고구려와 발해라는 대륙을 호령했던 나라들을 그 소재를 확대시키기 시작했다. 물론 자기땅에서 일어난 일은 모두 자신들의 역사라는 말도 안되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기인한 바가 크긴 하지만 그러한 드라마들은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우리 민족의 자주성과 자긍심을 보여주는데 적지 않은 기여를 한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제 TV 역사드라마들은 또 한번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그것은 그저 언제나 역사의 뒤편에 서서 주변인으로 비추어졌던 여성들에 대한 재해석이다. 물론 권력의 중심에 서있던 여성들을 다룬 드라마가 없진 않았지만 있다고 해도 대부분 좋지않은 말로를 보여준 인물들 뿐이었다. 그런 면에서 '천추태후'나 '선덕여왕'등 직접 권력을 쥐고 흔들었던 여걸들의 모습은 분명 새로운 시선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신용우의 역사소설 <천추태후>는 실제 나이 어린 국왕을 대신해 그 모후로서 권력을 쥐고 섭정을 했던 헌애왕후 즉 천추태후의 일생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천추태후는 역사속에서 여걸이라는 이미지와는 다소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조선초에 쓰여진 <고려사>에는 경종의 왕후였지만 경종 사후 천추궁이라는 곳에서 머물며 김치양이라는 인물과의 불륜을 통해 낳은 아이를 차기 국왕으로 만들려 했던 요부이자 권력에만 눈이 먼 여인으로 천추태후를 묘사하고 있다. 오랫동안 그렇게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던 천추태후가 천년이란 시간이 지난 지금 새롭게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여 재평가받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만드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녀는 그저 눈앞의 권력을 쫓던 요부였을까 아니면 진정 고토회복을 꿈꾸는 진정한 여걸이었을까.

 

천추태후가 어떠한 인물이었나 평가하기 이전 당시의 정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할듯 싶다. 태조 왕건과 함께 후삼국 통일에 기여했던 많은 호족들은 대부분 광종대에 숙청되고 얼마 남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뒤를 이은 경종대에 이르러 비로소 움츠려든 권력에의 의지를 표방하고 반격에 나서기 시작한다. 그러한 혼란의 시기 경종이 맞이한 왕후가 헌애왕후이며 경종과의 사이에서 낳은 목종의 모후가 되는 천추태후가 된다. 그녀의 친동생 역시 경종에게 시집오게 되어 헌정왕후가 되면서 자매가 모두 경종의 왕후가 되지만 경종은 호족 세력들의 견제에 부딪히면서 정치 자체에 염증을 느끼게 되고 정사를 게을리하게 된다. 결국 그는 그의 사촌동생이자 천추태후의 친오빠인 성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숨을 거둔다. 천추태후가 김치양과 통정하고 복잡한 혼인관계는 태조 왕건이 호족 세력을 규합하기 위해 펼쳤던 혼인정책에서 기인한다. 왕건은 29명의 부인과 30명이 넘는 자식을 남겼고 왕건강화를 위해 족내혼을 적극 장려했다. 천추태후 자매가 경종에게 시집가게 된 이유도 결국 왕족간의 세력결집을 위함이기도 했다. 성종은 즉위 이후 유교적 이념아래 송과의 적극적인 외교를 펼치고 거란과 대립하게 되고 마침내 거란이 칩입하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천추의 한을 풉시다."
소설은 병자호란 이후 북벌을 계획하던 효종과 어영대장 이완의 밀담속에서 효종이 북벌에의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강력한 표현으로 천추태후의 원대한 꿈을 거론하면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외세를 이용해 힘을 키우는 방법을 택할 것을 이야기 한다. 결국 그것은 천추태후의 외교력이 어떠한 것이느냐이며 이 소설에서 가장 크게 다루는 초점이기도 하다. 천추태후가 남성스런 호방함을 갖추었다는데는 이견이 없겠지만 그 용맹함을 넘어 소설속에서 다루어진 거란 성종을 찾아갔다는 내용이나 서희의 외교담판을 지시했다는 내용 등은 너무 과대평가한 것이 아닌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듯 소설과 이미 시작한 TV드라마는 조금은 그 포인트를 조금 달리하는 것으로 보인다. 드라마는 오빠인 성종과의 갈등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시작하지만 소설속에는 그러한 모습이 없다. 소설 속에서 그들은 동지이며 뜻을 같이하는 오누이로 묘사된다. 또한 강조 역시 천추태후와의 연결고리가 보이질 않는다. 다만 김치양과의 사랑만은 소설속에서나 드라마 속에서나 실제 역사속에서 진실처럼 보여질 뿐이다.

 

역사의 기록에 의해 한 인물에 대한 평가가 극과 극을 달릴수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하지만 소설속 효종의 표현처럼 그녀가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는 것은 사실로 보인다. 유교사상과 중국에 대한 사대가 국가이념이었던 나라가 조선이었기에 그들이 쓴 고려의 역사 역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방향으로 밖에는 해석할 수 없고 천추태후에 대한 기록 역시 그러한 결과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볼 대목이기도 하다. 목종의 죽음과 천추태후의 실각이 서기 1009년이니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천 년전이다. 그녀 스스로가 천추태후라 부르기도 했던 것처럼 천 개의 가을이 지난 지금 그녀의 존재가 새롭게 부각되는 것이 어쩌면 우연의 일치만은 아닌것으로 보여지는 것 같다.

 

역동적이고 자주적인 고려인의 모습을 책 속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치열한 경쟁만이 존재하는 오늘날의 국제 정세에서 과연 실리적인 외교가 무엇인지 한번쯤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것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사랑을 갈망했고 권력만을 쫓던 요부와 시대를 앞서갔던 야심찬 여성리더라는 두 가지 모습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천추태후에 대한 재조명은 편협한 역사관에서 우리를 깨어날수 있게 해주는 기회를 만들어 줄 수 있는듯 보여진다. 다만 그녀의 쓸쓸한 퇴장이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지난날에 대한 자부심도 앞으로 다가올 희망도 없었다. 남은 것이라고는 잠시 머물다 사라진 구름처럼 되어버린, 고구려의 기백을 가슴에 안고 요동 땅을 차지해 그날의 영예를 다시 누려 보겠다는 빛바랜 꿈뿐이요, 바람처럼 왔다가 스쳐 가버린 권력이라는 허무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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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방 우편기 현대문화센터 세계명작시리즈 19
생 텍쥐페리 지음, 배영란 옮김 / 현대문화센터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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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텍쥐페리에게 있어 <어린왕자>는 빼 놓을수 없는 작품이다. 그가 써낸 수많은 작품중에서도 세대를 초월하여 모든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그의 대표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어린왕자>를 출간하기 이전부터 이미 작가로서의 명성이 대단한 위치에 올라있던 사람이기도 했다. 물론 경제적인 요인도 있었겠지만 그는 촉망받는 작가 뿐만 아니라 어려서 우연히 타게 된 비행기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한다. 실제 군에 입대해 전투기 조종사가 되었으나 사고로 인해 그는 조종사라는 꿈을 잠시 접기도 한다. 이 책 <남방 우편기>는 그가 다시금 우편 비행기의 조종사로 일을 하기 시작한 직후에 집필한 작품으로 그의 처녀작이기도 하다. 결국 그는 작가이기 이전에 아직 비행기나 비행이라는 것 자체가 일반적이지 않던 1920년대 후반 이미 민간 조종사라는 새로운 영역에 발을 내디딘 선구자이기도 했다.  

  

그의 작품 가운데에는 실제 비행기 조종사와 관련된 작품이 많다. <야간비행>이나 <인간의 대지>등은 조종사로 그가 겪거나 체험했던 명확한 근거아래 집필된 작품으로 그로 인해 그는 행동주의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로 꼽히기까지 한다. <남방 우편기>는 초기작인 만큼 그가 비행을 시작하면서 아직 떨쳐내지 못한 세상에 대한 여러가지 감정들이 담겨져 있는 작품이다. 어쩌면 20대 후반의 생텍쥐페리에게 세상은 언제나 그가 다가서야할 곳인 동시에 그의 삶의 터전이기도 했다. 주인공 베르니스 역시 세상을 이루어지지 못한 첫사랑에 대한 아픔이 여전히 남아있는 곳으로 기억한다. 그의 사랑 주느비에브가 사라진 곳은 더이상 그에게 애착의 대지로 남아있진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작품속의 화자는 베르니스와 어린시절부터 함께 했던 친구로서 즈느비에브와의 아름다운 추억 그리고 다른 이의 아내가 되면서 베르니스가 가져야했던 아픔들을 모두 알고 있는 이 이며 외롭고 고독한 비행중의 조종사에게 세상과의 유일한 접점을 찾아주고 있는 무선사이기도 하다.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또한 전형적인 작가시점이 아니기에 어쩌면 베르니스와 주느비에브 둘 모두에게 조금은 더 가까이 독자들이 다가설수 있는 요인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모든 것이 간단하구나... 산다는 것도, 골동품을 정리한다는 것도, 그리고 죽는다는 것도..."
작품의 내용은 비교적 간단하다. 오랜 휴가를 끝내고 베르니스는 그의 일인 우편비행을 위해 비행장으로 돌아왔다. 우울함이 들기도 했지만 그는 이제 모든 것을 남겨두고 왔다고 생각한다. 평온해진 상태에서 프랑스발 남아메리카행 우편기에 탑승한 그는 모든 것을 잊고 비행에 집중하려 한다. 잠시 잠깐 비행은 위기를 맞기도 하지만 이내 평온을 되찾고 작품은 지나간 그의 두 달간의 여정에 집중한다. 그는 파리에 돌아와 이미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있는 주느비에브와 재회한다. 남편과의 불화와 함께 아이의 죽음을 겪으면서 주느비에브는 탈진해버린다. 그리고 그녀는 베르니스에게 함께 떠나줄 수 있느냐 묻는다. 그렇게 두 연인의 새로운 만남이 시작되지만 이내 모든 것은 제자리로 돌아간다. 어쩌면 그는 그것이 모두 미리 짜여진 각본이 아닐까라고 생각하며 절망한다. 그처럼 그녀는 그에게 잠깐 왔다가 사라진 꿈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베르니스는 그녀를 잊기 위해 거리의 창녀를 찾기까지 하지만 이내 그는 그녀가 머물고 있는 고향을 찾아간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그곳애서 그는 주느비에브의 마지막을 목격한다. 결국 자신의 세계로 주느비에브를 이끄려 했던 그의 기대는 그가 비행중 건너는 사막만큼의 모래장막이었던 것이다. 

 

'골동품은 이미 어둠을 머금고 있었다.'
사랑은 이 작품속에서 작가가 그리는 가장 중요한 주제가 되고 있다. 베르니스는 모든 것을 남겨두고 왔다고 했지만 화자가 보기엔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작품속에서 여러번 언급되는 골동품은 어쩌면 그러한 의미에 대해 작가가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표현해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골동품은 기억속의 잊혀진 존재이다. 어떠한 사물은 시간과 개인의 추억이 더해 지면서 여러가지 의미를 담아 골동품이 되어간다. 내게는 무엇보다 중요하겠지만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것에 주목하지는 않는다. 애초부터 골동품은 주느비에브에게나 베르니스에게나 하나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주느비에브는 거리의 골동품 가게를 지나면서 골동품이 생사의 갈림길에 서있는 아이에게 생명의 빛을 담아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고고한 그녀의 취향은 베르니스가 보물처럼 여기던 골동품을 보는 시각차에서도 나타나는듯 하다. 결국 그녀의 죽음을 느끼면서 베르니스가 본 어둠을 머금고 있는 골동품은 그녀가 바라보던 빛을 상징하는 것만 같다. 또한 베르니스가 화자에게 보낸 편지에 보여진 골동품 역시 쓰러진 과거의 영광이란 모습으로 나타난 것처럼 지울수 없는 과거의 모습 또는 그 안에 담겨진 또하나의 의미가 아닐까.

 

어려서 읽었던 <어린왕자>나 <인간의 대지>와는 달리 <남방 우편기>는 애절한 사랑에 주목한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생텍쥐페리가 실제 경험했던 삶의 한 부분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실제 생텍쥐페리 역시 비행중 사라져 버린다. 자신에게 그러한 운명이 다가올것을 예견한 것처럼 작품속의 베르니스 역시 사막에서 사라져버리고 만다. 그의 흔적을 쫓아가는 화자의 여정을 통해 <야간비행>처럼 실제 생텍쥐페리의 삶을 엿보는듯 느껴지게 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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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피행
시노다 세츠코 지음, 김성은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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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람들은 모두가 외롭다고 느낀다. 나이와 세대에 따라 그 느낌의 강도는 물론 다르겠지만 근본적으로 그 차이가 그리 크지는 않을듯 하다. 그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사람들은 가족을 이루고 그 울타리안에서 자그마한 행복을 꿈꾸기도 한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가족의 구성원중 어머니만큼 외로운 이는 없는듯 하다. 아버지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하고 아이들을 학교에 다니며 공부하느라 바쁘다. 어쩌면 우린 그 누구도 어머니의 외로움에 대해 생각해본적이 없는 것은 아닐까. 아이가 성장하기까지 가정에서 어머니의 역할은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이 성장하여 독립된 사회의 구성이 되면서 어머니는 말할 수 없는 외로움에 빠진다. 결국 티끌 하나 없게 20여년이 넘게 집안을 쓸고 닦은 주부에게 남은 것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소외감이다.

 

시노다 세츠코의 소설 <도피행>은 그러한 소외감을 겪고 있는 중년의 주부를 중심인물로 내세웠다. 이제 나이 쉰이 된 주부 타에코는 평범한 직장인인 남편과 어느덧 성장하여 직장에 다니는 두 딸 그리고 키운지 9년이 된 골든 리트리버 포포가 그녀의 가족이며 또한 전부다. 3년전 자궁적출 수술을 하면서 그녀에겐 약간의 우울증이 생겼다. 하지만 가족들 모두 그저 갱년기라며 그녀의 우울증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그저 포포만이 말없이 그녀의 옆을 지켜줄 뿐이다. 사건은 어느날 갑자기 일어났다. 포포가 이웃집 아이를 물어 죽인 것이다. 물론 원인은 아이에게 있었다. 장난감 총을 쏘고 후추가루까지 뿌려대며 끊임없이 포포를 괴롭히던 어느날 딱총을 포포에게 던진 것이다. 폭음은 포포를 두렵게 했고 포포는 패닉상태에서 아이를 물어 버린 것이다. 경찰의 조사결과 타에코에게는 아무런 과실과 형사상의 책임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분명 포포가 아이를 물어 죽인 것은 사실이었고 온갖 매스컴은 타에코의 정원에 까지 들이닥쳐 살인개가 아이를 물어 죽였다는 사실에만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다. 아이를 잃고 슬픔에 잠겨 잇는 아이의 부모들에게 포커스가 맞춰지면서 순식간에 포포는 맹견이 되고 타에코의 집은 지탄받아 마땅한 사람들이 된다. 남편과 아이들마저 포포를 안락사시킬 것을 권유한다. 하지만 타에코는 완강하다. 포포 역시 자신의 가족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국 타에코의 선택은 포포와 함께 잠적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쉰의 주부 타에코는 늙은 개 한마리와 함께 가족과 사회로부터 도피를 시작한다.

 

"너 뿐이야."
대형견이긴 하지만 골든 리트리버는 분명 교배를 거듭하여 철저히 공격성이라는 개의 본능을 억제시킨 개량견이다. 타에코 역시 사람이 준 먹이만 먹고 떨어진 음식은 못먹게 가르쳤다. 마음을 주었기에 언제나 자신의 생각과 같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한 마음을 갖고 운전조차 못하는 타에코는 자전거에 포포를 싣고 도피를 감행한다. 우연히 얻어탄 트럭에서 물건을 훔치는 여자를 또다시 포포가 물고 그녀가 큰 부상을 입게 되면서 그녀의 도피는 이제 세상사람 모두가 알게 되어 버렸다. 남편이 노후 자금으로 마련한 돈은 그녀의 도피자금이 된다. 결국 그녀는 인적이 드문 숲속의 외딴 별장까지 이르게 된다. 천애고독하고 성격 까칠한 알 수 없는 도공 쓰쓰미가 유일한 이웃일뿐, 마을까지 걸어서 한시간 가까이 걸리는 외진 그곳에서 포포와 타에코 둘만의 생활이 시작된다.

 

도대체 타에코는 왜 도망쳤는가. 살인범도 아니고 지명수배자도 아닌 그녀가 왜 이렇게까지 숨어 살아야 할까. 사실 타에코 혼자 도망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포포에게 수갑을 채운다고 해결될 것도 아니다. 작가는 그녀를 끈질기게 쫓는 기자 다마키의 질문을 통해 그것을 묻는다. 어쩌면 우리가 가장 궁금해 여기는 것 역시 타에코가 왜 도피를 감행했느냐의 문제이다. 더군다나 포포는 숲속에 살게 되면서 야성의 본능을 되찾아 간다. 스스로 사냥을 해 먹이를 해결하고 멧돼지를 공격할만큼 변해 간다. 다에코 역시 개는 개일뿐 휴머니즘이나 순수한 정신 같은 건 원래부터 없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타에코는 포포를 포기하지 않는다. 노화가 진행되며 급격히 힘을 잃어가는 포포를 보면서 타에코는 자신에게도 눈부신 청춘의 나날들이 있었음을 기억해낸다. 그리고 남편과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을때까지가 여자로서 산 시절의 전부였음을 알게 된다. 어쩌면 성장한 딸들이 자신의 품을 벗어나면서 이제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의 역할이 다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것은 그녀의 삶과 포포의 삶이 그리 다르지 않았음을 이야기하는듯 하다.

 

늙은 개 포포는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하지만 타에코는 지금이 자신의 인생에 있어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 생각한다. 그 늙은 개의 마지막 남은 삶을 돌보기 위해 그녀 역시 지금까지 살아온 생을 버렸으니까...

 

타에코의 도피는 사실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다. 상식적으로도 사람을 물어죽인 개는 그 자체로 지탄을 받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타에코는 포포에게서 자신과의 동질감을 느낀다.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가족 역시도 어찌보면 당연하기도 하다. 그즈음의 주부라면 누구나 겪는 인생의 한 단계이기에 그리 특별할 것도 없다. 누구나 그것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다가오는 노년의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새로운 힘을 얻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는 타에코를 통해 그러한 상황에 부딪혀 그 모든 것을 정면으로 막아서는 주부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타에코가 숲속의 집에서 발견한 검정콩은 그것을 암묵적으로 보여준다. 그 집에 먼저 살다간 노부인은 스스로 작은 농장을 일구며 살아갔다. 현대판 고려장이기도 한 볕이 잘드는 2층 구석방에 앉아 며느리가 주는 음식을 받아먹고 TV나 보며 남은 삶을 보내는 것 보다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는 길을 선택했던 노부인의 삶을 검정콩은 대변하고 있는듯 하다. 타에코는 그렇게 힘을 얻고 포포 역시 그러한 주인 타에코의 마음을 아는듯 끝까지 그녀의 곁을 지킨다. 아마도 죽어가는 타에코의 눈앞에 나타난 젊고 늠름한 개 포포의 모습은 가슴 가득 행복했던 젊은 날의 기억속으로 타에코의 마음을 이끄는듯 여겨진다. 그 행복했던 기억만을 간직할 타에코의 삶이 어쩌면 그녀에게는 후회없는 삶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보게 만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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