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문명은 아이 학대 문명이다. 백색의학은 아이 학대 의학이다.


아이 학대는 태아 때부터 시작된다. 산업출산 시스템에 묶여 옴짝달싹 할 수 없는 현대사회에서 임신을 확인한 여성은 불문곡직 병원으로 향한다. 그 때부터 태아는 병원의 관리, 아니 학대 아래 사실상 환자로 취급 받으며 자유로운 성장을 몰수당하기 시작한다. 출산과 양육 과정에서도 이 학대는 지속되고 강화된다.


아무도 이 출산·양육 시스템의 토건 방식 의료화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사이, 아이들의 병은 깊어간다. 깊이 병든 아이들이 자라 깊이 병든 어른이 된다. 깊이 병든 어른 n명 속에는 각각 n명의 성장을 멈춘 아이가 웅크리고 있다. 백색의학은 그러니까 n×n명의 아이들을 합법적으로 죽이는, 전쟁보다 더욱 무서운, 범죄다.


백색의학은 예방과 치료라는 미명 아래 테러를 가함으로써 아이로 하여금 테러리스트를 자신의 수호신이라 믿게 한다. 각각 n명의 아이들로 구성된 n명의 가짜 어른은 오늘도 한 움큼씩 백색화학합성물을 만나로 여기며 먹는다. 이들에게서 임신-출산-양육 과정의 의료화 차꼬를 풀어주어야만 문제는 원천적으로 해결된다.


녹색의학은 n명 어른 속 n×n명의 아이를 인정하는 의학이다. 녹색의학은, 근본적으로, 병든 n×n명의 아이를 있는 그대로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여 양육하는 일이 의학이라는 사실을 자각하는 과정 전체다. 녹색의학은 모든 질병이 백색문명이 일으킨 발달불균형증후군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 치유를 천명으로 삼는 자세다.


녹색문명은 아이 존중 문명이다. 녹색의학은 아이 존중 의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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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어디 SNS에 한국인은 우울장애에 취약하다고 썼더니,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느냐 유의 댓글이 올라왔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한국인의 70%는 북방계다. 그들은 수천 년에 걸쳐 시베리아를 통과해 한반도에 정착했다. 시베리아 평원 혹독한 조건에 적응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이른바 우뇌 활동, 그러니까 직관의 비교 우위다. 직관 우뇌는 전체 맥락에 주의를 기울이므로 부분에 집중하여 낙관하는 상황을 제어한다. 상황이 불투명할 경우, 최악의 사태까지 감안해야 하므로 비판적 통찰이나 비관적 전망 능력이 발달하기 마련이다. 만일 좋지 않은 상황이 장기화하고, 거기에 적응해온 삶의 경험이 유전의 근거가 된다면, 내 발언은 의학적 유의미성을 획득한다. 우뇌 활성 우위의 장기적인 고착은 우울장애에 노출되는 길을 활짝 열어놓는다. 실제 통계로 한국인의 3/4 정도가 왼쪽 눈이 작다. 왼쪽 눈이 작은 것은 우뇌 우위의 증거다.


이 3/4의 사람, 그러니까 다수는 좌뇌 패권 사회에서 피지배층을 형성한다. 다시 말하면 좌뇌 우위의 소수에게 수탈당하는 먹잇감이 된다. 그 수탈의 과정과 결과를 개인 차원에서 의학적 진술로 번역한 것이 바로 우울장애다. 앞서 <녹색 뇌>를 통해 역설한 우뇌 혁명은 이런 정치경제학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혁명이란 용어를 동원한 까닭은 지배세력이 이 문제를 앞장서서 해결할 리 없기 때문에 수탈당하는 사람, 그러니까 우울장애를 앓는 생명공동체가 수탈체제, 그러니까 질병체제를 전복해야 한다는 뜻에서다. 질병체제를 전복하려면 공동체 구성원이 스스로 일어나 연대해야 한다. 스스로 일어나 연대하려면 공동체 구성원 각자가 각성해야 한다. 각자 다른 소향과 정황을 모두 끌어안은 생명 장場이 있다는 진실을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여야 한다. 백색의학이 각자도생을 선동할 때, 녹색의학은 생명공동체의 네트워킹을 설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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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색의학은 사람이 아무리 달라도, 같은 병명이면 같은 약을 쓴다. 녹색의학은 병명에 꺼들리지 않는다. 사람마다 다른 소향과 정황에 주의를 기울인다. 소향은 꾸준히 드러내는 중장기적 경향을 뜻한다. 정황은 그때그때 드러내는 단기적 상태를 뜻한다. 녹색의학은 병(명)이 아무리 같아도, 다른 사람이면 다른 약을 쓴다. 똑같은 사람이 있기는 한가.


임상 편의에 맞추어 패턴을 가르고 동류로 의제할 수는 있다. 팔강八綱, 육경六經, 사상四象, 형상形象 따위를 고안해 다름 가운데 같음을 구성하는 동아시아 전통의학이 그 예다. 이마저도 어디까지나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정밀하게 들어가면 소미한 차이점은 차고 넘친다. 물론 최종적으로 어찌 처방할 것인가는 다시 전체적 맥락을 살펴야 한다. 그 전체적 맥락을 소미한 단 하나의 차이가 좌우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더는 반전이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가 흔히 체질이라 일컫는 것을 녹색의학은 인정하지 않는다. 체질주의자에게 체질은 변하지 않는 무엇이다. 이제마의 사상체질이 대표적인 예다. 일반적으로 그 말은 옳다. 체질에 순응해서 사는 사람이 많으니 말이다. 체질을 바꾸려 들면 바꿀 수 있는가? 그렇다. 얼마나 바꾸면 체질이 달라졌다 말할 수 있는가? 전체 맥락을 좌우할 수 있는 아주 소미한 단 하나만 바꿔도 된다. 이 소미한 단 하나가 대관절 무엇일까?


백색의학은 완력의 의학이다; 구조를 지탱하고 기능을 충일하게 하면 다 된다고 믿는다. 백색의학은 큰 것만을 가치로 친다. 녹색의학은 소식의 의학이다; 무엇 때문에 어떤 경로를 따라 아프고 또 낫는지 소상히 알려주면 스스로 길을 찾는다고 믿는다. 녹색의학은 사람의 체질, 나아가 인생을 바꾸는 계기로 작동하는 저마다의 작은 소식 한 마디를 가치로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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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색의학은 근본적으로 백인·성인·남성의학이다. 맨 앞에 친절한 덧붙임을 하자면 179cm, 90kg이다. 이 기준을 원칙으로 하고 필요한 기계적 고려를 하는 정도가 유연성의 전부다.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차이도 고려하지 않는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서구,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미국 기준으로 질병 여부가 결정되고 진단·치료 가이드가 제시될 뿐이다. 비서구 세계의 전통의학 인정 정도는 각 나라마다 다르지만 국민건강보건체계의 헤게모니가 서구(미국)식 백색의학 손에 있는 것은 대부분 비슷하다. 이런 일극집중구조 의료체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사회는 거의 없다. 예컨대 에단 와터스가 『미국처럼 미쳐가는 세계』에서 “세계가 미쳐가는 방식을 균일화하고 있는” 미국의 정신의학 마케팅을 통렬하게 고발했지만, 변방 사람·사회들이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변화를 꾀한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다. 이 적요 속에서 인간 하나하나의, 인종의, 어른과 아이의, 남성과 여성의 가름까지도 정중히 소상히 인지하는 의학을 틈낸다. 그 틈 의학을 우리는 녹색의학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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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腸은 제2피부이자 제2뇌로서 인간 생명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 중요성에 비해 우리가 장에 가지는 관심과 지식은 그야말로 보잘것없다. 장의 존재 자체와 기능은 그나마 그런대로 괜찮다 치지만 장신경은 상식 저 멀리 있다. 더군다나 장내에 거대한 미생물 생태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거의 신비에 해당한다.


사실, 100조 개체의 미생물이 인간의 체내에 따로 거대한 생태계를 이루며 살아간다는 사실 자체가 매우 경이로운 일이다. 인간은 이들을 직접 지휘할 수 없지만 이들은 인간에게 전천후의 영향을 직간접으로 행사한다는 사실과 맞닥뜨리면 경이로움은 경악의 수준에 도달한다. 경악할만한 이 생태계의 주인공이 다름 아닌 장내세균이다.


장내세균은 유익균과 유해균이 비대칭의 대칭을 이루며 공존한다. 유해균은 없고 유익균만 있으면 좋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둘의 비율이 17:3이면 황금비다. 이 균형의 파괴가 정신-신경-면역-내분비계 전 방위의 질병을 부른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불안·우울장애, 심지어 자폐스펙트럼 같은 정신질환까지 그 영향 아래 있다 한다.


장내세균총의 균형을 깨뜨리는 중요 원인은 단백질과 지방을 많이 함유한 음식이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가장 좋지 않은 것은 백색의사가 처방약으로 주는 백색화학합성물질들이다. 이 물질들은 많은 경우 직접적으로 장내세균 활성을 저해한다. 그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장을 차게 해서 장내세균총의 균형 조건을 열악하게 만든다.


장내세균의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들려면 백색화학합성물질 중독에서 깨어나야 한다. 백색의학이란 종교에 머리 조아리는 광신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백색의사가 처방약으로 죽이는 사람 수가 갱단이 죽이는 사람 수보다 많다 한다. 좋은 책이 나왔다. 피터 괴체가 쓴 『위험한 제약회사』다. 부제가<거대 제약회사들의 살인적인 조직범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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