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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상계 - 근대 상업도시 경성의 모던 풍경
박상하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한 사회가 변화, 발전해 나가는 것은 내적인 성장과 함께 밖으로부터 새로운 문화를 수용하고 이를 소화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실제 오늘날의 우리가 전통문화라 알고 있는 것도 밖으로부터 새로운 문화를 수용하고 이를 우리 사회에 알맞게 소화해 낸 결과물일 것이다. 특히 그중에서도 근현대는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새로운 문화를 짧은 시간에 수용하고 그것이 우리 사회를 크게 변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그러한 문화는 대부분의 우리 사회 구성원의 삶에 영향을 주었고, 나아가 오늘날 우리 사회의 근간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 책 <경성상계>는 그렇게 조선왕조가 물러나고 대한제국을 거쳐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가는 혼란한 시기를 조망한다. 그중에서도 당시 조선의 모든 사회와 경제의 중심축이라 할 수 있는 경성의 상권판도를 통해 일제하에서 수난당하고 소리없이 사라져가기도 한 조선인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으로 부터 백여년전 이방인 선교사의 눈에 비친 서울은 동화속처럼 아름답고 평온했다고 한다. 그렇게 소리없이 조용히 살아가던 조선인들에게 개항은 새로운 변화의 시작을 알린다. 그리고 조금씩 밀려들어오는 일본 상인들에 의해 오백년 조선의 경제를 틀어쥐던 육의전이 붕괴되고, 난생 처음 보는 진귀한 개화물품들은 조선인들에게 그저 신기하게만 볼 뿐이었다. 인천과 서울 사이에 철도가 놓이고 서울 시내에 전차가 개통되면서 조선인들은 마침내 현대문명의 경이로운 모습을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책은 전차에 대해 사회적 평등에 목말라하는 일반 백성의 해묵은 숙원을 푸는 심리적 충동과 무관하지 않았다 설명한다. 그것은 돈이라는 것을 통해 뭐든 이룰수 있는 자본주의의 속성에 서서히 백성들이 눈을 뜨기 시작했음을 이르기도 한다. 어쨌든 결론적으로 전차의 등장은 육의전의 붕괴 이래 흩어졌던 사람들을 한데 모으고 종로거리에 새로운 활력이 시작됨을 알리는 시작이 된 것이다.
근대사회의 가장 큰 특징중의 하나는 역시 경제적인 면에서 봤을때 자본주의 사회라는 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면에서 일반인들의 관심이 자본가들에게 몰리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부자들의 삶은 언제나 화제의 중심이었고,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는 새롭게 생겨난 신문이란 존재의 중요한 보도 대상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자본가이고 재벌이었다 하더라도 분명 그들은 식민지라는 조건하의 자본가였기 때문에 언제까지나 그들의 영화가 계속되리란 법은 없었다. 또한 굴곡이 심했던 사회였던만큼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벼락부자가 되기도 하고 어느 한순간 사라져 버리기도 했다. 일확천금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준 노다지 즉 금광은 어쩌면 그 시대를 상징하는 또 하나의 아이콘이 아니었을까. 금광왕이라 불렸던 최창학과 조선일보를 사들인 방응모의 성공은 일반인들에게 헛된 기대심리와 망상을 심어 주었고 그것은 사회 전반적으로 퍼져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대공황의 시기를 버텨내겨 해준 힘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또한 예정된 수순처럼 모두 동양척식회사라는 일본제국주의 전초기지 아래로 모두 흡수되고 마는 운명을 맞게 된다.
본래 백화점은 대량생산된 상품이 팔리지 않는 일을 막기 위해 대량소비를 이끌어내는 새로운 소비공간이었다. 1920년대 일본이 독점자본주의 단계애 들어서고 대량생산 체제를 확립하면서 식민지 조선에도 백화점이 들어선다. 조선의 상권을 대표하는 종로의 화신백화점은 일본인의 상권을 대표하는 진고개의 4개 백화점을 상대로 민족간 대결의 양상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은 일본에 맞서 경성상권을 판가름하는 일대 대결의 모습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어찌됐든 백화점은 근대 산업사회의 갖가지 새로운 생산물들을 판매하는, 근대를 상징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자유롭게 전시된 상품을 마음대로 보고 고를수 있고, 백화점 밖에서도 상품을 볼 수 있는 쇼윈도가 설치되었으며, 숍걸이라 불리는 여성을 점원으로 배치함으로써 새로운 판매방식을 보여주기도 했다. 가벼운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옥상의 공원과 각층을 오르락내리락 하는 에스켈레이터를 통해 백화점은 단순히 물건만을 구매하는 장소가 아니라 행복과 풍요로움, 새로움을 소비하는 장소로 자리하게 된다. 비록 백화점에서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극히 적었지만 백화점이 제공하는 행복이라는 새로운 시대에 대한 희망으로 인해 일반인들에게 백화점은 최고의 구경거리가 된다. 책에는 화신백화점의 박흥식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일본인 총독조차 두려워하지 않던 그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식민지 시대 조선 기업가의 당당함을 엿볼 수 있다. 화재로 인해 모든 것을 잃었지만 거뜬히 재기하는 그의 모습은 조선인들에게는 자긍심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해방 이후 쓸쓸한 그의 노년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기도 한다.
식민지 시대의 경성이 조선을 대표한다면 당시 기업가들이 바로 경성을 대표하는 이들이었을런지도 모른다. 조상 때부터 내려온 천석꾼의 후에나 한때 일확천금을 통해 새롭게 전면으로 등장했던 이들이나 모두 해방이라는 새로운 시대의 시작과 함께 사라져 갔다. 끝없이 재기를 몸부림쳤지만 현실은 그들에게 따뜻한 눈길을 보내진 않았던 것 같다. 수많은 사람들이 명멸해간 경성의 그자리는 지금도 누군가에 의해 살아 숨쉬고 있기도 하다. 이 책의 저자는 식민지하의 재계사를 제대로 인식하여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해방을 통해 단절이라는 구분을 짓는 것이 그리 올바른 선택이 아님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저자의 말대로 모든 것의 시작에는 기원이 있고 또한 그 여명의 모습들이 있게 마련이다. 아득하기만 했던 그때의 신화들 역시 오늘날 분명히 우리가 알아야 할 또 하나의 역사임은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결코 그리 오래되지 않은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면서 급격하게 밀려드는 새로운 변화들을 그때의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였고 또한 어떻게 대처했을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하지만 결국 세상 모든일에는 변화와 흐름이라는 두가지 요소가 공존하기에 그들은 급격한 변화속에서 일관된 흐름을 유지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경성의 거리와 함께하는 과거로의 여행은 그렇게 오늘날 우리들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또 하나의 방법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