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이미선 옮김 / 열림원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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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우리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아프카니스탄이라는 나라는 절망이라는 단어 이외에는 쉽게 무언가를 떠올리기 힘든 곳이다. 혹자는 그들을 일컬어 그들의 신에게까지 버려진 땅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인간이 살아가는 모든 곳에서나 희망이라는 단어가 있고 그들 모두는 그것을 부여 잡기 위해 그 끈을 놓지 않는다.

1963년 평화롭던 아프카니스탄의 어느 저택에서 아미르가 태어난다. 그리고 1년이 지나 저택의 한쪽 끝 오두막에서 하산이 태어난다. 비록 아미르가 주인집의 아들이었고 하산이 하인의 아들이었지만 둘은 그들의 아버지 바바와 알리가 그랬던 것처럼 마치 친형제처럼 자라게 된다. 아미르의 어머니는 아미르를 낳던 도중 과다출혈로 세상을 떠났고, 하산의 어머니는 하산을 낳고 일주일이 되기도 전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하산과 나는 같은 젖을 먹고 자랐다. 우리는 같은 마당, 같은 잔디 위에서 첫 걸음마를 뗐고 같은 지붕 아래서 처음으로 말을 뗐다."
사회적 명망과 부 이외에도 '미스터 태풍'이라는 별명으로 불릴만큼 아미르의 아버지 바바는 강인했고, 어디에서나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는 뛰어난 사람이었기에 약하기만 하고 가녀린 아미르에겐 늘 불만이 많았다. 가장 친한 친구였으며 아미르가 가장 의지하고 있는 라힘 칸에게도 그러한 불마을 이야기 하기도 한다. 아미르 역시 그러한 아버지가 두렵기만 했고 그러한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하산에게 때로는 질투까지 느끼기도 한다. 언청이로 태어났지만 강인한 하산이 아미르에겐 시셈의 대상이 된 것이다. 하지만 아프칸의 현실은 그들을 그냥 친구로 존재하게 놔두지는 않았다. 아미르는 절대다수였고 모든 권력을 움켜진 수니파 파쉬툰인 반면 하산은 시아파 하자인이었기에 그들은 주인과 하인이라는 주종관계를 넘어설 수 없었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싶었던 아미르에게 연은 너무나도 좋은 전환점이었고 아미르는 연싸움 대회라는 매개체를 통해 아버지의 사랑을 쟁취하기로 마음먹게 된다. 연싸움의 규칙은 그저 상대방의 연을 끊으면 되는 것이었지만 정작 그보다는 잘려진 연을 손에 넣는 것이 진정한 승부였다. 아미르의 연을 쫓는 아이가 바로 하산이었다.
"보긴 하지만 제대로 바라보지 않고 듣긴 하지만 제대로 귀 기울여 들어주지 않는 아버지를 둔 아들에게는 유일한 기회였다. 신이 있다면 줄을 당겨 내 고통과 갈망을 끊어 버릴수 있도록, 나한테 유리한 바람을 불어 줄 것이다. 나는 그동안 너무 참았고 너무 멀리 왓다. 그리고 그렇게 갑자기, 희망이, 확실한 사실이 되었다."
연을 끊어 버린 아미르는 하산에게 꼭 연을 잡아오라고 외친다.
"도련님을 위해서라면 천 번이라도 그렇게 할게요."

끊어진 연을 쫓는 사투는 언제나 치열했고 그날도 역시 다르지는 않았다. 돌아오지 않던 하산을 쫓던 아미르는 시장의 한쪽 구석에서 하산을 발견하지만 평소 아미르와 하산에게 위협을 가하던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하산을 외면하고 만다. 하산이 말할수 없는 치욕을 겪으면서도 끝내 연을 움켜쥔 손을 놓지 않은 반면 그를 외면한 아미르는 아버지 바바의 사랑을 쟁취한다. 아미르는 그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결국엔 하산을 도둑으로 몰아 알리와 하산 부자를 집에서 내쳐지게 만들어 버린다. 그들이 떠나고 소련군이 내려오면서 모든 것을 앗아가고 만다. 그 절망의 틈새에서 바바와 아미르는 목숨을 건 탈출을 하고 미국으로 건너 오게 된다. 새로운 미국생활에서 그들은 이방인일 뿐이다. 주유소에서 기름때를 묻혀가며 바바는 아미르의 미래를 위해 노력하고 그가 떠나간 뒤에도 아미르는 열심히 살아남아 작가로서의 위치를 다져가는 그때 한통의 전화가 걸려오고 아미르에게 잊으려 했던 아프칸에서의 일들이 현실로 다가온다.

"세상의 죄는 딱 한 가지 밖에 없다. 딱 한가지 뿐이야. 다른 모든 죄는 도둑질의 변형일 뿐이다. 알겠니?"
얽히고 설킨 핏줄 속에서 바바는 아미르에게 너무나도 커다란 거짓말을 했다. 그들이 떠나가던 날 서럽게 울던 바바의 모습이 그것을 단적으로 말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아미르는 아버지를 그저 원망하지만은 않는다. 단 하나의 희망을 부여잡기 위해 탈레반이 가득한 카불로 떠나는 아미르의 모습은 비장하기까지 하다. 작가는 소랍을 통해 희망을 이야기하려는 것 같다. 이미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안정적인 기반을 잡고 있던 아미르에게 어쩌면 아프칸은 이미 먼 이국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난날의 잘못을 다시금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아미르는 용기를 낸다.

할레드 호세이니는 비록 아프카니스탄에서 성장하지는 못했지만 자신의 나라 아프카니스탄을 자신의 문학작품을 통해 알리려 하고 있다. 국내에는 그의 또다른 작품 <천개의 찬란한 태양>이 약간 먼저 소개됐다. <천개의 찬란한 태양>이 마리암과 라일라라는 두 여인을 통해 아프칸의 고통받는 여인들의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었다면 이 작품 <연을 쫓는 아이>에서는 아미르라는 아프칸의 소년을 등장시켜 또 다른 아프칸의 아픔을 그려내고 있다. 작품속에 그려진 아미르는 어찌보면 작가 호세이니와 어느 정도 닮아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아미르는 전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탈출하여 미국으로 들어왔고, 작가 호세이니는 소련의 아프칸 침공에 의해 가족과 함께 정치적 망명의 길을 택하게 된다. 호세이니는 성장자체를 미국에서 했고 의학을 전공하여 의사가 되었지만 그 역시 그의 조국 아프카니스탄의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가 작품활동 외에도 그는 유엔난민국에서 NGO활동을 하며 조국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을 보면...

한 순간의 잘못된 선택과 그 빚을 갚기 위해 사지로 뛰어드는 아미르의 선택은 분명 의연해 보이기까지 하다. 우리나라 드라마에서는 너무나 진부한 소재이지만 이 작품에서 그려진 핏줄의 비밀은 전체적인 사건 흐름의 열쇠를 쥐고 있는 중요한 반전의 요소로 작용한다. 아마도 호세이니는 그것을 어린 소년의 눈으로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울수 밖에 없었던 요인으로 만들려고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넘어 아미르는 말문을 닫았던 소랍과 함께 뛰고 있다. 마치 지난날의 그와 하산이 그랬던 희망의 모습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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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첨론 - 당신이 사랑하고, 시기하고, 미워하는 사람 모두에게 써먹고 싶을 128가지 아첨의 아포리즘
윌리스 고스 리기어 외 지음 / 이마고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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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 인간들은 살아가면서 많은 것들을 필요로 한다. 물론 물질적인 요소도 중요하겠지만 결코 정신적인 요소를 간과할수는 없다. 그것은 어떠한 일에 부딪혔을때 개인적인 능력이나 가능성 이외에 정신력이라는 알 수 없는 요소가 작용하고 그것이 바로 일의 성사에 지대한 공헌을 하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에 따라서 신중한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들은 흔히 그때그때의 기분에 따라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그러한 한때의 기분이나 정신들은 주위에서 들려오는 한마디로 인해 급작스런 상승을 보이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아첨이다. 아첨이란 단어의 사전적인 의미는 '남의 환심을 사거나 잘 보이려고 알랑거리는 것'이다. 물론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도 아첨은 소인배나 하는 행위로 경멸받고 멸시받아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실제 성공하거나 자신의 꿈을 이룬 이들 중에는 아첨을 교묘히 이용한 사람이 무수히 많았음을 이 책 <아첨론>은 이야기하고 있다. 

미국 일리노이대 출판부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윌리스 고스 리기어는 <아첨론>을 통해 아첨의 역사와 아첨의 기술을 정리하며, 아첨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결코 비겁한 것이 아니며 얼마든지 성공전략의 하나로 채택할 수 있는 요소라 주장하고 있다. 또한 그것은 '힘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즐겨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자 도구'이며 그것은 인간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였다고 주장한다. 그것을 저자는 동서고금의 수많은 책에서 인용한 문구들을 이용해 증명해 낸다. 하지만 저자가 제시한 128가지 아첨의 법칙들은 그저 옛 문헌에서 빼내온 한마디의 문구로만 우리들에게 와닿지만은 않는다. 왜냐하면 저자가 인용하는 아첨은 시대를 바꿔놓는 강력한 힘으로 작용하기도 했으며 그것은 고대 그리스와 중국 뿐만 아니라 나폴레옹의 시대나 히틀러의 시대에도 여전히 존재했다. 때로는 아첨을 통해 이권을 가질수도 있었지만 그 위험요소로 인해 파멸로 이끈 경우 역시 많았음을 저자는 잊지 말아야 할 것 이라고 충고 하기도 한다. 

이 책은 단순히 아첨의 역사만을 기술한 책이 아니다. 실제 우리 생활에서 아첨을 이용하는 적극적인 방법까지도 제시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아첨하는 사람은 위생, 취향, 친근함, 신중함, 사전조사, 타이밍이라는 여섯가지의 기본적인 요소를 연습해야 한다고 한다. 즉, 칭찬을 하면서 구취를 풍기거나 침을 튀긴다면 아무리 듣기 좋은 아첨이라도 결코 좋게만 들리지는 않기에 위생에 철저해야 하며, 아첨을 해야하는 상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야만 그 포인트에 맞는 아첨을 할 수 있으니 취향을 알아야 한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아첨하는지 하나씩 반응을 살펴보는 친근함과, '세력가라는 사람은 명목상일 뿐 실세는 그 아랫사람인 경우가 많다'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 실권을 누가 가지고 있는지 파악하는 신중함을 필요로 하기도 한다. 또한 상대방이 어떠한 시점부터 더 이상 귀를 기울이지 않는지 그 범위를 측정하는 사전조사와, '작별인사 할 때 상대가 거듭 되새길 귀에 쏙 들어오는 말을 하라'라는 말 처럼 여운이 오래 갈 수 있는 최고의 찬사를 남기기 위한 타이밍 역시 중요한 요소임을 강조하기도 한다.

책에는 갖가지 아첨에 관한 명언들이 줄을 잇고 있다. '보상을 기대하는 칭찬이 아첨이다'처럼 아첨의 극명한 성격을 드러내는 말이 있는가하면 아첨도 과학이라는 흥미로운 주장까지도 펼친다. 물론 아첨이라는 단어 자체에서 풍기는 강한 부정적인 뉘앙스 때문에 저자는 아첨의 긍정적인 면을 전면에 내세우기는 한다. 하지만 저자는 아첨의 부정적이며 위험한 요소들을 잊지 않고 충고 하기도 한다. 아첨은 마약처럼 작용하기도 하며, 아첨은 전염과 함께 앙심을 낳을 수 있으며, 결국에는 부패하고 거만과 탐욕이라는 파멸로 이끌수도 있음을 경고하기도 한다. 

'모든 인간관계에 맛과 향을 더해 주는 것이 아첨이다'라는 에라스무스의 말처럼 적당한 아첨은 서로가 서로에게 전할 수 있는 최고의 칭찬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또한 그러한 의미의 연장으로 '칭찬을 받으면 그 값을 하려는 마음에 우리는 장점을 더 키우려고 노력하고, 재치나 용기 또는 외모를 칭찬받으면 그것을 더 발전시키려 힘쓴다'는 프랑스의 사상가 라로슈푸코의 말은 과연 우리가 아첨을 어떻게 이용하여야 하는지 보여주고 있는 말인듯 하다. 저자 역시 말미에 이 책을 읽은 보답으로 가족과 친구에게 멋지게 아첨할 수 있으면 한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이제 저자가 이끄는 대로 아첨의 끝인 명예든 불명예든 그 끝을 향해 나아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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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傳 2 - '인물'로 만나는 또 하나의 역사 한국사傳 2
KBS 한국사傳 제작팀 엮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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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학교에서 오랜 기간동안 역사에 대해 배운다. 그저 시험에 대비하기 위해 배웠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통사적인 흐름만을 기억할 뿐 졸업과 동시에 역사는 그저 잊혀져버리는 존재로만 전락해 버린다. 이후 가장 우리가 쉽게 역사를 만나게 되는 것이 바로 TV드라마이다. 하지만 흥미 위주로 제작된 TV 역사드라마는 실제의 역사와는 어느 정도 차이를 보이게 마련이다. 그러한 드라마들은 실존 했던 인물들을 전면에 등장시키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허구를 바탕으로 제작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그러한 허구의 역사들을 실제 역사로 오인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또한 권력의 중심인 왕과 그 주위를 둘러싼 궁중암투에 주로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좀 더 다양한 견해의 역사를 만나보긴 어렵기만 하다. 예전 KBS에서 방영되었던 '역사스페셜'은 그러한 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해 주었던 프로그램으로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어떠한 역사적 사건을 추적해가며 우리가 궁금해 하는 역사적 사실에 접근해보려는 시도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난해부터 KBS에서 새롭게 방영되고 있는 '한국사傳'은 이전의 프로그램과는 조금은 다른 양상을 띤다. 어떠한 특정 시점이나 사건이 아닌 인물을 통해 우리 역사를 재조명하려는 시도이다. 또한 프로그램의 주인공으로 선정되는 인물들 역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여 자신의 이름을 후대에 까지 남긴 역사적 인물이 있는가 하면 전혀 듣지 못한 인물들이지만 자신의 시대에 누구 못지않은 주역으로 참여했던 당당한 인물들도 있다. 그러한 이 프로그램의 포커스는 결국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그들이 역사적으로 어떠한 커다란 자취를 남겼느냐가 아니라 그로 인해 변화한 역사를 제대로 이해해보자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 책 <한국사 傳 2>는 영상으로 만나는 프로그램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이미 출간된 1권에 이어 두번째로 출간된 이 책에는 1권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인물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사실 이 책에서 언급된 인물들 역시 최근 TV드라마를 통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인물들이 많다. 하지만 프로그램은 하나의 드라마를 통해 굳어져 있던 그들의 이미지를 조금은 넓게 바라보게 만드는 시각을 제공하려 하고 있다. 드라마 '왕의 남자'를 통해 완벽하게 허구의 인물로 재탄생했던 내시 김처선의 실제 삶을 추적해보는 시도는 새롭기만 했다. 다방면에 걸쳐 자신의 학문을 자랑했던 다산 정약용을 이 프로그램은 과학적 수사관이라는 조금은 다른 포커스로 접근해 보기도 한다. 또한 우리에게 그저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했던 인물로만 알려진 김춘추에 대해 그가 당을 이용해 삼국을 통일하려던 시도가 진정 그의 외교수완인지 아니면 사대주의의 발상인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들기도 한다. 드라마 '이산'을 통해 정조는 학자라는 이미지를 강하게 보여주었다. 하지만 아무런 배경없이 노론이 득세하던 정국에서 등극했던 정조가 그토록 강력했던 왕권을 행사했던 배경을 그의 무인적 기질에서 찾아보려는 시도는 색다르게 다가오기도 했다. 

흔히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 하고 후대에 전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과감히 삭제하려 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당대의 기록은 그저 당대의 평가라 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백헌 이경석의 선택은 우리에게 많은 점을 생각하게 한다. 남한산성에 갇혀 있는 인조에겐 아무런 선택이 없었다. 그저 살기위해 항복했고 삼전도에 나와 머리를 조아렸다. 아직까지도 치욕스런 기록인 삼전도비문은 조선의 학자라면 누구도 쓰려 하지 않았다. 만고의 역적이 된다는 것이 불을 보듯 뻔했지만 이경석은 홀로 현실을 선택한다. 결국 그의 선택은 그를 지조없는 인물로 만들었고 무덤의 비석마저 쓰러져버리고 비문이 깎여버리는 고초를 겪기도 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나서서 해야만 했던 일이었기에 그는 그 비문을 썼다. 그를 정계에 입문시켰던 송시열에게까지 소인배라는 말을 들을 만큼 그는 추락했지만 현실과 대의명분이라는 두갈래에서 고민했던 그의 선택을 그저 폄하할수만은 없을 것같다.

역사라는 커다란 물줄기는 개인개인의 삶이 모여 만들어 낸 커다란 흐름이기도 하다. 현재의 우리가 보기엔 그저 흐르는 강물이지만 지금까지 때로는 그 흐름에 거역하는 인물도 나타났고 그 흐름을 바꿔보려는 의지를 가졌던 인물들도 거쳐 갔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은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흔적을 남겼으며 그들의 선택 역시 역사적으로 커다란 부분으로 작용했다는 것은 틀림 없을 것이다. 물론 그들의 삶은 커다란 그 흐름 속에 묻혀버렸지만 그들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역사를 바라보는 좀 더 다양한 시각을 제시하려 하고 있는 것만 같다.
'역사는 지나간 과가의 단순한 일이 아니라 현재를 비춰보는 가장 왜곡되지 않은 거울이고, 불확실한 현재에서 미래를 추측할 수 있는 유일한 케이스스터디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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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의 리더십 - 열린 대화로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는 미래형 문제해결법
아담 카헤인 지음, 류가미 옮김 / 에이지21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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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에서 분쟁이란 언제나 있어왔던 서로간의 충돌이며 그것은 조금이라도 자신의 이익을 확보하려는 개인 혹은 그 개인이 소속된 집단의 양보할 수 없는 존재의지이기도 하다. 그렇게 서로 다른 두 개의 견해가 맞부딪히면서 발생하게 되는 분쟁은 힘의 우위에 의해 강제적으로 판가름나거나 아니면 그대로 만성적으로 해결이 되지 않은채 고질적인 문제거리로 남게 된다. 우리는 그러한 어려운 문제들의 해결을 위해 노력하지만 서로 다른 방향만을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에서 절충을 찾기란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님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지금도 세계곳곳은 첨예한 대립이 진행중이며 각 이해 당사자들은 자신의 입장만을 내세워 조금의 양보도 없이 대치하고 있다. 지난 20여년간 그러한 분쟁과 갈등의 현장에서 직접 그들과 부딪히며 함께 대화하고 토론하는 워크숍을 진행했던 아담 카헤인은 이 책 <통합의 리더십>을 통해 그러한 갈등의 해결에 또다른 방법이 있음을 이야기하려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들어갔던 직장에서 저자는 파벌과 왜곡이라는 불합리를 직접 경험하게 되고 결국은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 다음으로 그가 선택한 직장이 세계적인 석유회사 쉘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경영진의 창조성을 자극하고 사고방식을 넓히며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욕을 넓혀줄 아이디어를 생산해내 그들의 토론능력을 높여주는 일을 하게 된다. 그 방법중의 하나가 바로 시나리오를 만드는 것이었고 그것은 그가 이후에도 많은 분쟁의 현장에서 대립을 막고 보다 진지한 토론이 이루어질수 있게 만드는 최고의 방법이자 수단으로 이용하게 된다. 그는 그일을 진두지휘하는 자보르스키를 만나게 되면서 현실적이기만한 자신의 과학적 사고방식이 변화하고 있음을 직감하게 되고 그의 지도를 통해 자신이 대학시절 꿈꾸었던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다시금 살아나는 것을 느끼게 된다. 

 

1991년 중반 회사가 시도하는 새로운 시나리오의 기획팀을 돕기 위해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보내진 그는 워크숍의 진행을 맡게 되면서 보다 현실 참여적인 시나리오를 비로소 접하게 된다. 아파르트 헤이트라는 지독한 분리정책이 서서히 풀어지는 시점에서 그때까지 억눌려만 있던 다수의 흑인들은 몽블레라는 곳에 모여 저마다의 다양한 견해를 내세우며 부딪히기 시작한다. 그러나 저자는 그들이 남아공화국이라는 그들의 국가의 현재 상황이 잘못되었다고 느끼고 그것을 고치는데 헌신하기 위해 이 워크숍이 기획되었음을 알고 있었고, 얼마전까지만해도 죽느냐 사느냐하는 격렬한 투쟁을 하던 그들이 밝고 창조적이고 열린 마음으로 함께 문제를 풀어가는 것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게 된다. 그에게 몽플레 기획은 놀라운 발견이었고 새로운 깨달음이었던 것이다. 결국 그는 그들의 열정과 열린 마음에 반해버린 저자는 쉘이라는 안정된 직장을 포기하고 그곳에 남을 것을 결심한다. 그리고 몽플레 기획이 왜 그토록 중요했는지 어떻게 워크숍 참가자들은 그러한 일을 해낼수 있었는지 고민해보게 된다. 그는 자신의 전공인 물리학적인 분석을 통해 그는 몽플레 기획이 중요하고 특별했던 이유가 그들이 사회를 창조적으로 혁신하는데 매우 알맞는 상황을 만들었기 때문이으며, 또한 워크숍 참가자들이 그러한 놀라운 성과를 이루어냈던 원동력이 말하기와 듣기를 통해 이루어졌음을 알게 된다.

 

우리는 상대방과 어떠한 논쟁을 할 때 결코 상대방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것은 마음속에서 미리 결정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가 가장 간과하고 있는 말하기와 듣기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이해를 도우려 노력한다. 폭력이 난무하던 콜롬비아에서 열린 워크숍에서 그는 참여조차 하지 않으려던 좌파 게릴라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 워크숍에 참여하는 데 유일한 조건이 있다면 그것은 기꺼이 자신의 주장을 말하고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겁니다."
남아공화국의 몽플레 기획이 직접적으로 나라를 변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데 비해 콜롬비아에서의 워크숍은 그들의 나라에서 벌어지는 폭력을 해결해내지는 못했지만 상대편을 믿고 신용하며 안전하게 대화할 수 있는 자리로 그들을 이끌어 냈다. 무엇보다도 솔직함이라는 요소가 그들을 대화로 이끌어낸 것이다.

 

저자는 열린마음으로 듣는 것이 모든 창조의 바탕이라고 이야기하며 혁신적인 프로그램으로 사업을 이끌었던 제록스의 부사장 존 엘터의 말을 인용한다.
"열린 마음으로 듣는 것, 그게 전부입니다... 진짜 어려운 문제는 사람들 사이의 권력투쟁을 해결하고 서로에 대한 신뢰를 형성하고 타협하는 일이죠... 우리가 열린 마음으로 듣지 않는다면, 우리는 전혀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없을 겁니다." 

말하기와 듣기를 통해 우리는 세상과 소통한다. 하지만 그저 쉽사리 내뱉고 남의 이야기들어도 스쳐 지나가듯 흘려보낼 뿐이다. 하지만 우리가 처한 상황속에서 새롭고 보다 나은 미래를 창조해내기 위해서는 잠재되어 있는 최상의 가능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과테말라에서 벌어진 비젼 과테말라 워크숍에서 저자는 오차에타라는 인물을 통해 감정이입과 신성에 대해 배우며 마침내 치유라는 문제해결에 대해 인식하게 된다.

 

현재 우리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어려움 역시 소통의 부족에서 왔음을 우리 모두가 인식하고 있다. 그것은 소수의 권력자와 리더에 의해 지금껏 진행되어 왔던 문제 해결에 이제 모두가 대화로 문제해결을 해야 함을 주장하는 것이다. 단방향적인 정책만을 고집해왔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던 우리들에게 어쩌면 지금의 혼란은 앞으로 더 나은 미래로 가는 새로운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대화가 부족하고 좀처럼 남의 말을 듣지않으려 하는 지금의 분위기에 이 책은 어쩌면 새로운 돌파구를 만드는 해결책이 되어 주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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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이 있는 침대
김경원 지음 / 문학의문학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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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사랑받고 웬지 그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면 조금은 어색해지기까지하는 것이 바로 와인이다. 사실 와인은 포도즙을 발효시키고 숙성시킨 세상의 많은 술 중의 하나일 뿐이지만 와인은 그 특유의 빛깔과 감미로운 향내 때문에라도 각자의 추억에 잊지 못할 기억들을 하나쯤은 만들게 하는 신비로운 술 이기도 하다. 아마도 그러한 와인의 신비로운 힘이 이 소설 <와인이 있는 침대>를 더욱 매혹적이고 추억에 빠져들게끔하는 또하나의 요소로 작용하는지도 모르겠다. 구속받기 싫어하고 자유로움을 추구했기에 다니던 잡지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는 이제 서른네살이 된 독신녀 채다현은 함박눈이 거리를 흰색으로 지우고 있는 어느 겨울날 홀연히 사라진 버린 한 남자를 생각하며 과거의 회상속으로 빠져든다. 

다현은 어린시절 사촌오빠에게 유린당한 잊지못할 기억이 있다. 그 상실감은 오래도록 다현을 억누르며 나중에 만나게 될 미지의 남자에 대한 부채감으로 자리하게 된다. 또한 젊은 제자와 눈이 맞아 가정을 버리고 떠나버린 아버지의 선택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며 진한 화장에 집착하고 나날이 살이 오르는 어머니를 그저 연민의 눈길로 밖에는 바라볼 수 없다. 사실 다현이 바라던 것은 그저 남들처럼 단란하게 모여 저녁식사를 하는 평범한 가정의 모습이었지만 다현의 가정은 그것조차 허락하질 않았다. 스물셋이 되던 해 다현은 독립을 선언하고 싱글생활을 시작하지만 결국 그녀에게 남겨진 것은 자유라는 홀가분함만큼이나 외로움과 불편함 뿐이었다. 몇 번의 연애를 거쳐 20대가 지나갔고 서른셋이 된 다현의 곁에 있는 남자 세호는 유부남이었다. 그저 다현을 성적 욕망을 채워주는 하나의 도구로만 생각하는 그에게 이젠 서서히 지쳐가기만 한다. 더 이상 그가 기다려지지 않는 자신의 감정을 전하고 그에게 결별을 선언한다. 

다현은 잡지에 '21세기의 이색적인 직업'이라는 기획기사를 연재하기에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을 만난다. 주로 그 선택은 잡지사의 편집장인 친구 은혜와의 회의를 거쳐 선택된다. 이미 결혼과 이혼을 한번 거친 은혜는 남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잘 열지 못하는 다현에 비해 활동적이고 개방적이며 자유롭기까지 한 친구이다. 그런 은혜를 보며 다현은 이성을 사귈 때 성과 도덕을 일치시키는 남자를 만나고 싶다고 생각한다. 다현에게 사랑은 어느 순간 찾아온다. 기획기사의 취재대상으로 만난 항공관제사 연우에게서 다현은 다정다감함과 함께 고독이라는 어쩌면 자신과 비슷한 무언가를 갖고 있는 남자가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 또한 무엇보다도 다현을 사로잡는 것은 와인에 대한 그만의 해박한 지식이기도 하다.
"겉으로는 모두들 서로를 이해한다고 말하고, 또 이해하려고 들지만 그 내면은 언제나 스스로의 고독에 빠져서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지도 연민하지 못하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하지만 이 남자는 어쩌면 나와 비슷한 주파수를 가진 사람인지도 모른다. 고독과 외로움을 이해하고, 진정으로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 

다현은 지나온 자신의 연애들을 기억하면서 좀 더 영리해지고 싶다고 생각한다. 서로에게 상처받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집착하지도 않으며, 그에게 모든 것을 헌신하는 것 보다 자신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여자로 살고 싶고, 그를 통해 내면의 외로움이나 세속적인 욕망보다는 현실적인 사랑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다현의 바램처럼 그는 조용히 다현에게 다가온다. 로맨틱한 색깔의 와인처럼 때로는 향긋한 레몬의 신맛처럼...
"와인은 감정의 술입니다. 와인이 고급스러운 것은 감정을 읽는 술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감정을 가질 때는 좋은 와인이 되고, 감정이 나쁠 때는 나쁜 와인이 되는 것입니다...." 

다현은 창백한 인상을 가진 연우의 여동생을 만나면서 연우와 그녀가 남모를 비밀을 갖고 있을거라는 확신을 갖고 그녀에게서 알 수 없는 질투심과 함께 혼자 버림받았다는 느낌에 사로 잡힌다. 그리고 그러한 그녀의 확신은 마침내 현실로 다가온다. 그가 떠나고 죽음을 목전에 둔 처량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다현은 그를 생각한다. 라틴어의 진심이라는 뜻을 가진 '인 비노 베리타스'를 읊조리면서 연우는 다현을 향한 자신이 마음이 진심임을 재차 확인 시킨다. 그리고 그는 홀연히 사라져 버린다.

향긋한 와인향이 가득한 이 작품을 통해 작가는 자극적인 쾌락만을 쫓는 현대인들에게 사랑은 기다림을 필요로 하는 와인의 속성과 닮아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 어떤 것도 믿을 수 없었던, 자신을 그저 세상에 혼자 버려졌다고만 생각하는 다현은 연우를 통해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된다. 그것을 통해 다현은 가정마저 버리면서까지 제자와의 사랑을 택했던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고 아버지의 여자 희수가 진정 아버지를 사랑했음을 깨닫게 해주기도 한다. 

소설은 풍부한 와인 상식을 담고 있다. 어쩌면 와인에 대한 입문서라 느껴질만큼 다양한 와인에 대한 소개는 계속해서 책에 집중할수 있게 만드는 촉매제와도 같다. 소설 속에 가득한 많은 와인 중에서도 마지막을 장식하는 '마데리라'는 작품의 많은 의미를 담아내고 있는 듯하다. 포기하려 했던 다현에게 아프리카의 어느 화산섬에서만 제조되는, 세월이 흘러도 그 맛이 변하지 않는다는 불멸의 와인을 보내는 그의 마음은 가다림이라는 또 다른 사랑의 모습으로 다현에게 다가오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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