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씨의 입문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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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창비에서 발간된, 황정은 <파씨의 입문>은 단편집이다.

제목을 보고 도통 감을 못 잡겠다.

파씨가 도대체 어디에 입문한단 건지.

 

 


야행(夜行)
대니 드비토
낙하하다
옹기전(甕器傳)
묘씨생(猫氏生)
양산 펴기
디디의 우산
뼈 도둑
파씨의 입문


2008년부터 2011년까지의 여러 지면에 발표한 9편의 단편을 모은 것이다.

이 단편들은 하나씩 따로 읽히기도 하고 한 덩어리로 읽히기도 한다.

작가의 말에서 인용하자면 이러하다.

여기 묶인 아홉 편의 이야기는

그런 시절과 저런 시절에 다른 누구에게 필요했다

라기보다는 일단 내게 필요했기 때문에 쓰였다


처음에 황정은 책을 읽으면 외계어를 쓰는 이상한 작가가 나타났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내 경우는 그랬다. 말장난인가. 그러다가 빠지고 나니 헤어나질 못하겠다. 이런 구조로 이런 말투로 글을 쓰는 작가가 없기 때문이다.

잘 쓰는 작가도 많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넘치는데, '그(그녀)만의 이야기'를 가진 작가는 드물기 때문이다.


이번 단편집은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매료되었는데

특히 '대니 드비토', '낙하하다', '묘씨생' 세 작품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죽었지만 죽지 못하고 어딘지 들러붙어 남아있는 존재라든가, 죽음 이후 몇 년째 낙하하는 존재,

고양이인데 다섯 번 죽고 다섯 번 살아난 비참한 존재가 주인공으로

비현실적인 설정이지만 내용은 너무 비참하고 리얼하다.

지긋한 가난과 사람에 대한 집착이나 미움이나 막 휘둘리고 버려진 길냥이의 존재들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냐고

낮은 소리로 부르짖는다.

 

 

책 속에


일생을 마친 뒤에도 일생이란 가능성이 남으니 좋을가.

목숨에 관한 가능성뿐이라면 어떨까.

이 몸에게는 나쁜 일뿐이었다.

나쁜 일뿐이었을까, 라고 묻는다면 대답하겠다.

나쁜 일뿐이었다.

나쁘고 나쁘고 나쁠 뿐이라서 나쁨에 대한 기준이랄 것도 애매하고 무감각해졌다. 목숨에 관한 가능성이라는 것도 도무지 비좁기가 이를 데 없었다.

되게 걷어차여 죽게 된 일생 이후로도 던져지거나 머리에 무언가를 맞거나 병에 걸리거나 먹지 못할 것을 먹고 병을 앓다 죽었다.

한 차례 일생을 마치고 되살아난다고 몸까지 멀쩡해지는 건 아니었다. 죽기 직전에 얻은 상처나 통증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 엎드려 지냈다.

언제나 목이 마르고 배고팠다.

-묘씨생. 125p


방은 춥습니다. 파씨가 사는 방은 북쪽 벽이 갈라진 커다란 방이고 그 방은 난방이 되지 않습니다.

사람의 체온은 일정하므로 그대로 누워 있으면 언젠가는 바닥이 데워질 것이라고 파씨는 생각하지만 언제까지나 바닥으로서 차가울 뿐이라서

금번에도 파씨의 등은 물고기의 척추처럼 싸늘합니다.

파씨의 어머니는 이불 속에서도 외투를 벗지 않습니다. 파씨의 아버지도 겉옷을 벗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 방에서 서로간에 우울하고 가난하기 때문에 말을 나누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때로 다툽니다.

-파씨의 입문, 21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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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토끼 2015-01-04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베쯔님. 인간의 조건 100자평보고 들렀습니다. 소소하면서 알찬 서재를 보니 마음이 따듯해지네요..(저도 파씨의 입문에서 대니 드 비토와 낙하하다를 가장 좋아합니다. 반가운 마음에 몇 자 적어놓고 갑니다)

베쯔 2015-01-04 11:5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김토끼님. 저와 취향이 정말 비슷하시네요. 황정은을 요즘 열심히 읽고 있답니다. 여백이 많지만 그만큼 생각거리도 많이 주는 독특한 작가 같아요. 저도 시간날 때 놀러갈게요~~^^

김토끼 2015-01-04 23: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취향이 비슷한 분이라고 느꼈는데 왠지 감히 말할 수 없어서 그 말은 뺐어요 아까 ㅎ 저두 자주자주 올 것 같아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