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돌핀 프로젝트 펄프픽션 1
박범신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0년 1월
평점 :
절판


 인간의 삶은 어쩌면 죽음이라는 삶의 종착역에 이르는 기나긴 여정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삶을 살아나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죽음은 언제나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는 이유는 단하나 세상과의 결별이고, 이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 누구도 죽음에 대해서만큼은 결코 의연해지기 쉽지 않다. 하지만 여기 자살을 하려하는 중년의 남자는 적어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없는듯 하다. 오히려 그는 한번뿐인 죽음을 연습하고 즐김으로서 그 행위를 자신의 삶의 마지막 축제로 만들려 하는 것으로꺼지 보이기 때문이다.

일평생 한직장에서만 일을 했던 그에게 회사가 준 선물은 권고사직이었고, 그는 퇴직금으로 조금씩 주식투자를 했지만 결국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마지막 남은 38평 아파트라도 지키기 위해 그는 아내와의 위장이혼을 선택하고 그는 어느 옥탑방에 혼자 앉아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그곳에서 그는 단식을 시작한다. 그리고 이내 호흡을 멈추기 시작하면서 정체모를 향기와 함께 기분좋은 어떠한상태를 경험하기 시작한다. 자신을 찾아오고 있는 딸 애린의 모습이 보이지는 그는 그것을 환영이라 생각한다. 육체와 정신이 분리된 듯한 환영속에서 둥둥떠다니던 그는 진짜 자신을 찾아온 딸에 의해 퍼뜩 눈을 뜬다.

"너무나 단세포적인 삶이었어!"
그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이제 그가 환영속에서 보았던 사실들을 통해 육체와 분리될 수 있는 영혼이 존재한다고 믿게 된다. 그것은 그에게 죽음이란 혼의 해방이라는 보다 실증적인 사실로 다가온다.
"... 나는 고치속의 누에가 아니야!"

마흔아홉의 그는 이제서야 자신의 삶을 돌아볼 기회를 갖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을 통해 죽음에 대해 보다 체계적으로 다가서려 한다. 도박에 빠져있는 아내, 어릴적 그의 아버지가 인위적으로 만들려 했던 고향, 어릴적 우물에 빠져 죽어 버렸던 동생 재균, 그에게 당당히 자신의 처녀성을 바라지말라던 젊은날의 아내 그리고 첫사랑 순희까지 그는 자신의 기억 저편에 있는 과거와 엄연히 존재하고 현실을 차례로 돌아본다. 그는 재균에게 미안하다 말하고 싶었다. 어쩌면 재균의 죽음이 그가 평생 가슴 한구석에 가지고 있었던 죄의식의 연원이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다시 한번 호흡을 멈추고 재균을 찾는다. 재균은 그에게 맑고 향기로운 우물이 행복하다 말한다. 그 역시도 그 우물속에서 열락(悅樂)을 느낀다. 그는 뛰어들고 싶다 생각한다. 현실에서 그는 고향으로 찾아가지만 재균이 죽은 우물은 이미 없어져 버렸다. 대신 그는 고향마을에서 순희의 모습을 떠올리며 잠깐이나마 유포리아(euphoria)의 시간을 찾아낸다.   

"그 무엇이든, 회한이 남아있다면 아직 여기 올 준비가 안 된 거예요."
그는 다시는 어떤 틀, 어떤 허울도 만들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내는 새로운 삶을 준비하려 하고 그도 잠깐이나마 현실세계와의 소통을 시도해 보려하지만 결국 그는 재균의 말대로 모든 회한을 정리하려 한다. 그것이 그 어떤 일이 될지라도...

한국문단의 대표적인 중견작가 박범신의 <엔돌핀 프로젝트>는 얼핏보면 실직에 이은 이혼 그리고 혼자만의 칩거생활을 하는 중년가장의 외로운 죽음을 그리는 작품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단순한 죽음보다는 주인공이 스스로 죽음에 다가서는 과정에 주목해 봐야 할듯하다. 그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고 그 과정을 연습하기까지 한다. 결국 무엇이 그를 죽음에 이르게 했느냐 보다는 그가 맞이하는 향기로운 죽음의 의미에 우리들의 초점이 맞춰져야 할 것이다. 그것이야 말로 그가 가부좌를 틀며 근사한 작명이라 생각한 <엔돌핀 프로젝트>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욕망의 난폭한 폭발을 유도하고 있는 저 바깥세상의 포식자들은 결코 맛볼 수 없는 프로그램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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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2008-07-07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퍼님, 안녕하세요 :) (책좋사 ㅋㅋ) 땡스투 남겨요~

재퍼 2008-07-07 20:21   좋아요 0 | URL
땡스투... 으흐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