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코는 자아다, 아니 자아는 코다


시인 김선우는 이렇게 말한다.


“후각은 생의 비밀, 낮은 지대의 뒷골목에 가장 핍진하게 밀접해 있는 감각이며 가장 능동적으로 어딘가로 끊임없이 흘러가는 감각이다.”(「김선우의 사물들」130쪽)


능동적인 흐름으로서 존재하는 도저한 생의 감각은 무엇인가? 그 이름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 자체가 바로 자아다. 시인 김선우가 의학적 진실을 탐구하고 나서 이러한 이야기를 했을 리 없다. 그러나 그의 말은 가장 문학적이자 가장 의학적인 진실의 표현임이 분명하다.


생의 비밀, 낮은 지대의 뒷골목이란 인간이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트라우마의 거처이며, 가장 예민한 감정의 결이며, 인격적 사회적 본질이다. 그것은 사람을 따라, 사건을 따라 끊임없이 흘러간다. 그것이 자아다. 자아는 그런 것이다.


요컨대 자아는 관계 맺는 존재로서 인간이 상처를 따라 그려 나아가는 신음과 치유의 궤적이다. 신음은 반응reaction이며 치유는 감응response입니다. 물론 감응은 반응 없이는 불가능하다. 반응의 불을 댕기는 것이 바로 후각이다. 냄새 맡지 못 하면 결국 치유는 없는 것이다. 하여, 살아야 하는, 살아 내야만 하는, 생명은 끊임없이 큼큼대며 냄새를 좇아 흘러가는 것이다.


나를 가리키는 한자, 스스로 자自는 갑골문자 형태로 볼 때 코를 본뜬 것이라고 한다. 고대 동아시아인은 왜 코로써 자기 자신, 그러니까 자아를 제유提喩하였을까? 어떤 이는 눈으로 볼 수 있는 유일한 얼굴 부위가 코라는 사실에서 그 근거를 찾는다. 불가시성의 수평선에 희미하나마 홀연히 솟아오른 가시성이 지닌 상징적 의미를 결코 무시할 수 없다. 허나 그 솟아오름이 도리어 삶의 낮은 지대 어두움을 포착하는 더듬이일진대 생명을 향하여 양팔 벌린 생리학적 진실에 대한 직관이 낳은 결과일 것이다. 그렇다. 그리하여,


코는 자아다.

아니, 자아는 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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