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 그 유혹과 사치의 비밀
데이나 토마스 지음, 이순주 옮김 / 문학수첩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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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분명 모두가 평등한 세상이다. 하지만 그것을 누구나 인정하기는 쉽지 않다. 돈이라는 새로운 계급을 결정해주는 수단으로 인해 현대판 귀족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며 그들은 어쨌든 우리들과는 조금은 동떨어진 세상에서 살고 있는듯하다. 그러한 위치를 보여주는 수단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명품은 그들이 자신의 위치를 남들에게 알리는 겉으로 드러난 가장 쉬운 방법이다. 한눈에 보아도 사치스러운 명품으로의 치장은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를 구분해 주는 증표이며 또한 오랫동안 그들의 사회적 지위와 자존심을 말해주기도 했다. 결국 그것은 그들에겐 힘과 지위의 상징이었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에겐 그저 부러움을 넘어 또한편으로는 경멸의 대상이기까지도 했다. 하지만 명품업계들의 급격한 세불리기와 현대판 귀족이 되길 원하는 사람들의 꿈이 결합해 이제 명품은 우리 주변에서도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하나의 브랜드로 점차 바뀌어 가고 있다.

이 책 <럭셔리, 그 유혹과 사치의 비밀>은 명품에 대한 우리들의 궁금증을 해소하고 과연 그러한 브랜드들이 어떻게 오늘날 지위를 나타내는 하나의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었는지 분석한다. 그를 위해 명품의 탄생과 그 제조과정은 물론 명품업게 오너들의 가족사를 통해 그들 또한 얼마나 치열하게 그들의 자리를 지켜내고 있는지 알아보기도 한다. 명품은 단순한 제품을 일걷지만은 않는다. 그것은 오랜동안 그들의 전통과 함께 우수한 장인의 손길을 거쳐 제작된 누구나 가질수 없는 제품을 의미했다. 그렇기에 지극히 제한된 상류사회의 극소수 고객만을 위해 소량으로 주문생산된데서 그 기원을 찾아볼수 있다. 하지만 귀족과 평민의 구분이 엄격했던 근대사회와 달리 시민의식이 높아지고 스스로가 자신의 주장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그러한 장벽은 서서히 무너져 갔다. 그리고 누구나 능력만 있으면 경제적 성공을 보장받을 수 있었고 그렇게 탄생된 그들은 또한 사회적 지위의 상승을 원했다. 그것을 가장 먼저 간파한 것이 바로 명품업게를 이끌어 가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스스로 명품의 인식을 바꿔가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공방에서 숙련된 장인들에 의해 제작되어 소량으로만 판매되던 제품들은 서서히 대량으로 제작되기 시작했고, 프랑스나 이탈리아 등 이른바 명품의 고향에서만 구입할 수 있었던 제품들은 전세계 펼쳐져 있는 그들의 직영점을 통해 구입이 가능해 졌다. 더 많은 수요가 창출되면서 감당할 수 없는 인건비는 그들의 공장을 자신들의 나라에서 아프리카 남단의 모리셔스로 중국으로 최근엔 더욱 갑싼 노동력을 보유하고 있는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로 이동시키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도 그들 제품의 라벨을 메이드인 이탈리아나 프랑스에서 메이드인 중국으로 바꾸길 거부하고 있다.

가까운 일본이 세계 전체 명품 소비의 40%이상을 차지한다는 것은 조금은 낯설게 들렸다. 하지만 그들이 왜 그러한 새로운 문화의 한 단면을 가지게 되었는지 이 책은 그러한 분석에도 많은 부분을 할애 한다. 책 3장 시작을 알리는 사진은 그러한 일본의 모습을 강렬히 전해 준다. 사진은 명품에 둘러쌓인 방에서 어느 일본 여인이 명품을 두르고 누워있는 사진이다. 조용히 눈을 감고 있는 여인은 황홀경에 빠져 있는 듯하다. 또한 어느 한 브랜드에 빠진 남자는 자신이 수집한 명품들에 음식냄새가 밸까봐 집에서 음식 조차 먹지 않는다고 한다. 그저 목이 마르면 근처의 편의점에서 물을 마시고 돌아올 정도라니 그들의 명품에 대한 집착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일본인들은 스스로 명품아 오래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명품을 구입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 책의 분석에 의하면 스스로 중산층이라 생각하는 80%의 사람들이 사회경제적 관점에서 자신을 실제 중산층인 사람들과 동일시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명품에 대한 욕구를 보여주는 것이라 설명한다. 결국 섬나라 일본의 특성상 넓은 저택이나 부동산을 통한 부의 과시가 어렵기 때문에 자신을 치장하는 것이 부를 과시하는 방법으로 선택됐고 결국 서양의 명품이 그러한 지위의 상징으로 자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명품은 그 광채를 잃었다."
명품은 분명 현대인들의 생활패턴 자체를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감히 꿈꾸지도 못했던 명품의 취득은 현대인들에게 새로운 꿈의 획득을 의미하기도 했다. 또한 명품을 보다 쉽게 대중에게 어필하려는 명품업계의 대중화 전략은 그것을 보다 가깝게 유도하기도 했다. 결국 그것은 더이상 명품이 돈으로 살 수 있는 최고의 것을 의미하지 못하게 되었고 또한 최고의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님을 알리는 것이기도 했다. 이제 명품사업은 그들의 글로벌 전략이라는 이름하에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그저 돈을 버는 사업으로 변질되었다. 12년간이나 명품 전문기자로 일해 온 이 책의 저자 데이나 토마스는 명품업계를 비판하지도 질타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들이 행해왔던 전략과 세계화 과정에 대해 담담히 기술하고 있다. 짝퉁의 출현 역시도 어쩔수 없는 하나의 패턴이라 설명하는 듯하다. 하지만 명품이 맥도널드 햄버거와 다름 없어지는 것을 경고 하기도 한다. 그 뒤에 숨은 상술과 철학까지도 비슷해지는 점을 우려하면서...

"명품은 독점적이어야 합니다. 당신만을 위한 것이어야 하고, 다른 사람은 가지지 못하고 못해야 합니다."
명품은 분명 너무 흔해졌고, 또한 너무 획일적이며, 고객에게도 그전에 그러했던 것만큼 치밀하게 다가서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일반인들에게 그들의 꿈에 다가서는 길을 조금은 더 단축시켜주기도 했지만... 명품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각은 양면적이다. 한편으로는 그러한 명품을 갖고 싶어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가진자의 사치라 경멸하기도 한다. 또한 우리들 대부분은 10대의 소녀가 주유소나 편의점에서 한달간 힘들게 일을 하고 받은 월급으로 명품 하나를 손에 쥐고 기뻐하는 것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 소녀들이 우리들에게 자신들을 이해해 달라는 요구를 하진 않는다. 그 어떠한 시각으로도 그것은 분명 이해가 불가능 할테니까...

내가 갖고 있는 지갑엔 피에르 가르뎅이 열쇠지갑에는 구찌라는 브랜드 이름이 박혀 있다. 모두 선물받은 것이지만 그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모른다. 나로서는 구별법도 모르거니와 구태여 알고 싶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명품업계가 노리는 마케팅 전략이기도 하다. 소비자들은 명품을 그 제품 자체가 아니라 그 브랜드가 상징하는 것 때문에 구입하게 된 것이다. 그것은 진짜와 구분하기 어려운 짝퉁을 통해 그들의 브랜드를 광고하는 또하나의 전략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결국 이 책이 이야기하고 있는 기성복화 되어버린 명품의 이야기는 어쩌면 그들이 원했건 원하지 않았건간에 그들의 치부를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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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살장 - 미국 산 육류의 정체와 치명적 위험에 대한 충격 고발서
게일 A 아이스니츠 지음, 박산호 옮김 / 시공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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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간의 오랜 역사를 놓고 볼 때 동물이 차지하는 비중을 절대 간과할 수는 없다. 인간은 그들의 고기를 먹고 그들의 가죽으로 추위를 막아내면서 오늘날의 인류문명을 건설해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인간은 그들 동물을 그저 인간이 지배하는 하등동물로 밖엔 여기지 않게 되었다. 그저 식량을 얻는 도구로 인간의 욕망을 채워주는 수단으로 전락해 버린지 오래다. 약육강식이라는 고전적인 의미에서 부터 시작된 그들에 대한 무차별적 도축은 이미 그 도를 넘어선지 오래다. 물론 이 책 <도살장>은 인간의 육식문화에 대해 폄하하거나 그것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지적하진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인간의 무절제한 욕구로 인해 그들에 대한 도축이 점점 대량화되고 그 결과 오늘날 우리들의 식탁에 오르는 것을 생각해 본다고 하면 결코 우리는 소나 돼지를 비롯한 그 동물을 잔인하게 도축하는 사람들에 비해 결코 자유로울수 없을 것이며 적어도 그렇게 동물들이 비이성적으로 죽어가는 것을 적어도 방조하고 있는 것이라 이 책은 고발하고 있는 것만 같다.

 

모든 것은 한 건의 편지로 부터 시작된다. 미국 동물 애호 협회의 조사관으로 있던 이 책의 저자 게일 A.아이스니츠는 티모시 워커라는 도살장에 파견된 현장조사관으로 부터 살아있는 소의 껍질을 도축하는 행위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제보를 받는다. 물론 저자는 그 이전에도 갖가지 동물에 대한 수도 없는 잔혹한 행위를 보아왔지만 웬지 워커의 제보를 조사해볼 필요를 느낀다. 원래 연방법상 규정되어 있는 도축행위는 다음의 원칙에 따라야 한다.
"미국 의회는 1958년 이른바 자비로운 도살법(Humane Slughter Act)을 통과시킨다. 그 주요 내용 가운데 모든 동물들은 사슬에 묶여 라인 위로 끌어올려지기 전에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사람이 효과적인 기절 장치를 사용해 한 번에 의식을 잃게 만들어야 하는 조항이 있다."
그 모든 과정은 미 농무부에서 파견한 검사관에 의해 검사되어야 하며 그들은 도축과정에서 조금의 이상이라도 발생하면 즉각 라인의 공정을 중지시킬 권한을 부여받고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법에 명시되어 있을 뿐이고 현장에서 검사관들은 그저 도축 사업체의 눈치를 보는 하수인으로 존재할 뿐이었다. 그리고 아이스니츠에게 제보를 한 워커 역시 그러한 도살장에 파견된 검사관이었다.

 

그가 폭로하는 현실은 저자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를 경악하게 만든다. 소를 제대로 기절시키지 못해 살아있는 소의 가죽을 벗기는 것은 물론이고 소가 숨이 끊어지지 않은채 사슬에 매달려 있다가 발버둥치는 바람에 밑으로 떨어져 그 아래에서 일하는 직원들에 대해 심각한 해를 끼치기도 한다. 그러한 상황에서 쇠파이프나 칼을 휘둘려 소를 죽이는 잔혹한 광경이 끝없이 게속 이어지고 있다고 그는 전한다. 저자가 인터뷰하는 많은 도살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이야기는 한결같다. 오히려 그렇게 위험한 상황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복지는 무시한채 생산량에 급급해 누군가 다쳐도 그를 현장에서 끌어낼뿐 그대로 작업을 진행했다고 고발하기까지 한다. 도살의 진행과정 뿐만 아니라 그 위생상태도 차마 누뜨고 보기 어려울 지경이다. 배설물을 비롯해 고름이 가득찬 상태임을 말해주는 농양, 기생충인 디스토마, 소의 피부속에 있는 파리유충 굼벵이등은 물론이고 소의 혓바닥에 남아있는 선인장 가시까지도 그대로 상품으로 출하되고 있는 지경이다. 이러한 비위생은 O157:H7 바이러스를 통해 용혈성 요독 증후군(HUS)등 각종 합병증으로 이어져 수 많은 아이들을 쓰러지게 만드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어느 도살장의 조합장은 주정부에 이러한 호소문을 보내기까지 했지만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도 사람이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사람이나 동물을 이런 상황에 몰아넣는 것은 무자비한 것입니다. 우린 간절하게 도움을 바라고 있습니다!"

 

돼지나 닭의 경우는 소의 도축 과정 보다 더 참혹하고 비위생적이기까지 하다. 대단위 기업형 농가에서 키우는 수백만마리의 돼지들은 살아있는 내내 아주 금속우리에 갇혀 살며 그 우리가 너무나 작아 걷는 것은 물론이고 몸을 돌릴 공간도 없다고 한다. 또한 짚을 갈아주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배설물이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지는 그 공간안에서 돼지들은 먹고, 자고, 배설하고, 새끼를 낳고, 태어난 새끼에게 젖을 먹인다고 한다. 이미 그 돼지들은 그들의 배설물에서 나오는 유독가스 때문에 심각한 호흡기 질환에 걸려 있는 상태이기도 하다. 닭의 경우도 그리 다르지 않다. 바닥은 유지, 지방 모래, 바퀴벌레로 뒤덮여 있으며 벌레들이 도살장 벽 사방에 있다고 한다. 또한 닭의 배설물, 빠듯한 작업시간에 쫓겨 화장실에도 가지 못하는 직원들의 소변, 닭의 피, 내장 등이 뒤섞여 흐르는 하수구에 운반되는 닭이 떨어져도 스스럼없이 주워 다시 작업라인에 올려놓는다고 하니 그 비위생이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이기까지 하다.

 

저자는 이 모든 조사를 통해 의회가 어떠한 조치를 취하도록 만들고 변화를 촉구하기 위해 고발 프로그램을 만들려 했으나 충격적이고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번번이 퇴짜를 당한다. 또한 끝없는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그녀는 결국 유방암에 걸리기까지 하고, 그녀가 속해 있던 단체인 미국 동물 애호 협회에서 조차 방해를 받게 된다. 그녀는 농가 가축을 보호하는 데 전념하는 인도적 축산 협회로 자리를 옮기고 본격적인 고발을 준비한다. 하지만 번번이 그녀가 만나는 현실의 벽은 두터웠다. 정육 업계와 긴밀한 유대관계를 가진 레이건과 부시 정권때부터 대형 도살장들의 합병은 늘어나고 도살장에 대한 규제와 검역 수준은 완화되기 시작했다. 결국 그 배후에 돈과 권력이라는 넘을수 없는 벽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그녀가 선택한 것은 이 책 <도살장>의 집필이었다. 책에는 미국내 도살장의 얘기를 다루었지만 우리나라 역시 그 환경과 크게 다르지 않을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한 사가지대는 우리들의 시각으로는 절대 알 수 없기에... 그 우려가 현실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 뿐이다.

 

이 책은 그렇게 저자인 게일 A.아이스니츠의 끈질긴 노력에 의해 탄생된 책이다. 그녀는 후기를 통해 그녀가 거둔 몇가지 성과를 소개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그 틀은 크게 바뀌진 않은 것 같다. 그들 역시도 이렇게 각종 병원균에 그대로 노출된 비위생적인 육류를 섭취하는데 하물며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에 대해 우려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미 유럽에서는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전면금지한채 미국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제대로 검역조차 되지 않는채 밀려오는 그 두려움은 어쩌면 또다른 사태를 야기할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미국내 도살장의 현실이 이러하거늘 그러한 사실을 우리들의 관리들은 알고나 있을지 걱정이 앞설 뿐이다. 어려운 상황과 환경속에서도 끝까지 신념을 잃지 않고 포기하지 않은 그녀의 용기에 감탄할 수밖엔 없을 듯하다. 또한 그녀가 밝혀낸 우리가 모르고 있는 진실에 대해서는 경악할수밖엔 없었다. 치명적인 병균에 의해 죽어가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보며 그저 그것이 이땅에서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 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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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권혁명 - 피의 나무에서 슬기의 나무로, 우리가 직접 정치하고 직접 경영하는 즐거운 혁명
손석춘 지음 / 시대의창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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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직까지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지는 않았지만 서서히 이 혼란의 정국은 그 끝을 향해 가고 있다. 그 끝에 뭐가 있건 간에 벌어진 민심과 정권 사이의 관게는 쉽게 회복되기는 어려울듯 하다. 애초에 촛불은 스스로 피어올라 스스로의 밝음으로 세상에 그 빛을 전했지만 모두의 기원처럼 그 진정한 의미보다는 안팎의 여러가지 난제에 휩쓸려 그 의미가 퇴색되어진 것만 같을 뿐이다. 이 어지러운 정국속에서 우리는 민주주의의 가장 근본이라할 수 있는 주권이 가진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주권은 글자 그대로 '가장 주요한 권리'로서 '국가의 의사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권력'이다. 그리고 그것은 엄연히 헌법 1조 2항의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에 명시되어 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들은 우리들의 권리이자 의무를 제대로 알고 또한 제대로 쓰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흔히 투표라는 절차를 통해 주권을 가진 국민의 권리를 행사한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책 <주권혁명>은 민주주의를 투표로 상징되는 절차의 문제로만 좁게 생각하거나 탈역사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은 누군가의 의도가 깔려있다고 단언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 특히 신자유주의 물결속에서 형식적 민주주의는 부자들만의 민주주의로 전락하고 있으며, 자본주의가 민주주의 과정과 정치적 평등을 왜곡할 정도로 경제적 불평등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라 이야기 한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의 껍데기에 민주주의라는 가면을 쓴 허상의 존재일지도 모른다. 결국 저자는 이 책이 민주주의를 살아 숨쉬는 정치체제로 이해하고 또한 진정한 이땅의 민주주의의 꽃을 피워가는 기나긴 과정중의 하나로 인식되어주길 바라고 있다.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다."
책은 세개의 커다란 주제하에 진행된다. 첫번째 마당은 민주주의의 시작과 그 기초에 대해 논하고 있다. 단두대에서 사라진 루이 16세의 종말은 새로운 세계의 탄생을 알렸고 또한 시민이라는 새로운 계급을 탄생시켰다. 또한 단두대는 이후 벌어지는 수많은 피의 시작을 알리는 시작이기도 하다. 민중의 힘으로 이룩된 프랑스 혁명처럼 우리에게도 기회는 있었다고 저자는 이야기 한다. 바로 '갑오농민전쟁'이다. 제국주의 외세의 개입으로 그 가능성은 무산되었지만 갑오농민전쟁은 아래로부터의 혁명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다만 프랑스는 피가 대가 위에서 새로운 희망을 피워냈지만 우리는 지역적 한계에 부딪혀 전국적으로 확산되지 못했을 뿐이다. 저자는 이어 민중의 이름아래 새로운 정치혁명으로 나타난 실존사회주의에 대해 논한다. 물론 마르크스의 이론처럼 완벽하게 태어나진 못했고 그 종말 역시 우리가 아는 것 그대로이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민주주의의 전통속에서 분명 실존사회주의의 성과는 새롭게 평가할 필요가 있음을 역설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반대편엔 신자유주의 깃발이 올라간다. 그리고 그것은 오랜 역사를 통해 그 개념과 현실에서 세계사적 보편성을 얻어냈다. 자본으로 대표되는 돈이 지배하는 사회, 뭐든 기득권층에 의해 좌우되는 사회, 영원히 그 틀이 깨질 것 같지 않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작금의 시대가 아닐까.

두번째 마당에서는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특수성과 보편성을 이해하기 위해 그 역사적 연원과 함께 새로운 혁명을 이루려했던 소련의 실존사회주의에 대해 고찰해본다. 그리고 그것은 그러한 과정들이 민주주의가 이직까지도 완성된 제도나 개념이 아님을 인식하게 해주는 증거가 된다. 저자는 이제 하버마스의 '공론장 이론'을 인용한다. 여론은 민주주의라는 나무의 또하나의 핵심요소이다. 그것은 근대사회의 서막을 열게 된 게기가 바로 공중이 모인 공론장이었고 토론과 적극적인 자기주장을 보여야 하는 단계를 거쳐야만 비로소 민주주의의가 성숙될 수 있고, 그것이 바로 주권혁명으로 가는 길임을 세계 정치사의 패러다임들이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한다.

세번째 마당을 통해 저자는 '새로운 민주주의'를 제안한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새로운 해석과 정의를 통해 민중에 의한 자기통치라는 민주주의의 철학을 담아내고 있다. 그것은 마르크스와 니체가 해결하려 했던 과제이기도 했다. 또한 그것은 이론보다는 민중 개개인이 성숙하면서 구현되는 자기입법의 성숙한 실천임을 저자는 강조한다. 아래로부터 강력히 통제되는 정치구조 즉, 민중이 정치를 통제해나가는 상황이 바로 직접 민주정치의 모습일 것이다. 그를 위해 저자는 민주주의의 꽃이라 일컬어지는 국민투표의 권한 강화를 내세운다. 그것은 국민투표가 갈라지고 분열된 국민의 의견을 투표를 통해 하나로 모아갈 수 있는 유력한 수단이기에 그러할 것이다. 

"우리의 삶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 물음 앞에 우리 모두 정직하자."
저자는 지금 우리 모두가 먼지속으로 걸어가고 있다고 이야기 한다. 언젠가 우리는 죽음을 맞이하고 먼지가 되어 사라진다. 그렇기에 이땅에서 하나의 먼지로 사라지는 존재가 아니라 '아름다운 집'을 짓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머리말을 통해 전하고 있다. 바로 그것이 진정 저자가 우리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일 것이다. 이제 민주주의는 더 이상 피를 먹고 자라기보다는 '슬기'를 먹고 자라야 할 것이며, 저자가 말하는 슬기란 민중이 자신이 살아가는 삶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그 보다 더 나은 사회가 가능하다고 확신하며, 그 새로운 사회를 자신의 실천으로 창조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소박하지만 위대한 혁명이며, 또한 주권혁명의 고갱이라고 저자는 확신한다.

상대적으로 짧은 민주주의의 역사는 그 이름아래 수없는 피를 강요해 왔다. 그리고 그 주체는 다름 아닌 민중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자본이라는 이름아래 민중의 참여의지는 꺾이게 되었고 돈이 지배하는 세상의 원리 아래 민중의 이름은 잊혀져 갔다. 주권보다는 그저 살아가는데 급급한 현대 자본주의는 민주주의라는 이름마저 퇴색시켜 버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땅에도 주권이라는 국민의 권리를 찾고자 하는 움직임이 생겨나고 있으며 그것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변혁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이름의 체제가 자리해야 할 것이다. 소통이 없이 일방적으로 닫힌 정권을 바라보는 지금의 시각 또한 그러하다. 그저 구시대의 유산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은 주권을 가진 국민들의 저항을 불러올 뿐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저자가 이야기하는 주권혁명은 어쩌면 이르기 힘든 기나긴 여정일지 모르지만 어찌됐든 침묵과 외면이라는 긴 잠에서 우리가 깨어나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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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맞짱뜬 나쁜 나라들 - 악의 뿌리 미국이 지목한‘악의 축’그들은 왜 나쁜 나라가 되었을까?
권태훈 외 지음 / 시대의창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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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세기는 총칼을 앞세운 무력이 지배하던 세기였다. 그리고 그 무력은 미국과 소련으로 대표되는 양극의 리드아래 냉전이란 이름으로 세계를 지배했다. 첨예한 그 시기가 이어지면서 세계는 겉으로 평화롭기까지 했지만 여전히 그들은 세계의 곳곳에서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데 열중이었다. 하지만 그 한 축인 소련의 붕괴는 세계에 여러가지 변화를 가져온다. 그렇게해서 미국은 세계를 지배하는 유일한 강대국으로 남는다. 하지만 세계의 많은 국가들은 미국의 독주를 그저 방관하지만은 않는다. 소련 지배하의 동구권국가들을 유럽연합이 떠안아 그들만의 결속력을 새롭게 과시하며 미국에 맞서고 인구 파워를 내세운 미래의 강대국 중국과 인도 역시 그 변화의 추세에 동참한다. 또한 자원이라는 무기를 앞세운 베네수엘라를 필두로 중동의 다크호스 이란 등도 여전히 미국을 위협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많은 국가들이 자력으로 상대하기 힘든 미국과 맞서고 있는 것인지 세계의 변방으로 밖에 취급되지 않던 쿠바, 리비아 그리고 북한은 지난 세기부터 오랜 기간 미국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계속해 나가고 있는 것인지 이 책 <미국과 맞짱뜬 나쁜 나라들>은 그 시작과 원인에 대해 살펴볼 수 있게 하는 책이다. 책은 7명의 각기 다른 저자가 각각 하나의 나라를 맡아 집필하고 저자들이 한데 모여 그들이 집필한 나라와 미국에 대한 토론을 다룬 내용인 좌담회를 싣고 있는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오늘 우리의 현실에서 미국이란 나라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좌담회는 이 책의 백미라 할 만큼 저자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있는 듯하다. 

책의 첫번째 장은 쿠바가 열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쿠바는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피로서 혁명을 완성한 나라이며 지난 세기 이른바 '쿠바사태'로 불리며 미국과 소련이 극한 대치까지 벌였던 카리브해의 작은 나라이다. 그저 버려진 작은 섬이었던 쿠바는 사탕수수라는 자원을 통해 미국의 관심을 얻게 되고 남미 대부분의 나라가 그랬던 것처럼 미국의 경제적인 식민지가 되어 버린다. 하지만 민중의 끊임없는 의지는 결국 미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쟁취해냈지만 미국은 경제봉쇄로 소국 쿠바를 압박한다. 결과론적이지만 미국의 경제봉쇄는 식량이 없던 쿠바를 세계적인 유기농 농업국으로 만들어냈고, 의약품이 없던 쿠바의 의사들을 남미 전체를 아우르는 '맨발의 의사들'로 탄생시켰다. 미국이 봉쇄라는 정책으로 맞설만큼 쿠바를 싫어하는 것은 그들 스스로 자주국가의 길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쿠바에서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이익이 발생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혁명은 그들의 경제를 어렵게 만들긴 했지만 '진정으로 인간을 위하는 나라를 만들자'는 혁명정신은 아직까지도 미국에 맞서고 있는 그들의 의지일 것이다.

자원을 앞세운 국가주의의 선봉에 서있는 나라가 지구상에서 가장 휘발유 값이 싼 나라 베네수엘라이다. 미국의 부시를 지상 최대의 테러리스트라고 조롱하는 베네수엘라의 대통령 우고 차베스는 흔히 '석유를 가진 체 게바라'라 불린다. 이 책에서 언급된 나라들중 미국에 적어도 경제적으로 부담을 가할 만큼의 능력을 갖고 있는 유일한 나라이기도 하다. 세계 5위의 석유수출국 베네수엘라의 석유는 그간 미국의 든든한 자원이 되어 주었지만 차베스의 집권은 그것을 자국의 이익으로 국한시킨다. 그리고 차베스는 그 석유를 이용해 남미전체를 미국에 대항하도록 하고 또한 중남미 전체를 좌익노선으로 이끌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유유히 유조선을 미국의 항구에 올려보내 경제적 이득을 취하는 실속을 챙기고 있기도 하다. 바로 그것이 그를 일컬어 '석유를 가진 체 게바라'라고 부르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또한 무엇보다 강력한 민중의 지지를 받는다는 것은 그가 선거를 통해 집권에 성공했으며, 미국의 사주를 받은 보수쿠데타가 일어났을때도 민중들에 의해 다시금 복귀했기 때문이다. 

책은 이후에도 오래도록 미국의 정치적 영향력 아래 혁명과 보수의 정권이 반복되고 있는 니카라과, 이른바 명분없는 전쟁이라 칭해졌던 베트남 전쟁의 실상, 중동의 새로운 강자로 출현하고 있는 이란, 오래도록 미국의 골칫거리로만 여겨지는 카다피의 나라 리비아에 대해 다룬다. 또한 우리와 뗄레야 뗄수 없는 우리의 반쪽 북한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이 책은 북한을 그들의 정식 명칭인 '조선'이라 칭하고 있다. 사실 그들의 국호이기에 당연한 것이지만 우리는 북한을 조선이라 부르는 것조차 쉽게 허락하질 못한다. 어쩌면 그것부터 우리가 북한을 제대로 된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원천적으로 봉쇄된 것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은 핵을 둘러싼 주변 열강들과의 이해관계를 통해 북한의 능수능란한 외교술을 보여주고 있다. 적어도 그들이 미국에 단 한번도 굴복한 적이 없으며 미국이라는 나라가 가진 제국주의에 대해 맞설수 있는 전략을 가장 잘 알수 있는 것이 바로 북한의 역사라 소개하고 있다.

책에 소개된 나라들이 미국과 맞섰던 것을 살펴보면서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그들은 자국의 이익이 침해당한다고 생각하면 절대로 타협하지 않는다. 겉으로는 세계의 경찰국가임을 강조하면서도 그 이면에 자국기업들의 이익만을 쫓고 있는 것이 미국의 전략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것들은 이미 남미에서 여러번 나타난 우익 쿠데다들에 의해 증명된 바 있기도 하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그 나라의 민중들 삶에는 전혀 상관없이 총칼을 제공하는 것이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미국에 맞선 나라들은 그저 살기 위해 미국과 맞선 것 뿐이다. 그 나라의 민중이 좀더 인간답게 살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그들의 꿈은  결국 미국의 패권주의 맞서는 것 밖에는 다른 선택이 없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베네수엘 어느 장관의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미국이라는 나라를 적대시하는 것이 아니다. 제국주의식 마인드를 문제라고 보는 것이다."

이 책이 지향하는 바는 무조건적인 '반미'는 아닐 것이다. 이 책에 소개된 국가들이 무엇 때문에 미국에 맞섰고 스스로도 힘든 싸움임을 알면서도 굴복하지 않고 버티는 그들만의 오기와 가치는 무엇인지를 알아보려는 의지일 것이다. 보다 넓은 시각으로 미국이라는 나라를 객관적으로 이해해보려는 시도야말로 진정 우리가 미국이라는 나라의 커다란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시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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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투 오로빌 - 살고 싶은 마을, 남인도 오로빌 이야기
오로빌 투데이 지음, 이균형 옮김 / 시골생활(도솔)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인류의 역사가 전쟁의 역사라고 말할수 있듯 그간 인류는 끝없는 경쟁속에서 각자의 민족이나 문화의 우월성만을 전면에 내세운 투쟁만을 되풀이 할 뿐이었다. 그러한 경향은 지난 세기까지 이어져 두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으로 대표되는 양극화의 시대의 냉전을 우리 인류는 모두 지켜보았고 이어지는 아픔은 모든 인류에게 깊은 상흔으로 아직까지 남아있기도 하다. UN이라는 인류평화를 앞세운 단체가 출범하긴 했지만 인류에게 하나가 되는 것은 아직까지도 요원한 나날일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그 첨예한 대립의 시대는 지나가고 인터넷이라는 문명의 이기 아래 전세계가 가까워져 가고 있지만 여전히 자국의 이익을 앞세운 헤게모니 쟁탈전은 지금도 계속 이어져만 가고 있다. 미,소가 극한 대립으로만 치닫던 1968년 2월 인도의 한 작은 마을에서 의미있는 움직임이 시작된다. 그것은 인류가 스스로 쌓았던 각자의 벽을 허물고 하나가 되어보자는 작은 시작이기도 했다.

 

이 책 <웰컴투 오로빌>은 '새벽의 도시'라는 의미있는 이름을 가진, 인류의 일체성을 몸소 실현하고 있는 마을이자 도시 오로빌에 대한 모든 것을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오로빌은 그 어떤 나라도 영유권을 주장하지 못하며 선량한 의지와 진지한 열망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어느 특정국가의 국민이 아닌 세계의 시민으로서 스스로의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는 곳을 꿈꾸는 의지에 따라 건설되었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근대 인도의 영적 위인인 스리 오로빈도의 사상이 자리하고 있다. 그는 인류에게 다가온 많은 문제들 즉, 전쟁, 환경문제, 빈곤등의 해결은 결국 제도적이거나 기술적인 대응이 아니라 인류 스스로 새로운 차원으로 진화하여 일체성을 이룩하여야만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그러한 그의 사상은 스리 오로빈도의 사후 그의 영적 동반자인 마더에 의해 더욱 발전된다. 현재의 오로빌을 탄생시키기는데 가장 커다란 힘으로 작용했던 마더는 진정한 공동체 속의 삶은 개인 지향적인 삶을 지배하는 법칙과는 다른 모두가 공감하는 공동의 어떠한 규율에 의해 복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다시말해 개개인의 성취가 중요할진 몰라도 규율이 불완전하기에 그 두가지 요소는 서로 상반될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결국 모두가 하나되는 공동체의 삶 속에 개인이란 자신속에 전체의 모습까지도 투영시켜 그 관점을 바꿔나가면서 그 어떠한 것도 포기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함을 역설했다. 그러한 면에서 본다면 오로빌에서 스리 오로빈도와 마더의 사상은 또하나의 종교집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마을주민 모두를 하나로 모으기 위한 울타리의 개념아며 그들 스스로도 종교로 바뀌기에는 어쩌면 보편적인 사상의 하나로 규정하기도 한다. 다만 누군가가 그것을 직접적으로 강요하기에 앞서 스스로 자신들의 열망을 한데 모으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오로빌은 인류에게 여러가지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실험의 경연장이기도 하다. 오로빌의 가장 정중앙에 자리한 황금원반으로 뒤덮힌 대형의 구체는 마을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는 상징적인 건물이기도 하다. 오로빌의 영혼, 마을의 구심력으로도 불리는 마트리안디르는 20여년이 넘는 건설기간을 거치면서 현대 건축술의 백미로 자리하게 된다. 오로빌의 도시계획 자체가 인류가 앞으로 살아 나아가야할 미래의 도시를 꿈꾸고 있듯 도시 곳곳에는 미래를 이끌어갈 건축가들의 실험적이며 창의적인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다. 또한 현대 우리사회가 그러하듯 현재의 오로빌에서도 도시문제, 주택문제는 또 하나의 과제로 자리잡고 있기에 그들에게 주어진 실험정신은 지금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오로빌이 미래 인류의 모습을 지향한다고 하는 점은 겉으로 보이는 도시계획이나 건축물 뿐만이 아니다. 미래의 희망의 모습을 키워나가는 교육에서부터 환경, 경제, 문화, 사회조직 등 인류가 그간 해보지 못한 많은 실험들이 대안이라는 이름으로 직접 실현되고 있기도 하다. 환경문제에 대처하여는 풍차와 태양열을 이용하고 디젤이 내뿜는 매연에서 새로운 대체에너지를 개발하며, 사업을 하더라도 전적으로 개인의 소유가 아닌 모두를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는 배경을 지닌채 이루어진다. 오로빌리언들은 그들이 이익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지만 아직까지 그들이 꿈꾸던 자급자족의 이상을 실현해내지는 못하고 있는 듯하다.

 

인간의 모든 사회가 개개인의 욕망과 요구를 채워줄 수 없듯 오로빌에서도 개인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은 아직까지 실현되지 않은 이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이 처음 황량한 황무지에 이상의 세계를 실현하려했듯 오로빌의 주민들은 "온 세계의 남녀가 종교와 정치적 사상과 국적을 초월하여 진취적인 조화속에서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국제도시를 창조하는 일"에 투신해야 하는 과제를 언제나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오로빌은 인류가 꿈꾸던 이상을 직접적으로 실현하는 실험이 계속 이어지는 곳이다. 현재 40여개국의 국민들이 입주해 있으며 우리나라 역시 20여년전부터 시작해 20여명이 오로빌리언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책을 읽으며 그곳에 사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직접적인 경험담이 첨가되었더라면 좀 더 우리에게 오로빌을 보다 생생하게 전해주는 책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또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들이 과거와 미래를 잇는 가교의 장이 되기를 자처한 것 그리고 그러한 인류의 꿈을 한데 모아 그러한 이상에 다가서려 하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 아닐까.

 

"지구는 이러한 이상을 실현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습니다. 인류는 이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지식도 갖추고 있지 않으며, 실행할 만한 의식의 힘도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꿈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꿈은 실현되어가는 도정에 있습니다..."  
 - 마더의 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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