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딘가의 구비에서 우리가 만났듯이』
채광석 서간집 <그 어딘가의 구비에서 우리가 만났듯이>를 끝으로 사무사책방 시리즈를 마무리 헀다. 편지를 모아 만든 책을 뜻하는 서간집. 채광석의 서간집은 그가 옥중에서 쓴 편지를 모아 만들었다. 시인이며 문학평론가였던 채광석은 1974년 오둘둘 사건으로 체포되어 징역을 살았고 1980년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체포되어 40여일간 모진 고문을 당했다고 한다. 이후 교통사고로 사망했는데 당시 나이가 향년 39세였다고 하니 너무 짧게 살다 가신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영등포 구치소를 시작으로 공주교도소의 가을, 겨울, 봄 출소까지.. 한 권에 담겨 있는 그의 편지를 읽다보면 어떤 사람이었을지 느낌이 전해진다. 채광석 시인이 공주교도소를 출소하던 날이 정확하게 내가 태어난 해, 태어난 날이었다.(뭔가 의미를 막 부여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서른 아홉, 너무 짧은 생을 살다 간 채광석 시인이라 결혼은 했던가? 의문을 품었는데 서문에서 결혼도 하고 첫아들 돌도 지났다는 글을 다시금 발견했다. 다행이다.. 생각했는데 또다시 홀로 남겨졌을 정숙씨가 걱정되기도 했다.
그가 정숙씨에게 보내는 편지는 시적인 제목으로부터 시작한다. 제목의 느낌이지만 뭔가 짧은 시를 한구절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책을 참 많이 읽었고, 어려운 책도 뚝딱뚝딱 읽어내던 작가는 그녀에게도 책 읽기를 계속 권하고 있다. 독서의 힘이었을까, 시인이었기에 가능했을까.. 그가 남긴 문장들은 가슴을 울리고, 미소짓게 하고, 의외의 모습을 만나 놀라게도 하는 힘이 있었다.
"머무름은 죽음일 뿐입니다. 인간이기를 기원하는 모든 사랑과 믿음은 함께 산다는
정신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자기혁신을 시도할 때 비로소 정당한 의미를 가질 것입니다."
"열심히 읽고 열심히 명상하여 거듭나기 위한,
사랑하기 위한, 믿기 위한 자세를 다져 나가렵니다."
"가진 자의 오만, 부유한 자의 거드름, 그것을 내 삶 안에서는 영원히 사절하고자 합니다."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인간은 좋다고 생각하는 일에 몸을 던지고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린 건방지게도 예수의 삶을 본받아 죄인과 가난한 자들을 위해 산다고 떠들면서도
얼마나 많은 '입맛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소외시켜왔는지 모릅니다."
<그 어딘가의 구비에서 우리가 만났듯이>를 읽으며 만나는 작가의 글은 사랑꾼 같은 느낌도 나지만 약간 개구진 느낌도 물씬 풍기고, 특히나 나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문장도 만나게 된다. 한 곳에 머무르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겠단 생각이 든다.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고 소외된 이가 없는지 잘 살펴야겠단 생각이 든다. 많이 읽고 많이 느껴야겠단 생각이 든다.
나와 한번도 마주친 적 없는 사람인데 그가 쓴 서간집을 통해 어디선가 만난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이 편지를 내가 받은 것 같은 느낌도 들고.. 그래서인지 채광석 시인과 가까운 사이가 된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켰던, 그래서 제목을 이렇게 지었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했던 <그 어딘가의 구비에서 우리가 만났듯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