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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이미선 옮김 / 열림원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아프카니스탄이라는 나라는 절망이라는 단어 이외에는 쉽게 무언가를 떠올리기 힘든 곳이다. 혹자는 그들을 일컬어 그들의 신에게까지 버려진 땅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인간이 살아가는 모든 곳에서나 희망이라는 단어가 있고 그들 모두는 그것을 부여 잡기 위해 그 끈을 놓지 않는다.
1963년 평화롭던 아프카니스탄의 어느 저택에서 아미르가 태어난다. 그리고 1년이 지나 저택의 한쪽 끝 오두막에서 하산이 태어난다. 비록 아미르가 주인집의 아들이었고 하산이 하인의 아들이었지만 둘은 그들의 아버지 바바와 알리가 그랬던 것처럼 마치 친형제처럼 자라게 된다. 아미르의 어머니는 아미르를 낳던 도중 과다출혈로 세상을 떠났고, 하산의 어머니는 하산을 낳고 일주일이 되기도 전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하산과 나는 같은 젖을 먹고 자랐다. 우리는 같은 마당, 같은 잔디 위에서 첫 걸음마를 뗐고 같은 지붕 아래서 처음으로 말을 뗐다."
사회적 명망과 부 이외에도 '미스터 태풍'이라는 별명으로 불릴만큼 아미르의 아버지 바바는 강인했고, 어디에서나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는 뛰어난 사람이었기에 약하기만 하고 가녀린 아미르에겐 늘 불만이 많았다. 가장 친한 친구였으며 아미르가 가장 의지하고 있는 라힘 칸에게도 그러한 불마을 이야기 하기도 한다. 아미르 역시 그러한 아버지가 두렵기만 했고 그러한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하산에게 때로는 질투까지 느끼기도 한다. 언청이로 태어났지만 강인한 하산이 아미르에겐 시셈의 대상이 된 것이다. 하지만 아프칸의 현실은 그들을 그냥 친구로 존재하게 놔두지는 않았다. 아미르는 절대다수였고 모든 권력을 움켜진 수니파 파쉬툰인 반면 하산은 시아파 하자인이었기에 그들은 주인과 하인이라는 주종관계를 넘어설 수 없었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싶었던 아미르에게 연은 너무나도 좋은 전환점이었고 아미르는 연싸움 대회라는 매개체를 통해 아버지의 사랑을 쟁취하기로 마음먹게 된다. 연싸움의 규칙은 그저 상대방의 연을 끊으면 되는 것이었지만 정작 그보다는 잘려진 연을 손에 넣는 것이 진정한 승부였다. 아미르의 연을 쫓는 아이가 바로 하산이었다.
"보긴 하지만 제대로 바라보지 않고 듣긴 하지만 제대로 귀 기울여 들어주지 않는 아버지를 둔 아들에게는 유일한 기회였다. 신이 있다면 줄을 당겨 내 고통과 갈망을 끊어 버릴수 있도록, 나한테 유리한 바람을 불어 줄 것이다. 나는 그동안 너무 참았고 너무 멀리 왓다. 그리고 그렇게 갑자기, 희망이, 확실한 사실이 되었다."
연을 끊어 버린 아미르는 하산에게 꼭 연을 잡아오라고 외친다.
"도련님을 위해서라면 천 번이라도 그렇게 할게요."
끊어진 연을 쫓는 사투는 언제나 치열했고 그날도 역시 다르지는 않았다. 돌아오지 않던 하산을 쫓던 아미르는 시장의 한쪽 구석에서 하산을 발견하지만 평소 아미르와 하산에게 위협을 가하던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하산을 외면하고 만다. 하산이 말할수 없는 치욕을 겪으면서도 끝내 연을 움켜쥔 손을 놓지 않은 반면 그를 외면한 아미르는 아버지 바바의 사랑을 쟁취한다. 아미르는 그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결국엔 하산을 도둑으로 몰아 알리와 하산 부자를 집에서 내쳐지게 만들어 버린다. 그들이 떠나고 소련군이 내려오면서 모든 것을 앗아가고 만다. 그 절망의 틈새에서 바바와 아미르는 목숨을 건 탈출을 하고 미국으로 건너 오게 된다. 새로운 미국생활에서 그들은 이방인일 뿐이다. 주유소에서 기름때를 묻혀가며 바바는 아미르의 미래를 위해 노력하고 그가 떠나간 뒤에도 아미르는 열심히 살아남아 작가로서의 위치를 다져가는 그때 한통의 전화가 걸려오고 아미르에게 잊으려 했던 아프칸에서의 일들이 현실로 다가온다.
"세상의 죄는 딱 한 가지 밖에 없다. 딱 한가지 뿐이야. 다른 모든 죄는 도둑질의 변형일 뿐이다. 알겠니?"
얽히고 설킨 핏줄 속에서 바바는 아미르에게 너무나도 커다란 거짓말을 했다. 그들이 떠나가던 날 서럽게 울던 바바의 모습이 그것을 단적으로 말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아미르는 아버지를 그저 원망하지만은 않는다. 단 하나의 희망을 부여잡기 위해 탈레반이 가득한 카불로 떠나는 아미르의 모습은 비장하기까지 하다. 작가는 소랍을 통해 희망을 이야기하려는 것 같다. 이미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안정적인 기반을 잡고 있던 아미르에게 어쩌면 아프칸은 이미 먼 이국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난날의 잘못을 다시금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아미르는 용기를 낸다.
할레드 호세이니는 비록 아프카니스탄에서 성장하지는 못했지만 자신의 나라 아프카니스탄을 자신의 문학작품을 통해 알리려 하고 있다. 국내에는 그의 또다른 작품 <천개의 찬란한 태양>이 약간 먼저 소개됐다. <천개의 찬란한 태양>이 마리암과 라일라라는 두 여인을 통해 아프칸의 고통받는 여인들의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었다면 이 작품 <연을 쫓는 아이>에서는 아미르라는 아프칸의 소년을 등장시켜 또 다른 아프칸의 아픔을 그려내고 있다. 작품속에 그려진 아미르는 어찌보면 작가 호세이니와 어느 정도 닮아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아미르는 전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탈출하여 미국으로 들어왔고, 작가 호세이니는 소련의 아프칸 침공에 의해 가족과 함께 정치적 망명의 길을 택하게 된다. 호세이니는 성장자체를 미국에서 했고 의학을 전공하여 의사가 되었지만 그 역시 그의 조국 아프카니스탄의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가 작품활동 외에도 그는 유엔난민국에서 NGO활동을 하며 조국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을 보면...
한 순간의 잘못된 선택과 그 빚을 갚기 위해 사지로 뛰어드는 아미르의 선택은 분명 의연해 보이기까지 하다. 우리나라 드라마에서는 너무나 진부한 소재이지만 이 작품에서 그려진 핏줄의 비밀은 전체적인 사건 흐름의 열쇠를 쥐고 있는 중요한 반전의 요소로 작용한다. 아마도 호세이니는 그것을 어린 소년의 눈으로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울수 밖에 없었던 요인으로 만들려고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넘어 아미르는 말문을 닫았던 소랍과 함께 뛰고 있다. 마치 지난날의 그와 하산이 그랬던 희망의 모습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