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흔히 겪는 코와 직접 관련된 문제 두 가지만 더 말하겠다. 비염에는 거의 필연적으로 동반되지만 다른 이유로도 코는 막힌다. 불편할 뿐만 아니라 건강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약물에 의존하지 않고 코 막힘을 해결하는 방법이 있다. 혀로 입천장을 강하게 밀어주면서 엄지와 검지 두 손가락으로 눈썹 사이를 눌러준다. 이렇게 하면 서골鋤骨, 즉 머리와 코가 연결된 빈 공간을 가로지르는 코뼈가 앞뒤로 흔들리게 되면서 코 막힘이 풀린다.


코피가 날 때는 어찌 할까? 약물에 의존하지 않고 코피를 멈추게 하는 방법이 있다. 코 바로 밑의 윗잇몸에 솜을 약간 끼우고 아주 세게 누르면 된다. 대부분의 코피는 격막, 즉 코를 양쪽으로 나누는 연골 부분의 앞부분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므로 이 부분을 누르는 것이 코피를 멎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제 호흡을 치유하는 문제에 관해 말하겠다. 코의 지정학에서 코가 호흡하는 근본 방식과 이를 역으로 이용한 교호호흡 이야기를 했다. 결정적인 중요성을 지니는 이야기이므로 다시 치유의 관점에서 말하도록 하겠다. 교호호흡은 그 자체로 치유다. 치유의 본질은 다름 아닌 알아차림이다. 호흡의 근본 방식은 물론 그 이전에 호흡 자체를 알아차린 상태에서, 그러니까 “유심히”호흡하는 것이 바로 치유의 요체라는 말이다. “유심히” 하는 상태가 되는 순간, 호흡은 깊어지고 길어진다. 깊고 긴 호흡이 치유된 호흡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겠다. 기왕에 알아차린 상태에서 깊고 길게 호흡할 것이라면, 꼭 복식호흡을 해야 한다. 들이마실 때에는 배꼽 아래 배를 한껏 부풀리고, 내쉴 때는 반대로 배꼽 아래 배를 한껏 등 쪽으로 오그려 붙이는 방식으로 하는 호흡법이다. 이렇게 해야 횡격막과 복근이 긴장· 이완을 교차적으로 반복하면서 호흡다운 호흡, 건강한 호흡이 이루어진다.


코의 냄새 맡는 능력에 문제가 생겼을 때에는 어찌해야 할까?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맞닥뜨리는 감기, 부비동 질환, 알레르기비염, 물혹과 같은 원인에 따른 호흡성 후각 장애일 경우 당연히 그 원인질환을 치료하면 된다. 그 이치는 앞서 말한 바와 같다. 유전질환이나 사고에 따른 비가역적 뇌(신경)손상을 입은 경우, 현재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런데 이런 경우를 보면서 귀중한 시사를 받을 수 있다. 가령 후각상실이 나타나는 대표적 유전질환인 칼만 증후군Kallman syndrome(시상하부 성선을 자극하는 호르몬 생산 기관이 손상된 병으로서 정자· 난자·생성도 불가능하다. 사춘기·성장 지체·무월경·불임이 나타난다.)을 통해 성· 생식 기능과 후각 기능이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다른 원인을 찾을 수 없다면, 여성의 경우 후각 기능 이상이 나타날 때 성적학대(성폭행은 물론 지속적인 젠더gender적 억압) 여부를 확인해보아야 한다는 통찰이 바로 여기서 나온다. 확인되면 심리 치료가 반드시 행해져야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여러 가지 정신장애가 후각 이상의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면밀히 살펴야 할 것이다. 후각이 정서와 직결된 만큼, 다른 감각보다 훨씬 더 이 문제에 관한 한 주의· 집중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해야 할 코 의학 이야기 주제는 코를 통한 치료다. 먼저 호흡을 통한 치료다. 앞서 말한 교호호흡은 호흡 자체를 치유할 뿐만 아니라, 그 치유된 호흡을 통해 인간의 심신 전반을 치료할 수 있다. 교호호흡 말고도 수많은 호흡법이 있는데, 특수한 기능 강화를 목표로 한 것을 제외하면 기본적으로 치료 지향적이다. 심장 박동 조절을 필두로 자율신경 실조를 치료한다. 자율신경 실조가 치료되면 면역계와 내분비계, 나아가 정신계의 치료도 가능하다.


냄새 맡기를 통한 치료로써 코 의학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것은 향기치료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전문지식을 갖추고 실제 ‘임상적’ 실천을 하고 있다. 향기치료는 향기를 맡게 하여 대뇌변연계를 직접 자극함으로써 질병을 치료한다. 대뇌변연계는 감정뿐만 아니라 자율신경, 면역, 내분비를 조절하는 곳이므로 치료 능력을 지닌 향기를 맡게 하면 심신 전체에 신속하고도 근원적인 치료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근원적인 치료는 각자마다 지닌 영혼의 냄새 또는 향기를 찾아 맡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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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코를 잘 치료하면 생명 전체가 쾌적해진다. 건강해진 코로 숨 잘 쉬고 냄새 잘 맡는 것, 이보다 귀한 인프라가 어디 또 있을 것인가. 이토록 중요한 코에, 호흡에, 후각에 문제가 생겼을 때, 과연 무엇이 치료다운 치료인지 생각해보겠다.


코에 염증이 생겼을 때, 특히 알레르기질환일 때, 서양의학에서 무조건 쓰는 것이 항히스타민제다.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이 또한 증상억제를 위한 차단제blocker다. 기술의 발전으로 부작용이 덜해지기는 했지만 근본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는 방법이다. 우선 증상억제를 치료라고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물론 아니다. 이는 혈압강하제가 고혈압 치료약이 아닌 것과 같다. 그리고 차단제 문제다. 차단제는 혈액의 스핀 작용을 방해한다. 결과적으로 생체진동수를 떨어뜨리게 한다. 생체진동수 저하는 곧 생명력 저하다. 치료는 하지 못하고 도리어 생명력만 저하시키는 화학물질을 약이라고 말할 수 없다.


항히스타민제는 히스타민이 과도하게 활성화하는 근본원인을 해결하지 않고 넘어가는 것이므로 다음에 그런 환경이 조성되면 반드시 재발한다. 알레르기비염일 경우, 근본원인이란 면역체계 이상을 말한다. 따라서 면역체계 이상을 조절해야 하는데 항히스타민제 따위로는 면역체계를 조절할 수 없다. 항히스타민제는 이를테면 응급조치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더군다나 면역체계는 정신-신경-내분비계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광범위한 조절이 필요하다. 꿈같은 이야기지만 정신-신경-내분비-면역계 전체의 협진이 필요하다. 우리 현실에서는 오직 하나의 길이 열려 있다. 이런 통합적 관점을 지닌 한의사.


그러면 제대로 된 관점을 지닌 한의사는 어떻게 접근할까? 무엇보다 그는 염증이든 알레르기든 모든 증상을 그 자체로 병으로 여겨 무조건 쫓아내려는 일을 하지 않는다. 우리가 불편해 하는 여러 증상들은 기본적으로 자연치유반응이다. 자연치유반응은 말 그대로 스스로 치유하려는 노력이다. 이를 쫓아내는 것은 병을 은폐함으로써 결국 더 키우는 것이다. 도와주는 것이 이치에 맞다. 도와주는 가장 좋은 방법은 체온을 올리는 것이다. 체온을 올리면 증상은 잠시 더 심해진다. 이것을 병의 악화로 오해하기 때문에 서양의학은 근본 치료에 이르지 못한 채, 증상 억제제와 진통제로 일관한다. 그러나 체온이 높아진다는 것은 자연치유력이 강해진다는 것이다. 더 한층 강해진 힘으로 치유 활동, 그러니까 전투를 하기 때문에 증상이 심해지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거친 뒤에야, 이치를 따라 병이 물러가는 것이다. 따라서 증상 억제와 진통을 일삼는 지식은 의학이 아니다.


이렇게 체온을 올려주는 일과 함께 전체 진단으로 면역체계의 불균형 문제, 신경 특히 자율신경 실조 문제, 내분비 부조화 문제를 풀어주는 침과 한약을 쓴다. 침과 한약을 민간요법, 심지어 미신으로 폄훼하는 서양의학에서 보면 황당한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나 이게 황당하다면 5천 년에 걸친 동아시아문명 전체가 황당한 것이다. 분명히 말하거니와 침과 한약은 이런 능력을 갖추고 있다. 한의학의 이런 길은 증상을 자연치유반응으로 알아차리고(인정) 받아들임(수용)으로써 생명이 스스로 신뢰하고 문제를 풀어가도록 돕는다. 한의학의 이런 길에서는 돈 받고 정답 파는 장사가 행해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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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코의 의학-혈관운동신경성비염을 중심으로-


생명의 표면이자 심연, 중심이자 경계인 코. 그럼에도, 아니 그러니까 코도 병들 수 있다. 코가 병들면 어떻게 병들까? 코가 병들면 어떻게 치료할까? 이 문제가 의학이 코에 관해 할 수 있는 이야기의 근간이다.


흔히 겪는 일이니 개인적 경험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겠다. 나는 30대 중반에 혈관운동신경성비염에 걸려 15년 가까이 고생했다. 그 때는 의학적 지식이 전혀 없었으므로 감기몸살· 축농증· 알레르기비염 등의 잘못된 진단을 믿고 온갖 곳을 전전했다. 서구의학 방식은 수술 빼놓고는 다 해보았다. 코 질환의 명의라고 책에 소개된 한의사도 세 사람이나 찾아가 치료를 받았다. 그 긴 세월 동안 내 코는 그야말로 콧대를 높이 세우고 아픈 상태에서 요지부동이었다.


혈관운동신경성비염은 겉보기로는 알레르기비염과 비슷하다. 연거푸 나오는 재채기·엄청난 양의 맑은 콧물·코 막힘·코피·가려움·미열·두통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심한 경우는 눈과 귀로 염증과 가려움이 번진다. 주의력· 집중력· 기억력도 떨어져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는다. 오래 계속되면 수면장애가 뒤따른다. 심리적인 면에도 영향을 미쳐 불안이나 우울로 번진다.


남들이 보기에는 하찮은 병이지만, 겪는 당사자에게는 이루다 말할 수 없는 고통과 불편이 따른다. 40대 중반, 극에 달한 이 혈관운동신경성비염을 끌어안고 나는 한의대에 입학했다. 한의대에서도 이런 저런 치료를 시도했지만 모두 허사였다. 본과 2학년 어느 날이었다. 참고삼아 읽으려고 사두었던, 지정 교과서 아닌 양방병리학 책을 읽다가 벼락같은 한 문장을 만났다.


“혈관운동신경성비염은 대개 슬픔·원망 등의 감정 요인이 작동하므로 심리치료 말고는 현재 의학의 수준에서 마땅한 치료법이 없다.”


그제야 저는 여태까지 했던 노력이 왜 부질없는 것이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즉시 나는 실천에 옮겼다. 애써 다른 전문가를 찾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스스로 심리 상담을 진행했다. 칠흑 같은 밤의 어두움 속에서 침묵과 절규를 가로지르며 극진히 자기 대화 나누기를 서너 시간, 이윽고 희붐하게 동이 터오고 있었다. 어느 한 순간 문득, 연거푸 나오는 재채기·엄청난 양의 맑은 콧물·코 막힘·가려움·미열·두통 등의 증상들이 아침 해 뜨면 물안개 사라지듯 없어지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이내 소름 돋는 느낌이 와락 달려들었다. “아, 병은 이제 없구나!” 그렇다. 그것으로 내 혈관운동신경성비염의 긴 역사는 막을 내렸다.


임상 현실에서는 양의든 한의든 대부분 알레르기비염과 혈관운동신경성비염을 날카롭게 구별하지 않는다. 이는 의자醫者들이 무지하고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혈관운동신경성비염에 심리치료가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일 의자는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나는 내 경험을 토대로 진단 과정에서 혈관운동신경성비염인가, 아닌가를 면밀하게 살핀다. 당연히 치료 방법도 달리한다.


거꾸로 접근하는 진료도 반드시 한다.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을 진단할 때, 코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특히 우울장애일 경우는 이 진단을 빠뜨릴 수 없다. 문진과 경추압진頸椎壓診목뼈를 손가락 끝으로 누르는 진단 방식을 하면 거의 완벽하게 알 수 있다. 앞서 말한 대로 우울장애와 혈관운동신경성비염은 매우 높은 연관성을 지닌다. 아니, 우울장애와 혈관운동신경성비염은 ‘혈통’이 같은 병이다. 기억 속에 저장된 아픈 감정을 되살려내어 마음의 장애를 유발·지속·증폭시키는 것이 후각이라는 사실을 생각할 때,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이치가 아닐까 한다. 이런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오랫동안 우울장애와 혈관운동신경성비염을 따로 생각하면서 시달려 온 전형적인 예가 바로 나 자신이다. 내가 자기 상담으로 혈관운동신경성비염을 치료한 것은 결국 우울장애의 치료를 겸한 것이었다. (이전 4문단 내용은 마이페이퍼 『수군대지 말고 숙의해요』(52) 일부를 가져옴.)


혈관운동신경성비염과 우울장애의 연관성 이야기를 지나치리만큼 자세히 언급한 것은 이 문제가 코에 이끌리는 진실의 한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 말고도 코를 둘러싼 의학의 곡절曲折은 가히 전全방위적이라 할 수 있다. 코는 기왕에 말한 것 외에 뇌와 척수의 경막, 송과선, 접형골, 설골, 입 바닥 격막, 미주신경(부교감신경), 안면신경, 삼차신경, 턱관절, 횡격막, 부신, 요추4번, 회맹판, 후경골근, 엄지발가락, 발바닥 궁 등 별의별 것들과 직간접적으로 오지랖 넓은 관련을 맺고 있다. 코는 이렇게 정신-신경-면역-내분비계 전역에 걸쳐 영향을 미친다. 코가 병들면 생명 전체가 병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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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코는 자아다, 아니 자아는 코다


시인 김선우는 이렇게 말한다.


“후각은 생의 비밀, 낮은 지대의 뒷골목에 가장 핍진하게 밀접해 있는 감각이며 가장 능동적으로 어딘가로 끊임없이 흘러가는 감각이다.”(「김선우의 사물들」130쪽)


능동적인 흐름으로서 존재하는 도저한 생의 감각은 무엇인가? 그 이름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 자체가 바로 자아다. 시인 김선우가 의학적 진실을 탐구하고 나서 이러한 이야기를 했을 리 없다. 그러나 그의 말은 가장 문학적이자 가장 의학적인 진실의 표현임이 분명하다.


생의 비밀, 낮은 지대의 뒷골목이란 인간이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트라우마의 거처이며, 가장 예민한 감정의 결이며, 인격적 사회적 본질이다. 그것은 사람을 따라, 사건을 따라 끊임없이 흘러간다. 그것이 자아다. 자아는 그런 것이다.


요컨대 자아는 관계 맺는 존재로서 인간이 상처를 따라 그려 나아가는 신음과 치유의 궤적이다. 신음은 반응reaction이며 치유는 감응response입니다. 물론 감응은 반응 없이는 불가능하다. 반응의 불을 댕기는 것이 바로 후각이다. 냄새 맡지 못 하면 결국 치유는 없는 것이다. 하여, 살아야 하는, 살아 내야만 하는, 생명은 끊임없이 큼큼대며 냄새를 좇아 흘러가는 것이다.


나를 가리키는 한자, 스스로 자自는 갑골문자 형태로 볼 때 코를 본뜬 것이라고 한다. 고대 동아시아인은 왜 코로써 자기 자신, 그러니까 자아를 제유提喩하였을까? 어떤 이는 눈으로 볼 수 있는 유일한 얼굴 부위가 코라는 사실에서 그 근거를 찾는다. 불가시성의 수평선에 희미하나마 홀연히 솟아오른 가시성이 지닌 상징적 의미를 결코 무시할 수 없다. 허나 그 솟아오름이 도리어 삶의 낮은 지대 어두움을 포착하는 더듬이일진대 생명을 향하여 양팔 벌린 생리학적 진실에 대한 직관이 낳은 결과일 것이다. 그렇다. 그리하여,


코는 자아다.

아니, 자아는 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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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코는 코 말고도 코다


① 코는 외부 조건과 생명구조의 마주가장자리다.


생명구조로서 인간이 외부 조건과 직접 마주하는 곳은 피부(를 포함한 다섯 가지 감각기관), 소화기관, 호흡기관이다. 피부는 외부 접촉 조건과 만나도록 노출된 생명의 싸개, 좁은 의미에서 보는 바로 그 피부다. 소화기관은 외부 음식 조건과 만나는 ‘동굴’ 피부다. 허파는 외부 대기 조건과 만나는 또 다른 ‘동굴’ 피부입니다. 이들 피부가족의 연결고리가 바로 코다. 코는 이 모든 것의 허브다.


코는 우선 호흡기관의 드날목으로서 공기라는 외부조건과 직접 만날 뿐만 아니라, 내부 공기를 최종 배출하는 곳이다. 코로 맡는 냄새는 입으로 먹는 음식에 대한 맛 느낌의 거의 모두를 좌우하기 때문에 외부 조건인 음식은 식도, 위, 소장, 대장이 접하기 전에 먼저 코를 거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코는 냄새라는 외부조건과 직접 만나는 피부이기도 하다.


인간의 생명 사건은 피부로 둘러싸인 독립 공간 내부구조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밖 외부 조건에 있는 것도 아니다. 마주가장자리에 있다. 좀 더 정확히는 그 마주가장자리에서 일어나는 운동이 생명 사건이다. 마주가장자리인 코의 독보적 위상은 마주가장자리 운동으로 증명된다. 코는 코 아닌 모든 것들의 마주가장자리에서 일어나는 운동의 표지임으로써 우뚝해지는 것이다.


프랑스의 탁월한 정신분석의 디디에 앙지외는 그의 저서 『피부자아』에서 “자아는 피부다.”라고 주장하였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가 주장한 피부는 좁은 의미의, 그러니까 제1피부입니다. 나는 여기에 제2, 제3, 제4의 피부를 더한다. 그리고 이들의 마주가장자리 겹친 곳에 바로 코가 있는 것이다.


② 코는 몸과 맘의 마주가장자리다.


코가 생명구조, 그러니까 몸의 최전선에서 외부 조건을 처음 마주하는 곳임은 이미 우리가 아는 바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여기서 맘이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코는 몸과 외부조건의 마주가장자리임을 넘어 몸과 맘의 마주가장자리다. 몸과 맘이 서로 가로지르는 역동적 시공이다. 코에서 몸과 맘은 하나가 되기도 하고 둘이 되기도 한다. 하나만도 아니고 둘만도 아닌 몸-맘 사건이 바로 코에서 일어난다.


흔히 맘은 뇌의 산물이라고 한다. 맘의 자리가 뇌라고 한다. 아니 맘이 곧 뇌라고 한다. 충분히 그럴만하다. 뇌가 맘 사건 전체와 관련 있는 몸 속 슈퍼터미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슈퍼터미널은 코라는 허브가 없으면 거의 아무런 의미가 없다. 코는 장 신경-자율신경-대뇌 변연계-대뇌 신피질로 이어지는 진화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연결고리이기 때문이다. 코는 본능-감정-이성·의지의 성장·확산 과정을 잇는 결절점이기 때문이다. 코는 마음의 켜와 결의 비밀을 쥐고 있는 열쇠다. 바로 이 열쇠를 꽂아야 몸은 맘의 몸이고, 맘은 몸의 맘이라는 진실의 문이 열린다.


③ 코는 의식과 무의식의 마주가장자리다.


코가 몸과 맘의 마주가장자리임은 이미 우리가 아는 바다. 여기서 다시 한 번 몸과 맘의 문제를 생각해본다. 인간 생명은 몸의 양상과 맘의 양상이 모순적으로 공존하는 현상이다. 몸 쪽으로 갈수록 질량stock의 속성이 강해진다. 맘 쪽으로 갈수록 에너지flow의 속성이 강해진다. 이런 이치는 맘 내부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마치 자석을 쪼개면 다시 양극이 나타나 작은 자석이 되는 것과 같다.


맘에도 질량의 속성을 지는 것과 에너지의 속성을 지닌 것이 모순적으로 공존한다. 앞의 것을 무의식이라 하고 뒤의 것을 의식이라 한다. 이를테면 무의식은 몸속으로 (깊이) 들어간 맘이고 의식은 몸의 표면이나 몸 밖으로 막 나와 있는 맘이다. 코는 몸의 표면에서 그 출입과 상호작용의 허브로 작동한다.


④ 코는 감정과 이성·의지의 마주가장자리다.


코가 의식과 무의식의 마주가장자리임은 이미 우리가 아는 바다. 그런데 몸속으로 (깊이) 들어간 맘은 감정과 맞물린다. 몸의 표면이나 몸 밖으로 막 나와 있는 맘은 이성·의지와 맞물린다. 코는 자연스럽게 감정과 이성·의지의 마주가장자리에서 그 모순적 공존을 조절한다. 물론 햇빛 아래서 역사가 되는 이성·의지보다 달빛 아래서 신화가 되는 감정 쪽으로 기우뚱한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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