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된 평화
존 놀스 지음, 박주영 옮김, 김복영 감수 / 현대문화센터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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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인생에서 청소년기란 기간은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통과의례처럼 누구에게나 성장통이 찾아오고 우리는 아무 준비없이 그 시기를 맞이한다. 그 리고 그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한 인간의 인격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그것은 그 시기가 주는 아픔과 떨림의 기억들을 통해 누구나 그러한 성장의 아픔을 겪어냈기에 잊을 수 없는 아스라한 기억의 한자락으로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이미 겉으로는 성숙한 어른의 모습을 지녔지만 아직도 정신적으로는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도 아니고 아이도 아닌 어디에도 안주할 수 없는 혼란의 시기가 바로 10대이며 또한 그 시기에 다가오는 피할수 없는 상흔이기도 하다. 존 놀스의 <분리된 평화>의 주인공 진 역시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아픔의 기억을 지니고 있다.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은 그의 인생에 있어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겼으며 그로 인해 진은 지금도 아픔의 기억을 안고 살아간다.

 

소설의 시점은 주인공 진이 15년만에 모교를 방문하면서 시작된다.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교정에서 진은 그저 성장한 체구만을 느낀다. 하지만 그가 정작 보고 싶은 것은 띄엄띄엄 우거진 관목 사이에 우뚝 솟아있는 웅장한 나무였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그 어떤 것도 예외일 수 없다. 나무도, 사랑도, 심지어는 폭력으로 인한 죽음도..."
 
소설은 이 책의 작가 존 놀스가 졸업한 학교이기도 한 1942년의 데번스쿨을 무대로 펼쳐진다. 전세계를 전장으로 몰아넣었던 2차대전이 그 끝을 향해 치닫고 있는 그때 미국 본토의 16세 소년들에게 전쟁은 그리 가깝지만은 않을뿐이다. 하지만 상급생들이 군입대 영장을 받아 하나둘 입대를 결정하고 수없이 들려오는 신문이나 라디오를 통해 들려오는 전장의 소리들은 작은 시골마을의 소년들에게도 실제 전쟁이 그들에게도 서서히 다가옴을 알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지나치게 내성적이고 그저 공부밖에 모르는 진은 학교에서 활달하고 외향적이며 만능 스포츠맨이기도 한 피니어스를 만난다. 그를 만나면서 진은 그에 대해 일종의 두려움을 갖게 된다. 진은 그가 왜 커다란 나무에 올라 강으로 다이빙을 해대는지 도무지 알수가 없다. 다만 그 행위 자체가 두려움으로 생각될 뿐이다. 식사를 거르면서까지 그 일에 열중하는 피니에게 선생님은 학칙위반이라 경고하지만 피니는 "당연히 뛰어내려야 했어요, 전쟁에 나갈 준비를 해야 했으니까요."라고 천연덕스럽게 받아 넘긴다.

만능 스포츠맨으로서 뿐만 아니라 피니는 만나는 누구든지 매혹시킬 만큼의 강한 리더십을 갖고 있는 친구이기도 했다. 그는 이미 학교에서 최고였기에 진이 그와 동급이 되는 것은 성적으로 수석을 차지하는 것 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피니가 그를 자꾸만 기습경기니 자살클럽의 모임이니 하며 끌고 다니는 것이 그의 공부를 방해하려는 생각이었고 냉정한 속임수였다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와 함께 오른 나무에서 진은 알 수없는 순간적인 충동에 의해 나무를 흔들고 추락하는 피니를 지켜보며 강으로 뛰어 내린다.

 

진은 알고 있었다. 피니가 결코 그에게 질투를 느낀적도 어떠한 경쟁심도 가진 적이 없음을, 그리고 자신과 피니가 절대 동급이 아님을. 오히려 피니는 진에게 선망의 대상이었고 동경의 대상일 뿐이었다. 피니의 첫번째 사고 이후 그는 피니가 없는 기숙사의 방에서 피니의 옷을 꺼내 입으며 그가 동경해마지 않던 그의 위풍당당함을 느낀다. 그는 이제서야 자신이 피니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닫고 피니어스의 집으로 찾아가 자신이 나무를 흔들었음을 고백하지만 피니는 받아들이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돌아온 학교는 예전의 활기를 되찾는다. 하지만 이제 피니는 전쟁을 부정하기 시작한다. 그것을 약삭빠른 뚱보영감들이 지어낸 눈속임수라 이야기 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 피니는 누구보다 전쟁에 나가고 싶어 했던 것을 진에게 고백한다. 그리고 진은 불구의 몸이 되어버린 상황속에서도 끝까지 자신을 믿으려하는 피니의 모습을 가슴속에 묻으려 한다.

 

역자는 옮긴이의 말을 통해 진의 행동을 '인간 누구에게나 있는 야수성과의 조우'라 설명한다. 아마도 우리들이 보냈던 청소년기에 그러한 상황들은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그것은 우리들이 익히 보아왔던 영화에 소설에도 등장하는 장면들이기도 하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현수가 우식을 바라보는 눈길이 그러했고,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병태가 엄석대를 바라보는 눈길 또한 그러했을 것이다. 또한 이 소설 <분리된 평화>는 주인공 진이 어떻게 성장했는지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그저 체구가 좀 더 커졌고, 출세와 안정이 되었다고 표현할 뿐이다. 그것은 아마도 독자들에게 선사하는 작가의 배려가 아닐까 싶다. 자신들의 기억을 반추해보며 지금 자신이 어떠한 모습의 어른이 되어 있으며, 어떠한 기억을 통해 우리는 성장해왔는지 돌아보게 하는 것 그것이 아마도 이 소설이 우리에게 주는 값진 선물이 아닐까. 어른의 문턱에 이제 막 들어서기 시작한 소년들의 우정과 경쟁, 배반과 속죄를 그린 이 소설이 그래서 더욱 가슴 아프게만 보이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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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에 물들다 1 - 흔들리는 대지
아라이 지음, 임계재 옮김 / 디오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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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세계곳곳의 소수민족들은 그들의 존재자체 마저도 제대로 알리지 못한채 그저 변방의 작은 민족집단으로 그들만의 생활을 영위해 나가고 있다. 얼마전 독립 시위로 중국 당국과의 마찰을 일으키며 전세계에 자신들의 의지를 보여주었던 티벳 역시 그러한 많은 소수민족의 하나이기도 하다. 18세기 부터 시작된 열강들의 틈바구니에서도 그들만의 독립적인 국가성격을 유지했던 티베트는 중국 공산군에 의해 자치구라는 이름으로 결국 중국 영토로 편입되고 마는 역사적 아픔을 간직한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책 <색에 물들다>는 그러한 티베트족 자치구에서 태어나 누구보다도 그들의 정서에 민감할 수 밖에 없는 작가 아라이가 펴낸 장편소설이다. 현대로 이어지는 티베트 최고 권력층의 아픔을 통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그들의 슬픈 역사를 살아있는 색채를 통해 전하고 있다.

소설은 주인공의 1인칭 시점으로 시작되며 주인공 '나'는 티베트 최고 권력자 투스의 둘째아들이다. '투스'란 티베트의 여러집단을 이끌고 있는 일종의 족장 성격을 띠고 있으며, 중국의 황제에 의해 영주로 책봉받아 각자의 지역을 다스리고 있다. 그렇기에 티베트 내에는 여러명의 투스들이 동시에 존재하지만 분명 그들 사이에도 영역과 힘의 우위가 나타나고 있으며, 주인공의 아버지 '마이치 투스'는 그 여러명의 투스들중 가장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세습제인 투스라는 권력의 속성상 주인공은 배다른 형에 의해 죽임을 당할 수 밖에 없는 처지였기에 겉으로 바보행세를 하며 목숨을 겨우 연명해 나가고 있다. 또한 투스의 큰아들이며 다음번 투스이기도 한 형은 그에 걸맞게 다른 집단과의 전쟁이나 세력다툼에서 늘 강력한 힘을 보여주며 자신만의 자리를 확고히 다져가는 중이기도 하다. 그러던 중 주변의 왕뻐 투스가 마이치 투스에 대항하는 일이 발생하면서 청의 특파원이 그들의 마을에 오게 되고 그에 의해 양귀비 씨앗이 전해지게 된다. 어쩌면 시대를 상징하는지도 모르는 양귀비는 채 익기도전에 끝없는 마력으로 사람들을 매료시킨다.

"양비귀꽃이 피었다. 커다란 빨간 꽃은 마이치 투스의 영지를 찬란하고 웅장하게 만들었다. 모두가 우리의 땅에 처음으로 나타난 이 식물에 홀렸다."
새빨갛게 피어난 양귀비는 그들에게 현대식 무기와 함께 보다 강력한 힘을 가져다 준다. 하지만 주인공은 분명 그때부터 세상에서 가장 튼실할 것만 같았던 대지가 흔들리고 있다는 느낌을 감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러한 불길한 예감은 서서히 현실로 다가온다. 양귀비로 인해 형성된 강력한 그들의 힘은 양비귀 씨앗을 달라는 주변 세력들의 끊임없는 위협을 받게 되고 그 과정에서 마이치 투스는 더욱더 주변 세력을 과도하게 평정하려 한다. 결국 위협은 마침내 형의 암살로 이어진다. 주인공은 그러한 흐름 속에서 혼자서 독립할 결심을 하고 자신만의 영역을 확보하게 되면서 또 하나의 투스로 자리잡아 간다. 시대는 흐름은 변하고 함께 일본을 몰아냈던 국민당과 공산당은 중국 영토를 건 싸움에 돌입한다. 그리고 곧이어 그들의 마을에도 쫓겨온 국민당과 그들을 추격하는 공산당의 세력이 부딪히게 된다.

새빨간 양귀비의 열매는 하얀 액체를 가뜩 뿜어낸다. 이 책의 제목 <색(色)이 물들다>는 그러한 강렬한 빨간색과 하얀색의 대비를 극명히 그려내고 있다. 두가지 빛깔은 중국 현대사를 가른 두개의 한족 즉 붉은 색을 대표하는 공산당과 하얀색을 대표하는 국민당을 상징하고 있기도 하다. 그들의 마을에 중국인에 의해 양귀비가 전해졌던 것처럼 그 두가지 빛깔은 그들에게 또하나의 절망을 안겨다 주는 색깔로 형상화 되고 있다. 화려한 양귀비는 그들의 마을에 번영을 안겨다 주기도 했지만 그 양귀비로 인해 그들은 끝없는 전쟁을 치뤄내야 했으며, 주변 세력들은 그들의 목숨을 바치면서 까지 양귀비를 얻으려 한다. 죽어가면서 자신들의 귀에 양귀비 씨앗을 넣어 자신들의 마을에 양귀비를 피워내게 한 왕뻐 투스의 전사들의 예가 바로 그것이다.

양귀비는 그 화려함 뒤에 감추어진 치명적인 유혹으로 끝내 사람들을 몰락하게 만든다. 마이치 투스의 슬픈 가족사를 통해 티베트 민족의 불우한 현대사를 조망해 보는 이 작품의 원제는 먼지는 결국 아래로 떨어진다는 뜻의 진애낙정(塵埃落定)이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권력의 덧없음과 함께 양귀비의 화려한 빛깔은 작품을 관통하는 정서로 작용한다. 어쩌면 누구보다 현명했고 똑똑했던 주인공이 스스로 바보임을 칭했던 것 역시 화려한 빛깔속에 감추어진 인간의 욕망을 직시했기 때문만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자신들만의 영역에서 고유함을 지키기보다는 그저 밀려오는대로 낯설기만한 새로운 종교와 문화, 신기한 물건과 질병까지 그 모두를 가감없이 받아들여야만 했던 그들의 아픈 현대사가 色이라는 형상을 통해 전해지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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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미터만 더 뛰어봐! -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사는 당신을 위한 인생의 반전
김영식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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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목표는 제각각 다르겠지만 그것은 반드시 성공이라는 단어와 귀결이 된다. 그리고 그 성공이라는 것은 다른 어떤 요소보다도 경제적으로 구속받지 않는 여유로운 생활을 의미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세상 많은 사람들 가운데 감히 성공에 이르렀다고 자신을 평가할 만한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시중에 나와있는 수많은 자기개발서들에는 하나같이 세상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그 기회를 보장하며 또한 누구에게나 동등한 시간이 주어지기에 후천적인 개인의 노력과 역량에 따라 그 판가름이 난다고 말하고 있다. 결국 그것은 다시 말해 성공하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개인의 의지이며 또한 욕망의 강도라고 하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책 <10미터만 더 뛰어봐>의 저자 김영식은 단기간내에 성공이라는 꿈을 이루어 냈지만 또한 한순간 바닥이라는 나락을 경험하기도 했다. 군 제대후 세일즈라는 업계에 뛰어들어 계속해서 앞만 보고 달리던 그에게 실패의 고통은 너무나도 컸다. 하지만 그는 완전히 바닥에 떨어진 상태에서도 신념을 잃지 않고 재기에 올인한다. 우리가 저자에게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는 밥값이 없어 소시지에 소주 한병으로 끼니를 때워나갔던 그 시절에조차 그러한 자신의 처지를 탓하기 보다는 오히려 재기에 대한 욕망을 붙태웠다. 그것이 바로 그를 실패의 나락에서 구해낸 가장 커다란 원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나는 우선 욕망을 갖는 것만으로도 절반의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성공을 꿈꾸고, 성공한 모습을 상상하며, 성공을 위한 계획을 수립하는 것, 그 자체가 이미 성공이라고 확신한다."
그는 종종 강연을 통해 욕망에 대해 이야기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할 뿐 성공에 대한 욕망과 의지가 부족함을 그는 개탄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에서 부의 상징이며 성공한 사람들의 외면이라 할 수 있는 '골프치고 벤츠타는 놈들'을 욕하기 보다는 우선 자신의 주위에 '골프치고 벤츠타는 놈들'이 도대체 있기라도 하는지 돌아보라 이야기 한다.

 

저자는 현재 자신이 설립한 '천호식품'이라는 건강식품 회사의 회장으로 있다. 그는 외연적으로 이미 대단히 성공한 사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저자는 10년 뒤를 내다보는 경영을 하고 있다고 자신한다. 그 원동력이 바로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10미터만 더 뛰는 것이다. 100미터를 뛰고 난 사람에게 10미터를 더 뛰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누구나 뛸 수 있는 짧은 거리이지만 그는 그것이 바로 인생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단언한다. 그 10미터는 바로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는 태도에 대한 저자의 완곡한 표현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책의 내용들이 모두 그 10미터를 더 뛰는 방법들이라 표현하고 있다.

 

"거센 파도가 유능한 선장을 만들고, 뜨거운 불에 달구어진 쇠가 좋은 연장이 되는 법이다."
시련은 우리들의 인생에서 어김없이 나타나는 삶의 한 순간이기도 하다. 저자는 그것을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이며, 자신을 단련시키는 또하나의 과정으로 여길 것을 조언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이 '밑바닥 정신'임을 강조하며, 무슨 일이든 발로 뛰어 시련에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책에는 그의 이러한 밑바닥 정신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때 부산 지역에서 현금보유 100위안에 들었다는 그였지만 그는 과감히 밑바닥에서 부터 다시 출발한다. 저자는 자신의 사업이 다시금 허물어지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설사 무너지더라도 그는 이미 그가 겪어낸 재기의 경험으로 인해 치열하게 단련되었기에 그것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말한다. 또한 성공을 거둔 후에도 그는 계속해서 10미터를 더 뛰어야 함을 강조한다. 성공은 지금도 계속헤서 진행되고 있는 '현재 진행형'이기에... 

 

책에는 한사람의 성공과 실패와 재기가 이어진다. 물론 사업을 하다가 실패하고 다시금 재기에 성공한 사람이 김영식 회장 뿐만은 아닐것이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가 다른 이들과 달리 새롭게 들리는 것은 미치지 않고는 힘들었다는 그의 재기과정이었고 또한 계속해서 그가 살아나가는 삶의 방식 일 것이다. 비행기 안에서 홍보전단을 돌리고, 그가 잠깐이라도 머무는 모든 곳의 컴퓨터 메인페이지를 자사 홈페이지로 바꿔놓는 그의 놀라운 삶에 대한 강한 의지와 행동력은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보다 경쟁력있게 사는 삶의 방법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것만 같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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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권혁명 - 피의 나무에서 슬기의 나무로, 우리가 직접 정치하고 직접 경영하는 즐거운 혁명
손석춘 지음 / 시대의창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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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직까지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지는 않았지만 서서히 이 혼란의 정국은 그 끝을 향해 가고 있다. 그 끝에 뭐가 있건 간에 벌어진 민심과 정권 사이의 관게는 쉽게 회복되기는 어려울듯 하다. 애초에 촛불은 스스로 피어올라 스스로의 밝음으로 세상에 그 빛을 전했지만 모두의 기원처럼 그 진정한 의미보다는 안팎의 여러가지 난제에 휩쓸려 그 의미가 퇴색되어진 것만 같을 뿐이다. 이 어지러운 정국속에서 우리는 민주주의의 가장 근본이라할 수 있는 주권이 가진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주권은 글자 그대로 '가장 주요한 권리'로서 '국가의 의사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권력'이다. 그리고 그것은 엄연히 헌법 1조 2항의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에 명시되어 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들은 우리들의 권리이자 의무를 제대로 알고 또한 제대로 쓰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흔히 투표라는 절차를 통해 주권을 가진 국민의 권리를 행사한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책 <주권혁명>은 민주주의를 투표로 상징되는 절차의 문제로만 좁게 생각하거나 탈역사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은 누군가의 의도가 깔려있다고 단언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 특히 신자유주의 물결속에서 형식적 민주주의는 부자들만의 민주주의로 전락하고 있으며, 자본주의가 민주주의 과정과 정치적 평등을 왜곡할 정도로 경제적 불평등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라 이야기 한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의 껍데기에 민주주의라는 가면을 쓴 허상의 존재일지도 모른다. 결국 저자는 이 책이 민주주의를 살아 숨쉬는 정치체제로 이해하고 또한 진정한 이땅의 민주주의의 꽃을 피워가는 기나긴 과정중의 하나로 인식되어주길 바라고 있다.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다."
책은 세개의 커다란 주제하에 진행된다. 첫번째 마당은 민주주의의 시작과 그 기초에 대해 논하고 있다. 단두대에서 사라진 루이 16세의 종말은 새로운 세계의 탄생을 알렸고 또한 시민이라는 새로운 계급을 탄생시켰다. 또한 단두대는 이후 벌어지는 수많은 피의 시작을 알리는 시작이기도 하다. 민중의 힘으로 이룩된 프랑스 혁명처럼 우리에게도 기회는 있었다고 저자는 이야기 한다. 바로 '갑오농민전쟁'이다. 제국주의 외세의 개입으로 그 가능성은 무산되었지만 갑오농민전쟁은 아래로부터의 혁명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다만 프랑스는 피가 대가 위에서 새로운 희망을 피워냈지만 우리는 지역적 한계에 부딪혀 전국적으로 확산되지 못했을 뿐이다. 저자는 이어 민중의 이름아래 새로운 정치혁명으로 나타난 실존사회주의에 대해 논한다. 물론 마르크스의 이론처럼 완벽하게 태어나진 못했고 그 종말 역시 우리가 아는 것 그대로이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민주주의의 전통속에서 분명 실존사회주의의 성과는 새롭게 평가할 필요가 있음을 역설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반대편엔 신자유주의 깃발이 올라간다. 그리고 그것은 오랜 역사를 통해 그 개념과 현실에서 세계사적 보편성을 얻어냈다. 자본으로 대표되는 돈이 지배하는 사회, 뭐든 기득권층에 의해 좌우되는 사회, 영원히 그 틀이 깨질 것 같지 않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작금의 시대가 아닐까.

두번째 마당에서는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특수성과 보편성을 이해하기 위해 그 역사적 연원과 함께 새로운 혁명을 이루려했던 소련의 실존사회주의에 대해 고찰해본다. 그리고 그것은 그러한 과정들이 민주주의가 이직까지도 완성된 제도나 개념이 아님을 인식하게 해주는 증거가 된다. 저자는 이제 하버마스의 '공론장 이론'을 인용한다. 여론은 민주주의라는 나무의 또하나의 핵심요소이다. 그것은 근대사회의 서막을 열게 된 게기가 바로 공중이 모인 공론장이었고 토론과 적극적인 자기주장을 보여야 하는 단계를 거쳐야만 비로소 민주주의의가 성숙될 수 있고, 그것이 바로 주권혁명으로 가는 길임을 세계 정치사의 패러다임들이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한다.

세번째 마당을 통해 저자는 '새로운 민주주의'를 제안한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새로운 해석과 정의를 통해 민중에 의한 자기통치라는 민주주의의 철학을 담아내고 있다. 그것은 마르크스와 니체가 해결하려 했던 과제이기도 했다. 또한 그것은 이론보다는 민중 개개인이 성숙하면서 구현되는 자기입법의 성숙한 실천임을 저자는 강조한다. 아래로부터 강력히 통제되는 정치구조 즉, 민중이 정치를 통제해나가는 상황이 바로 직접 민주정치의 모습일 것이다. 그를 위해 저자는 민주주의의 꽃이라 일컬어지는 국민투표의 권한 강화를 내세운다. 그것은 국민투표가 갈라지고 분열된 국민의 의견을 투표를 통해 하나로 모아갈 수 있는 유력한 수단이기에 그러할 것이다. 

"우리의 삶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 물음 앞에 우리 모두 정직하자."
저자는 지금 우리 모두가 먼지속으로 걸어가고 있다고 이야기 한다. 언젠가 우리는 죽음을 맞이하고 먼지가 되어 사라진다. 그렇기에 이땅에서 하나의 먼지로 사라지는 존재가 아니라 '아름다운 집'을 짓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머리말을 통해 전하고 있다. 바로 그것이 진정 저자가 우리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일 것이다. 이제 민주주의는 더 이상 피를 먹고 자라기보다는 '슬기'를 먹고 자라야 할 것이며, 저자가 말하는 슬기란 민중이 자신이 살아가는 삶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그 보다 더 나은 사회가 가능하다고 확신하며, 그 새로운 사회를 자신의 실천으로 창조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소박하지만 위대한 혁명이며, 또한 주권혁명의 고갱이라고 저자는 확신한다.

상대적으로 짧은 민주주의의 역사는 그 이름아래 수없는 피를 강요해 왔다. 그리고 그 주체는 다름 아닌 민중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자본이라는 이름아래 민중의 참여의지는 꺾이게 되었고 돈이 지배하는 세상의 원리 아래 민중의 이름은 잊혀져 갔다. 주권보다는 그저 살아가는데 급급한 현대 자본주의는 민주주의라는 이름마저 퇴색시켜 버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땅에도 주권이라는 국민의 권리를 찾고자 하는 움직임이 생겨나고 있으며 그것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변혁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이름의 체제가 자리해야 할 것이다. 소통이 없이 일방적으로 닫힌 정권을 바라보는 지금의 시각 또한 그러하다. 그저 구시대의 유산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은 주권을 가진 국민들의 저항을 불러올 뿐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저자가 이야기하는 주권혁명은 어쩌면 이르기 힘든 기나긴 여정일지 모르지만 어찌됐든 침묵과 외면이라는 긴 잠에서 우리가 깨어나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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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상계 - 근대 상업도시 경성의 모던 풍경
박상하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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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회가 변화, 발전해 나가는 것은 내적인 성장과 함께 밖으로부터 새로운 문화를 수용하고 이를 소화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실제 오늘날의 우리가 전통문화라 알고 있는 것도 밖으로부터 새로운 문화를 수용하고 이를 우리 사회에 알맞게 소화해 낸 결과물일 것이다. 특히 그중에서도 근현대는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새로운 문화를 짧은 시간에 수용하고 그것이 우리 사회를 크게 변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그러한 문화는 대부분의 우리 사회 구성원의 삶에 영향을 주었고, 나아가 오늘날 우리 사회의 근간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 책 <경성상계>는 그렇게 조선왕조가 물러나고 대한제국을 거쳐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가는 혼란한 시기를 조망한다. 그중에서도 당시 조선의 모든 사회와 경제의 중심축이라 할 수 있는 경성의 상권판도를 통해 일제하에서 수난당하고 소리없이 사라져가기도 한 조선인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으로 부터 백여년전 이방인 선교사의 눈에 비친 서울은 동화속처럼 아름답고 평온했다고 한다. 그렇게 소리없이 조용히 살아가던 조선인들에게 개항은 새로운 변화의 시작을 알린다. 그리고 조금씩 밀려들어오는 일본 상인들에 의해 오백년 조선의 경제를 틀어쥐던 육의전이 붕괴되고, 난생 처음 보는 진귀한 개화물품들은 조선인들에게 그저 신기하게만 볼 뿐이었다. 인천과 서울 사이에 철도가 놓이고 서울 시내에 전차가 개통되면서 조선인들은 마침내 현대문명의 경이로운 모습을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책은 전차에 대해 사회적 평등에 목말라하는 일반 백성의 해묵은 숙원을 푸는 심리적 충동과 무관하지 않았다 설명한다. 그것은 돈이라는 것을 통해 뭐든 이룰수 있는 자본주의의 속성에 서서히 백성들이 눈을 뜨기 시작했음을 이르기도 한다. 어쨌든 결론적으로 전차의 등장은 육의전의 붕괴 이래 흩어졌던 사람들을 한데 모으고 종로거리에 새로운 활력이 시작됨을 알리는 시작이 된 것이다.

 

근대사회의 가장 큰 특징중의 하나는 역시 경제적인 면에서 봤을때 자본주의 사회라는 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면에서 일반인들의 관심이 자본가들에게 몰리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부자들의 삶은 언제나 화제의 중심이었고,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는 새롭게 생겨난 신문이란 존재의 중요한 보도 대상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자본가이고 재벌이었다 하더라도 분명 그들은 식민지라는 조건하의 자본가였기 때문에 언제까지나 그들의 영화가 계속되리란 법은 없었다. 또한 굴곡이 심했던 사회였던만큼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벼락부자가 되기도 하고 어느 한순간 사라져 버리기도 했다. 일확천금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준 노다지 즉 금광은 어쩌면 그 시대를 상징하는 또 하나의 아이콘이 아니었을까. 금광왕이라 불렸던 최창학과 조선일보를 사들인 방응모의 성공은 일반인들에게 헛된 기대심리와 망상을 심어 주었고 그것은 사회 전반적으로 퍼져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대공황의 시기를 버텨내겨 해준 힘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또한 예정된 수순처럼 모두 동양척식회사라는 일본제국주의 전초기지 아래로 모두 흡수되고 마는 운명을 맞게 된다.

 

본래 백화점은 대량생산된 상품이 팔리지 않는 일을 막기 위해 대량소비를 이끌어내는 새로운 소비공간이었다. 1920년대 일본이 독점자본주의 단계애 들어서고 대량생산 체제를 확립하면서 식민지 조선에도 백화점이 들어선다. 조선의 상권을 대표하는 종로의 화신백화점은 일본인의 상권을 대표하는 진고개의 4개 백화점을 상대로 민족간 대결의 양상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은 일본에 맞서 경성상권을 판가름하는 일대 대결의 모습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어찌됐든 백화점은 근대 산업사회의 갖가지 새로운 생산물들을 판매하는, 근대를 상징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자유롭게 전시된 상품을 마음대로 보고 고를수 있고, 백화점 밖에서도 상품을 볼 수 있는 쇼윈도가 설치되었으며, 숍걸이라 불리는 여성을 점원으로 배치함으로써 새로운 판매방식을 보여주기도 했다. 가벼운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옥상의 공원과 각층을 오르락내리락 하는 에스켈레이터를 통해 백화점은 단순히 물건만을 구매하는 장소가 아니라 행복과 풍요로움, 새로움을 소비하는 장소로 자리하게 된다. 비록 백화점에서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극히 적었지만 백화점이 제공하는 행복이라는 새로운 시대에 대한 희망으로 인해 일반인들에게 백화점은 최고의 구경거리가 된다. 책에는 화신백화점의 박흥식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일본인 총독조차 두려워하지 않던 그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식민지 시대 조선 기업가의 당당함을 엿볼 수 있다. 화재로 인해 모든 것을 잃었지만 거뜬히 재기하는 그의 모습은 조선인들에게는 자긍심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해방 이후 쓸쓸한 그의 노년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기도 한다.

 

식민지 시대의 경성이 조선을 대표한다면 당시 기업가들이 바로 경성을 대표하는 이들이었을런지도 모른다. 조상 때부터 내려온 천석꾼의 후에나 한때 일확천금을 통해 새롭게 전면으로 등장했던 이들이나 모두 해방이라는 새로운 시대의 시작과 함께 사라져 갔다. 끝없이 재기를 몸부림쳤지만 현실은 그들에게 따뜻한 눈길을 보내진 않았던 것 같다. 수많은 사람들이 명멸해간 경성의 그자리는 지금도 누군가에 의해 살아 숨쉬고 있기도 하다. 이 책의 저자는 식민지하의 재계사를 제대로 인식하여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해방을 통해 단절이라는 구분을 짓는 것이 그리 올바른 선택이 아님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저자의 말대로 모든 것의 시작에는 기원이 있고 또한 그 여명의 모습들이 있게 마련이다. 아득하기만 했던 그때의 신화들 역시 오늘날 분명히 우리가 알아야 할 또 하나의 역사임은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결코 그리 오래되지 않은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면서 급격하게 밀려드는 새로운 변화들을 그때의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였고 또한 어떻게 대처했을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하지만 결국 세상 모든일에는 변화와 흐름이라는 두가지 요소가 공존하기에 그들은 급격한 변화속에서 일관된 흐름을 유지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경성의 거리와 함께하는 과거로의 여행은 그렇게 오늘날 우리들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또 하나의 방법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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