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사회가 식민지, 분단과 전쟁, 독재의 시대를 거치는 동안 지배층의 계략에 따라 피지배층은 단세포적 삶으로 끝없이 내몰렸습니다. 돈과 힘 빼고는 다른 어떤 가치도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풍조가 세포 하나하나에 각인되어 살아갑니다. 아무 생각 없이 살아도 ‘잘 나가는’ 삶을 가장 이상적이라고 여깁니다. 돈 안 되는 일에는 ‘그 뻘짓 왜 하느냐?’ 말고 할 말을 잃은 야차로 희희낙락합니다.


똑똑해서 인생이 술술 풀리는 사람으로 주위의 부러움을 사던 한 청년이 어느 날 갑자기 공황상태에 빠졌습니다. 공황 뒤엔 우울이 덮쳐왔습니다. 영문을 통 알 수가 없었습니다. 본인도 가족도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뭔가 결정을 내려야 하는 긴급한 상황인데도 전혀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그다지 복잡하지 않은 삶의 길목을 통과하는 동안, 그가 한 노력에 비해 일이 잘, 그것도 아주 잘 풀려왔음은 어김없는 사실입니다. 거의 한 번도 위기에 봉착한 적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마치 섭리처럼 흘러갔습니다. 사실 거기에는 가족의 결정적 보우가 있었습니다. 가족의 보우는 약도 되고 독도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그 독의 날에 베어진 것입니다.


가족의 강권으로 상담을 하긴 하는데 여전히 그는 자신의 문제를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뭐가 돼도 되겠지 하는 유아기적 사고에 붙들려 있었습니다. 질문하면 그 즉시 대답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습니다. 한참 뜸을 들이다가 대답하는데 대부분은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나머지는 피상적인 답변이었습니다. 이야기 주제를 제시하고 준비해오라 해도 응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습니다. 책을 추천하고 읽어오라 해도 머리 긁적이며 넘어갔습니다. 위기가 어느 정도 수습되고 가족의 걱정이 수그러들자 상담 예약에 아랑곳없이 더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를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필경 그는 전과 같이 ‘자알~’ 살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지난 번 보다 훨씬 더 심각한 위기가 오거나 자신의 문제를 문제 삼게 되지 않는 한, 무심중에 살아가는 삶을 지속할 것이었습니다. 그런 삶이 마냥 나쁘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저 찰스 슐츠가 말한바 ‘인생에는 목적도 의미도 없다. 그냥 나는 행복하다.’ 정도로 달관했다면 말입니다. 그게 어디 쉽겠습니까. 2년가량 지난 어느 날 갑자기, 그가 상담을 청해왔습니다. 그는 앉자마자 스스로 입을 열었습니다.


“별로 아는 게 없는 제가 생각하기에도 지금 우울증 상태인 듯합니다.”


그가 예시하는 증상들은 틀림없이 우울장애의 전형적인 표지였습니다. 그는 분명히 중대 기로에 서 있었습니다. 판단도 선택도 실행도 모두 어려웠습니다. 모든 어려움의 근원은 하나, 여태까지 삶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문제이며 그 앞에 마주설 주체는 오직 자신뿐임을 인정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제가 제 딸아이 어렸을 때 잠 깨우던 방법을 말해주었습니다. 일어나야 할 시각 4-5분 전에 딸아이 방으로 조용히 들어갑니다. 귓속말로 다정하게 별명을 부릅니다. 그리고 딱 한 마디만 합니다. ‘3분 57초 동안 뒹굴뒹굴!’ 그에게 말해주었습니다.


“뭘 해야 한다는 당위 의식을 내려놓습니다. 현재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도망가고 싶어 하는 자신의 심리적 실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줍니다. 그리고 딱 사흘 동안 뒹굴뒹굴할 여유를 스스로에게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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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기 없이 뽀얗게 웃으면서 들어서는 그의 모습이 도리어 짠했습니다. 분명히 우울증으로 예약한 사람인 걸 아는데 말입니다. 더욱 제 마음을 적신 것은 전체적인 그의 풍모였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귀티가 흐르는 얼굴, 이름깨나 있는 부티크 옷, 명품 가방, 풍요로 다듬어진 스마트한 몸 매무새·······울컥했습니다. 아, ‘가진 게 많아서’ 아프구나!


그는 유서 깊은 부자가 모여 산다는 바로 그 뜨르르한 동네 주민이었습니다. 적어도 그의 40여 년 기억 속에는 티끌만큼의 가난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상대적으로 어머니에 비해 아버지가 경제력이 약했다는 것 말고는 그에게서 풍요 감각을 덜어낼 그 어떤 요인도 없었습니다.


‘모태’ 풍요 속에서 아무런 의심 없이 그의 삶은 부모의 부가 제시하는 삶의 궤도를 따라갔습니다. 과외 하라면 과외 하고, 악기 하라면 악기 하고, 어디 학교 가라면 어디 학교 가고, 무슨 과 전공하라면 무슨 과 전공하고, 누구하고 결혼하라면 누구하고 결혼하고, 어디다 투자하라면 어디다 투자하면서 승승장구 살았습니다. 아무 문제없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허무가 밀려듭니다. 살고 싶지 않습니다. 내가 뭐냐 싶습니다. 눈물이 하염없이 흐릅니다. 모든 사랑이 가뭇없이 사라집니다. 그렇게 Nothing이 되었습니다. 그가 스러지자 모두 달려왔습니다. 이구동성으로 말했습니다.


“대체 네가 모자란 게 뭐 있어서 우울증이냐?”


그렇습니다. 돈 많습니다. 집 좋습니다. 조물주 위의 건물주입니다. 외제차 탑니다. 배우자도 손에 꼽는 억대 연봉 전문직입니다. 뭐가 모자랄까요. 제가 도끼눈을 뜨고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 돈 말고 가진 게 대체 뭡니까?”


그렇습니다. 집이든 건물이든 차든 억대 연봉 배우자든 그것들이 돈이지 뭐 다른 가치겠습니까. 돈 말고 모든 것을 잃었으니, 어찌 허망하지 않겠습니까. 돈 끝내 허깨비니 어찌 ‘꽝’Nothing이 아니겠습니까. 그가 엉엉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습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울음다운 울음을 울기 시작한 것입니다. 실컷 울더니 비로소 돈독에서 풀려난 맑은 웃음을 웃습니다. 저는 그를 데리고 나와 허름한 백반 집으로 갔습니다. 막걸리 한 잔씩 따라 벌컥벌컥 들이켰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막걸리 한 잔에 제 영혼이 춤을 춥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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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인이란 말이 있습니다. 벗어나기 어려운 부정적 평가를 가리킵니다. 질병과 관련해서는 주로 정신질환이 가혹한 낙인인 경우가 많습니다. 정확히는 정신질환이 아니지만 그와 같은 사회적 편견의 뉘앙스를 머금은 낙인이 바로 ‘간질병’입니다. 공식용어는 뇌전증epilepsy이지만 여전히 시중에서는 간질병으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그가 저를 찾아온 이유는 간질병 때문이었습니다. 좀 더 분명히 말하자면 자신이 간질병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왔습니다. 유수의 대학병원에서 간질병 판정을 받고 그 자신은 물론 가족 모두가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서구의학으로는 간질병 약을 복용하는 것이 유일한 치료라고 하는 말을 듣고 다른 길이 없을까, 알아보다가 지인 소개로 저를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그는 제 앞에 앉자마자 이렇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저 간질병 아니지요? 그렇죠?”


저는 단호하게 대답했습니다.


“간질병, 아닙니다!”


말의 규정이 얼마나 고약한 차꼬인 줄 알기 때문에 무조건 풀어주었습니다. 그는 나지막이 안도의 숨을 내쉬며 발개진 얼굴을 쓰다듬었습니다.


그가 유달리 공포에 취약하게 태어났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확인할 수 있었던 사실은, 어린 시절부터 이런저런 공포·불안 요인에 반복적으로 노출되었다는 것입니다. 4살 무렵엔 동생 출산으로, 9살 무렵엔 연이은 조부모 초상으로 홀로 큰 집에 남겨져 공포를 심하게 느낀 적이 있었습니다. 8살, 11살 무렵 뚜렷한 승강기 공포증을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청소년기 따돌림을 당하면서부터는 타인의 시선을 예민하게 의식하게 될 때도 공포가 밀려들었습니다. 세상은 너무 큰데 자신이 한없이 작아진다는 이상감각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공포는 이내 신체 증상을 동반했습니다. 목이나 팔다리에 나타나는 뒤틀림, 돌아감, 꼬임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어떤 경우는 팔이 떨어져 나간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이런 것들에 근거해 간질병 판정이 내려진 듯합니다. 저는 이런 현상을 서구의학과는 달리 심신의 상호작용 이치로 차근차근 설명해주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팔이 뒤틀리고 목이 돌아가고 다리가 꼬일 때 어떻게 반응하나요?”


그가 대답했습니다.


“힘 빡 주죠. 막아야 하잖아요.”


제가 대답했습니다.


“계속 막으면 심장이 뒤틀리고 몸통이 돌아가고 뇌 회로가 꼬일 겁니다.”


그는 깜짝 놀라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병이 오면, 생명은 반드시 신호를 보냅니다. 신호란 본디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작디작은 에너지 활동입니다. 공포·불안이 병적 수준에 이를 때, 생명은 그것을 알리기 위해 목이나 팔다리 정도의 근육 이상을 일으킵니다. 더 크고 중요한 부위의 심각한 이상을 방지하려 함입니다. 서구의학은 이런 이치를 알지 못합니다. 무조건 증상을 억제합니다. 그렇게 상품화된 오류를 의료 대중이 답습하고 있습니다. 저는 덧붙여 말했습니다.


“팔이 뒤틀리고 목이 돌아가고 다리가 꼬일 때, 아, 내 안에 더 큰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거구나, 하고 그대로 받아들이세요.”


점점 그는 제 말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여갔습니다. 그럴수록 그런 증상은 현저하게 줄어들었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이쯤해서 그만 둘 수도 있는 일입니다. 아닙니다. 조금 더 나아가야 합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간질병, 무서워요? 싫어요?”


그가 고개를 저었습니다. 간질병이면 어떻고 또 아니면 어떻습니까. 그게 무슨 대수인가요. 그래요. 고개 둘을 넘었습니다.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자연스럽게, 욕구를 따라 다음 맥락으로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연애 이야기였습니다.


늘 그렇듯 이런 상황에 처한 청춘에게는 두 가지 심리가 공존합니다. 연애에 시큰둥하게 반응하는 이성, 그리고 연애에 두 귀를 쫑긋 세우는 감성. 하나는 공포, 하나는 그리움. 둘 사이, 화해가 잘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게다가 그에게는 어린 시절의 결핍 때문에, 뭐랄까 아주 사소한 인프라조차 깔려 있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가령 홀로 사는 방에 이성 친구가 들어온다, 몸에 손을 댄다, 이런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조차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마음의 경직은 몸의 경직이고, 몸의 경직은 삶의 경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할 시점에 다다랐습니다. 어느 날 작심하고 그에게 담담히 말해주었습니다.


“간질병, 맞습니다.”


간질병은 뇌전증이 아닙니다. 인생 병입니다. 경직과 경련이 삶의 문제 한가운데서 유연하게 풀려 나아가는 것이 치유의 종착점이자 본령입니다.


아프든 건강하든 누구나 자기 삶의 문제 한가운데 서 있습니다. 시험이든 면접이든 그가 칼 날 위에서 요동칠 때마다 제가 함께 했습니다. 그는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헛된 실패란 결코 없습니다. 비록 성에 차지는 않지만 세월이 흐를 만큼 흐른 뒤, 그는 지금 나름 유연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혹 또 다른 삶을 꿈꾼다면, 또 그렇게 경직을 직면하고 나아갈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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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는 무시간적 진리 의식의 산물이 아니라 역사의 산물이다. 논리는 문명현상, 무엇보다 정치현상이다. 사하라시아 타락-자아폭발(스티브 테일러)의 결과로 종양문명을 일으킬 수 있었던 그리스의 거대성공증후군이 만들어낸 논리가 바로 형식논리다. 타락이 거대왕국을 낳고, 거대왕국이 거대(유일)신을 낳고, 거대(유일)신이 거대이론을 낳고, 거대이론이 자기 정당성의 영속화를 위해 종자논리dialecticum semen를 만든다.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그리스가 만든 종자논리인 형식논리의 핵심은 무엇인가. 이른바 동위원리에 포함된 동일률, 모순율, 배중률이다. 모순율, 배중률은 동일률에서 파생한 것이므로 결국은 동일률이다. 동일률은 A=A다. A=A는 동어반복tautology이다. 동어반복은 항상 옳다. 항상 옳아서 하나마나 한 말이다. 하나마나 한 말이므로 내용이 실재하지 않는다. 이런 진술을, 타락한 인류는 불변하는 진리의 기틀로 삼았지만 참된 진리에 터해 보면 이 말은 병적 방어기제의 소산이다. 병적 방어기제를 넘어 범죄에까지 이른다. 간결히 정리하면 이렇다.


(1) 자기성찰 불능: 내 거점만 남기고我 남의 거점을 지운다無我.

(2) 자기변화 불능: 내 안정常을 붙박고 남을 불안無常으로 흔든다.

(3) 자기절제 불능: 내 즐거움樂을 더하려 남을 괴로움苦에 빠뜨린다.

(4) 흠 없(다고 망상하)는 체계narrative를 공고히 구축한다.


최근 밝혀진 연구 결과에 따르면, winner 또는 CEO의 대뇌는 안와전두엽에 손상(에 가까운 변성)을 겪는다고 한다. 대뇌 안와전두엽에 손상을 입으면 이성적인 판단력으로 자기성찰을 할 수 없게 된다. 타인의 비판을 귀담아 듣지 못 한다. 독선으로 치닫는다. “나는 나다, 나만 나다, 나만 옳다, 나의 옳음은 영원하다, 내 앞에 너는 무릎 꿇어야 한다, 이게 진리다, 끝.” 개인 차원의 거대성공증후군을 사회·문명 차원으로 확대하면 안와전두엽이 손상된 지배층 엘리트 집단의 머리에서 나온 형식논리가 인류 역사에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즉각 알 수 있다. 전쟁, 계급질서, 여성차별, 아동학대, 몸의 분리, 거대유일신교, 시간 지배, 자연 착취. 이 모든 악의 근원에 질병 본질을 지닌 형식논리가 똬리 틀고 앉았다.


이 엄혹하고 육중한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단도직입하면 종자논리를 바꾸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종자논리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 형식논리를 깨뜨리고 모순과 모호함을 품어 안는 다치多値논리(, 원효 식으로는 화쟁 논리, 내 식으로는 비대칭의 대칭 논리)를 받아들여야 한다. 논리를 바꾸면 사유가 바뀐다. 사유를 바꾸면 삶이 바뀐다. 삶을 바꾸려면 대박의 의지를 내려놓아야 한다. 안와 전두엽의 손상을 막아야 한다. 인욕을 넘어 진욕進辱으로 나아가야 한다. 진욕은 소미심심의 연대를 낳는다. 소미심심의 연대가 인류를 파멸에서 구할 것이다. 이 화두를 거대유일신교를 극복한 예수 내러티브로 풀어본다.


나는 지난 8월 18일 마이페이퍼 <누가 참된 장엄신인가?>를 통해 창조신에서 욥을 거쳐 예수에 이르러, 어떻게 거대신이 해체되고 소미심심 신이 되는지를 일별했다. 여기서는 특별히 2천년 동안 미궁 또는 오류에 빠져 있었던 예수 부활 사건 해석을 새로운 종자논리로 바꿈으로써 기독교와 인류 전체의 활로를 모색해보겠다.


전통적인 예수 부활 이해에 따르면, 그것은 당연히 죽음을 이긴 승리다. 그 승리가 없으면, 예수 구원의 역사는 완성되지 않는다. 구원이 미완성이면, 기독교인의 신앙은 의미가 없어진다. 이 당연하고도 위대한 반전은, 그러나 틀렸다. 거대유일신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반전 부활은 거대유일신의 형식논리 안에서 부리는 잔재주에 지나지 않는다. 예수가 온 목적과 그에 걸맞은 과정의 실재는 오직 거대유일신을 벗어던지는 길로 향한다. 거대유일신은 타락이 빚어낸 가짜 신이기 때문이다.


예수를 통해 드러나는 참된 신의 거대유일신 벗어던지기는, 거대유일신의 ‘망상이지만 강고한’ 존재 거점을 지우는 일이다. 예수의 태어남과 삶의 전 과정은 그 거점 지우기다. 외양간에서 태어나 세리와 창기를 더불어 살았으니 말이다. 예수의 죽음은 좀 더 확실하고 충격적인 거점 지우기다. 영원하신 거대유일신이 죽다니. 마침내, 부활은 거점 지우기의 ‘완전’ 완성이다. 시신마저 지운다. 무덤마저 지운다. 아, 그리고 이, 이 한 문장!


“나를 만지지 마라.”


이 말은 부활을 통해 신이 다시 ‘영적’ 존재를 회복했다는 개소리가 아니다. 만짐, 붙잡음으로 남을 최후의 거점마저 지우는, 도저한 반성이다. 신이 참 신일 수 있는 마지막 결단이다. 신이 스스로 無를 만들어, 無神을 거쳐, 無限神을 연 궁극의 창조다. 무한신은 스스로 존재 거점을 지운 소미심심의 벌레, 풀, 박테리아, 이끼들의 보이지 않아서 보는, 들리지 않아서 듣는, 맛보아지지 않아서 맛보는, 맡아지지 않아서 맡는, 닿아지지 않아서 닿는 온갖 생명 감각 자체이자 대상이다. 이 감각 자체이자 대상을 단박에 이루는 단 하나의 길은 거대유일신의 마지막 거점을 만지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 부활한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그 닿지 않는 닿음, 비대칭의 대칭에서 거대유일신은 홀연히 사라진다. 거대유일신이 사라졌다고 해서 무신의 세계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무신론은 서구 지성의 가소로운 한계일 뿐이다. 소미신과 소미신의 네트워크인 무한신의 비대칭적 대칭으로 세계 진리는 재편된다.


무한신은 실체 없는 실재다. 사건이기 때문이다. 소미신은 실재하는 시간실체다. 무시간 실체는 본디 없다. 실체 없는 실재와 시간실체 사이 비대칭의 대칭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는 것이 인류에게 주어진 마지막 은총이다. 이것이 우리 인간 각자에게 부여된 예수의 ἐγώ εἰμί(I am) assertion의 장엄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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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D 2017-08-29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나를 만지지 마라>의 서평인줄 알았는데 아니었네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bari_che 2017-08-30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ㅎ

실은 장-뤽 낭시의 그 책을 비판적으로 읽은 결과,
나온 통찰이기도 합니다.

감사합니다.
 


한눈으로 보아도 그는 마음 아픈 사람입니다. 선명하고 빛나는 얼굴 윤곽을 지녔는데, 금방이라도 그 선이 무너질 듯합니다. 웃고 있어도 곧 눈물이 날 것만 같습니다. 누군가 한걸음 다가가면, 놀라서 두 발자국 물러설 태세입니다. 간결한 검사를 거치니, 예상대로 결과가 나옵니다. 불안지수가 대단히 높은데다, 우울정서가 두텁게 결합된 상황입니다.


내력이 깊습니다. 기어 다닐 무렵 다락에서 굴러 떨어져 격심하게 놀란 적이 있습니다. 이 공포는 시간을 다라 흐르면 편만한 불안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다양한 유형의 공포와 불안이 일상의 모퉁이마다 포진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생후 1년 동안 방안에서 흡연하는 조부와 함께 살았습니다. 폐렴에 걸려 입원했습니다. 더 커서는 편도비대가 심해져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 이후 인두咽頭 이물감에 시달렸습니다. 수시로 들이닥치는 구토 증세 때문에 외출하기가 겁날 지경이었습니다. 불안·우울과 신체증상은 이미 인과의 사슬 속에서 뒤엉켜 난치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서양의학은 예의 그 분열적 태도로 그를 난도질했습니다. 외과의사는 수술하고, 내과의사는 발병 부위대로 약 먹이고, 정신과의사는 항불안제·항우울제를 처방했습니다. 하나가 좋아진다 싶으면 다른 하나가 안 좋아지는 일이 반복될 뿐 도무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급기야 직장생활도 불가능해져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가 한동안 쉴 수밖에 없었습니다.


집에서 쉬어도 상황은 별로 전보다 나을 것이 없었습니다. 하기야 그의 불안은 어머니에게서 수직 감염된 측면도 있고, 아버지의 일관성 없는 생활 태도가 증폭시킨 측면도 있으니 오히려 악화될 가능성이 높았던 게 사실입니다. 그는 점점 더 예민해졌습니다. 냄새, 소리, 색깔 모두가 날카로운 자극거리를 제공했습니다. 가령 영화 보다가 놀라 뛰쳐나온 영화관 의자 색깔과 KTX 의자 색깔이 같아 구토를 일으켰을 정도였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나날이 피폐해져가는 그 앞에 큰 산 하나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습니다. 장애를 지닌 사람과 해야 할 혼인,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혼인과 그 상대방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서 그는 끝내 눈물을 보이고야 말았습니다. 당장 어머니 허락부터 시작해서 깨뜨려야 할 은산철벽만 생각하면 그저 아뜩할 따름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혼인 상대방과 함께 왔습니다. 선하고 맑은 인상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사고로 말미암은 장애는 제 눈에 그다지 문제꺼리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본인의 불편함으로 감안한다면 다른 사람의 시선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정작 문제는 사고 뒤 어머니가 입힌 마음의 상처였습니다. 자신의 죄책감을 덮기 위해, 어머니는 자식의 장애를 한사코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자식의 장애를 대가로 받은 돈이 종자가 되어 누리는 풍요에 어머니는 병적으로 집착했습니다. 돈을 무기 삼아, 어렸을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성인이 된 뒤에도 자식의 일거수일투족을 조종하려 들었습니다. 저는 어머니와 싸우는 근본 이치, 그리고 세부적인 기술을 두 사람에게 자분자분 전수해주었습니다.


그와 그의 연인이 제법 긴 시간 동안 저와 함께 마음의 병을 치유하고 몸의 건강을 찾아가면서,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혼인예식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제게 주례를 요청했습니다. 저는 흔쾌히 허락했습니다. 행복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습니다. 다른 혼인예식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순서와 주례사를 준비했습니다.


예식에서 저는 주례가 주도하는 혼인서약과 성혼선언문 낭독 순서를 뺐습니다. ‘두 사람이 평등하게 서로에게 가 닿으며 살라.’는 의미를 담은 어질 인仁자의 그림 모양 붓글씨를 제가 부채에 써넣고, 신부신랑이 직접 거기에 서명하도록 했습니다. 하객들이 재미있어 했습니다. 주례가 주례사를 하는 동안 신부신랑은 의자에 앉아 듣도록 배려했습니다. 하객들은 술렁거렸습니다. 저는 술렁거림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입을 열었습니다. (꽤나 긴 내용인데, 이 글의 주제와 관련해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해 원문을 그대로 실었습니다.)


“저는 보잘 것 없는 사람인데, 복이 아주 많았습니다. 아버지는 법적으로만 여섯 번 이혼과 재혼을 반복하셨고, 법적이지 않는 경우를 합쳐 두 손의 손가락을 꽉 채운 열 분의 어머니, 그러니까 계모를 제 앞으로 지나가게 했습니다. 이런 어머니 복에 하도 멀미가 나서 독신 선언을 하고 버티다가, 사십 다 돼서 독한(!) 여자 하나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결혼식 때는, 아버지도 안 계셨고, 그 많던 어머니도 안 계셨습니다. 결혼을 하고 처음 맞는 설날, 아내와 함께 처가로 내려갔습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처남·처제랑 부엌방에 둘러앉아 맥주 한 잔 하면서 놀고 있는데, 일을 마치신 장모님께서 들어오셨습니다. 물기가 채 가시지 않은 손으로 서랍장을 여셨습니다. 조그만 상자 하나를 꺼내들고 앉으시더니, 제 아내 이름을 부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결혼하고 첫 생일이 지나갔는데 선물을 못 챙겼다. 늦었지만 아나, 열어봐라.” 아내의 손에는 예쁘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금팔찌가 들려 있습니다. 순간 모두는 손뼉을 치며 축하했습니다. 아내는 행복한 웃음을 지어 보였습니다. 바로 다음 순간, 제 등줄기에는 서늘한 물 한 줄기가 흘러내렸습니다. 아내의 생일 앞에는 제 생일도 있었습니다. 제게 이런 생일선물을 챙겨줄 어머니가 계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익히 아시는 장모님께서, 바로 그 사위 면전에서 당신의 딸만을 챙기셨던 것입니다. 장모님을 원망하려고 이 말씀드리는 게 아닙니다. 만일 반대 경우였다면, 제 어머니도 제 아내한테 똑같이 하셨을 것입니다.


여기 하객 여러분 가운데 며느리 생일 챙기시는 시어머니, 사위 생일 챙기시는 장모가 몇 분이나 될까요? 그러면 대체 이런 일이 왜 일어나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가 결혼식장 가면 백이면 백 모든 주례가 하는 미사여구에 속아 넘어가기 때문입니다. “신랑 부모님은 며느리 하나 보았다 여기지 말고, 예쁜 딸 하나 얻었다고 생각하십시오. 신부 부모님은 사위 하나 보았다 여기지 말고, 든든한 아들 하나 얻었다고 생각하십시오.” 거기다 도장을 콱 찍도록, 이렇게 시키기까지 합니다. “자, 신랑 아버지는 딸을 안아주시기 바랍니다. 신부 어머니는 아들을 안아주시기 바랍니다.” 어떠십니까? 실제로 딸이고 아들입니까? 며느리한테 재산 물려주는 시아버지 있나요? 사위한테 재산 물려주는 장모 있나요? 재산은커녕 생일선물 한 번 안 챙겨주면서 딸은 무슨 딸, 아들은 무슨 아들? 이러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스스로 속이지 말아야 합니다. 뭐가 정답입니까, 그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겁니다. 며느리, 귀하디귀한 남의 자식입니다. 사위, 귀하디귀한 남의 자식입니다. 남의 자식 받아서 내 자식하고 함께 살게 인연 맺어주는 결혼입니다. 입양 아닙니다! 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때 도리어 며느리와 사위를 정중하게 대우하고 깊이 있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내 담장 안으로 며느리와 사위가 들어온 게 아닙니다. 내 담장 밖으로 며느리와 사위를 위해 아들과 딸을 내보낸 것입니다. 둘만의 담을 새로 만들어준 것입니다. 다른 일가가 창립된 사건이 바로 오늘의 사건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사시다보면 어느 날, 며느리는 딸이 되어 있고, 사위는 아들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여태까지 우리는 거꾸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부부와 가정이 불행을 겪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순서를 정확히 기억하셔야 합니다.


머지않아 반드시 겪을 일 하나를 예로 들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신부가 장차 아이를 낳고 젖을 먹여 키울 것입니다. 그 때 시어머니께서는 이러실 것입니다. “아이고, 우리 집 귀한 자손 아직 뽀얀 젖살이 덜 올랐구나! 잘 키워야 한다. 그러려면 몸 축가서는 안 된다. 자, 여기 보약 한 제 지어왔다.” 친정어머니께서는 이러실 것입니다. “아이고, 우리 딸 몸이 많이 축갔구나! 남의 집 귀한 손 잘 키우려면 너부터 건강해야지. 자, 여기 보약 한 제 지어왔다.” 두 분 다 아기·아기 엄마 모두 챙겼고, 보약도 지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잘 하셨지요? 그런데 시어머니 하시는 말씀을 친정어머니가 들으셨다면, 반대로 친정어머니 하시는 말씀 시어머니가 들으셨다면 기분이 어떨까요? 왜 그럴까요? 그렇습니다. 순서가 잘못되었습니다. 시어머니가 친정어머니 말씀을, 친정어머니가 시어머니 말씀을 하셔야 하는 겁니다.


생각의 순서가, 말의 순서가 천지를 가릅니다. 이 생각과 말의 순서, 물론 신부와 신랑부터 지켜 나아가야 합니다. 결혼이란 이 세상에 나와 똑 같은 우선순위로 배려해야 할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나와 똑같은 우선순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려면 평생 뼛속 깊이 새겨야 할 문장이 있습니다. 상대방은 내가 아니다. 부부는 이심이체다. 이 진실을 지키려면 평생 뼛속 깊이 새겨야 할 순서 하나가 있습니다. 살다보면 서로 싸울 일이 반드시 생깁니다. 그럴 때 “너!” 하고 시작하는 2인칭 어법을 쓰면 안 됩니다. 상대방은 내가 아니므로 상대방이 지닌 진실을 내 진실처럼 알 수 없는데, 대뜸 “너!” 하면 그게 아무리 진리라도 상대방은 즉각 돌아앉습니다. “나!” 하고 1인칭 어법으로 시작하셔야 합니다. 그러면 싸움의 90%를 웃음으로 마무리할 수 있습니다.


더 말씀 드리지 않겠습니다. (신랑 부모를 향해) 신부는 신랑 집안의 딸이 아닙니다. 신부 집안 귀한 딸로 신랑 집안 아들과 똑같은 우선순위를 지닌 배우자가 되었습니다. 예의를 갖추어 맞아주시기 바랍니다. (신랑 부모를 향해) 신랑은 신부 집안의 아들이 아닙니다. 신랑 집안 귀한 아들로 신부 집안 딸과 똑같은 우선순위를 지닌 배우자가 되었습니다. 예의를 갖추어 맞아주시기 바랍니다. (신랑을 향해) 신부는 신랑이 아닙니다. 신랑과 똑같은 우선순위를 지닌 타인입니다. 예의를 갖추어 맞아주시기 바랍니다. (신부를 향해) 신랑은 신부가 아닙니다. 신부와 똑같은 우선순위를 지닌 타인입니다. 예의를 갖추어 맞아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하여 이 순간 하나의 사랑을 지닌 두 어른이 탄생하였습니다. 축하합니다.”


예식 초반에 신부신랑이 양가 부모님과 하객들께 인사 올리는 순서는 그대로 두되 종반에 다음 순서를 덧붙였습니다.


“이제 비로소 어른이 된 두 사람이 어른으로서 첫 인사를 부모님께 올리겠습니다. 아이로서 마지막 올린 인사와 정반대 순서로 하겠습니다. 두 사람 신랑 부모를 향해 돌아서십시오. 신랑 부모님께서는 일어서주시기 바랍니다. 두 사람을 어른으로 대우한다는 뜻에서, 신부와 신랑이 절을 하면 부모님께서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맞절의 예를 갖추어주시기 바랍니다. 신부와 신랑 절! (신부 부모께도 이하 동문. 하객께도 이하 동문.) 인사가 끝나면 그대로 행진으로 이어질 것이니, 모두 앉지 마시고 서서 두 사람의 행진을 축하해주시기 바랍니다.”


예식이 끝났습니다. 피로연장으로 들어섰습니다. 하객 가운데 여러분이 제게 와서 인사를 건넸습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7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성이 제 손을 덥석 잡으며 한 말이었습니다. ‘healing이 되는 결혼식은 처음입니다.’ 저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바다를 내려다보며 소주잔을 가득 채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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