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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사람들
이승우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8월
평점 :
N22001
˝어떤 것은 말해질 수 없거나 말하지 않기로 결정됨으로써 말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말해지지 않은 것들은 말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들은 언제든 말해질 수 있는 상태로 웅크리고 있다.˝
˝이승우˝ 작가의 단편집인 <모르는 사람들>에는 표제작과 유사한 제목의 단편인 <모르는 사람>을 포함한 여덟편의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단편들을 관통하는 주제는 ‘타인은 타인을 절대 모른다‘ 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공식(?)인 주제는 아니다).
모르기 때문에 고독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외로움이 여덟편의 단편에 다양한 형태로 담겨있다. 그 중에서 단연 압권은 <모르는 사람> 이었다.
<모르는 사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아버지, 하지만 그는 대학생 때 건설회사를 소유하고 있던 부유한 집안의 딸인 어머니를 만나서 결혼하게 되고, 건설회사의 상무 까지 오르게 된다. 하지만 상류층인 어머니쪽 집안하고 결코 맞지 않았고 어울리지 못했던 아버지는 어딘지 외로워 보였고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나도 어머니도 그게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날 아버지는 무엇 하나 남겨놓지 않고 그대로 사라져 버린다.
[떠난다는 것은 붙어 있는데서 자기를 떼어내는 것을 뜻한다. 아버지는 어디서, 무엇으로부터 자기를 떼어내기를 원했던 것일까?] P.11
˝이 세상은 견디는 것이다.˝ 예전에 아버지는 나를 앞에 두고 이런 말을 했었다. 그때는 나에게 하는 말로 막연히 이해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그 말은 아마 자신에게 한 다짐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는 그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자신이 말 하는 걸 자신이 듣고 싶었던 걸까?
[들을 때는 듣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으니까 나에게 말한 것으로 받아들였지만, 시간이 흐른 후 듣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말한 것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듣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다는 사실도 수정되었다. 말하는 사람은 말만 하고 듣는 사람은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말하는 사람은 자기가 한 말을 듣기도 하는 사람이다.] P.12
안락한 삶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언제나 겉도는 인생을 살았던 아버지가 사라지자 어머니는 차라리 아버지가 사고로 죽었기를 바라는, 아니 사고로 죽었다고 강력하게 믿게 된다. 모든 안락을 놓고서 떠나는 걸 이해할 수 없었던, 아니 아버지의 진심 자체를 이해하려고 노력한적이 없었던 어머니에겐 그 편이 더 받아들이기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이해가 아닌 오해일 뿐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는 가장 쉽고 위험한 방법은 이해할 수 있는 것만 이해하는 것이다. 가장 쉽지만, 이것은 사실은 이해가 아니라 오해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이해하지 않는 것보다 위험하다.] P.21
[그러니까 어머니의 기준에 의하면 아버지는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이어서는 안 되었다. 이해되지 않은 채로 있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서둘러 이해하려고 했다. 서둘러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은 참된 이해를 위해 고려해야 할 많은 것들을 무시하고 복잡한 것을 단순화한다. 예컨대 그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지 않아야 한다. 내면 같은 것이 따로 있다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P.22
아버지가 실종된지 십일년이 지난 후 선교회 간사라는 사람이 찾아온다. 그리고 얼마전까지 아버지가 아프리카에서 선교사로 활동했었고, 말라리아에 걸려서 숨졌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안정된 직장과 가족을 뒤로 하고 아무도 몰래 사라져 선택한 게 선교사였다니, 나는 아버지에 대해 무얼 알고 있었던 걸까? 나는 아버지에 대해 이해하려고 하긴 했던 걸까? 그런데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떠난 아버지의 잘못은 없는걸까? 나는 아버지가 지난 십일년간 선교사로 살았던 아프리카로 넘어간다. 그리고 아버지가 남긴 기록을 보게 된다.
[나는 세상에서 살았고, 그러나 세상은 험악했고, 살기에 적하지 않았고, 내가 세상에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이 너무 자주 깨달아졌고, 적합하지 않은 세상에서 살기 위해 아주 많이 애를 써야했고, 무리를 해야 했고, 덩달아 험악해져야 했고, 그러나 잘되지 않았고, 그래서 잘살지 못했다. 살면서 자주 내가 참으로 살기를 갈망했던, 살지 못하고 있는 다른 삶을 그리워했다. 그리워만 하는 내가 혐오스러웠다.] P.34
언제나 자신의 마음을 감추고 먼 곳만을 바라보면서 사는 사람의 마음 역시 외로웠겠지만, 그런 사람과 함께 살아갔어야 했던 사람들의 마음은 또 얼마나 외로웠을까? 왜 우리는 같이 있으면서도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 걸까? 한때는 가까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타인보다도 못한 관계로 전락해 버린 가까운 사람들을 보면 차라리 처음부터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로 남는게 더 낫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 외에도 다른 단편 역시 가깝게 지냈지만 진심을 알 수 없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복숭아 향기>는 태어나서 본적이 없는 아버지, 그리고 그런 아버지의 기억을 잊고 살 수 밖에 없었던 어머니의 진심을 알아가게 되는 이야기이고, <윔블던, 김태호>는 젊은 시절 노인만이 알고 있던 비밀기억이 현재의 아들에게는 노망난 노인의 헛소리라고 부정당하는 이야기이며,
[˝내가 겪은 걸 왜 네놈들이 안 겪었다고 선언해. 내 과거를 왜 내가 아닌 네놈들이, 마치 네놈들의 과거인 것처럼 진짜네, 가짜네, 판단하고 주장하고 그러는 거야. 네놈들이 거기 있었어? ˝] P.91
<강의>는 어느날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알고보니 엄청난 빚이 있었고, 빚 때문에 고통을 겪게 된 후 죽었는데, 가족들은 이러한 사실을 전혀 몰랐었고 이후 아들인 내가 빚쟁이를 찾아가서 아버지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는 이야기이다.
[희망을 너무 오래 붙잡고 있으면 희망이 날아가버리는데, 사람들이 그걸 이해 못해요. 희망이 날아가버리기 전까지만 붙잡고 있어야 하는 게 희망인데, 사람들이 그걸 이해 못해요.] P.121
<찰스>는 ‘김철수‘라는 교수가 해외 출장지에서 만난 한 외국인 여행가이드 ‘찰스‘와 알게 되고, 이후 ‘찰스‘가 한국에 불법체류하면서 그와 계속 엮이게 되는 이야기인데, 그는 계속되는 불편한 관계를 피하고 싶지만 다르게 또 엮이게 될까봐 섣불리 해결하지 못한다. 그리고 작가는 ‘물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물음은, 때때로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을 감당할 것을 요구한다. 어떤 물음들은 그런 자신감 내지 책임감 없이는 물어질 수 없다. 궁금함에도 불구하고 묻지 않거나 궁금하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묻는 것은 그 때문이다. 어떤 궁금한 것들은 물어야 하지만 묻기가 어렵기 때문에 묻지 않고, 어떤 궁금하지 않은 것들은 묻지 않아도 되지만 묻기가 쉽기 때문에 물어진다.] P.144
우리는 주위에 있는 사람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 걸까?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건 단지 그 사람이 나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일부분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건 안다고 착각하는 것일 뿐이다. 그 사람의 마음속과 기억속에 담겨져 있는 진심을 조금이라도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결코 그 사람을 안다고 말하면 안된다.
자신의 진심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긴 하다. 어떤 사람은 90%를 보여주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10%도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확실한 건 모든 진심을 100%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고,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100% 안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에게 ‘모르는 사람들‘일 뿐이다.
Ps. 22년 1월의 첫 책으로 읽은 <모르는 사람들>은 인간관계에 대해 돌아보게 하는 책이었다. 이년전에 <이동진의 독서법>을 읽고 ˝이승우˝작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었는데 (책에서 완전 극찬하심) 이제서야 ˝이승우˝작가님의 책을 읽었다. 좀 더 빨리 작가님의 책을 읽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을 정도로 매우 좋았다. 다른 작품들도 찾아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