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코는 코 말고도 코다


① 코는 외부 조건과 생명구조의 마주가장자리다.


생명구조로서 인간이 외부 조건과 직접 마주하는 곳은 피부(를 포함한 다섯 가지 감각기관), 소화기관, 호흡기관이다. 피부는 외부 접촉 조건과 만나도록 노출된 생명의 싸개, 좁은 의미에서 보는 바로 그 피부다. 소화기관은 외부 음식 조건과 만나는 ‘동굴’ 피부다. 허파는 외부 대기 조건과 만나는 또 다른 ‘동굴’ 피부입니다. 이들 피부가족의 연결고리가 바로 코다. 코는 이 모든 것의 허브다.


코는 우선 호흡기관의 드날목으로서 공기라는 외부조건과 직접 만날 뿐만 아니라, 내부 공기를 최종 배출하는 곳이다. 코로 맡는 냄새는 입으로 먹는 음식에 대한 맛 느낌의 거의 모두를 좌우하기 때문에 외부 조건인 음식은 식도, 위, 소장, 대장이 접하기 전에 먼저 코를 거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코는 냄새라는 외부조건과 직접 만나는 피부이기도 하다.


인간의 생명 사건은 피부로 둘러싸인 독립 공간 내부구조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밖 외부 조건에 있는 것도 아니다. 마주가장자리에 있다. 좀 더 정확히는 그 마주가장자리에서 일어나는 운동이 생명 사건이다. 마주가장자리인 코의 독보적 위상은 마주가장자리 운동으로 증명된다. 코는 코 아닌 모든 것들의 마주가장자리에서 일어나는 운동의 표지임으로써 우뚝해지는 것이다.


프랑스의 탁월한 정신분석의 디디에 앙지외는 그의 저서 『피부자아』에서 “자아는 피부다.”라고 주장하였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가 주장한 피부는 좁은 의미의, 그러니까 제1피부입니다. 나는 여기에 제2, 제3, 제4의 피부를 더한다. 그리고 이들의 마주가장자리 겹친 곳에 바로 코가 있는 것이다.


② 코는 몸과 맘의 마주가장자리다.


코가 생명구조, 그러니까 몸의 최전선에서 외부 조건을 처음 마주하는 곳임은 이미 우리가 아는 바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여기서 맘이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코는 몸과 외부조건의 마주가장자리임을 넘어 몸과 맘의 마주가장자리다. 몸과 맘이 서로 가로지르는 역동적 시공이다. 코에서 몸과 맘은 하나가 되기도 하고 둘이 되기도 한다. 하나만도 아니고 둘만도 아닌 몸-맘 사건이 바로 코에서 일어난다.


흔히 맘은 뇌의 산물이라고 한다. 맘의 자리가 뇌라고 한다. 아니 맘이 곧 뇌라고 한다. 충분히 그럴만하다. 뇌가 맘 사건 전체와 관련 있는 몸 속 슈퍼터미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슈퍼터미널은 코라는 허브가 없으면 거의 아무런 의미가 없다. 코는 장 신경-자율신경-대뇌 변연계-대뇌 신피질로 이어지는 진화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연결고리이기 때문이다. 코는 본능-감정-이성·의지의 성장·확산 과정을 잇는 결절점이기 때문이다. 코는 마음의 켜와 결의 비밀을 쥐고 있는 열쇠다. 바로 이 열쇠를 꽂아야 몸은 맘의 몸이고, 맘은 몸의 맘이라는 진실의 문이 열린다.


③ 코는 의식과 무의식의 마주가장자리다.


코가 몸과 맘의 마주가장자리임은 이미 우리가 아는 바다. 여기서 다시 한 번 몸과 맘의 문제를 생각해본다. 인간 생명은 몸의 양상과 맘의 양상이 모순적으로 공존하는 현상이다. 몸 쪽으로 갈수록 질량stock의 속성이 강해진다. 맘 쪽으로 갈수록 에너지flow의 속성이 강해진다. 이런 이치는 맘 내부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마치 자석을 쪼개면 다시 양극이 나타나 작은 자석이 되는 것과 같다.


맘에도 질량의 속성을 지는 것과 에너지의 속성을 지닌 것이 모순적으로 공존한다. 앞의 것을 무의식이라 하고 뒤의 것을 의식이라 한다. 이를테면 무의식은 몸속으로 (깊이) 들어간 맘이고 의식은 몸의 표면이나 몸 밖으로 막 나와 있는 맘이다. 코는 몸의 표면에서 그 출입과 상호작용의 허브로 작동한다.


④ 코는 감정과 이성·의지의 마주가장자리다.


코가 의식과 무의식의 마주가장자리임은 이미 우리가 아는 바다. 그런데 몸속으로 (깊이) 들어간 맘은 감정과 맞물린다. 몸의 표면이나 몸 밖으로 막 나와 있는 맘은 이성·의지와 맞물린다. 코는 자연스럽게 감정과 이성·의지의 마주가장자리에서 그 모순적 공존을 조절한다. 물론 햇빛 아래서 역사가 되는 이성·의지보다 달빛 아래서 신화가 되는 감정 쪽으로 기우뚱한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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