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도쿄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젊은 날의 꿈과 추억을 떠올릴 때마다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생기는 것은 누구에게나 그 시절이 어느때 보다도 아름다웠고 행복한 순간으로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시절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고 해보겠다는 열정이 있었으며 또한 젊음이라는 최고의 무기가 있었기에 거칠 것이 없어만 보였다. 세상에 대한 두려움도 무언가 옥죄는 듯한 답답함도 그저 모두 헤쳐나가기만 하면 될 것처럼 보일뿐 나를 붙잡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젊음의 특권이니까...

 

번역되어 출간되는 책마다 많은 이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오쿠다 히데오의 신작 <스무살, 도쿄>는 작가의 전작들과는 조금은 다른 분위를 지닌듯 하다. <공중그네>에서 <인더풀>과 <면장선거>로 이어지면서 수많은 팬을 낳았던 엽기의사 이라부와는 달리 <스무살, 도쿄>의 주인공 다무라 히사오는 웬지 평범해 보이기까지 한다. 오쿠다 히데오의 히트 캐릭터 이라부가 특유의 무덤덤함을 내세워 현실에 대한 대한 냉소와 그에 따른 허무한 폭소를 자아내게 했다면, 히사오는 모두가 한번쯤은 겪었을 만한 젊은 날의 기억을 통해 책을 읽는 독자들까지도 자신의 지나간 시절을 그리워하게 만드는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만 같다.

 

"한눈에 반하는 건 사랑이 아냐. 발작이지."
삼시 세끼 밥보다 록음악이 더 좋은 히사오는 사실은 음악평론가가 되고 싶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음악평론가가 되는지도 몰랐고 또한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 조차도 없다. 다만 고향인 나고야의 집을 떠나고 싶었고 그것이 도쿄라면 더욱 좋다고 생각해 볼 뿐이었다. 자신의 희망대로 집을 떠나 도쿄에 왔지만 아무 할일이 없다. 1년간의 재수끝에 대학에 합격하지만 여전히 뚜렷한 목적의식이나 앞날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도 없다. 스쳐 지나가는 순간의 선택으로 전공을 선택하기도 하고 연극부라는 서클 역시도 별 이유없이 가입하고 만다. 하지만 좋아하는 선배 나호코만큼은 늘 관심의 대상이다. 그러나 눈길 한번 주지않는 선배와는 달리 술에 취하면 망나니가 되어버리는 입학동기 고야마 에리는 늘 히사오의 주변을 맴돈다. 별 생각없이 했던 뚱뚱하다라는 한마디로 에리는 상처를 받고 그런 그녀를 달래기 위해 히사오는 하루종일 그녀를 찾아다니다가 결국 그녀와 키스를 하게 되고 그렇게 첫사랑의 기억을 가슴에 담는다.

 

다시 1년이 지났다. 히사오는 대학을 중퇴하고 '신광사'라는 작은 광고대행사의 카피라이터로 일하게 된다. 경험도 없고 나이도 이제 겨우 스물한 살이지만 세명의 부하직원을 거느리고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일상속에서 살아간다. 점심도 제대로 챙겨먹을 수 없는 고달픈 일상속에서 히사오는 문득 존 레넌의 '이매진'을 듣는다. 가는 곳마다 존 레넌의 이야기 뿐이다. 일을 마치고 회사로 돌아오면서 문득 히사오는 존 레넌의 죽음을 실감한다. 하지만 음악을 좋아했던 그였지만 히사오의 현실은 그것 조차도 돌아올 겨를이 없는 나날일 뿐이다.

 

 

작품은 모두 여섯개의 장이 나열되어 있다. 1978년 재수를 준비하기위해 도쿄에 올라온 첫날, 79년 대학 신입생 시절 첫키스를 하던 날, 80년 대학을 중퇴하여 갓 입사여 정신없이 보내던 나날, 어느 정도 일에 자신감을 갖기 시작하는 81년의 어느 날, 회사에서 나와 독립하고 요코와 맞선을 보았던 85년, 서른을 눈앞에 둔 89년의 어느날까지 모두 여섯해의 하루하루가 모아져 한권의 소설로 이루어지고 있다. 작품속에 나열된 날들은 히사오의 기억에도 특별한 나날들의 연속이지만 오쿠다 히데오는 그날들을 일본 사회의 트렌드를 상징하는 날들로 묶어내는 조합을 가한다. 오랫동안 사랑을 받았던 아이돌 스타가 은퇴공연을 하기도 하고, 전설적 야구스타가 많은 비난속에서 데뷔하는 날이기도 하며, 세기의 스타인 비틀즈의 존 레넌이 암살당하는 날이기도 하다. 작가는 그러한 조합들이 인위적으로 엮어놓았지만 소설속에서 그 흐름들은 너무나 자연스럽다는 것을 우리는 깨닫게 된다. 소설속의 히사오처럼 우리들 누구에게나 그러한 날들이 몇 번씩은 있을 테니까...
    
작품의 마지막 에피소드인 1989년 11월 10일은 독일이 통일되고 자유로운 왕래가 허용되기 시작한 날이기도 하다. 그것은 오랜동안 지속되었던 동서냉전의 마지막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렇게 한 체제의 종말을 고하는 것은 또한 한 시대가 막을 내리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한 과정들을 지켜보며 히사오와 친구들은 자신들 역시 이십대가 끝나고 서른이 됨을 직감한다. 누군가 새로운 시작이라고도 하지만 누군가는 '청춘은 끝나고 인생은 시작된다.'라고도 한다. 그렇게 히사오는 서른이 된 자신을 발견한다.

주인공 히사오의 나이는 공교롭게도 작가 오쿠다 히데오와 같다. 그렇기에 작가 자신이 느끼고 체험했던 시대상이 고스란히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히사오가 서른의 관점에서 스무살을 돌아보건 아니면 지금 현재의 관점에서 지난 날을 돌아보건 간에 애틋하고 지나간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만큼은 아마도 모든이의 공감을 얻어내기에 충분해 보이기만 한다. 소설을 읽는 내내 나 역시도 지난 스무살 시절을 가끔 떠올리곤 했다. 스무살의 나도 거침없이 달렸었지만 서른살엔 하나의 시대가 막을 내리는듯한 느낌을 받았던 것 같기에...       

 

문득 도쿄로 떠나는 히사오에게 어머니가 들려주던 말이 생각난다.
"너는 남한테 고개 숙이는 일에는 소질도 없고, 그냥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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