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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게 살자, 고민하지 말고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6년 6월
평점 :
품절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은 다 챙겨 읽는 편인데, 이 책은 2016년 6월에 나왔고 나는 그걸 이제 알았다. 그러면서 읽을 책이 하나 더 생긴 것을 럭키-라고 생각했다.
제목이 참 멋없다고 생각했는데, 내용은 이와 달리 슬프고 먹먹하고 꽉 차 있다.
각기 다른 라이프스타일을 지닌 세 자매의 이야기인데, 첫째 아사코는 전업주부, 둘째 하루코는 워킹걸, 셋째 이쿠코는 프리터족에 가깝게 묘사된다. 평화로와 보이는 일상과 달리 남편과의 문제를 껴안고있기도 하고, 남자친구와의 동거와 갈등, 나이 많은 아저씨들과의 지나치게 자유로운 교류와 그를 넘어서는 성장 등이 그려진다. 가정폭력 문제를 다루고 있기도 한데 당사자가 그 문제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상황을 너무나 잘 그려, 숨이 잘 안 쉬어지기도 한다. 모든 주인공이 관계에서 상처를 입지만, 그들에게는 자매들이 서로에게 줄 수 있는 위안이 있다. 술 한잔 나누면서 쉬어갈 지점이 있다.
음식과 술을 묘사할 때 에쿠니 가오리는 진정 그것을 즐겨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섬세하고 여성적인 관점이 살아있게 장면을 잘 그려낸다.
이 책은 무척 사랑스럽고, 또 문제적인 책이다. 보석상자에 고이 넣어두고 잠가놓고 싶을 만큼, 반짝인다.
여행을 좋아하고 월급도 꽤 세지만, 유럽이나 미국을 희희낙락 돌아다니는 것은, 또는 인도나 중국으로 떠나는 것은 왠지 창피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술집 카운터에서 우연히 옆자리에 앉았을 때, 하루코는 구마키를 착해 보이는 남자라고 생각했다. 어느 정도 착한 남자인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확인해보고 싶다. 하루코의 연애는 늘 그렇게 시작된다. 10p
구마키는 낭만주의자다, 하고 하루코는 생각한다. 남녀 관계도 이 사람이 문제 삼으면 무척 낭만적인 것이 된다. 옆구리에 서류를 끼고 한 손에는 소주 칵테일 잔, 다른 손에는 전자계산기를 들고 하루코는 부엌으로 물러난다. 구마키가 들어와 같이 살면서 부엌이 하루코의 작업실이 됐다. 낭만주의자니까 삼십 대 후반의 나이에 수입이 없어도 견딜 수 있는 것이고, 낭만주의자라서 결혼하자는 말도 할 수 있는 것이다. 40p
하루코는 조그맣게 한숨을 내쉰다. 그러다가, 하지만, 하고 생각하면서 씩 미소짓는다. 하지만, 적어도 내게는 할 일이 있고, 살라미 껍질을 벗겨주는 남자도 있다. 42p
아사코는 남편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은 모두 부엌에 둔다. 모든 것이 멀게 느껴졌다. 이쿠코도, 다달이 생일을 축하하는 자기 가족의 기묘한 습관도, 축하받은 자신조차도. 55p
세 자매가 모두 모인 날은 1월 2일뿐이었지만, 그날은 밤늦게까지 먹고 마시면서 수다를 떨었다. 아사코를 제외한 여자 셋이서 끝없이 마셨다. 아침부터 정종을 마셨다. 엄마가 좋아해서 일부러 주문한 향로라는 술인데 깔끔하고 시원한 맛에 그만 과하게 마셨다. 그래서 목이 마르다면서 이번에는 또 맥주를 마셔댔다. 저녁때에는 고기를 구워 와인을 마셨고, 밤늦게는 역시 엄마의 비장의 술 그라파를 예쁜 잔에 따라 몇 잔이나 마셨다. 90p
"나, 빵을 너무 많이 산 것 같아. 형부는 밥을 좋아하는데, 빵은 안 먹거든." 하루코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슨 소리야, 언니가 먹으면 되잖아." 게다가, 하고 아사코는 마음속으로 말을 이었다. 길거리에서 음식을 먹는 행위도 구니카즈는 싫어할 게 뻔하다고. "그만 가봐야겠어." 아사코가 말하자 하루코는 입을 쩍 벌렸다. "농담이지?" 결국 하루코와 쇼핑을 한 것은 그날이 마지막이 되었다. 지하철 입구에서 헤어지면서 "즐거웠어" 하고 말했을 때, 결정적으로 무언가가 변했다. 옷이며 화장품을 사는 것이 뭐가 그리 즐거웠는지 아사코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제 곧 구니카즈가 돌아온다. 중요한 것은 그 사실뿐이었다. 99p
아사코는 자신이 무슨 일이든 빈틈없이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했다. 언제 누가 봐도 아무 문제없을 정도로, 가 아니라 언제 누가 봐도 좋을 만큼 자랑스럽고 안심할 수 있게. 실제로는 아무도 보고 있지 않지만. 19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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