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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에 합당한 우리 연애 - 박화성과 박서련의 ㅣ 소설, 잇다 6
박화성.박서련 지음 / 작가정신 / 2024년 10월
평점 :
『정세에 합당한 우리 연애』
'소설, 잇다' 여섯 번째 도서 <정세에 합당한 우리 연애>를 작정단 13기 첫 번째 도서로 만났습니다. '소설, 잇다'는 활발히 작품 활동을 이어나갔으나 충분히 언급되지 못했던 근현대 여성 작가들의 소설을 현대 작가들의 소설과 함께 읽는 시리즈예요. 이번에 소개된 박화성 작가는 1932년 '백화'를 동아일보에 연재하면서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는데요. 이 책에는 '하수도 공사', '홍수전후', '호박' 세 편의 단편이 실려있습니다. 최근에 읽은 '만조를 기다리며'를 통해 알게 된 박서련 작가는 청소년 시절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 고등학교 3학년 때 소설로 대산청소년문학상 금상을 수상했다고 합니다. 표제작인 '정세에 합당한 우리 연애'와 에세이가 실려 있는데요. 박화성 작가의 '하수도 공사'를 읽는 독서 동아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박화성 작가의 작품을 읽으면서 '남성적'인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하지만 외부로는 일제의 수탈, 내부로는 가부장제의 억압이 침투하는 현실 속 여성 인물들의 고초를 작품 속에 고스란히 담고 있는데요. '홍수전후'를 읽으면 고집스러운 가부장의 모습을 통해 어린 목숨이 희생되는 것을 엿볼 수 있어요. 삼십오 년 만의 홍수에 대피하라는 주민들의 말을 무시하고 배 두척에 모든 것을 건 명칠. 갑자기 휘몰아치는 물 폭탄에 곡식을 실은 큰 배가 떠내려가 버리고 작은 배에 자식 셋을 태웠죠. 나무에는 아내와 젖먹이 막내가 매달려 있었죠. 불어나는 물에 자꾸만 출렁이는 작은 배에 탄 세 자식을 나무로 올라가게 할 계획은 어긋나고 맙니다. 결국 딸아이 하나를 잃고 말죠. 처음부터 없는 살림이지만 포기하고 안전한 곳으로 옮겼다면 어땠을까요? 소중한 것을 잃고 나서야 바뀌는 명칠에게 화가 나더라고요.
'하수도 공사'에서는 하수도 공사의 임금을 받지 못해 주인공 동권을 중심으로 파업을 통해 임금을 받으려 항의하고 나섰는데요. 그런 동권은 계모에게도 돈을 제대로 벌어오지 못한다고 무시를 당하곤 하네요. 동권은 동생의 친구인 용희를 사랑하지만 두 사람의 계급 차이를 느낀 동원은 정세에 합당하지 않다고 하며 용희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박서련 작가의 '정세에 합당한 우리 연애'에서는 겉으로는 독서 동아리 모임이지만 총여학생회를 재건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 진과 림이 등장합니다. 두 사람은 연인 관계이기도 하지만 동아리 사람들에게조차 둘의 관계를 밝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총여학생회 재건을 위해 기반을 다지는 진과 사랑을 쟁취하지 못하며 머뭇거리는 동권의 모습은 어딘지 닮아 있네요. 무엇이 정세에 맞지 않아 이들을 머뭇거리게 한 것일까요?
백 년 전 소설을 읽었지만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은 우리들의 모습이 엿보여서 더 와닿지 않았나 해요. 여전히 남자의 권위의식 아래 여성을 비하하는 이들이 만연한 사회니까요. '소설, 잇다' 시리즈를 통해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 보는 재미도 느낄 수 있어 더 좋았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 세 권의 '소설, 잇다' 시리즈를 만났는데 이번에 읽은 <정세에 합당한 우리 연애>가 제일 쉽게 읽혔던 것 같습니다.
출판사 지원 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