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권혁명 - 피의 나무에서 슬기의 나무로, 우리가 직접 정치하고 직접 경영하는 즐거운 혁명
손석춘 지음 / 시대의창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아직까지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지는 않았지만 서서히 이 혼란의 정국은 그 끝을 향해 가고 있다. 그 끝에 뭐가 있건 간에 벌어진 민심과 정권 사이의 관게는 쉽게 회복되기는 어려울듯 하다. 애초에 촛불은 스스로 피어올라 스스로의 밝음으로 세상에 그 빛을 전했지만 모두의 기원처럼 그 진정한 의미보다는 안팎의 여러가지 난제에 휩쓸려 그 의미가 퇴색되어진 것만 같을 뿐이다. 이 어지러운 정국속에서 우리는 민주주의의 가장 근본이라할 수 있는 주권이 가진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주권은 글자 그대로 '가장 주요한 권리'로서 '국가의 의사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권력'이다. 그리고 그것은 엄연히 헌법 1조 2항의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에 명시되어 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들은 우리들의 권리이자 의무를 제대로 알고 또한 제대로 쓰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흔히 투표라는 절차를 통해 주권을 가진 국민의 권리를 행사한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책 <주권혁명>은 민주주의를 투표로 상징되는 절차의 문제로만 좁게 생각하거나 탈역사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은 누군가의 의도가 깔려있다고 단언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 특히 신자유주의 물결속에서 형식적 민주주의는 부자들만의 민주주의로 전락하고 있으며, 자본주의가 민주주의 과정과 정치적 평등을 왜곡할 정도로 경제적 불평등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라 이야기 한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의 껍데기에 민주주의라는 가면을 쓴 허상의 존재일지도 모른다. 결국 저자는 이 책이 민주주의를 살아 숨쉬는 정치체제로 이해하고 또한 진정한 이땅의 민주주의의 꽃을 피워가는 기나긴 과정중의 하나로 인식되어주길 바라고 있다.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다."
책은 세개의 커다란 주제하에 진행된다. 첫번째 마당은 민주주의의 시작과 그 기초에 대해 논하고 있다. 단두대에서 사라진 루이 16세의 종말은 새로운 세계의 탄생을 알렸고 또한 시민이라는 새로운 계급을 탄생시켰다. 또한 단두대는 이후 벌어지는 수많은 피의 시작을 알리는 시작이기도 하다. 민중의 힘으로 이룩된 프랑스 혁명처럼 우리에게도 기회는 있었다고 저자는 이야기 한다. 바로 '갑오농민전쟁'이다. 제국주의 외세의 개입으로 그 가능성은 무산되었지만 갑오농민전쟁은 아래로부터의 혁명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다만 프랑스는 피가 대가 위에서 새로운 희망을 피워냈지만 우리는 지역적 한계에 부딪혀 전국적으로 확산되지 못했을 뿐이다. 저자는 이어 민중의 이름아래 새로운 정치혁명으로 나타난 실존사회주의에 대해 논한다. 물론 마르크스의 이론처럼 완벽하게 태어나진 못했고 그 종말 역시 우리가 아는 것 그대로이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민주주의의 전통속에서 분명 실존사회주의의 성과는 새롭게 평가할 필요가 있음을 역설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반대편엔 신자유주의 깃발이 올라간다. 그리고 그것은 오랜 역사를 통해 그 개념과 현실에서 세계사적 보편성을 얻어냈다. 자본으로 대표되는 돈이 지배하는 사회, 뭐든 기득권층에 의해 좌우되는 사회, 영원히 그 틀이 깨질 것 같지 않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작금의 시대가 아닐까.

두번째 마당에서는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특수성과 보편성을 이해하기 위해 그 역사적 연원과 함께 새로운 혁명을 이루려했던 소련의 실존사회주의에 대해 고찰해본다. 그리고 그것은 그러한 과정들이 민주주의가 이직까지도 완성된 제도나 개념이 아님을 인식하게 해주는 증거가 된다. 저자는 이제 하버마스의 '공론장 이론'을 인용한다. 여론은 민주주의라는 나무의 또하나의 핵심요소이다. 그것은 근대사회의 서막을 열게 된 게기가 바로 공중이 모인 공론장이었고 토론과 적극적인 자기주장을 보여야 하는 단계를 거쳐야만 비로소 민주주의의가 성숙될 수 있고, 그것이 바로 주권혁명으로 가는 길임을 세계 정치사의 패러다임들이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한다.

세번째 마당을 통해 저자는 '새로운 민주주의'를 제안한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새로운 해석과 정의를 통해 민중에 의한 자기통치라는 민주주의의 철학을 담아내고 있다. 그것은 마르크스와 니체가 해결하려 했던 과제이기도 했다. 또한 그것은 이론보다는 민중 개개인이 성숙하면서 구현되는 자기입법의 성숙한 실천임을 저자는 강조한다. 아래로부터 강력히 통제되는 정치구조 즉, 민중이 정치를 통제해나가는 상황이 바로 직접 민주정치의 모습일 것이다. 그를 위해 저자는 민주주의의 꽃이라 일컬어지는 국민투표의 권한 강화를 내세운다. 그것은 국민투표가 갈라지고 분열된 국민의 의견을 투표를 통해 하나로 모아갈 수 있는 유력한 수단이기에 그러할 것이다. 

"우리의 삶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 물음 앞에 우리 모두 정직하자."
저자는 지금 우리 모두가 먼지속으로 걸어가고 있다고 이야기 한다. 언젠가 우리는 죽음을 맞이하고 먼지가 되어 사라진다. 그렇기에 이땅에서 하나의 먼지로 사라지는 존재가 아니라 '아름다운 집'을 짓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머리말을 통해 전하고 있다. 바로 그것이 진정 저자가 우리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일 것이다. 이제 민주주의는 더 이상 피를 먹고 자라기보다는 '슬기'를 먹고 자라야 할 것이며, 저자가 말하는 슬기란 민중이 자신이 살아가는 삶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그 보다 더 나은 사회가 가능하다고 확신하며, 그 새로운 사회를 자신의 실천으로 창조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소박하지만 위대한 혁명이며, 또한 주권혁명의 고갱이라고 저자는 확신한다.

상대적으로 짧은 민주주의의 역사는 그 이름아래 수없는 피를 강요해 왔다. 그리고 그 주체는 다름 아닌 민중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자본이라는 이름아래 민중의 참여의지는 꺾이게 되었고 돈이 지배하는 세상의 원리 아래 민중의 이름은 잊혀져 갔다. 주권보다는 그저 살아가는데 급급한 현대 자본주의는 민주주의라는 이름마저 퇴색시켜 버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땅에도 주권이라는 국민의 권리를 찾고자 하는 움직임이 생겨나고 있으며 그것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변혁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이름의 체제가 자리해야 할 것이다. 소통이 없이 일방적으로 닫힌 정권을 바라보는 지금의 시각 또한 그러하다. 그저 구시대의 유산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은 주권을 가진 국민들의 저항을 불러올 뿐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저자가 이야기하는 주권혁명은 어쩌면 이르기 힘든 기나긴 여정일지 모르지만 어찌됐든 침묵과 외면이라는 긴 잠에서 우리가 깨어나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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