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피행
시노다 세츠코 지음, 김성은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사람들은 모두가 외롭다고 느낀다. 나이와 세대에 따라 그 느낌의 강도는 물론 다르겠지만 근본적으로 그 차이가 그리 크지는 않을듯 하다. 그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사람들은 가족을 이루고 그 울타리안에서 자그마한 행복을 꿈꾸기도 한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가족의 구성원중 어머니만큼 외로운 이는 없는듯 하다. 아버지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하고 아이들을 학교에 다니며 공부하느라 바쁘다. 어쩌면 우린 그 누구도 어머니의 외로움에 대해 생각해본적이 없는 것은 아닐까. 아이가 성장하기까지 가정에서 어머니의 역할은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이 성장하여 독립된 사회의 구성이 되면서 어머니는 말할 수 없는 외로움에 빠진다. 결국 티끌 하나 없게 20여년이 넘게 집안을 쓸고 닦은 주부에게 남은 것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소외감이다.

 

시노다 세츠코의 소설 <도피행>은 그러한 소외감을 겪고 있는 중년의 주부를 중심인물로 내세웠다. 이제 나이 쉰이 된 주부 타에코는 평범한 직장인인 남편과 어느덧 성장하여 직장에 다니는 두 딸 그리고 키운지 9년이 된 골든 리트리버 포포가 그녀의 가족이며 또한 전부다. 3년전 자궁적출 수술을 하면서 그녀에겐 약간의 우울증이 생겼다. 하지만 가족들 모두 그저 갱년기라며 그녀의 우울증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그저 포포만이 말없이 그녀의 옆을 지켜줄 뿐이다. 사건은 어느날 갑자기 일어났다. 포포가 이웃집 아이를 물어 죽인 것이다. 물론 원인은 아이에게 있었다. 장난감 총을 쏘고 후추가루까지 뿌려대며 끊임없이 포포를 괴롭히던 어느날 딱총을 포포에게 던진 것이다. 폭음은 포포를 두렵게 했고 포포는 패닉상태에서 아이를 물어 버린 것이다. 경찰의 조사결과 타에코에게는 아무런 과실과 형사상의 책임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분명 포포가 아이를 물어 죽인 것은 사실이었고 온갖 매스컴은 타에코의 정원에 까지 들이닥쳐 살인개가 아이를 물어 죽였다는 사실에만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다. 아이를 잃고 슬픔에 잠겨 잇는 아이의 부모들에게 포커스가 맞춰지면서 순식간에 포포는 맹견이 되고 타에코의 집은 지탄받아 마땅한 사람들이 된다. 남편과 아이들마저 포포를 안락사시킬 것을 권유한다. 하지만 타에코는 완강하다. 포포 역시 자신의 가족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국 타에코의 선택은 포포와 함께 잠적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쉰의 주부 타에코는 늙은 개 한마리와 함께 가족과 사회로부터 도피를 시작한다.

 

"너 뿐이야."
대형견이긴 하지만 골든 리트리버는 분명 교배를 거듭하여 철저히 공격성이라는 개의 본능을 억제시킨 개량견이다. 타에코 역시 사람이 준 먹이만 먹고 떨어진 음식은 못먹게 가르쳤다. 마음을 주었기에 언제나 자신의 생각과 같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한 마음을 갖고 운전조차 못하는 타에코는 자전거에 포포를 싣고 도피를 감행한다. 우연히 얻어탄 트럭에서 물건을 훔치는 여자를 또다시 포포가 물고 그녀가 큰 부상을 입게 되면서 그녀의 도피는 이제 세상사람 모두가 알게 되어 버렸다. 남편이 노후 자금으로 마련한 돈은 그녀의 도피자금이 된다. 결국 그녀는 인적이 드문 숲속의 외딴 별장까지 이르게 된다. 천애고독하고 성격 까칠한 알 수 없는 도공 쓰쓰미가 유일한 이웃일뿐, 마을까지 걸어서 한시간 가까이 걸리는 외진 그곳에서 포포와 타에코 둘만의 생활이 시작된다.

 

도대체 타에코는 왜 도망쳤는가. 살인범도 아니고 지명수배자도 아닌 그녀가 왜 이렇게까지 숨어 살아야 할까. 사실 타에코 혼자 도망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포포에게 수갑을 채운다고 해결될 것도 아니다. 작가는 그녀를 끈질기게 쫓는 기자 다마키의 질문을 통해 그것을 묻는다. 어쩌면 우리가 가장 궁금해 여기는 것 역시 타에코가 왜 도피를 감행했느냐의 문제이다. 더군다나 포포는 숲속에 살게 되면서 야성의 본능을 되찾아 간다. 스스로 사냥을 해 먹이를 해결하고 멧돼지를 공격할만큼 변해 간다. 다에코 역시 개는 개일뿐 휴머니즘이나 순수한 정신 같은 건 원래부터 없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타에코는 포포를 포기하지 않는다. 노화가 진행되며 급격히 힘을 잃어가는 포포를 보면서 타에코는 자신에게도 눈부신 청춘의 나날들이 있었음을 기억해낸다. 그리고 남편과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을때까지가 여자로서 산 시절의 전부였음을 알게 된다. 어쩌면 성장한 딸들이 자신의 품을 벗어나면서 이제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의 역할이 다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것은 그녀의 삶과 포포의 삶이 그리 다르지 않았음을 이야기하는듯 하다.

 

늙은 개 포포는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하지만 타에코는 지금이 자신의 인생에 있어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 생각한다. 그 늙은 개의 마지막 남은 삶을 돌보기 위해 그녀 역시 지금까지 살아온 생을 버렸으니까...

 

타에코의 도피는 사실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다. 상식적으로도 사람을 물어죽인 개는 그 자체로 지탄을 받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타에코는 포포에게서 자신과의 동질감을 느낀다.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가족 역시도 어찌보면 당연하기도 하다. 그즈음의 주부라면 누구나 겪는 인생의 한 단계이기에 그리 특별할 것도 없다. 누구나 그것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다가오는 노년의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새로운 힘을 얻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는 타에코를 통해 그러한 상황에 부딪혀 그 모든 것을 정면으로 막아서는 주부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타에코가 숲속의 집에서 발견한 검정콩은 그것을 암묵적으로 보여준다. 그 집에 먼저 살다간 노부인은 스스로 작은 농장을 일구며 살아갔다. 현대판 고려장이기도 한 볕이 잘드는 2층 구석방에 앉아 며느리가 주는 음식을 받아먹고 TV나 보며 남은 삶을 보내는 것 보다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는 길을 선택했던 노부인의 삶을 검정콩은 대변하고 있는듯 하다. 타에코는 그렇게 힘을 얻고 포포 역시 그러한 주인 타에코의 마음을 아는듯 끝까지 그녀의 곁을 지킨다. 아마도 죽어가는 타에코의 눈앞에 나타난 젊고 늠름한 개 포포의 모습은 가슴 가득 행복했던 젊은 날의 기억속으로 타에코의 마음을 이끄는듯 여겨진다. 그 행복했던 기억만을 간직할 타에코의 삶이 어쩌면 그녀에게는 후회없는 삶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보게 만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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