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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ㅣ 소설, 향
김이설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0월
평점 :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나'는 연하의 남자와 사귀다 반지를 받고 헤어졌다. 하지만 그가 싫은 것은 아니다. 언제나 생각나고 그에게 기대고 싶기도 하다.. 나는 오래된 목련 빌라에 엄마, 아빠와 함께 살다가 동생이 두 아이를 데리고 들어와 복작복작 대가족이 되었다. 특별히 하고 싶은 것 없었고 장래 희망조차 없었던 나는 대학 입학도 번번이 부딪혔고 제대로 된 직장도 갖지 못했다. 뒤늦게 동생의 도움으로 야간대 문예 창작과에 진학하게 되고 학교를 다니면서 연하의 남자친구를 만나게 된 것이다. 열정이 있었기에 학교를 나오면 시도 잘 쓸 수 있고 등단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나와는 다르게 똑똑하고 대학도 한 번에 합격하고 직장도 어려움 없이 정할 수 있었던 동생은 열 살 많은 남자와 혼전임신으로 결혼하게 되었다. 그 남자에겐 전처가 있었고 결혼 후에도 지속된 만남으로 동생을 힘들게 했다. 이혼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러다 동생도 동창과 외도를 하게 된다. 이렇게 되었으니 이혼하자 했다가 언니가 반찬을 가져다준다는 핑계로 둘째 조카를 보러 갔던 날 동생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제부를 보게 된다. 그길로 동생은 아이 둘을 데리고 친정으로 돌아오고 나는 동생의 아이를 떠맡게 된다.
엄마, 아빠, 동생까지 모두 일을 하러 나가고 조카들은 오롯이 나의 몫이 되고.. 집안 살림에 아이들 돌보는 일까지 혼자 도맡아 하다 보니 글 쓸 시간이 없다. 필사조차 하지 못하고 빈 종이를 바라볼 때가 많아진다. 지칠 대로 지쳐가는 나, 새로이 누군가를 만나는 동생.. 그런 동생을 내보내자 하는 엄마, 아직 피지도 않은 인생이라 나에게 말해주는 아빠..
인생은 길고,
넌 아직 피지 못한 꽃이다.
주저앉지 마.
갑작스러운 아빠의 죽음으로 나는 집에서 나올 결심을 하고 남자친구 집에서 잠시 신세를 지다가 방을 얻고 글쓰기에 전념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을 나오고 난 후, 무언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 같은 남은 가족이다.
뭔가 답답했다. 나의 인생을 결정하는 것은 주변의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다. 자신의 생각으로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동생의 아이를 떠맡은 것도 답답했지만 자신으로 인해 동생이 제부와 헤어지게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과 그렇기 때문에 아이는 당연히 내가 맡아줘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 주인공의 생각에 '아니라고' 대답해 주고 싶었다. 언니의 도움으로 박차고 나오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계기는 되었겠지만 모든 결정은 동생이 내렸을 것이라는 사실!! 가족이니까 서로에게 도움은 줄 수 있지만 상대의 짐을 오롯이 떠안는 것, 특히나 나를 철저히 희생하면서 짊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물론 풍족하게 여유를 누리면서 도움을 주는 것이라면 그럴 수 있다 생각되지만 내 코가 석자인데 '희생'만 하는 건 정답이 아닌 것 같다. 그래도 자신을 찾으려는 노력이 있었기에 참 다행이라 생각되었던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이라 하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