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와 달빛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18
세르브 언털 지음, 김보국 옮김 / 휴머니스트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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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와 달빛』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결정적 한순간'이라는 테마로 만난 흄세 시즌 4. 이번에 읽어본 책은 <여행자와 달빛>입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난 작가 세르브 언털의 작품은 휴머니스트 세계문학으로 처음 접하네요. 첫 장편소설 '펜드래건의 전설'을 출판하며 자신의 이름을 알린 세르브 언털의 두 번째 장편이 바로 <여행자와 달빛>입니다. '반드시 읽어야 할 헝가리 소설'을 꼽는 설문에서 빠지지 않는 작품이 바로 <여행자와 달빛>이라고 해요. 거기다 국내 초역으로 만나는 작품이라 더 반갑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헝가리 벌프 노동 수용소로 끌려간 그는 이듬해 세상을 떠나 안타깝게도 두 작품 밖에 남기지 못했다고 하네요. 세르브 언털의 작품을 처음 만나는 독자로서는 아쉽기만 합니다.

가끔 과거를 회상할 때가 있습니다. 지금 현재의 모습에서 과거에 내린 결정에 선택받지 못했던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그때 그런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등등 과거의 나의 행동과 언행에 있어 후회할 때가 있는데요. 과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는 남자 주인공 미하이가 <여행자와 달빛>에 등장합니다. 거기다 죽음을 갈망하는 모습으로 말이죠. 몇 해 전 거주지 인근에서 스스로 고통을 가해 죽음의 문턱까지 가는 느낌을 즐기다 끝내 사망에 이른 남성의 사연을 뉴스에서 접한 적이 있는데요. 저에겐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분명 그런 가학적인 행동에서 쾌락을 느끼는 이도 존재한다는 것에 놀랐던 기억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중산계층에서 과할 정도로 시민교육을 받고 자란 미하이와 부유한 사업가 남편과 이혼한 후 미하이와 재혼한 아내 에르지는 베네치아로 신혼여행을 떠고 그런 미하이와 에르지 앞에 미하이의 옛 친구 야노시가 찾아옵니다.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지 않은 친구의 등장은 미하이의 기분을 상하게 합니다. 잊고 있었다 생각했던 과거로 그를 데리고 간 친구의 등장은 미하이와 에르지의 신혼여행을 다른 방향으로 이끌게 됩니다. 어린 시절 앓았던 병으로 환각에 시달리던 미하이 앞에 울피우시 남매가 등장합니다. 자신의 전부였던 친구 울피우시 터마시와 그의 동생 에버, 그리고 성직자가 된 에르빈과 보냈던 시절을 아내에게 들려주죠. 우애가 깊었다는 이야기로 설명되지 않을 무언가가 있는 남매, 연극 놀이에 심취했던 이들은 살인과 자살 등 죽음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이들의 연극 놀이는 죽음을 동경하게 만들었고 끝내 터마시의 자살 소식을 듣게 된 후 에바의 행방마저 묘연해지며 연락이 끊기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과거를 묻어두고 살았다 생각했는데.. 신혼여행지에서 어두운 과거 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네요. 그렇게 이들은 다른 도시로 이동하던 중 에르지와 다른 기차에 오르는 터마시는 옛 친구를 찾아 나섭니다. 오랜 방랑의 세월 동안 찾지 않았던 곳, 신혼여행이 아니었다면 이탈리아 여행을 미루고 또 미루었을 미하이는 왜 신혼여행지로 이탈리아를 선택한 것이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운명은 정해져 있기 때문이었을까요?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았다 믿었고,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았지만 사랑하고 있었던 이 알쏭달쏭한 마음은 과연 누구를 향했던 것일까요? 터마시와 같은 죽음의 길을 가고 싶었던 미하이, 신혼여행 중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선택지를 향해 달려간 미하이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을 것 같네요. 성직자가 된 친구 에르빈과의 만남, 다시 시달린 어린 시절 느꼈던 소용돌이 증세, 그리고 죽음에 직면하고 나서야 삶에 대한 의지를 느낀 미하이는 그래도 살아 있어야 느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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