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의학이 감각을 하찮은 것으로, 감정을 열등한 것으로 뒷전 취급하는 동안, 자본은 그 감각·감정을 수탈의 거점으로 삼아 잔혹하게 파고들었다. 심리학자들을 매수하여 거대하고 치밀한 저인망 마케팅을 짰다. 이른바 ‘터치 비즈니스’, ‘터치 산업’이다. 백색의학은 감각·감정에 병든 사람의 증상이나 완화시켜 터치 비즈니스, 터치 산업의 먹잇감이 되게 함으로써, 자본의 마름 노릇하는 꼴을 자초하고 말았다. 녹색의학은 감각·감정을 제대로 인식하여, 그것이 어떻게 인간의 삶에서 건강하고 바르고 아름답게 발현할 수 있는지를 모색한다. 촉각 문제부터 생각해본다.


다시 말한다. 촉각은 모든 감각의 어머니다. 아니 촉각이 바로 어머니다. 닿으면 살고, 떨어지면 죽는다. 실제로 제이차세계대전 때 부모 잃은 아기들이 피부접촉을 통한 보살핌을 받지 못해 일찍 죽음에 이른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인간은 이 슬프고 참혹한 사실에서 배우지 않는다. 여전히 아이들은 피부접촉 결핍에 시달린다.


산업출산 문명 자체가 피부접촉을 차단한다. 엄마 아닌 낯선 타인들이 장갑 끼고 받아내는 분만실 풍경을 떠올려보라. 더욱이 무통분만을 목적으로 제왕절개수술을 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은데, 이것은 아기와 엄마의 원초적 피부접촉을 제거한다. 출산 뒤 곧 엄마 품과 격리시키는 신생아실 시스템, 조산아 인큐베이터 양육 시스템 또한 마찬가지다. 이후 양육 과정에서도 피부접촉을 소외시키는 거대한 격리사회의 속성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돈벌이와 조기교육에 혈안이 된 부모는 아이를 전천후 피부접촉 결핍 상태로 방치한다. 결국 아이는 결핍을 보상받기 위해 중독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과도한 시각 자극에 노출되면서 공격 성향이 증폭된다. 아이들 폭력 문제는 이미 위험수위를 넘었다. 아이가 자라 어른 되는 법이다. 이렇게 어른이 되면 무슨 수로 사회생활을 제대로 하겠나.


현재 어른에게도 접촉 결핍은 심각한 문제다. 시각독재tyrannis visifica 편재 상태다. 거의 모든 일상과 업무가 TV와 컴퓨터 모니터로 이루어지는 전자산업시대에서 피부접촉은 유기된 지 오래다. 어른 또한 중독성 향락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틈을 ‘터치 자본’이 밀고 들어오는 것이다.


피부감각은 언어나 감정이 일으키는 감각보다 10배 강력하다. 백색문명이 촉각을 매몰차게 버렸다가 다시 일으켜 착취 대상으로 삼은 까닭이 바로 여기 있다. 촉각을 복권시켜야 한다는 요청 앞에서 녹색의학은 우선 자신의 진단·치료 행위부터 곡진·결곡하게 점검한다. 터치의학이 명실상부하게 구성되어 있는지 성찰한다. 그 뒤 치밀하고 집요하게 백색의학과 맞선다. 백색의학의 거대한 노터치 의료화를 무너뜨린다. 다른 길은 없다.


나는 여느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내 딸 생애 최초의 시간을 산업출산 시스템에 빼앗겼다. 나는 여느 아버지와 다르게 내 딸 생후 1년여, 특히 아내의 출산휴가가 끝난 뒤 기간에 거의 100% 내 손으로 키웠다. 영국 런던대학교 연구에 따르면, 아버지의 피부접촉이 아기의 정서발달은 물론 성장 후 사회 적응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를테면 아버지의 손을 통해 어머니 이외의 세계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많은 실수를 저질렀음에도 나는 내 딸과 보낸 그 1년여를 무한신의 축복이라 여긴다. 오늘 내 녹색의학 감수성, 그 녹색촉각의 한 기원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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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 인간의 기본 감각은 촉각, 후각, 미각, 청각, 시각의 5감으로 나눈다. 후각, 미각, 청각, 시각은 촉각에서 비롯하였다. (수정 이전 정자까지 생명을 소급한다면 태초의 감각은 후각이다. 이 문제는 다른 기회로 넘긴다.) 촉각은 피부 감각의 어머니다. 어머니 감각은 어머니 피부에 남아 있다. 어머니 피부는 소미 감각으로 나머지 4감 감각을 여전히 지닌다.


4감은 각각의 터미널로 독립 진화하였다. 후각 터미널은 코다. 미각 터미널은 입이다. 청각 터미널은 귀다. 시각 터미널은 눈이다. 입·코·귀·눈은 그러므로 특화된 피부 주름이다. 특화된 피부 주름이 하나 더 있다. 뇌다.


제6감은 5감 말고 더 있다고 생각하는 감각이다. 사전적 정의는 ‘알 수 없는 사물의 본질을 직감적으로 포착하는 정신·심리 작용’이다. 정신·심리라는 용어는 적절치 않아 보인다. 제6감은 모름지기 5감의 네트워크가 빚어내는 전체 감각일 터이니 육감肉感이라 말하는 작용과 본령이 같다고 봐야 한다. 바로 이 감각이 뇌의 태초 감각이다. 거꾸로 말하면 5감의 네트워크가 빚어낸 감각 진화가 뇌를 형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5감과 제6감의 감각은 인간 생명에게 무엇인가? 외부세계에서 오는 자극을 느끼고 알아차리는 것은 생명작용의 기본이다. 그 감각에 터하여 모든 감정·인식·추론·판단·결단·실천이 일어난다. 최종 실천은 몸 작용이므로 결국은 새로운 몸 감각을 이루며 다시 나선 순환하는 것이 생명 현상의 실재다. 인간의 도구 이성이 폭발적으로 증폭하면서 감각은 외현된 기술에 밀려났다. 심지어 어떤 감각, 예컨대 후각은 폄훼되었다. 이런 거대한 감각 둔화의 기제에 편승한 의학이 백색의학이다. 5감과 제6감의 복원이 녹색의학이다. 5감과 제6감의 피부생명 복권이 녹색혁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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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색의학은 맘을 뇌라고 한다. 가소로운 무지요 가공할 범죄다. 뇌는 맘이지만 그 역은 아니다. 저들은 자신의 종자논리를 부수고도 그조차 자각하지 못한다. 그렇다 치자. 그럼, 몸은 무언가? 답이 궁하다.


녹색의학에 따르면 맘은 의당 피부다. 피부는 비대칭의 대칭 구조 안에서 상호작용하는 사건이고, 마음은 그 가운데 파동 축 가까이에서 운동한다. 몸은 반대로 입자 축 가까이에서 운동한다. 100% 맘은 없다. 있다면 유령이다. 100% 몸은 없다. 있다면 시체다. 맘을 보면 몸이 보이고, 몸을 보면 맘이 보일 때, 비로소 전체 진실에 주의할 수 있다.


백색의학은 맘 병이라 판단하면 맘만 본다. 우울장애 환자에게는 아무 생각 없이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를 준다. 그 화학합성물질이 위장을 망가뜨린 뒤 소화제 준다. 몸을 진중하게 고려하지 않는다. 몸 병이라 판단하면 몸만 본다. 아토피 환자에게는 그저 스테로이드제를 준다. 맘 문제가 불거진 뒤 정신과 보낸다. 맘을 진중하게 고려하지 않는다.


정신과 전문의가 장내세균을 조절하는 날은 언제일까. 아토피 전문의가 우울장애를 숙의하는 날은 언제일까. 그 사이 아픈 이들은 스러져간다. 백색의학은 아무래도 녹색 몽둥이로 맞아야 정신이 들려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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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 화두를 더 나아가 참구한다. 2010.8.23 마이리뷰 디디에 앙지외의 <피부자아> 일부를 다시 읽는다.


“자아는 피부다.”


이 말을 역으로 하면 “피부는 자아다.”입니다. 사실 이 말만으로도 전복적입니다. 피부를 그런 맥락으로 읽어 본 예가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지은이는 주어와 술어 위치를 바꿈으로써 더 한층 날카롭게 나아갑니다. 피부가 자아의 부분집합이 아니고, 자아가 피부의 부분집합인 상황을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이 명제로써 한 순간에 피부는 광대한 은유가 됩니다. 피부이자 피부를 넘어선, 현실과 상상을 가로지르는 절묘한 실재성을 획득하는 것입니다.


엄마와 아기가 살을 부비는 정밀하고 사소한 일상부터, 반-생태적 자본주의 문명의 제약 불가능한 경계 교란까지, 실로 엄청난 폭량의 은유가 피부라는 경계, 즉 가장자리에서 요동치는 사건입니다. 피부는 다만 공간이 아니라, 시간이며 역동적 사건 그 자체입니다. 지은이는 피부의 기능 여덟 가지를 말합니다. 지탱하기, 담아주기, 항상성, 의미, 교감, 개별화, 성욕화, 에너지화. 좀 더 엄밀히 말하면, 피부의 기능이라기보다 피부라는 사건의 다양한 발현 양식이라 해야 하겠지요.


피부 사건에 두 가지를 더해야 한다. 하나는 호흡. 폐라는 호흡기관이 있음에도 전체 호흡의 0.6%를 피부가 담당한다. 대수롭지 않는 게 아니다. 피부 자체의 생존 방식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과도한 화장 등으로 호흡을 막는 것은 충분히 반생명적 행위다.


다른 하나는 정보 인식. 디디에 앙지외가 적시한 교감과 다른 차원에서 피부는 소미한 정보 인식 사건을 일으킨다. 이는 면역체계와 직결된다. 교감 사건과 상보를 이루면서 에너지화와 대칭되기도 한다.


전체 맥락에서 보면, 생명은 피부의 다양한 주름이다. 생명 사건은 피부 사건의 다양한 변주다. 피부를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는 감각, 의식, 자세를 혁명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피부는 개별 생명체로 일단 떼어서 생각하면 가장자리다. 다른 생명체와 상호작용하는 관계로 생각하면 중심이다. 단독으로는 살아갈 수 없으므로 결국 생명의 중심은 피부다. 중심인 피부는 깊다. 더 깊은 내면 따위는 없다.


피부를, 그러면 어떻게 대할까? 피부는 지극한 거룩함과 질탕한 즐거움이 비대칭의 대칭을 이루는 사건이며 실체다. 이 이율배반과 모호함을 흔쾌히 흠뻑 끌어안아야 한다. 정중하게 모시는 일과 까불대며 함께 노는 일에 동시 감각이 일어나야 한다. 바라보기, 닿기, 만지기, 쥐기, 쓰다듬기, 다독이기, 도닥이기, 문지르기, 비비기, 부비기, 닦기, 씻기, 두드리기, 때리기, 긁기, 간질이기, 누르기, 받치기(받들기), 주무르기, 잡기, 접기, 펴기, 핥기, 빨기, 깨물기, 벌리기, 끼워 넣기, 찌르기, 짜기, 째기, 조르기, 자르기, 데우기, 태우기, 식히기, 적시기, 말리기, 불기, 뿌리기, 바르기, 싸매기·······의 수많은 접촉이 수많은 생명 사건을 일으키므로 한꺼번에 주의하고 하나하나 집중해야 한다.


한의사인 나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침으로 피부를 찌르는 치료를 한다. 침 찌르기는 근본적으로 피부사건 일으키기다. 침이 찔러지는 경혈의 흐름인 경락은 피부를 따라 흐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경락이 혈관계·신경계·림프계들로 진화하기 이전 피부의 미분화 정보·에너지 전달 체계였다고 본다. 물론 경락 이전 단계에서 피부는 세포 하나하나마다 감각·기억·전달·치료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세포들 사이에 원시 네트워크도 있었다. 그 원시 네트워크가 나중에 경락을 거쳐 혈관계·신경계·림프계가 되었다. 그러고 보면 고대 동아시아인들이 경락과 침을 발견한 것은 실로 위대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침은 동종의학과 이종의학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앞으로 좀 더 치밀한 연구가 필요하다.


나는 다른 한의사와 달리, 침을 찌르기 전에 특별한 경우 말고는 반드시 침 찌를 곳에 가벼운 터치를 한다. 단순히 대기도 하고, 문지르기도 하고, 만지기도 하고, 누르기도 한다. 대부분은 가볍게 톡톡 두드린다. 가볍게 두드리는 것은 소미한 통증 유발 효과가 있다. 손가락을 모으고 머리를 세워 두드리면 생체 광자photon들이 다량 방출된다. 생체 광자는 정보를 전달을 통한 치료 능력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동종의학이다.


동종의학은 소미심심 의학medicina tenuissima이다. 소미심심 의학은 피부에서 비롯하여 배어들고 배어난다. 피부에서 비롯하여 배어들고 배어남으로써 생명이 피부임을 증언하는 길이 녹색의학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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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발레리가 말했다. “가장 깊은 것은 피부다.” 시인의 말이라고 해서 시적 수사로 볼 일이 아니다. 디디에 앙지외가 말했다. “자아는 피부다.” 정신분석의의 말이라고 해서 정신분석적 은유로 볼 일이 아니다. 실재에서 가장 깊은 내면으로서 자아는 피부, 바로 그 피부다.


백색의학은 이 피부를 분열적 태도로 소외시킨다. 하나는, 미용 대상으로 귀빈 대우. 다른 하나는, 단지 살 껍질 취급. 전자는 의학 포르노의 총아다. 후자는 함부로 째도 꿰매 놓기만 하면 되는, 또는 스테로이드 처바르는 구박 덩어리다. 둘 다 모독이다.


인간은 본디 피부다. 피부는 몸과 마음이 미분통합 상태인 채 있는 태초 생명이다. 피부가 말려 대롱을 만들면서 안쪽 피부는 장腸이 된다. 장은 제2피부다. 제2피부는 장신경을 만들어 정보 시스템을 독립시킨다. 장신경은 제2피부신경이다. 제2피부신경은 자율신경으로 진화한다. 자율신경은 제3피부신경이다. 제3피부신경의 터미널이 각종 장臟이다. 장臟은 제3피부다. 제3피부신경은 중추신경계로 진화한다. 중추신경은 제4피부신경이다. 제4피부신경의 터미널이 뇌다. 뇌는 제4피부다. 이게 진실이다.


백색의학은 본말 전도다. 피부의 복권이 절실하다. 피부는, 이후 진화된 ‘신경’ 없이도 감각을 지닌다. 냄새와 빛깔, 그리고 소리를 느낀다. 함부로 째고 꿰매면 안 된다. 함부로 스테로이드 처바르면 안 된다. 포르노 미인 만들려고 조몰락거리는 것은 더욱 안 된다. 모든 산업피부를 거부해야 한다. 자연피부의 근원 상태를 복원해야 한다. 자연피부는 소미심심小微沁心 신의 거처다.


신의 거처에서 백색의학은 스스로 물러나라. 물러나서 삼가 엎드려 다시 시작하라. 피부에서 장腸으로, 장에서 장臟으로, 장에서 뇌로 가는 길을 겸허히 따라가라. 서두르라. 내일이면 늦는다. 녹색혁명이 들이닥칠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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