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모를 땋으며 - 토박이 지혜와 과학 그리고 식물이 가르쳐준 것들
로빈 월 키머러 지음, 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 2020년 1월
평점 :
절판



 

자연주의자들은 상처 세상에서 살아간다. 상처는 그들만 볼 수 있다.(521)



 

한약 지으러 왔다는 환자한테 현재 몸 상태에 관한 상세한 의학 이야기를 30분가량 한 뒤, 내가 말한다. “첩약은 보험 안 돼 비싸니 최후 선택입니다. 일단 침 치료만 받고 한 달 동안 운동, 식이조절부터 하세요. 그런 다음 다시 오십시오.” 그를 소개한 친구가 저녁 사겠다기에 따라 나선다. 소주를 따르며 그가 친구에게 말한다. “우리 선생님, 돈 버시긴 틀렸네.” 내가 파안대소하자 그가 정색하고 명토 박는다. “한 달 뒤 다시 오면 꼭 약 지으라 하셔야 됩니다.”

 

젊은 시절 나는 혈관운동신경성비염을 치료하러 뜨르르한 전문의를 찾아간 적이 있다. 그는 목례로 인사한 뒤 짧게 절진하자마자 대뜸 알아먹을 수 없는 글씨로 처방을 써내려갔다. 벨소리에 간호사가 들어오자 처방전을 건넸다. 간호사가 치료실로 안내하겠다면서 나를 일으켜 세웠다. 나는 그의 말을 한 마디도 듣지 못한 채 자리를 떠나야만 했다. 내가 머무른 시간은 3분가량이었다. 정체 모를 약 말고 어떤 의학에도 나는 접근할 수 없었다. 약 효과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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