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된 평화
존 놀스 지음, 박주영 옮김, 김복영 감수 / 현대문화센터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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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리의 인생에서 청소년기란 기간은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통과의례처럼 누구에게나 성장통이 찾아오고 우리는 아무 준비없이 그 시기를 맞이한다. 그 리고 그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한 인간의 인격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그것은 그 시기가 주는 아픔과 떨림의 기억들을 통해 누구나 그러한 성장의 아픔을 겪어냈기에 잊을 수 없는 아스라한 기억의 한자락으로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이미 겉으로는 성숙한 어른의 모습을 지녔지만 아직도 정신적으로는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도 아니고 아이도 아닌 어디에도 안주할 수 없는 혼란의 시기가 바로 10대이며 또한 그 시기에 다가오는 피할수 없는 상흔이기도 하다. 존 놀스의 <분리된 평화>의 주인공 진 역시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아픔의 기억을 지니고 있다.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은 그의 인생에 있어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겼으며 그로 인해 진은 지금도 아픔의 기억을 안고 살아간다.

 

소설의 시점은 주인공 진이 15년만에 모교를 방문하면서 시작된다.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교정에서 진은 그저 성장한 체구만을 느낀다. 하지만 그가 정작 보고 싶은 것은 띄엄띄엄 우거진 관목 사이에 우뚝 솟아있는 웅장한 나무였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그 어떤 것도 예외일 수 없다. 나무도, 사랑도, 심지어는 폭력으로 인한 죽음도..."
 
소설은 이 책의 작가 존 놀스가 졸업한 학교이기도 한 1942년의 데번스쿨을 무대로 펼쳐진다. 전세계를 전장으로 몰아넣었던 2차대전이 그 끝을 향해 치닫고 있는 그때 미국 본토의 16세 소년들에게 전쟁은 그리 가깝지만은 않을뿐이다. 하지만 상급생들이 군입대 영장을 받아 하나둘 입대를 결정하고 수없이 들려오는 신문이나 라디오를 통해 들려오는 전장의 소리들은 작은 시골마을의 소년들에게도 실제 전쟁이 그들에게도 서서히 다가옴을 알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지나치게 내성적이고 그저 공부밖에 모르는 진은 학교에서 활달하고 외향적이며 만능 스포츠맨이기도 한 피니어스를 만난다. 그를 만나면서 진은 그에 대해 일종의 두려움을 갖게 된다. 진은 그가 왜 커다란 나무에 올라 강으로 다이빙을 해대는지 도무지 알수가 없다. 다만 그 행위 자체가 두려움으로 생각될 뿐이다. 식사를 거르면서까지 그 일에 열중하는 피니에게 선생님은 학칙위반이라 경고하지만 피니는 "당연히 뛰어내려야 했어요, 전쟁에 나갈 준비를 해야 했으니까요."라고 천연덕스럽게 받아 넘긴다.

만능 스포츠맨으로서 뿐만 아니라 피니는 만나는 누구든지 매혹시킬 만큼의 강한 리더십을 갖고 있는 친구이기도 했다. 그는 이미 학교에서 최고였기에 진이 그와 동급이 되는 것은 성적으로 수석을 차지하는 것 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피니가 그를 자꾸만 기습경기니 자살클럽의 모임이니 하며 끌고 다니는 것이 그의 공부를 방해하려는 생각이었고 냉정한 속임수였다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와 함께 오른 나무에서 진은 알 수없는 순간적인 충동에 의해 나무를 흔들고 추락하는 피니를 지켜보며 강으로 뛰어 내린다.

 

진은 알고 있었다. 피니가 결코 그에게 질투를 느낀적도 어떠한 경쟁심도 가진 적이 없음을, 그리고 자신과 피니가 절대 동급이 아님을. 오히려 피니는 진에게 선망의 대상이었고 동경의 대상일 뿐이었다. 피니의 첫번째 사고 이후 그는 피니가 없는 기숙사의 방에서 피니의 옷을 꺼내 입으며 그가 동경해마지 않던 그의 위풍당당함을 느낀다. 그는 이제서야 자신이 피니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닫고 피니어스의 집으로 찾아가 자신이 나무를 흔들었음을 고백하지만 피니는 받아들이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돌아온 학교는 예전의 활기를 되찾는다. 하지만 이제 피니는 전쟁을 부정하기 시작한다. 그것을 약삭빠른 뚱보영감들이 지어낸 눈속임수라 이야기 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 피니는 누구보다 전쟁에 나가고 싶어 했던 것을 진에게 고백한다. 그리고 진은 불구의 몸이 되어버린 상황속에서도 끝까지 자신을 믿으려하는 피니의 모습을 가슴속에 묻으려 한다.

 

역자는 옮긴이의 말을 통해 진의 행동을 '인간 누구에게나 있는 야수성과의 조우'라 설명한다. 아마도 우리들이 보냈던 청소년기에 그러한 상황들은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그것은 우리들이 익히 보아왔던 영화에 소설에도 등장하는 장면들이기도 하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현수가 우식을 바라보는 눈길이 그러했고,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병태가 엄석대를 바라보는 눈길 또한 그러했을 것이다. 또한 이 소설 <분리된 평화>는 주인공 진이 어떻게 성장했는지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그저 체구가 좀 더 커졌고, 출세와 안정이 되었다고 표현할 뿐이다. 그것은 아마도 독자들에게 선사하는 작가의 배려가 아닐까 싶다. 자신들의 기억을 반추해보며 지금 자신이 어떠한 모습의 어른이 되어 있으며, 어떠한 기억을 통해 우리는 성장해왔는지 돌아보게 하는 것 그것이 아마도 이 소설이 우리에게 주는 값진 선물이 아닐까. 어른의 문턱에 이제 막 들어서기 시작한 소년들의 우정과 경쟁, 배반과 속죄를 그린 이 소설이 그래서 더욱 가슴 아프게만 보이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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