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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분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월
평점 :
˝인생이 그래서 그래. 발을 아주 조금만 잘못 디뎌도 비극적인 결과가 생길 수 있으니까.˝
이번 주말에 내가 읽은 작품은 ˝필립 로스˝의 <울분> 이다. <전락>, <죽어가는 짐승>, <에브리맨>에 이어 네번째 읽은 그의 작품으로, 이렇게 작품 제목만 쭉 나열해보니 왠지 일관성이 느껴진다. 분노와 저항.
‘울분‘이라는 감정은 어떤 때에 가장 크게 나타나는 걸까? 아마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방향과 정반대 방향으로 일이 진행될 때 가장 크게 느껴지지 않을까? 이 책의 주인공인 ˝마커스˝는 유대인의 핏줄을 가진, 미국의 뉴저지 주 ‘뉴어크‘라는 시골에서 정육점을 하는 아버지의 밑어서 태어났다. 그는 자신의 가문 중 처음으로 대학에 진학하였고, 그의 바람은 단 두가지 였다. 법조인이 되는 것, 그리고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여 6.25. 전쟁에 징집되지 않는것이다.
하지만 그의 바람과는 다르게 ‘와인스버그‘의 학교 생활은 쉽지많은 않았다. 그의 아버지는 우수한 자신의 아들이 잘못될까봐 시도때도 없이 간섭을 하였고, 기숙사에서 잘못된 룸메이트를 연속으로 만나게 되어서 방을 두번이나 옮기게 되며, 수업시간에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는 ˝올리비아˝는 알고보니 자살미수에 신경쇄약에 이남자 저남자 마구 만나고 다니는 문제 있는 여자였다. 게다가 그는 유대인임에도 무종교 성향을 가졌는데, 학교는 종교의 신성함을 강조하는 학교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종교에 대해 극렬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게 자네가 자네의 모든 곤경에 대처하는 방법이니까, 마커스, 떠나는 것 말일세.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나?] P.122
그가 하고 싶었던 건 단지 공부 였을 뿐이다. 하지만 주위의 모든 것들은 그가 공부하는 걸 방해할 뿐이었다. 주변과의 불화와 문제가 누적될수록 그는 점점 문제아로 인식될 뿐이었고, 주위의 모든 것들은 그에게 적대적으로 변해갔으며, 그는 이러한 모든 것에 ‘울분‘을 느낄 수 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를 방해하는 사소한 모든 것들이 우연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보이면서 그를 궁지로 몰아가게 되고, 그놈의 ‘채플‘ 대리 출석 때문에 결국 퇴학을 당하게 된다. 이후 6.25.전쟁에 이등병으로 강제 참전하게 되는데, 전투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고 모르핀을 맞게 된다. 그리고 죽음이 임박한 순간 과거를 회상한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그리고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된걸까?
[아무런 응답이 없다. 아무리 애를 써서 해명하고 나 자신을 드러내려고 시도해도 아무런 응답도 끌어낼 수 없다. 내 정신을 제외하고는 모든 정신이 사라져버렸다. 아무런 응답이 없다. 깊디 깊은 슬픔.] P.221
매우 평범하고 우연적인, 심지어 희극적인 선택이 끔찍하고 불가해한 경로를 거쳐 생각지도 못했던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그의 인생은, 우리의 인생은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단지 결과론일뿐이다. 우리는 미래를 알 수 없다. 비극이 언제 어떻게 올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살아가면서 ‘울분‘을 토해낼 수 밖에 없는지도 모르겠다.
그가 좀더 주변과 어울리려고 노력 했더라면, 그깟 ‘채플‘ 수업 쯤이야 직접 참가해서 듣기만 했더라면 그는 아마 변호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주변의 모든 것들이 자신을 방해한다고 울분을 토로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주변을 이해하려고 했다면 좀 더 긍적적인 미래가 펼쳐지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도 들었다. 하지만 그땐 그게 쉽지 않았었겠지만...
[나는 엘윈을 이해하지 못했다. 플러서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올리비아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도, 어떤 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P.85
˝필립로스˝의 작품은 읽으면 읽을수록 빠져드는 힘이 있는 것 같다. 길지 않은 분량에 어떻게 강력한 메세지와 분노의 감정을 담아낼 수 있는지,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생동감을 어쩜 그렇게 잘 표현하는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그가 가끔씩 내던지는 19금 이야기는 야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경박하지도 않다. 오히려 작품의 주제를 증폭시키는 핵심소재로 사용된다. 책을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웃게 되고, 어느 순간 크게 분노하게 된다. 따라서 이 책은 혼자 있을때 읽기를 추천한다.
Ps. ˝필립 로스˝의 모든 작품을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