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방 우편기 현대문화센터 세계명작시리즈 19
생 텍쥐페리 지음, 배영란 옮김 / 현대문화센터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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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텍쥐페리에게 있어 <어린왕자>는 빼 놓을수 없는 작품이다. 그가 써낸 수많은 작품중에서도 세대를 초월하여 모든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그의 대표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어린왕자>를 출간하기 이전부터 이미 작가로서의 명성이 대단한 위치에 올라있던 사람이기도 했다. 물론 경제적인 요인도 있었겠지만 그는 촉망받는 작가 뿐만 아니라 어려서 우연히 타게 된 비행기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한다. 실제 군에 입대해 전투기 조종사가 되었으나 사고로 인해 그는 조종사라는 꿈을 잠시 접기도 한다. 이 책 <남방 우편기>는 그가 다시금 우편 비행기의 조종사로 일을 하기 시작한 직후에 집필한 작품으로 그의 처녀작이기도 하다. 결국 그는 작가이기 이전에 아직 비행기나 비행이라는 것 자체가 일반적이지 않던 1920년대 후반 이미 민간 조종사라는 새로운 영역에 발을 내디딘 선구자이기도 했다.  

  

그의 작품 가운데에는 실제 비행기 조종사와 관련된 작품이 많다. <야간비행>이나 <인간의 대지>등은 조종사로 그가 겪거나 체험했던 명확한 근거아래 집필된 작품으로 그로 인해 그는 행동주의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로 꼽히기까지 한다. <남방 우편기>는 초기작인 만큼 그가 비행을 시작하면서 아직 떨쳐내지 못한 세상에 대한 여러가지 감정들이 담겨져 있는 작품이다. 어쩌면 20대 후반의 생텍쥐페리에게 세상은 언제나 그가 다가서야할 곳인 동시에 그의 삶의 터전이기도 했다. 주인공 베르니스 역시 세상을 이루어지지 못한 첫사랑에 대한 아픔이 여전히 남아있는 곳으로 기억한다. 그의 사랑 주느비에브가 사라진 곳은 더이상 그에게 애착의 대지로 남아있진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작품속의 화자는 베르니스와 어린시절부터 함께 했던 친구로서 즈느비에브와의 아름다운 추억 그리고 다른 이의 아내가 되면서 베르니스가 가져야했던 아픔들을 모두 알고 있는 이 이며 외롭고 고독한 비행중의 조종사에게 세상과의 유일한 접점을 찾아주고 있는 무선사이기도 하다.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또한 전형적인 작가시점이 아니기에 어쩌면 베르니스와 주느비에브 둘 모두에게 조금은 더 가까이 독자들이 다가설수 있는 요인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모든 것이 간단하구나... 산다는 것도, 골동품을 정리한다는 것도, 그리고 죽는다는 것도..."
작품의 내용은 비교적 간단하다. 오랜 휴가를 끝내고 베르니스는 그의 일인 우편비행을 위해 비행장으로 돌아왔다. 우울함이 들기도 했지만 그는 이제 모든 것을 남겨두고 왔다고 생각한다. 평온해진 상태에서 프랑스발 남아메리카행 우편기에 탑승한 그는 모든 것을 잊고 비행에 집중하려 한다. 잠시 잠깐 비행은 위기를 맞기도 하지만 이내 평온을 되찾고 작품은 지나간 그의 두 달간의 여정에 집중한다. 그는 파리에 돌아와 이미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있는 주느비에브와 재회한다. 남편과의 불화와 함께 아이의 죽음을 겪으면서 주느비에브는 탈진해버린다. 그리고 그녀는 베르니스에게 함께 떠나줄 수 있느냐 묻는다. 그렇게 두 연인의 새로운 만남이 시작되지만 이내 모든 것은 제자리로 돌아간다. 어쩌면 그는 그것이 모두 미리 짜여진 각본이 아닐까라고 생각하며 절망한다. 그처럼 그녀는 그에게 잠깐 왔다가 사라진 꿈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베르니스는 그녀를 잊기 위해 거리의 창녀를 찾기까지 하지만 이내 그는 그녀가 머물고 있는 고향을 찾아간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그곳애서 그는 주느비에브의 마지막을 목격한다. 결국 자신의 세계로 주느비에브를 이끄려 했던 그의 기대는 그가 비행중 건너는 사막만큼의 모래장막이었던 것이다. 

 

'골동품은 이미 어둠을 머금고 있었다.'
사랑은 이 작품속에서 작가가 그리는 가장 중요한 주제가 되고 있다. 베르니스는 모든 것을 남겨두고 왔다고 했지만 화자가 보기엔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작품속에서 여러번 언급되는 골동품은 어쩌면 그러한 의미에 대해 작가가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표현해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골동품은 기억속의 잊혀진 존재이다. 어떠한 사물은 시간과 개인의 추억이 더해 지면서 여러가지 의미를 담아 골동품이 되어간다. 내게는 무엇보다 중요하겠지만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것에 주목하지는 않는다. 애초부터 골동품은 주느비에브에게나 베르니스에게나 하나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주느비에브는 거리의 골동품 가게를 지나면서 골동품이 생사의 갈림길에 서있는 아이에게 생명의 빛을 담아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고고한 그녀의 취향은 베르니스가 보물처럼 여기던 골동품을 보는 시각차에서도 나타나는듯 하다. 결국 그녀의 죽음을 느끼면서 베르니스가 본 어둠을 머금고 있는 골동품은 그녀가 바라보던 빛을 상징하는 것만 같다. 또한 베르니스가 화자에게 보낸 편지에 보여진 골동품 역시 쓰러진 과거의 영광이란 모습으로 나타난 것처럼 지울수 없는 과거의 모습 또는 그 안에 담겨진 또하나의 의미가 아닐까.

 

어려서 읽었던 <어린왕자>나 <인간의 대지>와는 달리 <남방 우편기>는 애절한 사랑에 주목한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생텍쥐페리가 실제 경험했던 삶의 한 부분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실제 생텍쥐페리 역시 비행중 사라져 버린다. 자신에게 그러한 운명이 다가올것을 예견한 것처럼 작품속의 베르니스 역시 사막에서 사라져버리고 만다. 그의 흔적을 쫓아가는 화자의 여정을 통해 <야간비행>처럼 실제 생텍쥐페리의 삶을 엿보는듯 느껴지게 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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